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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게 만나다] 칠흑의 밤에 새벽 빛을 만나다
하느님을 만나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원수를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 때문이었다. 감히 누가 이렇게 말할 수 있겠는가? 그때 만난 나의 하느님은 일곱 번을 일흔 번이 넘도록 끝없이 용서하시는 하느님, 가난한 이를 배려하시는 따뜻하신 하느님, 떠난 이를 기다리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셨다.
답을 찾아 헤맨 10년 동안의 방황
환희와 감사로 시작된 나의 신앙생활은 곧 흔들리기 시작했다. 교회법에 묶여 문밖에서 떨고 있는 이들을 만나면서, 하느님을 지옥과 천국으로 편 가르는 무서운 분으로 세뇌시키는 강론을 들으면서, 기도서를 달달 외우는 열심신자들의 비그리스도적인 행태들을 대하면서 ‘이건 아니다.’라는 생각을 떨칠 수가 없었다. 지금 생각하면 부끄러운 오만이었지만 당시의 내게는 신앙생활을 흔들기에 충분한 이유들이었다.
1970년대의 직장은 수당도 없이 평일야근에 주일근무를 밥 먹듯이 하던 시절이었다. 주일미사마저 궐하는 일이 잦아지면서 흔들리던 신앙생활은 자연히 냉담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하지만 나의 하느님, 내가 만난 하느님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진실로 신을 찾고자 하는 사람에게만 신은 대답하신다.”는 카알 힐티의 말을 믿고 순례의 길을 떠나는 심정으로 머리맡에 신앙서적들을 쌓아두고 밤마다 읽기 시작했다.
어느 신학자가 한 말인지 기억할 수는 없지만 10여 년간 냉담의 길에서 헤매고 있을 때 내게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게 해준 말이 있다. “회의(懷疑)하지 않으면 신앙은 자라지 않는다.”
그때 캄캄한 터널 안의 내게 여명의 빛을 비춰준 분이 떼이야르 드 샤르댕 신부, 한스 큉 신부였다. 가톨릭계에 이런 신부님들이 있었다니! 뒤늦게 알게 된 나의 무지몽매가 부끄러웠으며 가톨릭을 선택한 것에 위안과 자부심을 느끼기도 했다.
어느 겨울밤의 만남, 나를 일으켜 세우다
냉담 10여 년, 어느 겨울밤에 루이 에블리 신부의 「사람에게 비는 하느님」을 만났다. 그것은 은총이었고 어둠의 세월을 한순간에 밀어내는 섬광 같은 손길이었다. 그때의 뜨거웠던 심정을 표현하려면 톨스토이에게 도움을 청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세상의 삶 속에서 헛되이 행복을 찾아 헤매다가 지치고 피곤한 손을 신에게 내미는 순간 그가 느끼는 기쁨을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톨스토이의 말 그대로였다. 에블리 신부를 만난 것은 기쁨인 동시에 충격이었다. 그의 다음 말은 시인이고자 했던 내게는 영혼을 뒤흔드는 말이었다.
“언제쯤 돼야 시편은 순화될 것인가? 교회가 계시에 뒤떨어진 기도를 하는 일이 있다면 그것은 유감스런 일이 아니겠는가.”
신앙생활 초년생이었던 나로서는 그 시절 기도의 형태들이 교회가 원하는 방법인지 아니면 버려야 할 낡은 전통에 안주하고 있는 평신도의 안일함 때문인지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그렇게 갈등하고 있던 내게 에블리 신부는 명료하게 답을 제시해 주었다.
“기도란 하느님께 대한 우리의 호소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듣는 것이다.”
기도에 대한 나의 갈증을 해소하기에는 위의 구절만으로도 충분했다. 하지만 이 말은 시작일 뿐이었다. 에블리 신부는 나를 뜨거운 참회와 고백의 눈물을 쏟으며 아버지 집으로 돌아오게 했다.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빌고 계시다니!
기도에 대한 그의 말은 단호하게 계속되었다. 우리는 흔히 가난한 이를 위해 빵을 내려달라고, 나를 위해 온갖 것을 해결해 주십사고 하느님을 조르는데, 그보다 더 잘못된 기도는 없다는 것이다. 그것은 “자기가 해야 할 일을 교묘하게도 하느님더러 해달라고 하는 책임 회피”에 속하는 것이니 당장 중단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기도는 “만일 빵을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라면 그것을 주지 않는 분도 하느님이 되게 하는 기도”라니 참으로 간담을 서늘케 하는 말이었다.
오늘도, 인도, 아프리카, 내 이웃에 끼니를 거르는 이들이 있다. 이들에게 하느님이 골고루 먹을 수 있도록 빵을 내려주시려면 그 유일한 방법은 우리의 행동을 통하지 않고는 불가능하다는 말에 한없이 부끄러웠다. 우리의 나눔을 통하지 않고는 ‘사랑의 하느님’이 되실 수 없는 하느님, 너희가 하느님이 되라고 끊임없이 재촉하고 계신 하느님의 소리를 듣지 못한 채 하느님을 ‘무능한 전능자’로 만든 나의 무지와 무심에 심한 죄책감을 느꼈다.
“하느님은 아무도 벌하시지 않고 심판하시지 않으며 지옥으로 보내지도 않는다.”고 알려준 에블리 신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지옥과 천국의 갈림길에서 떨고 있었을 것이다. “하느님께서 그 모습과 뜻을 전부 보여주시는 과정에 있는 유일한 장애는 우리 자신”이라고 충고해 준 에블리 신부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아직도 냉담자로 성전을 기웃거리며 문밖에서 서성거리고 있었을 것이다.
