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 동정이 늘 어렵다. 삶이란 화두는 고집스레 붙잡는데 말이다. "생사가 열반 자체임을 알라. 피해야 할 생사도 없고 구해야 할 열반도 없다. 오직 이것을 깨달을 때 그대는 생사로부터 자유로워지리라. ㅡ 13세기 일본의 위대한 선사 도겐" 최근 <과학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때 불교가 할 수 있는 것>이란 책에서 본 문장이다. 전율이 인다. 올해 붙잡고 늘어지자. 그런데 숲해설가로서 나무 동정은 왜 게으를까? 해부학 같은 구별에서 희열을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구체 형상이 돌아서면 잊기 때문이다. 영화 <한산>을 보았다. <명량>을 보았을 때도 그렇지만 감동 포인트는 위대하신 이순신 장군이 깊게 생각하는 모습이다. 배우고 싶지만 늘 마음만 낸다. 그래서 이번에는 행동에 옮겨보았다. 경남 통영 이순신공원의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본 나무를 알아보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춥다는 핑계로 다음 일정이 걱정되어 떠났다. 처음 보는 나무인데도 끝까지 알아보지 않았다. 이순신 장군을 떠올리며 담아온 사진으로 동정해보았다. 광나무로 동정했다. 그 이야기를 <오피니언 타임스>에 실었다. 쓰다 보니 끈질기게 식물을 동정하겠다는 다짐은 이순신 장군을 보면서 하고, 삶을 탐구하는 건 일본 선사의 문장으로 하고, 임진왜란 전 사람이라고 퉁 치고 가면 되나? 깊고도 넓은 생각, 주체의 자연을 보며 위대한 인물과 문장을 보며 열심히 달려가보자.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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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서정의 식물로 보는 그곳] - 경남 통영 이순신공원 - 오피니언타임스
[오피니언타임스=김서정 숲 해설가 겸 작가]영화 을 보면, 의(義)와 불의(不義)의 싸움이라는 정의가 반복된다. 단순하게 일본이 ‘불의’이고, 우리가 ‘의’라는 것 너머의 의미가 있을 것 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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