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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 이야기 Artificial Intelligence
2000년 전세계적으로 광적으로 유행되었다 사라졌던 테크노 뮤직. 테크노 뮤직을 최근에 생성된 음악의 한 장르라고 생각
하기 쉬우나 사실 그 원조는 1970년 독일에서 결성된 Kraftwerk 라는 그룹으로부터 시작되었다.
4명의 구성원으로 된 이 그룹은 신세사이져라고 하는 전자장비만으로 음악을 연주하였는데 머리를 반지르르하게 넘기고
무표정한 얼굴에 일렬로 서서 신세사이져를 연주하는 모습은 로봇와 같은 기계적인 분위기를 연출하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실제로 그들은 자신들의 음악을 'Robot Pop' 이라고 하였는데 건조하게 반복되는 기계음과 정확한 비트가 그러한 느낌을 연출하기 때문이다.
그러한 꾸준한 반복음을 듣다보면 묘하게 기분이 상승되는데 바로 그러한 매력이 2000년도에 전세계적으로 테크노 열풍
으로 이어졌던 이유인 것 같다.
인공지능의 등장
1997년 5월 11일. 뉴욕에서는 IBM이 개발한 수퍼 컴퓨터 '딥 블루(Deep blue)' 와 세계 체스 챔피언 '게리 카스파로프(Kasparov)'간의 6차전 마지막 경기가 진행되고 있었다.
'딥 블루'는 1초당 2억번의 행마를 검토할 수 있으며, 지난 백년 동안에 개최되었던 주요 체스 대국의 기보가 모두 입력되어 있다. 한편 카스파로프는 스물 두 살에 세계 체스계를 평정한 뒤 13년 동안 국제 대회에서 한 번도 패배하지 않은 체스계의 황제이다. 5차전까지의 전적은 1승 3무 1패로 무승부. 따라서 6차전은 그 어느 한 쪽도 양보할 수 없는 최후의 한 판 승부였으며, 특히 카스파로프에게는 인간의 자존심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었다. 그러나 대국 시작 1시간 2분, 불과 19수만에 '게리 카스파로프'는 돌을 던져 버리고 말았다. 그리고 그는 분노를 참지 못하여 체스판을 뒤엎어 버리는 해프닝을 벌이고 말았다.
컴퓨터의 발달과 더불어 인간만이 할 수 있다고 생각되던 지적과제를 수행하는 컴퓨터들이 하나 둘 등장하기 시작했다.
IBM 에서 개발한 체스 컴퓨터 '딥 블루' 를 필두로 하여 완벽하게 정신분열증 환자를 흉내내는 컴퓨터, 심지어는 정신과
의사처럼 환자들을 진찰하고 상담하는 컴퓨터까지 등장하였다.
이러한 컴퓨터의 등장은 드디어 컴퓨터로 인간의 지능을 구현할 수 있다는 인공지능주의자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
으며, 이제는 컴퓨터로 지능뿐 아니라 의식, 감정까지도 구현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원론 그리고 유물론
파리의 생 제르맹 궁전 정원에는 수력으로 움직이는 사람크기만한 자동인형 조각상이 하나 있다.
이 자동인형은 궁전 안을 걷는 사람들이 특정한 타일을 밟으면 밸브가 열리며 저수탱크의 물이 파이프를 통해 흘러 들어
감으로써 작동을 한다.
데카르트는 1664년 그의 소논문 '인간론' 에서 이것에 대해 기술했다.
그는 사람의 두뇌도 이 자동인형이 작동하는 유사한 원리로 작동한다고 생각했다.
자동인형이 타일에 가해진 압력에 반응하듯 두뇌는 환경의 자극에 반응한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두뇌에도 자동으로 움직이는 조각인형 안에 있는 것과 같은 파이프와 밸브가 있고.
'뇌실'이 바로 저수탱크의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는 두뇌의 밸브를 열고 닫는데 영향을 주는 것은 이성적인 마음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성적인 마음은 저수탱크를 관장하는 기술자와 같아서.
