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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유쾌한 야한 농담이고, 불쾌한 성희롱이 될까? 오늘은 이것에 대해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한 예를 들어 이야기해 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다.
때는 바야흐로 10년 전.
장소는 대구광역시 대학로의 어느 막창 집.
당시 나는 01학번 신입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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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막창 집에는 나와 같은 반 여학생 2명과 우리 과 남자 선배 3명이 동그랗게 모여 앉아 술을 마시고 있었는데 내 맞은편의 여학생 두 명 중 한 명은 마른 몸매의 소유자였고 그 옆에는 조금 뚱뚱한 몸매의 소유자였다.
자, 그렇다면 여기서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바로 여자의 몸무게와 가슴크기의 비례관계다.
여러분도 아시겠지만 웬만한 이변이 없는 이상 여자의 몸무게와 가슴크기는 정비례한다. 그러므로 역시나 내 앞의 마른 여자는 가슴도 말랐고, 조금 뚱뚱한 여자의 가슴은 조금 뚱뚱했다. 아니, 그런데 이 여자는 가슴이 아주 뚱뚱했다. 더욱이 그때는 초여름이었으니 얇은 티셔츠 때문에 둘의 크기와 부피 차이는 확연히 드러났다. (눈치가 빠르고 영리한 나는 그래서 그 여자의 맞은편에 앉았던 것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내 옆에 앉아 있던 남자 선배였다. 이 선배의 별명은 야농왕이었는데, 야한 농담의 왕이라는 뜻이었다. 나는 사실 그날이 이 선배와의 처음 술자리였는데, 그전부터 이 선배의 소문은 익히 들어 알고 있었다.
아니나 다를까 야농왕은 술이 점점 들어가자, 야한 농담에 슬슬 발동을 걸기 시작했다.
”자, 자취방에 세탁기 없는 애들은 오빠 집에 빨래하러 와. 대신 속옷은 이 오빠가 직접 손빨래해주마. 하하하” 라고 시작한 야농에 주변 오빠들도 모두가 낄낄거리며 웃었다. 솔직히 나도 좀 웃었다. 짓궂긴 했지만 나쁜 사람 같지는 않았다. 사실 나도 그 자리에서는 조금 참고 있었지만,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도 야농퀸이었다.
적당한 야한 농담은 말 그대로 유머다. 딱딱한 자리를 웃음으로 풀 수 있고, 그만큼 서로 더 가까워질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야농왕은 이쯤에서 만족하지 않고, 이내 하나의 표적을 정하고 야농의 깊이를 더 했다. 그의 표적은 바로 맞은편의 대비를 이루고 앉아 있던 여자 둘이 그것이었다.
”에이, 근데 둘이 있으니깐 너무 차이가 난다. 하하하”
콕 집어 가슴이라고 얘기하지 않았지만, 바보가 아닌 이상 모두가 알고 있었으리라. 나는 일단 그녀들의 맞은편에 앉아 있던 것에 다시 감사했다. 여기까지만 해도 앞의 두 명의 여자도 그냥 슬쩍 웃으며 넘겼는데, 술이 한 잔, 두 잔 더해지다 보니 야농의 수위가 아슬아슬해지다가 결국에는 넘지 말아야 할 선을 넘겨버렸다. 때마침 구워진 막창을 적절한 시간에 뒤집지 못해 타는 연기가 알 수 없는 불안감과 함께 피어오른다.