우리는 오만하지만 한없이 겸손하신 하느님, 우리는 강하지만 한없이 약하신 하느님으로 “우리에게 빌고 계신 하느님”을 알게 해준 에블리 신부. 그를 만나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까지도 어둠의 터널에 갇혀있었거나, 하느님의 협력자가 되어야 할 신앙인으로서의 소명을 깨닫지 못한 채 “무능한 하느님의 숭배자”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뜨겁게 만나다] 이 땅에서 천국을 경험하지 못하면
미치 앨봄,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
며칠 전 딸한테서 전화를 받았다. 통화 버튼을 누르는 순간 들린 건 손녀의 대성통곡하는 소리였다. 이제 만 4년 3개월인 손녀는 정말 슬프게도 울었다.
“아빠, 죽는 이야기하다가 할아버지가 먼저 죽는다고 하니까 나현이가 우네.”
딸은 손녀의 울음에 당황했는지 쩔쩔매면서 이야기했다.
“나현아, 울지 마. 할아버지는 돌아가셔도 나현이 마음속에서 같이 살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손녀의 울음소리를 들으며 참 난감했다. 네 살배기 어린이에게 죽음을 어떻게 설명할까? 죽음이라는 화두가 머릿속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삶과 죽음의 중요성을 깨닫게 해준 책
작년 10월에 만기가 된 보험을 대신할 보험을 들려고 했다. 그런데 대부분의 보험회사가 고혈압이 있다는 이유로, 나이가 많다는 이유로 거절하거나 불리한 조건의 보험을 제시했다. ‘보험 불가입’이라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나니 남은 생에 대한 불안감이 확 밀려왔다.
‘나이가 더 들어 아프면 보험 혜택도 없이 병이 들면 어떡하나, 돈이 없어 치료를 못 받으면 어떻게 되나, 암보험은 있으니까 그래도 다행이다.’ 등의 생각을 하던 참에 손녀의 눈물은 다시 한번 죽음을 되새기게 만들었다.
죽음은 살아있는 모든 것들이 겪어야 할 숙명적인 사건이다. 식물의 죽음에 비해 동물의 죽음은 시체라는 부산물을 남겨 미생물이나 짐승의 밥이 된다. 사람 또한 다르지 않아 거창한 영결식을 거쳤든 아니면 소박하게 장사를 지냈든 흙이 되는 과정을 밟거나 화장하여 재가 되어 땅속에 묻히거나 물이나 바다, 산에서 흩날리기도 하고, 수목장 등 다양한 방법으로 장사를 지낸다.
육체는 흙이 되지만 영혼은 천국이나 연옥, 지옥으로 간다. 죽자마자 가는 것인가? 아니면 구천을 맴돌다가 가는 것일까? 억울한 영혼은 구천을 헤맨다는데, 연도를 바치면 빨리 천국으로 간다고 하는데 맞는 말일까?
미치 앨봄이 지은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은 삶과 죽음의 중요성을 다시 한번 깨닫게 만들어준 책이었다. 죽어 다섯 사람을 만나야 비로소 천국으로 간다는 건 비종교적인 발상이지만 다섯 사람을 통해 주인공 에디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게 된다.
에디의 과거로의 여행에서 만난 다섯 사람 중에는 에디라는 주인공이 생전에 만난 사람도 있고, 만나지 않은 사람도 있다. 그러나 모두 에디와는 인연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자신 때문에 죽은 사람도 있고, 에디에게 상처를 준 사람도 있다.
죽은 뒤 만난 다섯 사람
놀이기구의 추락으로 위험에 빠진 어린이를 구하고 죽은 에디가 처음으로 만난 사람은 에디 때문에 죽은 남자였다. 야구공을 잡으려고 도로에 뛰어든 어린 에디를 피하려던 남자는 에디가 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길가에 서있는 트럭에 부딪쳐 목숨을 잃고 말았다.
에디가 두 번째로 만난 사람은 필리핀에 참전했다가 포로로 잡혀 굶주림과 노동에 시달리다 적군을 죽이고 탈출하는 과정에서 지뢰를 밟아 부하들을 구하고 전사한 대위였다.
세 번째로 만난 사람은 에디가 미워하는 아버지였다. 무뚝뚝하며 폭력적인 아버지는 에디의 반항에 섭섭하여 말도 하지 않는 관계로 발전한다. 에디는 아버지를 사랑하지도, 이해하려고도 하지 않은 자신을 발견한다. 아버지는 친구를 구하려다 물에 빠져 익사했지만 에디는 술주정으로 바닷물에 빠져 병이 들어 죽은 것으로 알고 있었다.
네 번째 만난 사람은 에디의 사랑하는 아내 마거릿이었다. 경마장에 있는 남편을 데리러 가던 마거릿은 한 소년의 술병 떨어뜨리기 장난 때문에 부상을 당했다가 살아난다.
다섯 번째 만난 사람은 어린 소녀였다. 필리핀에서 적군을 죽이고 불을 지를 때, 불에 타죽은 소녀였다. 불붙은 막사 안에 누가 있음을 알고 머뭇대다가 대위의 재촉에 그냥 빠져나오는 바람에 소녀는 죽는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보아야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수많은 사건을 겪는다. 자의든 타의든 선의를 베풀기도 하고, 악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법을 어기기도 하고, 남의 마음을 아프게 만들기도 하며, 때로는 오해와 편견으로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자신을 괴롭힌다.
