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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이 왔다. 지난 해 10월 23일 꼬리뼈 골절 이후, 나는 의사의 말대로 두문불출했다. 겨울잠을 자듯이 겨울을 견디면 제대로 걸을 수 있을 거라고, 주치의는 말했다. 주치의의 처방은 '3개월'이었다.
"3개월이 지나면 일상에 복귀할 수 있습니다. 완치까지는 1년이구요."
63킬로그램까지 내려갔던 몸무게는 70킬로그램으로 늘어났다. 살은 늘어나고 근육은 줄었다. 허리 근육을 쓰는 움직임은 노인네처럼 굼뜨고 늘어졌다. 나는 예비 동작과 본 동작을 확실히 구분하면서 움직였다. 코로나는 인류의 일상을 무너뜨렸고, 꼬리뼈 골절은 나의 일상을 교란했다. 일상 복귀의 가능성을 확인하고 싶었다. 터널을 벗어나야 했다. 조심스럽게 걷기를 시도했다. 우리집 아파트 10층에서 빤히 보이는 월롱산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 때: 2021. 1. 11
- 곳: 금촌 둘레길(두보아파트 - 월롱산 - 운봉산 - 황금들녘길 - 금릉역 - 두보아파트)
- 거리: 16.8km
- 시간: 5시간 23분
13시 9분. 현관문을 열었다. 혹한기 복장으로 무장하고 거리로 나선다. 상가 골목과 주택 단지를 일직선으로 관통하는 도로를 걷는다. 금촌초등학교를 지나고, 경의선 철길을 가로질러 순달교를 건넌다. 금촌체육공원에는 칼바람이 그득하다. 문산제일고 삼거리를 50 여미터 앞두고 오른쪽 농로로 접어든다. 농로는 월롱산 줄기에서 흘러내리는 물길을 따라서 거의 일직선 방향으로 월롱산을 향하고 있다. 오리떼가 용상골 입구 논바닥에서 먹이를 훑고 있다.
솥우물에서 월롱산으로 든다. 늘 월롱산 정상에서 원점 회귀했지만, 오늘은 둘레길을 둘러보리라 마음먹는다. 심드렁하게 바라만 보던 둘레길 표지판을 자세히 살펴본다. 집에서 걸어 나온 지 한 시간이 되었고, 원점 회귀를 벗어나는 길이 저어스럽지만, 꼬리뼈 골절의 터널을 벗어나야 한다.
나는 걷는다. 산으로 들 때 내 몸의 감각은 소스라치듯 깨어난다. 발끝부터 머리끝까지 신경이 돋아나고, 코어 근육이 촘촘히 발기한다. 근육이 발기할 때마다 심장은 흥분한다. 산행 초입은 언제나 뇌와 심장의 밀당으로 혼란스럽다. 혼란을 빨리 수습하는 재주가 산행 능력이다. 앞사람을 따라가느라 바쁘면서, 동시에 뒷사람에게 쫓기는 산행은 하급이다. 따라가거나 쫓기거나 둘 중 하나는 중급이다. 바쁘지 않고 쫓기지 않으면 상급이다. 함께 걷는 이와 조곤조곤 세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최상급니다. 나는 늘 하급이었다. 상급의 길을 걷기 위해 차분히 발을 내딛는다.
지난 일 년은 쉼표였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나는 유폐되었다. 2월 29일 명예롭게 정년을 마무리했지만, 3월 1일의 아침은 혼란이었다. 만나야 할 사람도 많았고 찾아갈 곳도 넘쳤으나, 만날 수 없었고, 갈 수 없었다. 사람을 피해서 심학산 둘레길을 걸었다. 3월 18일 아침에 눈을 떴으나 오른발 엄지발가락 통증 때문에 발을 내딛지 못했다. 발을 내딛지 못하니, 걸을 수 없었다. 나는 주저앉았다. 나는 정년 퇴직 18일만에 주저앉았다. 의사는 통풍이라고 말했다. 고지혈증 수치도 매우 위험하다고 판정했다. 의사는 평생 약을 먹어야 한다며, 두 달치 약을 처방했다. 나는 술을 끊었다. 담배도 끊었다. 일주일이 지나서야 나는 다시 심학산을 걷을 수 있었다.
