嬰陽武元好太烈帝(영양무원호태열제) 때 천하는 크게 다스려져 나라는 부하고 백성은 은성했다. 수나라 왕 楊廣(양광)은 본래 鮮卑(선비)의 유종족인 바, 남북의 땅을 통합하여 그 여세를 몰아 우리 고구려를 모욕하고 업신여기더니, 上國(상국, 고구려)을 업신여기고 자주 대병을 일으켰으나 고구려는 이미 대비가 있어 한번도 패한 적이 없었다. 弘武(홍무) 25년 楊廣(양광)은 또다시 동쪽으로 침략해 와서 먼저 장병을 보내 卑奢城(비사성)을 여러 겹으로 포 바쳤다.위케 했다. 관병은 싸웠으나 승리하지 못하니 바야흐로 평양을 습격하려했다. 帝(제)께서는 이를 듣고 緩兵術(완병술)을 쓰려 했다. 계략을 꾸며 斛斯政(이사정)을 보냈다. 때마침 皂衣(조의) 가운데 一仁(일인)이라는 자가 있어 자원하여 따라가기를 청한 끝에 함께 표를 양광에게 바쳤다. 양광이 배에서 표를 손에 들고 읽는데 절반도 채 읽기 전에 갑자기 소매 속에서 작은 활을 꺼내 쏘아 그의 뇌를 맞혔다. 양광은 놀라 자빠지고 실신했다. 右相(우상) 羊皿(양명)은 서둘러 양광을 업게 하여 작은 배로 갈아타고 후퇴하여 懷遠鎭(회원진)에 명을 내려 병력을 철수시키도록 하였다. 양광은 좌우에게 말하여 가로대, "내가 천하의 주인이 되어 몸소 작은 나라를 쳐도 승리하지 못하니 이는 만세의 웃음거리가 아니겠는가? " 라고 했다. 양명 등은 얼굴색이 검게 변하여 대답 못하고 말았다. 후인들은 이를 노래로 불러 가로대,
오호 어리석은 한나라 어린애들아 요동을 향하지 마라. 개죽음이 부른다. 文武(문무)의 우리 선조 한웅이라 불렀느니 자손들은 이어져서 영웅호걸도 많단다. 주몽 태조 광개토님 위세는 세상에 울려 더할나위 없었고 유유 一仁(일인) 양만춘은 나라 위해 몸 바꿔 스스로 사라졌다. 세상 문명은 우리가 가장 오래니 오랑캐 왜구 다 물리치고 평화를 지켰다. 劉徹(유철) 양광 이세민도 보기만 해도 무너져서 망아지처럼 도망갔다. 永樂紀功碑(영락기공비)는 천 척 만가지 기가 한 색으로 태백은 높단다.
1. 영양무원호태열제 : 26대 영양왕(590~618)인 듯. 2. 양광 : 수나라 (581~619)의 2대왕 煬帝(양제, 604~608)의 이름. 3. 홍무 25년 : 홍무는 영양제의 연호인 듯. 홍무 25년은 AD.614년이다. 4. 비사성 : 만주 요동반도 끝의 大連(대련)부근에 있던 고구려 성. 卑屠城(비도성)이라고도 함. 5. 곡사정 : 고구려에 망명해 온 수나라의 侍郞(시랑) 6. 회원진 : 조양에 까까운 곳에 있는 듯. 하북성의 북쪽에 있는 해상기지, 회원진의 이름은 사천성 崇慶縣(숭경현)의 서쪽에도 있다. 7. 유철 : 한나라 7대 武帝(무제, BC.147~87)의 이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