이 책은 천국이나 지옥을 그린 소설이 아니다. 그러나 천국에서 만난 다섯 사람을 통해 사람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준다. 곧 현재의 삶이 죽음과 연결되고 있으며, 만나는 사람들과의 관계를 통해 죽음의 세계에서 천국을 맛볼 수 있다는 평범한 진리를 통해 삶을 되돌아보게 만드는 책이었다.
십자가에 달린 강도에게 “오늘 나와 함께 천국에 있으리라.”라는 주님의 말씀에 따르면 죽음의 문턱에 들어서자마자 천국이나 지옥으로 직행하는 것 같지만, 이 책에서는 우리가 살아가면서 알게 모르게 만나는 사람, 행위와 감정을 세상을 떠나 다섯 사람을 만나고 나서 비로소 천국에서의 생활, 평화로운 삶을 살게 된다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이 세상에서 천국을 맛보지 않으면 죽어서 천국에 갈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이 마음에 와 닿는다. 이기적이고, 탐욕적인 삶을 살면서 가족이나 이웃에게 피해를 준다면 천국은 그 어디에도 없을 듯하다.
[뜨겁게 만나다] 주님! 저는 사랑밖에 아무것도 몰랐나이다
리처드 하디, 「無에의 추구 - 십자가의 성 요한의 생애」
어느 인간이든 내면 깊숙이 들여다보면 상처 없는 영혼이 없습니다. 어떤 이는 그의 이름만 떠올려도 살얼음 조각에 베인 듯 싸한 아픔이 전해오는 이가 있습니다. 저에게는 이번에 소개할 책 「無에의 추구」 주인공인 ‘십자가의 요한’ 성인이 그렇습니다.
사순 피정에서 시 한 편을 만나다
어느 해 봄 사순시기에 전교가르멜수도원에서 피정을 했습니다. 그때 수녀님께서 읽어주신 시 한 편이 제 가슴을 긋고 지나갔습니다. 처음엔 눈을 감고 수녀님의 낭랑한 음성에 끌려 시 속으로 빠져들었는데 점점 가슴에 통증이 느껴졌습니다. 얼음 조각에 베인 듯 싸하고 아린 통증이. 어느 순간부터는 눈물샘이 터져 주체할 수 없이 흘러내렸습니다.
저를 울린 시는 최민순 신부님께서 번역하신 십자가의 성 요한의 ‘어두운 밤’이었습니다.
그 광경을 조용히 지켜본 수녀님이 피정이 끝날 무렵 저에게 책 한 권을 건넸습니다. ‘십자가의 성 요한’의 생애를 다룬 「無에의 추구」란 문고판형 책자였지요. 저는 이 책을 읽기 전까지는 그분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었습니다. 그저 스페인의 ‘신비주의 수도사’라는 정도밖에….
여느 해 사순시기 같았으면 커피를 끊거나 금요일 아침을 굶는 것으로 금욕적인 실천 한 가지를 행하며 지냈을 터인데 그해는 그냥 책만 읽기로 했습니다. 하루에 많은 분량을 읽지 않고 묵상할 수 있을 만큼만 조금씩 읽어갔지요. 대개의 평전이나 전기문이 그렇듯이 출생에서부터 성장, 죽음까지를 한 권에 망라한 책이었습니다.
교회 개혁운동과 시련 속에서
요한 예페스는 여덟 살에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그는 어려운 가정형편(그의 집안은 개종자로서 유다계 혈통이 들통 날까 봐 유랑생활을 하였다.) 때문에 열세 살 때부터 빈민들을 위한 특수병원 ‘라 부바’에서 간호조무사로 일하며 근근이 학업을 이어갔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살라망카대학교를 졸업한 그는 곧바로 예수의 성녀 데레사 수녀와 손잡고 교회의 개혁운동에 뛰어듭니다.
그동안 호의호식하며 온갖 특권을 누렸던 성직자와 수도자들에게 거친 베옷을 입고 맨발로 고행의 삶을 살자고 외치니 사달이 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제일 먼저 그가 속했던 공동체에서 반발과 비난이 빗발쳤습니다. 급기야는 동료수사에게 보쌈을 당해 톨레도수도원으로 끌려가 종탑 꼭대기 방에 갇혔습니다.
온갖 모욕과 폭력이 쏟아졌습니다. 식사 때마다 식당 입구에 꿇어앉게 하고 동료수사들이 지나가며 가죽 회초리로 등짝을 치거나 빵 부스러기를 바닥에 던져주는 수모를 당했습니다. 널빤지 몇 조각을 이어붙인 다락방에서의 감금생활이 길어지자 등짝 상처에서 피고름이 묻어나고 추위와 배고픔으로 인한 육신의 고통이 극에 달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누구도 원망하지 않았고 긴긴 밤 상처를 감싸고 오직 ‘임(하느님)’만 생각하며 시를 지었습니다. 이때 주옥같은 신비주의 시들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둔 밤’, ‘영혼의 노래’ 등 스페인 전통시의 최고봉 걸작들이.
육체의 고통이 깊어갈수록 임과의 긴밀한 대화에 빠져든 요한 사제. 교회 개혁의 선구자였던 그가 보여준 무구한 신앙심에 저는 그만 책장을 덮을 때가 많았습니다. ‘하느님과의 관계가 얼마나 깊어지면 저토록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을까?’