몸이 아픈 아내가 함께 걷자며 따라나섰다. 평생 산을 모르던 아내는 동네 앞산 뒷산을 오르내리며 산행에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4월 내내 우리는 산이 좋았다. 5월에 우리는 감악산으로 들어갔다. 3시간 30분 걸려서 꼭대기에 올랐고, 2시간 30분 걸려서 주차장으로 돌아왔는데, 아내는 걸을 만하다고 말했다. 내친 김에 5월 27일, 곰배령 탐방에 나섰다. 아내는 천상의 화원으로 들어가는 계곡의 물소리가 맑아서, '참 좋다'고 말했다. 곰배령의 바람은 시원했고, 오르내리는 길에서 우리는 커피와 간식을 즐기며, 조곤조곤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최상급의 산행이었다.
그랬는데, 6월 11일 통풍이 재발했다. 나는 또 주저앉았다. 게다가 양쪽 고관절과 디스크가 미약한 통증을 울려대기 시작했다. 정형외과를 찾아갔지만, 의사는 같은 연령대에 비해서 건강한 편이라고 덕담을 들려주었다. 의사가 찾아내지 못하는 통증이 내 몸속 어딘가에 숨어 있었다. 이렇게 늙어가는구나, 싶었다. 여름내내 나는 열심히 걸었고, 그 결과는 체중 4킬로그램 감량과 통증 해소로 돌아왔다. 9월에, 나는 11월 5일을 디데이로 잡고, 공룡능선 산행 계획을 짰다. 10월 21일에는 최종 훈련을 겸하여 3박 4일 일정으로 홍천 삼봉자연휴양림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23일 새벽, 휴양림 뒷산을 올랐다. 백두대간 갈전곡봉(1204)에서 갈라져나온 가칠봉(1240)이었다. 가칠봉 정상에서 맞이하는 동해의 아침햇살은 환희였다. 나는 이 환희에 취했다. 가칠봉 하산길에서도 나는 환희에서 깨어나지 못한 것 같다. 환희는 흥분이었다. 흥분의 대가는 사고였다. 나는 가파른 비탈에서 넘어졌다. 본능적으로 머리를 부여잡고 뒹굴렀는데, 스키를 타고 활강하듯이 나는 거침없이 추락했다. 서너 바퀴를 굴렀던 것 같다. 실제 시간은 몇 초에 불과했겠지만, 나는 굴러떨어지는 순간이 지루했다. 추락 상황이 종료되었다. 나는 지루함을 털고 일어났다. 그리고 두 발로 걸어서 졍형외과를 찾아갔다. 의사는 담담하게 선언했다.
"꼬리뼈 골절입니다."
월롱산의 속살은 부드럽다. 부드러운 능선을 따라서 각개전투 훈련장이 설치되어 있다. 대한민국 청년들은 각개 전투 훈련장에서 피땀을 흘려야 사람 노릇을 할 수 있다. 이 땅에 태어난 숙명이다. 나의 아버지는 포병으로 군 복무를 마쳤다. 동생 둘은 해병대와 의무경찰로 복무했다. 나는 공수특전단에서 근무했는데, 후보생 시절과 보병학교에서 온몸으로 박박기던 각개 전투장의 기억이 생생하다. 장애물 통과, 철조망 아래로 포복하기, 사격, 백병전 등을 마치고 깊숙이 빨아대던 담배연기는 꿀맛이었다.
