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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도의 표징 주일 성수
31: 12-18
12.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13.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하여 이르기를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
14. 너희는 안식일을 지킬찌니 이는 너희에게 성일이 됨이라 무릇 그 날을 더럽히는 자는 죽일찌며 무릇 그 날에 일하는 자는 그 백성 중에서 그 생명이 끊쳐지리라
15. 엿새 동안은 일할 것이나 제 칠일은 큰 안식일이니 여호와께 거룩한 것이라 무릇 안식일에 일하는 자를 반드시 죽일찌니라
16.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이 안식일을 지켜서 그것으로 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17.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며 나 여호와가 엿새 동안에 천지를 창조하고 제 칠일에 쉬어 평안하였음이니라 하라
18.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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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말씀은 출 25-31장까지의 성막에 관한 규례 중 결론에 해당하는 부분으로, 안식일에 관한 규례입니다. 그런데 안식일 규례는 이미 십계명을 통해서 주신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성막에 관한 규례를 마감하시면서 또 다시 안식일 규례를 언급하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성막이 매우 귀중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성막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만드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는 더욱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실제 생활에서 구체적이며 반복적으로 여호와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방법으로, 시내산 언약의 표징이 되는 안식일 규례를 다시 한번 강조하심으로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있어서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이 하나님과의 바른 언약 관계임을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이는 성막 건축 착수를 명하기에 앞서 다시 한번 안식일 규례를 주신 사실로도 입증됩니다.
1. 주일 성수는 하나님의 백성 된 자의 표징입니다.
12-13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자손에게 안식일을 지킬 것을 명하라고 하시면서, 안식일 준수가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대대의 표징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은 안식일을 지킴으로써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의 증거를 하나님 앞에 보여야 했고, 안식일의 안식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을 체험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칠 일마다 돌아오는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을 유지하고 영적 능력을 충전시키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언약의 표징이 되었던 안식일 준수는, 오늘날 성도들의 주일 성수의 개념 속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즉 성도가 주일 뿐만 아니라 다른 날에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도 있고, 성도의 교제를 나눌 수도 있지만, 특별히 주일 성수는 하나님과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간의 관계의 표징으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주일 성수는 신앙인과 비 신앙인을 구분하는 기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성도의 표면적인 기준은, 주일날 정기적으로 예배에 참석하느냐, 하지 않느냐에 달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독교인이라고 하면서 주일날 교회에 나가지 않는다면, 불신자들이 보아도 정성적인 신앙인이 아님을 쉽게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굳이 주일날 교회에 나가지 않더라도, 개인적으로 성경을 연구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한다면, 그리스도인이 아니겠느냐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모임인 교회를 통하여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주일의 모임을 통하여 하나님 앞에 예배하고 헌신하는 것이 정상적인 신앙생활입니다.
또한 어떤 사람은 구약의 안식일 제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안에서 완성되었으므로, 의무적으로 어떤 날을 정하여 지키도록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 주님께서 부활하신 주일 예배에 참여하는 것은, 성도로서의 당연한 의무이며 자신이 신앙인임을 증거 하는 최소한의 증거인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일 예배만 열심히 드리고, 평소에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는 영적 예배를 드리지 못한다면, 주일 예배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말합니다. 물론 그 말은 맞는 말입니다. 그러나 주일도 지키지 못하는 사람이, 평일에 하나님 앞에 영적 예배의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 과연 가능하겠습니까? 결코 그렇다고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주일을 지키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는 아니지만,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은 신앙생활의 기본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주일을 철저하게 성수하는 것이, 신앙생활의 가장 기본임을 기억하고 주일을 지키기에 최선의 노력을 기울여야 하는 것입니다.
2. 안식일은 소극적 의미와 적극적 의미를 동시에 가집니다.
