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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수 목사
자신감은 자신을 역동적으로 만드는 동력입니다. 즉, 역동적인 삶을 살기 위해서는 자신감이 넘쳐야 합니다.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은 대부분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사고와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사고와 마음은 열등의식 때문이며 자격지심으로 나타나곤 합니다. 자신의 그런 취약한 면을 은폐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자존심으로 벽을 만듭니다. 그리고 내면의 취약한 약점을 거론하거나 비판하면 무시당했다고 생각하고 공격적인 성향을 드러내게 됩니다. 대개 분노로 표출되는 것입니다.
잠시 시간이 지나면서 후회를 해보지만 되돌릴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옵니다. 상대방과의 관계는 깨지게 되고 점차적으로 외톨이가 되고 마는 것이죠. 가장 큰 피해는 자신입니다. 자신을 용납할 수 없게 됩니다. 자신이 미워집니다. 악순환이 계속됩니다. 결코 평안할 수 없으며 미래지향적일 수 없습니다.
그러나 자신감이 충만하게 되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자신감이 충만하다는 것은 자긍심이 높다는 것인데 그 이면에 긍정적인 사고와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긍정적인 사고와 마음에서 창의적이며 비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미래의 희망을 가지게 되고 현실적으로 고난과 역경이 와도 능히 그 상황을 이겨내며 나아가 새롭게 삶을 반전시켜서 처음보다 더 나은 미래를 기약하게 되는 것입니다.
희망이 없다는 것은 미래가 없다는 것이며 미래가 없기 때문에 기쁨과 행복도 바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암울한 시기에 유다를 향해서 격려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솔로몬 이후로 이스라엘은 북왕국과 남왕국으로 분열되고 맙니다. 북왕국은 이스라엘이라고 부르며 남왕국은 유다로 불리우게 됩니다. 그러나 공히 하나님께 불순종하며 우상숭배하고 죄를 범하면서 살게 되면서 스스로 불행을 자초하게 됩니다. 급기야 B.C 722년에 북왕국 이스라엘은 앗수르에 의해 멸망을 당하고 맙니다. 하나님이 선지자 이사야는 북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남왕국도 위태한 지경에 빠져 곧 바벨론에 멸망당할 비참한 상황 속에서 예언 활동을 하게 됩니다.
북왕국은 멸망을 당했고 남왕국도 국력은 쇠약하고 현실적으로 난국을 타개해 나갈 방도가 없는 지경에 빠져 있기 때문에 자신감은 땅에 바닥을 칠 정도로 미미했고 오직 염려와 근심, 낙심과 두려움만이 그들을 휩싸고 있는 실정이었습니다. 그러니 미래는 보이지 않고 희망도 가질 수 없는 참담한 상황이었던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 그들에게 주신 말씀이 오늘 본문의 말씀입니다.
저는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저와 여러분들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음으로 새롭게 미래와 희망을 바라보며 비상할 수 있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우리 자신을 볼 수 있도록 하십니다.
(1)-“너를 창조하신 여호와,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4)-“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상하였은즉”
나의 출생은 저주스러운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완벽하게 창조하신 존재입니다. 그러니 천하보다 더 귀한 사람입니다. 나아가 우연히 구원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나를 아시고 내 이름을 지적하시면서 불렀다는 것입니다. 나의 구원은 우연한 것이 아닙니다. 천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나를 아셨고 때가 되어 나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삶속에서 바쁘고 분주하며 염려와 근심 가운데 빠져 내가 내 자신을 잊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결코 나를 잊지 않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분은 나를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내 이름을 지명하여 불렀다는 말씀 속에는 이와 같은 뜻이 내포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정황들을 단 한 마디로 표현하신 것이 4절에 나와 있는 “보배롭고 존귀한 자”라는 것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은 우리 스스로가 어떻게 평가하고 생각하던지 하나님께서는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저는 이 말씀이 너무나도 좋습니다. 저는 이 말씀을 묵상하면 한없는 자긍심을 가지게 됩니다. 어깨가 처지고 걱정이 태산 같이 나를 짓눌러도 이 말씀을 묵상하면 자신감이 넘쳐나는 것을 느낍니다. 물론 생각하기 나름으로 내 자신을 살펴보면 못난 것 투성이일 수 있습니다. 잘하는 것이 별로 없고 내세울 것이 딱히 없습니다. 나의 지위가 그렇고 나의 배움이 그러하며 나의 소유를 바라보면 그렇게 작게 느껴질 수 없습니다. 잘 하려고 해도 뒤돌아보면 실수가 많고 결심을 해도 며칠을 넘기도 못할 때가 한 두 번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나를 너무나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이라고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자격이 안 되는데 자격이 있다는 것입니다. 못났는데 잘 났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입증할 수 있느냐고 질문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여러분들을 골고다 언덕 위로 초청하고 싶습니다. 그곳에서 하나님께서 하신 일들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 곳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하나밖에 없는 독생자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시고 저와 여러분들의 모든 죄와 저주, 재앙과 불행들을 짊어지게 하시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게 하신 것입니다.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있어서도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현실적으로 그 일은 이루어졌습니다.