모든 일들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지켜보고 때때로 밸브를 열거나 닫기 위해 자동인형의 작동에 직접 개입하듯
간섭하기도 한다고 생각했다.
이성적인 마음의 원천은 당시에는 그 기능이 알려져 있지 않았던 중뇌의 송과샘(Pineal Gland)이라고 믿었다.
즉 그의 기본적인 사상은 두뇌는 궁극적으로 기계이고 이성적인 마음이 별도로 있다는 심신 이원론을 전제로 하고 있다.
프랑스의 유물론자 '가상디' 는 한술 더떠서 신체 뿐만 아니라 마음 즉 심리적 과정도 일종의 기계와 같은 원리로 작동
한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인공지능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크게 인공적인 기계가 구현하는 기능이 우리 인간의 지능을 이해하는 데 있어서 유용한
도구가 될 것이라고 믿는 약한 인공지능(Weak AI)주의자와 기계도 인간처럼 마음을 갖는다고 주장하는 강한 인공지능
(Strong AI)주의자의 입장으로 구분될 수 있다.
강인공지능주의자는 '가상디'의 계보를 잇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상향진영, 하향진영
인공지능주의자는 상향과 하향이라는 두 진영으로 나누어 진다.
상향 진영에서는 인간의 마음은 인간의 두뇌가 물리적으로 구성된 방식과 절대적인 관계를 갖는다고 주장한다.
그들의 주장에 따르면 두뇌의 물리적인 구조를 반영하지 않고서는 기계에서 마음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따라서 그들은 두뇌라는 하드웨어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흉내내는 것을 목표로 하는 신경망 컴퓨터 분야를 연구하고
있다.
이들은 사유의 규칙들을 기계적으로 시뮬레이션하는 대신 기계가 처해있는 환경에서 생존하는 법을 배워나가면서
패턴을 재조합하는 방식을 연구하고 있다.
기계는 세계에 관한 아주 적은 지식으로 그러나 대단히 유연한 하드웨어의 조합으로 출발한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기계가 환경과 상호작용함에 따라 어떤 사고의 패턴들은 이상생활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다른
것들보다 더 효과적이라는 것이다.
하향 진영에서는 두뇌의 물리적인 구조는 기계가 인간의 지능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느냐 하는 문제와는 무관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그들은 두뇌가 사용하는 규칙들을 추상화하고 그 다음에 이 규칙들을 계산 기계에 맞는 형식으로 코드화하는
것에 집중된다.
이들의 핵심과제는 어떻게 지식을 기호로 표상되느냐, 그리고 어떤 규칙들이 기호열들을 조합해서 새롭고 인지적으로
유의미한 기호열로 만드는 데 사용되느냐 하는 것이다.
그들은 두뇌의 실제적인 하드웨어를 완전히 무시하면서 기호적 표상 도식들과 두뇌에 의해 사용되는 사유규칙들을
추려내는 것에 초점을 맞춘다.
분화된 뇌의 기능
뇌는 해부학적으로 대뇌, 소뇌, 시상하부 등의 영역으로 구분한다.
대뇌는 뇌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좌반구와 우반구로 나뉜다.
각 반구는 얇은 회색질로 된 바깥 표피층과 백질로 된 내부영역으로 이루어진다.
이 회색질 부분을 대뇌피질이라고 하는데 대뇌피질의 각 부분부분은 특정기능을 수행하는역할을 한다.
시각에 대한 인지 및 해석업무는 시각피질(15번)에서, 소리에 대한 신호는 청각피질(12번)에서, 냄새에 대한 신호는
후각피질(8번)에서, 촉감은 정수리 돌출부에 위치한 촉각피질(2번)에서 그리고 신체의 각 부분의 활성화는 운동피질(5번)
에서 담당한다.
뇌의 입력과 출력에 직접적인 역할을 하는 이러한 대뇌피질들(시각, 청각, 후각, 촉각, 운동)을 주영역이라고 한다.
그리고 주영역 부근에는 좀 더 복잡한 수준의 감각처리를 하는 제2영역이 있다.
시각, 청각, 촉각피질 등 으로부터 받은 감각 정보는 제2영역에서 처리된다.