솥우물에서 1,500미터를 지나는 지점에 용상사와 약수터로 내려가는 사거리가 나온다. 길은 여전히 순하고, 표지판은 친절하다. 사거리에는 119 표지판과 구급약 보관함이 서 있다. 여기까지 오면서 뇌와 심장의 밀당은 끝났다. 몸은 적당히 뜨겁고, 신경은 주변 환경에 다소곳하다. 나는 산의 일부가 된다. 나무들이 수런거리는 소리를 듣는 듯하고, 길이 내 몸을 편안히 받아들이는 느낌을 받는다.
순하게 엎드려 있던 길이 짐짓 가파르게 고개를 치켜드는 지점에서 돌탑 두 기가 산행객을 맞이한다. 누군가는 치성을 다해 돌을 모았을 테고, 또 누군가는 돌 하나 하나에 서원을 새기며 탑을 쌓았으리라. 나는 두 발로 온전히 걸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 돌멩이 하나를 올려놓는다.
정상이 가까워지면서 산아래 풍경이 드러나고 있다. 발 밑에는 용상사가 들어서 있다. 저 멀리 아파트숲이 들어선 곳은 40년 가깝게 살아온 금촌이다. 아파트숲 사이로 경의선이 지난다. 나는 매일 아침마다 도시 바깥으로 일하러 나갔고, 저녁이면 새가 집을 찾아들듯이 집으로 돌아오곤 했다. 지금은 출근도 퇴근도 없는 일상을 살아가고 있다. 거울에 들어간 내 모습을 살피듯이, 내 삶의 터전을 들여다본다. 사람은 홀로 살 수 없다. 사람들이 어울려 살기를 선택한 것은 진화의 결과이다. 인간은 생명의 안전과 삶의 보전을 위해서 집단의 일원이 되었고, 권리의 일부를 집단에게 맡겼다. 인간은 살아남고, 종족을 보존하기 위하여 국가를 만들었다. 씨족을 넘어 부족으로, 부족을 넘어 국가로 진화하지 못한 인간 집단은 지구상에서 사라졌다. 나는 운이 좋았다. 대한민국에서 태어나고, 금촌에 정착할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다. 금촌 시내를 따뜻한 가슴으로 보듬으며, 나는 월롱산을 오른다.
정상에 올랐다. 정상은 오래 머물 곳이 아니다. 올라서면 내려서야 한다. 인생도 산행도 하산길이 위험하다고 말한다. 나도 남들이 말하는 하산길을 걷는다. 하산의 끝은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생명의 종착역을 향해 걷는 길은 어떤 의미일까? 나는 하산길의 의미를 두 가지로 더듬는다. 하나는 생명의 소멸이다. 근력의 약화, 육체의 노쇠로 가는 길이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의 여로이다. 생로병사의 병들어 죽는 길이다. 피할 수 없는 길이다. 피할 수 없으니 즐겨야 한다. 또 하나는 삶의 성숙이다. 세상을 떠날 때까지 아름다운 삶을 살아내는 길이어야 한다. 남들의 시선에서 자유로운 생활을 누려야 한다. 나의 색깔과 향기가 진한 꽃으로 거듭나야 한다. 물질에 목마르지 않고,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영혼으로 살고 싶다. 공자가 늙으막에 "남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성내지 않는다"고 말했는데, 만고의 깨달음이다. 인생의 하산길이 위험한 까닭은 관계에 매달리기 때문이다. 건강도 놓치고 마음의 평안도 잃어버린다면, 거의 파멸의 수준이 아닐까? 나는 몸의 건강을 위하여 월롱산을 걷고 있다. 나는 평정심을 유지하기 위하여 이 글을 쓰고 있다. 내 하산길의 안전은 걷기와 글쓰기에 달려 있다고 믿는다.
월롱산 정상에서는 임진강과 한강의 물줄기를 내려다 볼 수 있다. 임진강과 한강이 만나는 지역이 교하이다. 사귈 교(交) 물 하(河), 교하에서 몸을 섞은 임진강과 한강은 조강이 되어 서해로 나간다. 임진왜란을 겪은 조선은 교하 천도를 심각하게 고민했는데, 예로부터 한강의 물줄기를 차지하는 쪽이 한반도의 패자를 자처해 왔다. 남과 북이 한강을 공동으로 이용할 수 있다면, 남북이 지역정세의 공동 패자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은봉산 방향으로 내려선다. 처음 가는 길이다.