14-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한 처벌 규정을 말씀하셨습니다. 그것은 안식일에 일을 함으로써 그날을 더럽히는 자는, 반드시 죽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처럼 강력한 처벌 규정을 제시하면서까지 이 날을 지키라고 명령하신 것은, 바로 이 날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나타내는 영원한 표징이 되기 때문입니다. 즉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날을 지킨다는 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준수하는 하나님의 백성임을 나타내는 것이고, 만약 이 날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것은 곧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떠나 하나님의 백성 되기를 거절한다는 뜻이 된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믿고 섬긴다는 신앙 고백으로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날이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단지 하나님께 대한 순종의 의미만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 날은 육체적인 한계를 지닌 인간에게 적절한 휴식을 주시며, 또한 하나님과의 친밀한 교제 가운데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신앙을 성숙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배려로 주어진 것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안식일은 하나님께 대한 신앙 고백으로서 반드시 지켜야만 하는 날이라는 소극적인 의미와, 하나님 안에서 참된 휴식과 거룩한 안식을 누리는 날이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동시에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성도들이 안식일을 계승하여 지키고 있는 주일을 성수함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즉 주일 역시 하나님께 대한 성도들의 신앙 고백으로서 반드시 지켜져야 하는 일이지만, 또한 동시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은혜의 날로서 영과 육의 참된 안식을 누리는 날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주일을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혹 어쩔 수 없이 의무적으로 지켜야 하기 때문에 지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유머입니다. 어떤 40대 남자가 60대 어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교회 가기 싫습니다.” 어머니께서 왜 그러느냐고 물으니까 교회가기 싫은 이유 3 가지를 말했습니다. “첫째, 주일날 늦게까지 잠을 자고 싶은데 일찍 일어나서 가야 되니까 그게 싫고, 두 번째는 성가대가 불협화음으로 찬양할 때 정말로 싫고, 세 번째는 장로님 기도가 얼마나 긴지 그것 때문에 싫어요.” 그랬더니 그 어머니가 “내가 너한테 그래도 교회에 가야만 되는 이유 3 가지를 말하겠다. 첫째, 교회는 사람보고 가는 것이 아니니까 가야 되고, 두 번째, 예배드리는 것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니까 가야 되고, 세 번째는, 네가 그 교회 담임 목사니까 가야 된다.”
여러분, 이 유머처럼 교회에 가기 싫은데 목사니까 장로이고 집사이고 권사니까 어쩔 수 없이 주일을 지키는 분들이 없습니까? 아니면 주일은 그저 지켜도 좋고 안 지켜도 좋은 날로 생각하고 계십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결코 진정한 의미에서의 주일 성수를 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기쁨도 신앙 고백도 없는 한 날을 단지 고통스럽게 보낸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참된 주일을 회복해야만 합니다. 주일은 하나님 앞에서 진실한 신앙의 고백으로서 생명을 걸고 지키는 날, 그리고 이 세상 어디에서도 누릴 수 없는 참된 안식과 기쁨을 누리는 날이 되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주일을 이렇게 성수하게 될 때, 비로소 주일은 우리에게 짐스러운 날이 아니라 더할 수 없는 복된 날이 될 것입니다.
3. 주일 성수는 생명과 관련된 문제입니다.
14-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고, 그 날에 일하는 자는 반드시 죽여 그 백성 중에서 생명이 끊쳐지게 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에 대한 신앙 공동체인 이스라엘 가운데서, 하나님께 대한 신앙의 표징인 안식일 규례를 어긴 자는, 하나님께 대한 신앙을 거부하는 자이므로, 이스라엘 중에서 제거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러한 말씀을 오늘날 문자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안식일을 어긴 자가 죽임을 당하고,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끊어지게 된다는 사실은, 오늘날에 주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에 대한 엄중한 경고가 되고 있습니다. 즉 이는 주일을 지키지 않는 자들은 결국 신앙을 상실하고, 영적인 생명을 잃게 될 것을 보여 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신자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주일날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들은 결국엔 신앙을 버리게 되고, 교회에 열심히 나오는 사람은 신앙이 자라나서 신앙생활을 잘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일주일 동안 죄악 된 세상에서 악인들과 교제하며 살다가, 주일날에도 교회에 나오지 못하고 다시 세상으로 나아간다면, 누구든지 신앙을 지킨다는 것이 어려울 것입니다.