그리고 대뇌피질의 나머지 부분은 제3영역이라고 하는데 이곳에서는 추상적이고 복잡한 뇌의 활동이 수행된다.
언어가 처리하는 곳이 바로 이 제3영역이다.
그 중에서도 좌반구에 있는 브로카(Broca)영역은 언어를 형성하는 영역이고, 베르니케(Wernicke)영역은 언어를 이해하는 영역이다.
따라서 브로카 영역이 손상되면 말하는 데에는 지장이 있지만 이해하는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
반면 베르니케 영역이 손상되면 말은 거침없이 할 수 있지만 그 말은 아무의미가 없다.
(우리는 베르니케 영역을 손상당한 사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또한 뇌량이라 불리는 신경다발이 이 두 영역을 연결하고 있는데 이것이 손상되면 말의 이해에도 지장이 없고 말도 유창
하게 하지만 이해한 것을 말로 표현할 수가 없다.
소뇌는 신체의 정교한 움직임, 타이밍, 균형 등을 담당한다. 걸음마나 운전과 같은 새로운 기술을 배울 때, 처음에는 각각의 동작을 자세히 생각하면서 배우며 이 경우에 대뇌가 제어를 맡는다. 그러나 일단 그 기술에 익숙해지면 대뇌는 그 기능을 소뇌로 넘겨주고 우리는 별생각없이 걷거나 운전을 한다. 뜨거운 난로에서 손을 떼는 것과 같은 무의식적인 반사 작용도 소뇌에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인다.
감각기억은 정보를 수용한 다음 극히 짧은 시간밖에 남아있지 못한다.
따라서 이 감각기억은 곧 잊혀져 버리고 만다. 이 감각기억의 일부는 단기기억으로 넘어간다.
단기기억은 몇 분 또는 몇 시간까지도 기억을 유지할 수 있다.
하지만 주의를 일단 다른 곳으로 돌힌 후 그 이미지를 떠올리려면 장기기억으로 보관해야 하는데 이 장기기억을 담당하는 곳이 해마회이다.
의식은 어디에 있는가?
유감스럽게도 의식이 두뇌의 어느부분에 자리잡고 있는가 하는 문제에 대하여 일치된 의견은 없다.
하지만 일단 소뇌에는 없는 것처럼 보인다.
소뇌에 의하여 제어되는 동작은 의식이 필요없는 자동기계처럼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우리는 의식적으로 어떤 곳으로 걷겠다는 결정은 내릴 수 있지만, 그 걷는 동작을 수행하기 위하여 둘째 발까락 근육에
까지 신경쓸 필요는 없다.
신경외과의사인 펜필드는 사고기능을 담당하는 대뇌피질로부터 신호를 전달받는 '뇌간' 이 의식이 깃든 자리라고 주장
한다.
뇌간은 간뇌, 중뇌, 교뇌, 연수로 구성되며 생명활동의 중추로서 인체내의 모든 정보를 주고 받으며 통제조절권한을
가지고 있다.
그는 뇌간의 부위가 대뇌피질 해당 부위와 직접적으로 교류할 때 '의식적인 각성' 혹은 '의식적인 의지적 행동' 이 일어
난다고 주장한다.
또 다른 견해는 의식은 해마회의 활동과 연관되어 있다고 주장한다.
앞에서 보았듯이 해마회는 장기기억을 저장하는 장소이다.
기억 없이는 의식이 있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의식은 기억속에 있다. (Memento)
전직 보험 수사관이었던 '레너드' 에게 기억이란 없다.
자신의 아내가 살해되던 날의 충격으로 기억을 10분 이상 지속시키지 못하는 단기 기억상실증 환자가 되었던 것이다.
(아마 해마회와 연결된 통신망이 고장난 듯 하다.)
때문에 그가 기억하고 있는 것은 자신의 이름과 아내가 살해당했다는 것, 그리고 범인은 '존 G' 라는 인물이라는 것이
전부이다.