월롱산을 내려서서 만나는 도로가 노루마당길 삼거리이다. 금촌에서 북향하는 길이 자유로와 문산으로 갈리는 지점이다. 삼거리를 건너 오르면, 은봉산이다.
은봉산이라는 이름도 처음이요, 길도 처음이다. 사람의 발길이 온화한 길이다.
성황당이 나타났다. 낯선 풍경이다. 지척에 아파트 단지가 있고, 좌우로 민가와 공장 들이 내려다보이는 길목에 성황당이 버티고 있다. 이 길은 주로 대방 아파트 단지의 주민들이 칼로리를 소모하기 위해 걸을 것이다. 금촌둘레길을 걷는 사람들도 오갈 것이다. 생업의 지게를 내려놓기 위해 일부러 이곳을 찾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렇건만, 21세기의 대방아파트 뒷산에는 아직도 누군가의 간절한 염원이 치렁치렁하다.
대방 아파트가 가까와지면서 길은 넓어지고 뚜렷한 모습을 드러낸다. 산 중의 길이되, 누군가 길을 쓰다듬은 흔적이 뚜렷하다. 솔잎 하나, 참나무 잎사귀 하나도 떨어져 있지 않다. 잔돌마저 깔끔하게 쓸어내린 길이다. 사람의 발길로 반들반들하게 닳아 있는 길을 걸어간다. 성황당으로 가는 길이라서, 목마른 이가 정성을 기울여 닦았을까?
대방 아파트 주민들의 쉼터에 이르렀다. 오후 5시를 향하고 있다. 아직까지 나는 잘 걷고 있다.
아파트 단지를 내려와 황금들녘길로 들어선다. 나는 이 벌판에서 생산되는 '한수위' 쌀을 먹는다. 한수위란 한강의 아래쪽에 대하여 위쪽을 가리키는 말이다. 한강의 위쪽에서 난 쌀이 한수위쌀이다. 한강을 사이에 두고 아래위로 김포와 고양과 파주가 살을 맞대고 있는데, 한수위라는 작명이 기막히다. 김포금쌀, 고양쌀, 고양가와지쌀, 혹은 대왕님표 여주쌀이나 경기미에 비해 '한수위'는 지역과 등급과 품격을 아우르는, 한수 위의 브랜드이다. 파주농협에서 지었을 텐데, 그 뜻이 넓고 깊고 그윽하다.
사물의 명칭은 사물의 속성을 나타낸다. 살아있는 것들의 명칭은 더욱 그러하다. 나는 마루 종(宗)과 고를 균(均)을 쓴다. '마루를 고르다'는 뜻이다. 마루는 뜻이 드높다. 으뜸, 제사, 제사, 기준, 근원, 조상, 우두머리, 갈래 등을 뜻한다. 고르다는 형용사와 동사로 뜻을 가른다. 형용사로는, 여럿이 차이가 없이 한결같다, 상태가 정상적으로 순조롭다고 푼다. 동사로는, 평평하게 또는 가지런하게 고른다고 푼다. 아마도 종균은 마루를 고른다는 뜻을 터인데, 나는 이름을 지어주신 할아버지의 뜻을 넉넉히 감당하지 못한다. 그래서 나는 스스로 무일(無逸)이라는 호를 지었다. 주공이 조카 성왕에게, "군자는 무일無逸(편안하지 않음)에 처해야 한다"고 말했는데, 나를 경계하는 말로 삼았다.