그는 백오십 센티미터도 안 되는 작은 체구로 모진 시련을 견디다 1591년 12월 13일 자정을 넘기고, 조과경을 바치는 새벽 종소리를 기다리며 평온하게 숨을 놓습니다. 마흔아홉의 생애를 다락방에서 마친 것입니다.
성인의 고행을 좇아
저는 이 책을 읽고 그 봄 내내 몸살과 어지럼증을 앓았습니다. 그때는 몰랐지만 몸이 회복되면서 어렴풋이 하느님 곁에 가까이 갔었던 느낌이 들었습니다. 성인의 고행을 좇으며 특별한 체험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 뒤 ‘십자가의 성 요한’에 관한 책들을 모조리 찾아 읽었습니다. 책 속에서 우연찮게 만난 그가 지금은 나의 사표로서 영감을 주고 신앙의 길잡이 노릇을 해줍니다.
제 책상 앞에는 엽서 크기만 한 노란색 이콘 하나가 걸려있습니다. 제가 십자가의 성 요한을 존경하는 것을 알고 스페인 여행을 다녀온 친구가 사다준 그림입니다. 당신이 감금되어 있던 톨레도수도원 벽에 나타나셨던 예수님의 형상을 직접 그린 것으로 그때 받아 적은 “생의 황혼녘에 너를 사랑으로서 심판할 것이다(A la tarde te examinaran en el amor).”라는 글귀가 새겨진….
제겐 고약한 버릇이 있습니다. 좋아하는 인물이 생기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습관. 처음엔 그의 사상을 좇다가 나중엔 내밀한 사생활까지. 그리고 그의 영혼의 실핏줄까지도 캐어보고 싶은 욕망이 발동합니다.
이렇듯 요한 예페스에 대한 관심도 깊어져 그의 성장기를 추적하다 부모를 알게 되었고 집안의 가계와 민족의 역사까지도 거슬러 올라가게 되었습니다. 그분의 시를 원문으로 읽고 싶어 스페인어 공부를 시작했는데 어쩌다 보니 스페인 역사와 문화에도 빠져버렸습니다.
이 세상 마지막 날, “예, 예, 주님! 저는 사랑밖에 아무것도 몰랐나이다.” 하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뜨겁게 만나다] 신은 인간을 포용하는 존재
엔도 슈사쿠, 「깊은 강」
엔도 슈사쿠 생애 마지막 장편소설인 「깊은 강」은 1993년 그의 나이 70세에 출간되었다. 책이 출간되자 일본 문학계는 엔도 슈사쿠 문학의 집대성이자 최고의 작품으로 유명한 그의 소설 「침묵」을 능가한다고 평가했다.
잃어버린 것을 찾아 떠나는 여행
「깊은 강」은 13장으로 구성되어 각 장마다 등장인물의 삶과 행적, 그리고 인도 관광 목적을 뚜렷이 구분하고 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던 이소베는 아내와 과묵하고 굴곡 없는, 평이하지만 안온한 삶을 산다. 그러다 아내가 죽고 난 뒤 이소베는 내세를 굳게 믿던 아내의 소원인 환생을 이루어주고자 인도 여행을 떠난다.
학생 때 같은 대학교 신학생인 오쓰를 유혹하고 버린 나루세 미쓰코는 오쓰에 대한 알 수 없는 미련으로 그의 뒤를 쫓는다. 그래서 오쓰가 유학 간 프랑스 파리로 신혼여행을 떠나고, 그곳에 남편을 남겨둔 채 오쓰를 만나러 리옹으로 간다.
오쓰와 만난 미쓰코는 “신은 존재라기보다 손길입니다. 하느님은 사랑을 베푸는 덩어리입니다.”라는 오쓰의 말에 자기와는 이미 동떨어진 차원의 세계로 들어가 있는 그를 발견하게 된다.
동화작가 누마다는 기르던 구관조가 죽자 야생동물 보호지역을 찾아 인도 여행을 결심한다.
또 전쟁 중에 미얀마 정글에서 부대를 이탈한 기구치와 스키타가 있다. 스키타는 굶주림을 참다못해 죽은 전우의 인육을 먹는다. 일본으로 돌아온 스키타는 그 기억을 잊으려고 술로 세월을 보내다 생을 마감하게 되고, 기구치는 숨진 전쟁 동료의 영혼을 위로해주고자 아픈 과거를 가슴에 안고 인도 여행단에 끼어 갠지스 강까지 오게 된다.
이렇게 각기 저마다 아픈 상처를 안고 인도 바라나시에 도착한 일행 앞에 인도 수상 간디가 암살당하는 사건이 벌어진다.
그는 아름답지도 않고 위엄도 없는, 그저 성자였다
새벽 4시. 오쓰 신부가 일어나 몸을 닦고 세수를 하고, 혼자 미사를 올린다. 마지막 기도를 마치고도 오쓰 신부는 계속 무릎을 꿇고 있다. 리옹 수도원에서도 오쓰 신부는 예수님과 마주할 때만이 평온함을 찾을 수 있었다.
날이 밝아오자 오쓰 신부는 질퍽하고 더러운 거리를 돌아다닌다. 오쓰 신부가 찾는 것은 귀퉁이에 웅크린 채 헐떡이며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인간의 모양새를 하고도 인간다운 삶을 살지 못하는 인생들이며 갠지스 강가에서 죽는 것만을 마지막 소망으로 삼고 간신히 갠지스 강가에 당도한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있는 곳을 오쓰 신부는 잘 알고 있었다. 그곳은 사람의 눈이 닿지 않는 좁은 벽 틈으로 밖의 빛이 겨우 새어 들어오는 장소였다.