”야야, 너 지금 목 돌아간 거지? 등인지 가슴인지 모르겠다, 야. 근데 옆에 너는 지금 머리가 세 개야. 지금! 촤하하하하”
야농왕은 마치 천주교를 박해하고 민심을 살피지 않는 조선의 순조처럼 그녀들의 표정을 무시하고는 계속 그런 식의 야농을 이어갔다. 그런데 그 자리의 다른 남자 선배들도 마치 잘못된 세도정권, 안동 김씨 세력들처럼 야농왕의 옆에서 손뼉을 치고 웃으며 왕의 나쁜 행실을 부추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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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앞의 두 여자는 불쾌감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이었다. 농담의 사전적인 의미가 [실없이 장난으로 하는 말] 이라고 해도, 남의 콤플렉스를 계속 건드리는 건 옳지 않다. 그리고 듣는 사람이 불쾌감을 느낀다면 그것은 이미 장난의 선을 넘어 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은 선배였고 우리는 후배였다. 뭔가 공평하지 않은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러니 나도 괜히 불쾌해졌다.
당시 나는 선배들과의 이런 자리가 처음이라 되도록 얌전을 빼고 앉아만 있었는데, 껄껄거리며 웃는 선배들의 표정을 보니 도저히 참고 있지만은 못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치, 못살겠다. 홍경래처럼 그 자리를 뒤집어엎기로 결심했다.
먼저 시선은 내 옆 야농왕의 허리띠 아래 5센티미터 지점에 두고 조용히 입을 열었다.
”참, 나. 듣자, 듣자 하니깐 정말…… 그러면 그러는 선배는 커요?”
순간 당황한 선배의 얼굴. 그 옆의 간신배1은 마시고 있던 콜라를 뿜었다. 나는 주변의 분위기에 동요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표정으로 테이블 위에 놓여있던 풋고추 하나를 쌈장에 찍어 먹으면서 다시 물었다.
”아니, 뭐, 그러는 선배는 꼬추 크냐고요? 보면 꼭 작은놈들이 여자 가슴 크기에 집착하더라.”
내 옆의 야농왕은 생각지도 못한 나의 시간차 공격에 할 말을 잃은 듯했다. 테이블에 뿜어낸 콜라를 닦아내던 간신배1은 뭐 이런 애가 다 있느냐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나는 동그랗게 눈을 뜨고 야농왕의 대답을 기다렸지만, 그는 끝내 내 물음에 대답해 주지 않았다. 내 앞의 두 여자도 약간 놀란 듯하다가 이내 조용히 회심의 미소를 짓고 있었다.
그 후, 몇 분이 더 흐른 뒤, 이 술자리는 야농왕의 급격한 컨디션 난조로 금방 끝이 났다. 뭐, 대답을 듣지 못해 조금 아쉬웠지만, 집으로 가는 길에, 내 앞에 있던 두 명의 여자에게 진짜 통쾌했다- 라는 말을 들었다. 너 정말 대단하다는 말도 했고, 앞으로 자주 같이 술을 먹자는 이야기도 들었다.
그런데 아쉽게도 그 뒤, 나와 두 여자는 제법 친하게 지냈지만, 그때 그 막창 집 멤버들이 모여 술을 먹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야농왕과 간신배들은 그 뒤로 다시는 나를 그들의 술자리에 초대하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심지어 야농왕은 그 뒤로 학교에서 나만 보면 눈을 피했다. 간신배 일당은 ‘1학년에 김얀이라는 지독한 여자아이가 있다.’라는 소문을 낸 것도 같았다. 어쨌든 그런 이유로 나는 다시는 그들의 술자리에 초대받지 못했다.
당시에는 ‘저 오빠들이 속 좁게 왜 이러나?’ 라고 생각도 하고, ‘신입생이 선배한테 너무 했나?’ 싶기도 했었는데 10년이 지난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생각해 보니, 아! 나도 야농왕의 콤플렉스를 건드린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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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그렇다면 얼른 진심으로 사과를 해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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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농왕선배.
제가 그때 선배의 콤플렉스를 건드렸던 것이라면 정말 미안합니다. 혹시 지금이라도 이 글을 보게 된다면 연락 주세요. 우리 다시 그 대학로 막창 집에 앉아 적절한 수위를 지키는 야한 농담으로 그때의 기억을 지워봅시다. (메일 주세요 - kimyann@hanmail.net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