황금들녘길을 이어받아 공릉천길이 공릉천을 따라서 흐른다. 공릉천은 한북정맥의 챌봉(516)에서 발원한다. 양주와 고양을 적시며 파주로 넘어온 공릉천은 금릉역을 지나 자유로의 송촌대교 아래에서 한강을 만난다. 공릉천의 물길은 하루에 두 번 부풀어 오른다. 서해의 바닷물이 밀물을 타고 조강의 물결을 몰아 한강의 물결을 일으키면, 공릉천의 물길이 한껏 부풀어 오른다. 밀물이 썰물로 돌아설 때, 조강과 한강은 몸을 낮춘다. 공릉천도 정확히 서해의 섭리에 순응한다. 철새들은 공릉천에서 때를 기다려 강남과 시베리아로 간다. 철이 바뀌면, 새들은 밀물과 썰물을 타고 공릉천으로 돌아온다. 나는 공릉천을 끼고 40년 가깝게 살았다. 세상은 10년마다 상전벽해를 이루었는데, 공릉천은 예나 지금이나 밀물과 썰물을 타고 서해를 오르내린다.
꽤 길게 걸었다. 학령산길, 장마당길, 면산길을 남겨두고, 금릉역에서 중간 매듭을 짓는다. 금릉역에서 집까지는 10여 분 거리이다. 이만하면 꼬리뼈 골절의 터널에서 벗어난 듯 싶다. 통풍과 허리 통증, 꼬리뼈 골절로 이어진 2020년은 아슬아슬했지만, 건강과 안전의 소중함을 절실히 깨달은 날들이었다. 인생은 걷기이다. 잘 걸을 수 있다면 잘 사는 것이다. 걷지 못하면서 삶의 질을 따지는 일은 부질없다.
'나는 걷는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첫댓글 "함께 걷는 이와 조곤조곤 세상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최상급이다. 나는 늘 하급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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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따뜻한 흰눈위를 가장 먼 저 걷는 짜릿함과 풍요로운 만족을 느끼며 읽어 내려갑니다.
형님...복선과 반전의 거듭남입니다.
저를 일깨워 주는 그런
산행 수필이라고 읽겠습니다.
경상자아 반전 투영된 사진에서는 볼빨간 사춘기의 소년쩍 모습이 보인다면
종균의 시간은 꺼꾸로 흐른다? ㅋㅋ
깨우치고 느끼고 자각하며 저도 깨치겠습니다.
고맙습니다~♡
어느 날인가 같이 걷게 되는 그날이
빨리오기를 바랍니다
예전에는 좀 더 빨리 가려 재촉했던
발걸음이 이제는 쉬엄쉬엄 천천히
오래걷고 싶어지네요
파주마루님~~~
무조건 홧팅입니다!!!!!
형 담배 끊은거 축하합니다.
누군들 생노병사를 피하것어요
하지만 우리들 구력이 있지
앞으로 20년간은 산길에서 우아하게
걷다가 내려올 수 있을 거여여
언제 날잡아 벙개 한번 치세요~
기다리겠습니다..
'구력', '우아하게', '번개'!
팬데믹에 사라진 말들이 튀어나왔군요.
이런 말들 써가며, '앞으로 20년간은 산길에서 우아하게', 그리고 10년은 멋있게 걷다가 내려올 날들을 위하여,
오늘 나는 우아하게 커피 한 잔으로 자축합니다.
재활 축하 드립니다.
공룡능선 산행기가 기다려 집니다.
사진이 깔끔해서 디카 장만 하셨나 했는데 거울 사진 보니 폰카네요.
요즈음 폰카가 너무나 잘 나와서 디카 시장이 죽는다는 것이 실감납니다.
덕분에 형님의 멋드러진 산행 수필에 사진이 더해지니 보는 저는 더욱 즐겁습니다.
앞으로도 안전 산행 하시고 멋진 산행기 많이 부탁 드립니다.
'공룡능선 산행기'를 기대한다는 격려에 힘이 솟는군요.
공룡은 제게 미답의 경지입니다. 며칠 전, 비선대에서 마등령 가는 돌계단을 노려보다가 돌아왔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