어떤 성도들은 자녀가 입시생이 되면 교회 출석을 못하게 하고, 나중에 대학에 들어간 다음에 교회 생활을 하라고 합니다. 그러나 그러한 경우에 대부분이 대학에 들어가도 다시 신앙을 회복하지 못하고 세상으로 나가버리게 됩니다. 신앙생활은 생명에 관련된 문제이므로, 그렇게 쉽게 중단했다가 다시 재개할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닌 것입니다. 또한 어떤 이들은 직장 생활 때문에 주일을 지킬 수 없다고 호소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직장이 육적인 생명을 위한 것이라면, 주일 성수는 영적 생명을 위한 것이므로 어떤 것을 우선시하여야 할지 결단하여야만 합니다. 직장은 다른 직장을 찾을 수도 있지만, 영적 생명은 다른 곳에 가서는 얻을 수가 없음을 명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어떤 성도의 간증입니다. <아르바이트로 신문 배달을 할 때였다. 아내는 아직 학생이었고 나는 우리 집의 가장이었다. 아르바이트라고 해도 신문배달은 기숙사도 나오기에 월세가 비싼 일본에서는 좋은 아르바이트였고, 우리 가정의 생계를 유지하는 중요한 일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점장이 할 일이 있다며 전체가 주일에 출근하라는 것이었다. 나는 주일에는 교회에 가야 하기 때문에 참석할 수 없다고 말했다. 대신 내가 해야 할 일은 미리 나와서 다 해놓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원리원칙에 융통성 없는 이 일본 사람이 내 말을 쉽게 받아줄 리 없었다. 다른 사람들 다 나오는데 나만 빠지게 할 수 없다는 것과, 매주 가는 교회 한 번 빠지면 좀 어떠냐는 것이 이유였다. 나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일은 매주 가야 하는 것이기 때문에 한번이라도 빠지면 안 된다. 나에게 주일성수는 어떤 일에도 양보할 수 없는 일이라고 다시 한번 말씀드렸다. 그러자 대뜸 자기 때문에 먹고사는데 그런 식으로 나오면 잘라 버리겠다는 것이다. 나는 점장의 말에 동요하지 않고 말했다. "당신 덕분에 내가 먹고사는 것에 대해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나 여기에 있게 하신 분은 먼저 하나님이십니다. 저는 주일에 교회에 가겠습니다!" 그 날 교회로 가는 전철 안에서 내일 당장 거리로 나앉을 수도 있는 내게 아내는 격려의 눈빛을 보내주었고, 그 날은 어느 예배하고는 비교할 수 없는 감사와 감격으로 예배를 드렸다. 내 삶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만나는 이 소중함과 기쁨을 누가 알까? 다행히 월급은 조금 깎였지만 잘리지는 않았다. 먹고사는 일에 매여 주님을 저버리지 않은 나를 점장은 감히 실직대 위에 올려놓지 못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람이기에!>
이렇듯 성도는 어떤 일이 있어도 주일 성수만은 양보할 수 없다는 신앙적 결단을 해야 합니다. 사람은 육적 생명을 위한 밥은 한 끼만 안 먹어도 배가 고픈 줄 알고 고통을 느끼지만, 영적 생명을 위한 하나님의 말씀은 먹지 않아도 영혼이 죽어 감을 느끼지 못합니다. 그래서 주일을 지키지 않으면서도, 그 문제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주일을 지키지 못하는 생활이 오래되면 될수록, 그 영혼이 점점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성도는 주일 성수의 문제가 영적 생명과 직결된 문제임을 인식하고, 최선을 다해 주일을 성수하는 신앙을 소유해야 하는 것입니다.