누구든지 나의 모든 죄와 저주, 재앙과 불행, 질병과 실패를 짊어지고 십자가에서 죽으신 사실을 믿기만 하면 그런 것들은 예수님 위에 퍼부어지고 그분의 생명과 축복은 나의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상실한 하나님의 통치권을 회복하며 그분의 자녀가 되는 신분과 권세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도 인간적으로 나를 바라보면 보잘것 없고 쓸모짝 없는 인간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인간적으로 나를 바라보시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려 죽으신 예수를 바라보면서 나를 당신의 자녀로 축복하시고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여기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마귀가 어떻게 미혹합니까?
독생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을 보지 못하게 해서 인간적으로 우리 자신을 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곧 우리는 자신의 허물과 실수 투성이를 바라보면서 절망하고 낙심하는 것입니다. 그때를 놓치지 아니하고 우리를 공격해서 자신감을 상실하게 만들고 부정적이고 패배적인 생각을 갖게 하여 주변 사람과의 관계를 깨뜨리고 모든 일에 실패하게 만들며 실지로 질병과 저주, 그리고 재앙을 주어서 불행한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마귀의 속삭임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간과해서는 안 되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골고다 언덕 위에서 십자가에 달리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놓쳐서는 안 됩니다. 그분의 십자가 보배로운 피가 우리들을 깨끗하게 씻어서 보배롭고 존귀한 자로 만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나 자신을 바라보아서는 안 됩니다. 날마다 골고다 언덕 위에 십자가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분의 보배로운 피를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피로 말미암아 정결하게 되고 그로 인해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이 된 것입니다.
그분의 보배로운 피를 찬양합시다.
두 번째로, 지속적으로 하나님의 격려를 받아야 합니다.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의 정체성을 보게 하신 후에 말할 수 없는 격려를 하십니다.
(1)-“두려워하지 말라”
(2)-“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5)-“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하여 네 자손을 동쪽에서부터 오게 하며 서쪽에서부터 너를 모을 것이며”
지금은 위기의 상황이며, 절망의 형국이지만 결코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물과 불속에서도 구원하시겠다는 것입니다. 어느 곳에 있든지 최종적으로는 다시 돌아오게 될 것이라는 약속입니다. 계속적인 희망과 격려의 말씀입니다. 자신감을 상실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생각은 비단 이곳에서만 국한되지 않습니다.
(렘29:11)-“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끊임없는 파이팅을 외치고 있습니다.
염려하지 말라, 근심하지 말라, 낙심하지 말라, 두려워하지 말라 등등.
그러면서 변함없는 영적 원리를 강조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그러면 새힘을 얻게 될 것이며 독수리처럼 비상하게 될 것이라는 희망입니다.
다윗을 보십시오. 죽음의 위기를 수도 없이 넘나들면서도 뜻을 정하여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놓치지 않습니다. 그는 자신의 묵상이 하나님께 열납되기를 소망했습니다.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갈망했습니다. 그리고 쉬지 않고 기도를 합니다. 특히 새벽에 하나님께서 도우실 것을 알아 새벽을 깨우며 기도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기도하며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 담대히 하나님의 보좌 앞에 머물기를 소원했던 다윗을 죽일 수도 없고, 허물 수도 없었습니다. 오히려 그를 죽이려고 하는 자 앞에서 하나님께서는 밥상을 차려 주시고 배불리 먹이시며 평안과 승리를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은 대부분 파이팅입니다. 즉, 격려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시며 은혜를 사모하시면서 그분의 격려를 받으십시오. 그분의 파이팅을 받으십시오. 그러면 새힘을 공급받게 됩니다.