벽에 기댄 노파가 눈에 들어오자 오쓰 신부는 자루에서 알루미늄 컵과 물병을 꺼내 물을 따라 노파의 입에 컵을 갖다 대고 물을 흘려보낸다. 노파는 힘없는 목소리로 “강가…”라고 말한다.
오쓰 신부는 포대기를 자루에서 꺼내 노파의 자그마한 몸을 싸서 업는다. “강가….” 노파는 오쓰 신부의 어깨에 전신을 내맡기고 똑같은 말을 울먹이며 되풀이한다. 일을 끝낸 오쓰 신부가 걸으며 기도한다.
“당신은 등에 십자가를 지고 죽음의 언덕 골고타를 올랐습니다. 저는 지금 그 흉내를 내고 있습니다.”
화장터가 있는 마니카르니카 가트에서는 이미 연기 한 줄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갠지스 강의 성자
항상 튀는 행동으로 동료 여행객을 당황케 했던 산조가 사진기를 들이대고 인도인의 주검을 찍었다. 그 순간, 화장터로 내려가는 계단 부근에서 비명이 울렸다.
웅크리고 있던 힌두교도들이 일제히 벌떡 일어나 소리를 지르며 내달리기 시작했고 동양인 한 명이 허겁지겁 달아나고 있다. 일본 관광단의 일행인 산조였다.
그러자 시신을 나르고 휴식을 취하던 오쓰 신부가 뛰쳐나와 유족 앞을 가로막고 서서 진정시키려 애쓴다. 하지만 격앙된 유족들은 가로막고 선 오쓰 신부를 에워싸고, 사방에서 패고 발로 차댔다. 그 사이에 산조는 강변 뒤쪽 미로로 도망쳤다.
수상의 암살로 신경이 곤두선 힌두교도가 오쓰 신부에게 분노를 퍼부었다. 화물차에서 부려지는 짐짝처럼 가트에서 굴러 떨어진 오쓰 신부는 그대로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때 미쓰코가 모여든 사람들 사이로 오쓰 신부를 보고 소리쳤다.
“이 사람이 아니에요. 이 사람은 아무 짓도 하지 않았어요.”
그러자 오쓰 신부가 가늘게 눈을 떠 미쓰코를 보며 억지웃음을 지었다. 목은 오른쪽으로 뒤틀린 채.
“정말 바보야. 하느님 때문에 일생을 망치다니. 당신이 하느님의 흉내를 냈다고 해서 증오와 에고이즘밖에 없는 세상이 바뀔 턱이 없잖아.”
미쓰코의 절규처럼 오쓰의 행적은 하느님의 흉내만 냈을 뿐일까?
오래전 일본 나가사키 성지로 순례를 갔었다. 푸른 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엔도 슈사쿠 문학관이 앉아있는 소토메 마을에 세운, 작은 비에 새겨진 비문은 아직 내 눈에 그대로 담겨있다.
“인간이 이토록 슬픈데, 주여, 바다가 너무나 푸릅니다.”
[뜨겁게 만나다] 날마다 뜨겁게 받아 읽는 추기경의 편지
차동엽 신부 엮음,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
김수환 추기경님께서 “고맙습니다. 사랑합니다.” 이 말씀을 끝으로 선종하신 날, 수많은 사람들이 명동성당으로 질서정연하게 걸어 들어가는 모습을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면서 나도 모르게 복받쳐 오르는 뜨거운 눈물에 나의 영혼이 홍건하게 젖어가고 있음을, 그리고 나의 육신은 그분의 보이지 않는 어떤 힘에 의해 꼼짝도 할 수 없었음을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한다.
내가 뜨겁게 만난 「김수환 추기경의 친전」은 추기경님께서 살아 생전에 하셨던 ‘말씀’을 차동엽 신부님이 배달해 준 편지이다. 나는 추기경님의 ‘말씀’을 편지로 받을 때마다 ‘허형만 가브리엘 형제 친전’이라는 겉봉을 먼저 읽게 된다. 국어사전에는 ‘친전(親展)’을 “편지를 받는 분이 몸소 펴 보아주기를 원하는 말”로 풀이하고 있다. 어쩌다 나에게까지 이런 귀한 편지가 ‘친전’으로 배달되고 있을까, 감사할 따름이다.
추기경님께서 평화신문 기자의 요청에 따라 애송시로 읊으셨다는 고은 시인의 ‘가을 편지’ 가운데 “가을엔 편지를 하겠어요. 누구라도 그대가 되어 받아주세요.”에서처럼 ‘그대’ 속에 나도 포함되었다는 이 고맙고 감사할 일이 나는 말씀의 편지를 읽을 때마다 경이로움으로 다가오곤 한다. 이제부터 이 글을 읽는 당신도 “그대가 되어” 받으셨을, 나도 받은 편지를 몇 대목만 공개한다.
제1신.
“사랑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는 데 칠십 년 걸렸다.”
“인생에 있어서 가장 긴 여행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것입니다. 머리에서 마음에 이르는 것. 머리에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을 마음에까지 도달하게 하여 마음이 움직여야 하는데 그것을 우리는 모두 잘 못합니다.”
나도 내년이면 우리 나이로 칠십이 된다. 그런데 그 ‘사랑’이 아직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려 하질 않는다. 인생에서 가장 긴 여행이 “머리에서 마음에 이르는 것”임을 미처 깨닫지 못한 우매함 때문인가.