4. 노동과 안식은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엿새 동안은 일하고, 제 칠 일은 여호와께 거룩한 것으로 구별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안식일에 노동하는 자를 죽이라고 했다고 해서 노동 자체를 죄악시하거나, 부정한 것으로 여기시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즉 칠 일째의 안식은 율일 동안의 노동을 근거로 한 것입니다. 만일 육일 동안에도 계속 놀다가 칠 일째 되는 날 안식을 한다면 그 안식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육 일 동안 열심히 땀 흘려 일하고 칠 일째 쉬면서,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베푸신 은혜를 체험하며 감사하여야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의 노예 생활을 할 때에는 안식일과 같은 쉼이 없이, 계속적으로 애굽 사람들의 압제를 받으며 강제 노역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그런 생활 속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은혜로 안식을 누리게 될 때에, 그들은 세상과는 다른 하나님 나라의 평강과 은혜를 맛보며 하나님께 감사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해방된 이스라엘에게 있어서 육 일 동안의 노동도 애굽에서와는 달리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였고, 칠 일째의 안식도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놀고먹는 것을 제일 좋은 것으로 압니다. 그러나 사람이 노동할 수 있는 건강과 기회가 있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 것인가는 일자리를 잃어본 사람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일자리가 없어서 실업자가 되어 생활이 곤란해지면, 건강과 가정 등 모든 것을 잃게 되는 위기를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께서 일할 기회를 주심에 대하여 감사하며, 세상에서 육 일 동안 열심히 일해야 합니다. 그러한 사람들이 주일날 일을 멈추고 하나님 앞에 나와 예배할 때에, 진정한 기쁨과 평안과 안식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사회생활 하면서 일하는 자는, 주님을 섬기듯이 충실하게 일할 것을 명하였고, 일하기 싫어하는 자는 먹지도 말게 하라고 말씀함으로 노동의 신성함과 귀중함을 교훈했습니다. 진정 우리는 육 일 간의 노동도 하나님이 주신 은혜요, 주일의 안식도 하나님의 은혜임을 깨닫고, 항상 감사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도록 노력해야 하겠습니다.
5. 성도는 하나님의 말씀을 심비에 새긴 자들입니다.
18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증거 판 둘을 모세에게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이 증거 판은 하나님께서 친히 율법을 돌판 위에 기록한 것으로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영원히 기억하고 지키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역사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돌 판에 기록된 하나님의 율법을 성공적으로 지키지 못하였음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사 시대 이후 이스라엘 백성들은 끊임없이 하나님을 떠나 각종 우상 숭배와 악행에 빠져들었으며, 그 결과로 그들은 마침내 이방의 포로가 되어 원방으로 흩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로 다시 본국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었습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었던 것은, 그것이 돌 위에 새겨진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즉 그들의 마음이나 의도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지켜져야만 하는 율법이었기 때문에, 그들은 형식과 외형에만 치중하게 되었고, 결국 율법의 근본정신인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 사랑을 잃어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새로운 언약을 주실 것을 약속하시면서, 이 법을 돌 판에 기록하지 않고 마음에 기록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렘 31:33절에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에 세울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즉 일일이 배우고 기억하여 억지로 지켜야만 하는 율법이 아니라, 하나님을 온전히 앎으로 자발적으로 그 뜻에 순종하는 마음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 새 언약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백성 된 자들이 성도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로 인하여 죄 사함을 받고,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아 하나님을 알며,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하나님의 백성이 바로 성도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하나님의 율법이 돌비가 아닌 심비에 새겨진 자들입니다. 사도 바울은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그렇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을 심비에 새긴 예수 그리스도의 편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마음으로 하나님의 법을 사랑하고 즐거워해야 합니다. 그래서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도 부득이함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단 마음 즐거운 마음으로 해야 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막에 관한 모든 규례를 마감하시면서 이미 십계명을 통하여 주신 안식일에 관한 율례를 다시 한 번 강조하여 주셨습니다. 성막이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이 없지만, 성막을 진정으로 중요하게 만드는 것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이기 때문에 시내산 언약의 표징이 되는 안식일 규례를 또 한 차례 강조하여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 준수를 강조하시면서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이라고 하셨습니다. 여기 표징이란 어떤 사람이나 집단의 뚜렷한 특징을 표시해주는 것으로, 이는 이스라엘 민족의 정체성을 나타내주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갖는 독특한 특징으로서 그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증거 하는 표라는 말입니다.
남자의 특징이 있고, 여자의 특징이 있으며, 백인의 특징이 있고, 흑인의 특징이 있으며, 신자의 특징이 있고 불신자의 특징이 있습니다. 이렇듯 하나님의 백성이 된 가장 뚜렷하고 분명한 특징이 있는데, 그것은 주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일을 성수하면 진정한 그리스도인이고, 주일을 함부로 범하거나 경홀히 여기면 참된 그리스도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일 싫어하신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반면에 제일 좋아하신 것은 예배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주일 예배를 귀중하게 여기며 살아갈 때 하나님의 사랑 받는 인생이 됩니다. 우리 송정 중앙 교회 성도들은 참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표징으로 ‘전 성도 성수주일’하는 성도들이 되어서, 주일마다 새 힘을 얻고 새 은혜를 입어서, 영원히 쉬는 곳에 다 들어가게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