(사40:31)-“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하나님의 격려가 있고 그분 앞에서 기도하며 서있는 사람을 이길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함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의 은혜를 받고 기도로 그분 안에 있으면 이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곳에 거하는 자가 되는 것입니다. 그분 안에 생명이 있고 만족이 있습니다. 보호가 있고 평안이 있습니다. 그분 안에서 미래와 희망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분 안에 있으면 독수리처럼 높이 비상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이든지 그분을 멀리 하지 마십시오. 자만하지 마십시오. 그분의 다스림은 축복입니다.
동물 중에 수영 선수가 있습니다. 수달이라고 하는 자입니다. 그러나 구조적으로 그는 수영 선수가 될 만한 조건이나 자격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다리가 짧아 육지에서 움직이기 힘들고, 발톱이 약해 땅을 파기가 어려워서 하천가 썩은 나무뿌리 밑에 있는 구멍이나 큰 바위틈과 같은 자연적인 구멍에 겨우 허름한 집을 짓고 살아갑니다. 생각해 보면 물속에서 헤엄치고 고기를 잡아먹는 일이 불가능한 것처럼 보여지지만 그들의 삶의 모습들을 연구해 보면 충분히 이해를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어미 수달은 물을 두려워하고 무서워하는 새끼 수달을 물가로 조금씩 데려가서 자신감을 심어주며 격려합니다.
“얘야, 너는 수영을 잘 할 수 있어. 자신감을 가지렴. 저 넓은 강과 바다를 바라보렴. 황홀하지 않니. 저 넓은 세상을 마음껏 누릴 수 있어. 자, 힘을 내렴. 긍정적인 마음과 생각을 해보도록 해라.”
부정적인 새끼 수달을 격려하여 조금씩 물에 적응시키며 수영을 가르친다는 것입니다. 결국 새끼 수달은 어미의 격려로 인해 물속에서 자유자재로 수영하는 위대한 선수로 거듭나는 것입니다.
주님의 수제자 베드로는 위대한 복음 사역자가 될 만한 자격이나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끊임없이 그를 격려했습니다. 할 수 있다고 힘을 실어 주었습니다. 결국 그는 주님의 위대한 제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시간 하나님의 격려를 받으십시오. 여러분들도 할 수 있습니다. 하늘 위로 날아오를 수 있습니다. 끝났다고 생각지 마십시오. 부정적인 사고와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할 수 없다는 속삭임을 무시하십시오. 할 수 있다고 하십시오.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이 있기 때문에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확신하십시오.
(빌4:13)-“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막9:23)-“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마17:20)-“만일 너희에게 믿음이 겨자씨 한 알 만큼만 있어도 이 산을 명하여 여기서 저기로 옮겨지라 하면 옮겨질 것이요 또 너희가 못할 것이 없으리라”
목장분가는 반드시 된다고 믿으십시오.
VIP는 반드시 올 것이라고 믿으십시오.
사업은 불 같이 일어날 것이라고 긍정적으로 생각하십시오.
직장이 복될 것이라고 믿으십시오.
가정이 형통할 것이라고 믿으십시오.
질병이 완치될 것을 믿으십시오.
미래가 창대해질 것을 믿으십시오.
세 번째로, 자신을 격려해야 합니다.
자연적으로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비하나 과소평가하는 일에 전문가입니다. 골고다 언덕 위의 십자가를 보지 못하기 때문에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배로운 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 사람들은 스스로 자기 비하나 과소평가하는 일을 금해야 합니다.
마귀의 속삭임에도 귀를 기울여서는 안 됩니다. 나아가 남을 비방하거나 중상모략하는 사람들과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됩니다. 그것은 상대방을 죽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죽이는 치졸하고 치명적인 일입니다. 결코 하나님의 격려를 받을 수도 없고 그분의 축복을 기대할 수도 없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하나님께 사랑의 고백과 더불어 감사의 기도를 드리고 나면 자신을 격려하십시오. 멋진 사람이라고 칭찬하십시오. 잘난 사람이라고 격려하십시오. 자신을 칭찬하고 격려하는 사람은 자신감을 높일 수 있고 고귀한 품성을 가질 수 있습니다.
긍정적인 사고를 점검하십시오.
자긍심이 높낮이를 살펴야 합니다.
“오늘 나는 하나님의 좋은 것을 누리게 될 것이야.
오늘 나는 사람들의 도움을 받게 될 것이야.
오늘 좋은 사람들을 만나게 될 것이야.
오늘 나는 종일 하나님의 격려를 받기로 결심했어.
오늘 나는 나를 끊임없이 격려를 할거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보배롭고 존귀한 사람들입니다. 한 주간 승리하시고 복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