추기경님은 내게 말씀하신다. “마음을 움직여라!” 이것이 곧 지금까지 잘못 살아온 나의 삶과 신앙을 바로잡는 길일 터. 그러니 추기경님이 칠십 년 걸린 그 길을 나도 앞으로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이 얼마가 걸리더라도 사랑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오게 해야 하리.
제2신.
“세상을 어둡게 하는 것은 무엇인가? 전기가 다 나간 뒤 불을 밝힐 것이 없으면 어두울 것인가? 아니다. 습관이 들면 태양만으로도 족하다. 달도 없으면 별빛만으로도 족하다. 그것마저 없어도 관계없다. 마음만 편하다면! 가장 어두운 것은 삶의 희망이 완전히 없어졌을 때이다. 삶의 의미가 없고, 보람이 없고, 미래가 전혀 없을 때이다. 그것은 곧 죽음이다.”
신앙인에게 희망은 곧 그리스도의 빛이리라. 나는 그 빛을 찾아 1988년 광주 피정센터에서 제28차 매리지 엔카운터(ME)에 참여하여 눈물로 기도했었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의 수상집인 「희망의 문턱을 넘어」를 탐독했었다. 요즘에는 추기경님의 이 편지를 나에게 보내준 차동엽 신부의 「희망의 귀환」을 다 읽고 나서 차 신부가 추기경님의 희망철학의 배달부로서 적임자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그래서 나는 이 편지 마지막을 “삶의 의미가 있고, 보람이 있고, 미래가 있을 때, 그것이 곧 희망이다.” 이렇게 바꾸어 며칠 전 초청강연에서 써먹었다. 써먹다니, 아니다. 희망 없는 곳에도 희망이 있다 하시던 추기경님의 편지를 나도 배달했다. 아울러 차 신부의 희망 메시지도 함께 덤으로 배달했다. “나도 희망한다. 너도 희망하라(Spero, Spera).”
제3신.
“윤동주의 ‘별 헤는 밤’, 특히 ‘별 하나에 추억과 별 하나에 사랑과 별 하나에 쓸쓸함과…’ 구절을 좋아한다.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이렇게 시작되는 ‘서시(序詩)’도 매우 좋아하지만 감히 읊어볼 생각을 못했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게 많아서 그런 것 같다.”
추기경님의 편지를 읽고 나는 내 자신이 얼마나 부끄러운 존재인가를 새삼스럽게 깨달았다. 명색이 시인이랍시고 40년 동안 시를 써오며 13권의 시집을 겁도 없이 출간했다. 이제 와 생각해보니 추기경님께서 나를 모르셨던 게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르겠다.
“서시(序詩)도 매우 좋아하지만 감히 읊어볼 생각을 못했다.”고 하신 추기경님께, 선생 노릇 40년 동안 너무 함부로 이 시를 가르치고 읊고, 심지어 중국 용정에 갔을 때 윤동주 무덤 앞에서 이 시를 읊었던 점을 용서받고 싶다. “하늘을 우러러 부끄러운 게 많아서”라고 말씀하시는 추기경님은 진정한 시인이시다.
마지막으로 추기경님의 부임지 김천 성의여고 시절부터 알고 지냈다는 신치구 장군의 회고담이 오늘 아침 배달된 편지 속에 덤으로 전해졌다. “내가 김 추기경님을 가장 존경하는 이유는 따로 있어요. 다른 게 아니라, 김 추기경님은 단 한 번도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한 적이 없어요.” 알렐루야!
[뜨겁게 만나다] 하느님은 개굴개굴 소리에도 기뻐하신다
앤소니 드 멜로 신부, 「하느님과의 만남」
그 순간 꼭 필요한 말씀이 뚜벅뚜벅
앤소니 드 멜로 신부님을 「개구리의 기도」를 통해 처음 만났다. 삶이 버거울 때나 쓰던 글이 벽에 부딪칠 때면 나는 영성서적을 읽는다. 도서관의 영성서적 코너에 손을 뻗으면 신기하게도 그 순간에 필요한 책이 손 안에 들어온다. 그날도 내 인생이 산산조각난 기분이라 슬픔에 잠겼었는데 앤소니 신부님이 뚜벅뚜벅 내게로 다가오셨다.
「개구리의 기도」는 민담이나 우화로 재미있고 쉽게 읽혔는데, 하느님은 개굴개굴 소리에도 기뻐하신다는 구절이 가슴을 쿵 쳤다. 큰 북의 진동처럼 그 말은 오래도록 마음에 파장을 만들었다. 개구리 울음도 기도로 듣는 하느님이시라면,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실 리가 없다는 믿음이 생겼다.
또한 그 기도가 간절하다면 하느님께서는 얼마나 미쁘게 여기시며, 살펴주실까! 그 감동이 신부님의 모든 책을 사서 읽게 했고 나는 곧 그 영성에 매료되었다.
기도의 방법과 회개의 의미
인도 출신인 앤소니 신부님의 작품들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본질적 내용과 어긋난다는 교황청 신앙교리성의 공지(1998년)가 있었지만, 예수회의 이냐시오 영성수련을 발전시킨 신부님의 강의가 여러 권의 책으로 출간되었다. 신부님은 이론적인 주입이 아닌 성령을 함께 체험하는 강의를 하셨다. 「하느님과의 만남」은 피정지도 강의를 모은 책으로 기도하는 방법과 속죄와 용서, 그리스도의 사랑을 깨닫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제시해 준다.
나는 기도란 묵상과 관상기도가 진짜이며 단순한 염경기도와 청원기도는 저급하다는 어리석은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만 어떻게 친교를 맺어야 할지도 몰랐다. 고해성사는 무엇을 고백해야 하는지, 미사시간의 전례가 답답하게 여겨졌을 때도 있었다. 부득이한 일 때문에 주일미사를 가지 못해도 죄의식을 가졌고, 내 잘못이 아닌 일에도 ‘내 탓이오.’ 하는 어두운 종교생활을 했다.
나는 이 책을 통하여 종교란 우리가 행해야만 하는 무엇이 아니며, 하느님을 위해서 해야 하는 그 무엇도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것은 우리를 위해, 우리 안에서, 우리를 통해서 하느님께서 하시는 그 무엇이며, 따라서 우리의 노력과 갈망과 은총에 대한 협력까지도 하느님의 선물임을 알게 되었다.
많은 신자들처럼 나는 회개가 “주님, 죄송합니다.”라는 반성인 줄 알았다. 그러나 회개는 “주님, 사랑합니다.”라는 고백이었다. 신약성경 어디에도 예수님께서 우리가 죄를 용서받으려면 미안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은 없었다. 다만 내가 할 일은 다른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는 것이었다.
예수님께서도 “너희가 서서 기도할 때에 누군가에게 반감을 품고 있거든 용서하여라. 그래야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신다.”(마르 11,25)라고 하셨지만, 사실 용서는 쉽지 않다.
용서의 은총을 얻는 기도방법은 미운 사람의 행복을 위해 기도하고, 내가 당하는 모든 불의를 하느님께서 어떤 신비한 목적을 위해서 계획 통제하신다고 믿는 것이다. 또 마음속으로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앞에서 이 위대한 불의의 희생자를 바라보면, 내가 당하는 작은 불의로 야단법석을 떠는 스스로가 부끄러워진다.
그렇게 나는 미운 사람들을 놓아주었다. 지나고 보니 그들이 나를 붙든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을 붙들고 있었다. 미움의 모습으로 사랑을 청하거나 관심을 바랐고, 또는 나의 피해에 스스로 집착하여 함몰되기도 했다. 미워하는 마음을 없애자 신기하게도 건강까지 좋아졌다.
나는 힘이 세다
인간의 깊은 내면은 기도하는 동물이라고 했다. 인간은 자기 영혼 깊은 그곳, 생명의 샘에 도달하지 못하는 한 행복할 수가 없다. 하느님의 말씀을 잘 들으려면 침묵이 필요하다.
기도 중에 가장 힘든 시련은 기도 중에 만나는 하느님께서 내 합리화의 껍질을 벗겨버리고, 보호막을 부수어 나의 알몸뚱이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시는 일이다. 그를 견디려면 가련한 피조물임을 고백하고 이겨낼 힘을 청해야 한다.
그분은 멋들어진 기도를 바라지 않으신다. 물질을 포함해서 필요한 것들이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받아들이고, 채워주실 것을 간구한다. 하느님과 친교를 맺으면서 나는 신부님의 말씀대로 “성령의 능력을 통해 속사람으로 굳세어지는 힘”을 얻었다. 나는 힘이 세다.
호흡과 걸음에 맞추는 기도
개인적으로 나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는 짧은 주문기도의 힘을 좋아한다. 내 호흡과 걸음에 맞춘 이 기도는 온종일 주님과 함께 호흡한다는 느낌을 주고 쓸데없이 생각이 많아지는 것을 막아준다.
잠자리에 들어서는 편하게 누워서 천천히 말을 한다. “매일매일, 여러 모든 경로를 통해서, 내 건강은 점점 더 좋아지고 있어.”라고. 그분의 치유를 받아들이는 순간, 나는 실제로 엄청난 치유를 체험했고 영적인 새 힘이 솟았다.
내 안에는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을 무시하며 살아왔다. 탐험을 기다리는 내 안의 우주를 버리고, 외부의 세상과 외적인 이유만을 위해 살아왔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님께서 나를 있는 그대로 사랑하고 받아들이신다는 것과, 그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게 되었다. 그 큰 사랑은 나의 행복과 평화만 바라는 분이 주시는 사랑이다.
요구하시는 하느님이 아니라 조건 없이 사랑하시는 사랑에 찬 아버지가 계시니, 나는 자신있게 내 안의 우주로 향한다. 나는 그 우주의 힘을 믿는다.
나의 아버지! 사랑합니다!
[뜨겁게 만나다] 삶의 숙제를 푸는 길잡이
소노 아야코와 알폰스 데에켄 신부 「먼 길 떠나는 날 아침에」
초등학교 5학년 때 장티푸스로 몇 달을 앓았다. 전염병이라 마을 사람들이 불안과 긴장 속에 소문에 귀를 세우고 있었다. 그런 참에, 누군가가 “연순이가 죽었대.” 하는 바람에 선생님들이 죄달려오시고 마을 어른들도 속속 모여들었다. 유난히 나를 예뻐하시던 어머니 친구분은 “아이고, 연순아!” 하시며 대문귀서부터 눈물바람이셨다.
곧 이웃사촌 오빠가 벌인 만우절의 해프닝임이 밝혀지자 집안이 술렁이고 음식상이 차려지는 낌새가 있더니, “이제 연순이는 오래 살 겁니다.” 하면서 손님들이 돌아가는 것이었다. 바람이 든다고 내가 있는 방문은 열어보지 않고 나 들으란 듯 웃음기가 밴 목청을 돋우셨다. 무슨 주인공이 된 것처럼 기분이 썩 괜찮았다.
“서른둘이 천명”이라는 말
봄빛이 날로 따사로웠지만 나는 아직 마당에 내려서지 못하고 조심스럽게 회복기를 견디고 있었다.
희한하게도 살갗이 허물을 벗었다. 그날도 흰 습자지 같은 그것을 될수록 크게 벗겨서 거기에 난 실금과 털구멍을 밝은 쪽에 비춰보며 시간을 죽이는데, 밖에 스님이 오신 것 같았다. 어머니와 두런두런하더니 스님이 “막내 여식은 서른둘이 천명입니다.” 하시는 게 아닌가.
번개가 쳤다. ‘서른둘! 무척 오래 사는구나, 실컷 사는구나, 심심해서 어떡하지?’ 하고 생각했다. 열 살배기에게 서른둘은 까마득하게 멀어서 보이지도 않는 허공이었다.
그럼에도 그때부터 죽음이라는 것이 늘 나와 함께 있는 것을 느꼈고 그것을 관망하게 되었던 것 같다. 잦은 병치레에도 시간의 속도대로 나이를 먹고 결혼을 하고 남편의 인도로 영세를 했고 연년생으로 두 아이의 엄마가 되었다.
그리고 1979년 나이 서른에 자궁암이 왔다. 초진한 의사의 오진과 처방으로 시간을 끄는 동안 쑥쑥 자라버린 그것과 4년을 밀고 달래면서 더불어 살았다. 의료진이 항암제가 듣지 않는 영문을 몰라 당황하는 가운데 고통은 점점 심해지고 몸은 망가질 대로 망가져서 더 이상 치료를 할 수 없는 처지가 되었다.
길 떠날 준비를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딱히 도움 받을 데가 없었다. 지방과 서울을 오르내리며 입퇴원을 반복해야 했고 본당신부님마저 개인적인 고통에 휘말려 계셨다.
출발은 임박한데 준비가 없어 당황스럽고 초조했지만 남편에게조차 속마음을 털어놓지 못했다. 희망을 놓아버린다고 낙담할 것 같아서였다. 집안을 정리하고 버릴 것은 다 버렸다.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나서면서 현관에서 내 슬리퍼마저 쓰레기통에 던졌다.
‘주님 앞에 목욕이라도 하고 가야지’
단호하게 결심을 하고 입원실에 들어왔다고 생각했으나 여전히 허둥대고 있었다. 그 상태로는 하느님 뵈올 면목도 염치도 없어 난감하기 이를 데 없었다. ‘엉망진창인 나를 그나마 좀 다듬어야지, 나의 주인이신 주님 앞에 목욕이라도 하고 가야지.’ 하는 생각이 간절했다.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내었다. 기억이 있는 처음부터 그러니까 네 살 즈음부터 연도별로 머릿속에 사람과 상황을 떠올리고 그 대상에 따라 감사와 용서와 화해의 묵주기도를 5단씩 올리기로 한 것이다. 나는 그 일을 ‘작업’이라 이름하고 누락되는 것이 없도록 나름 꼼꼼하고 진지하게 짚어나갔다.
어린 시절은 쉽게 지나가더니 머리가 클수록 복잡하고 건수도 많아졌다. 용서와 상처가, 화해와 원망이 엎치락뒤치락하는 가운데 마음의 통증을 이겨내기가 무척 힘이 들었다. 어떤 기억에는 며칠을 매달리기도 했다. 마음이 너무 아파서 울고 또 울었다.
‘주님! 살려주세요!’ 그리고 책을 만나다
그러던 어느 날, 오늘 밤을 넘기기 어렵겠다는 의료진의 귀엣말을 듣고 말았다. 순간 내 안에 백열등이 켜지고 시간의 엄중함이 가슴을 쳤다. 나는 필사적이 되었다. ‘주님! 살려주세요!’ 그 한마디 묵언을 외치고 또 외쳤다. 그리고 아침이 왔다. 그로부터 죽음의 준비는 삶의 숙제가 되었다.
수년 후에 일본의 여류 소설가 ‘소노 아야코’와 독일 태생으로 일본에 귀화한 가톨릭 사제이며 철학자인 ‘알폰스 데에켄’의 「먼 길 떠나는 날 아침에」를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은 두 사람이 죽음과 죽음의 준비를 주제로 하여 3년에 걸쳐 주고받은 편지를 묶은 것이다.
진작 만났더라면 하는 아쉬움으로 밑줄을 쳐가며 연거푸 읽었다. 뭐랄까, 내게 꼭 필요한, 정말 고대하던, 내게 꼭 맡는 참고서라고나 할까. 무겁고 두렵고 어두운 주제를 쉽고 친절하고 자상하게 이끌어서 희망으로 가득 차게 해주었다.
그만큼 밝고 가벼운 마음으로 죽음과 사귈 수 있을 것 같았다. 우리의 삶이 단순한 동물적인 죽음으로 끝난다면 삶도 사랑도 믿음까지도 얼마나 허망하겠는가.
소노 아야코는 “만약 삶의 보람이란 말이 존재한다면, 죽음의 보람이란 말도 존재할 것이고, 그 두 말이 똑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는 점에 놀라게 됩니다.”라고 말하는가 하면, 알폰스 데에켄 신부님은 “죽음은 인생에서 오직 하나의 절대적인 확실한 현실이며 사람이 사는 시간이 한정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의 인생을 애처롭게 여기며 남을 사랑하는 일의 귀중함을 깨닫게 된다.”고 말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