그는 자신이 묵고 있는 호텔, 갔던 장소, 만나는 사람과 그에 대한 정보를 폴라로이드 사진과 메모로 남기고 중요한
사항은 자신의 몸에 문신을 하며 기억을 더듬는다.
그의 정체성은 자기자신을 담은 폴라로이드 사진처럼 그의 기억속에만 있다.
하지만 그의 기억이 점차 왜곡되어 가면서 자신의 정체성 또한 왜곡된다.
어떤 사람들은 대뇌피질 자체가 의식을 생성한다고 주장한다.
대뇌피질은 인간의 자랑이고 인간의 정신활동의 대부분이 이곳에서 수행되기 때문에 이곳이 인간의 의식이 깃든자리
라는 것이다.
아마 강인공지능주의자의 견해도 이와 같을 것이다.
강인공지능주의자들은 의식은 복잡한 알고리즘의 한 측면이며 복잡한 알고리즘은 대뇌피질에서 수행되므로 대뇌피질에 의식이 존재한다는 주장에 찬동하고 있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이다.
또한 많은 철학자, 심리학자들은 인간의 의식은 언어와 밀접한 연관이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이 지적 과제를 수행하고 사고의 정교함을 얻을 수 있는 것은 단순히 언어를 구사할 수 있는 능력 때문이라는 것이다. 상당히 일리가 있는 주장이다. 그런데 이 주장은 하나의 약점이 있다.
언어의 역할을 수행하는 브로카, 베르니케 영역은 뇌의 좌반구에만 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반구에는 의식이 없다는 말인가?
강아지는 의식이 없는가?
데카르트는 동물들은 의식을 가지고 있지 않다고 주장했다.
영혼은 인간만이 가지고 있는 것이고 의식은 필연적으로 영혼에 수반되는 것이기 때문에 동물들은 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 의견을 동의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라 생각한다.
영혼은 몰라도 의식은 동물들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 같다.
의식이란 자신의 신체를 인식하는 데서 출발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에어로빅하는 강아지는 동물도 의식을 가지고 있다는 충분한 증거가 될 것이다.
누군가 강아지 다리에 끈을 매달아서 장난친게 아니라면 말이다.....
의식은 한개인가?
대뇌는 두 개로 나누어져 있다.
좌반구는 신체의 우측을 조절하고 우반구는 신체의 좌측을 조절한다.
좌반구는 말하고 쓰고 계산하는 것과 같은 언어, 논리, 수리에 관한 기능을 담당하며, 우반구는 공간지각, 창의적 사고,
정서적 반응에 관한 기능이나 비언어적 관념을 형성하는 기능을 담당한다.
그 사이에는 뇌량(Corpus Callosum)이라는 신경다발이 두 개의 뇌를 연결하고 있다.
간질병 환자들의 경우 뇌 전체가 마비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 좌반구와 우반구를 연결하는 뇌량을 절단하는 치료를
하기도 한다.
뇌량이 절단된 사람을 대상으로 다음과 같은 실험을 하였다.
먼저 피실험자의 오른쪽에는 연필그림을 비쳐주고 왼쪽에는 컵그림을 보여준다.
그러면 좌측 시각피질에는 연필 시각정보가 입력될 것이고, 우측 시각피질에는 컵 시각정보가 입력될 것이다.
그리고 피실험자에게 무엇이 보이냐고 물어보면 '연필' 이라고 대답한다.
왜냐하면 언어능력이 있는 좌반구에는 연필만을 지각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림에 어울리는 물건을 집으라고 말하면 왼손은 종이를 집지 않고 컵에 어울리는 받침접시를 집어든다.
왼손의 통제권을 지닌 우반구는 비록 언어능력은 없더라도 창의적 사고 등 비언어적 관념을 형성할 수 있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어린아이의 경우 좌반구와 우반구의 분리수술을 받은 직후에는 좌반구에만 언어능력을 가지고 있지만 시간이
지남에 따라 우반구에도 언어능력을 터득한다.
즉 브로카, 베르니케 영역이 아니더라도 필요에 따라서 다른 대뇌피질이 이 언어의 기능을 담당하게 된다는 것이다.
뿐만아니라 좌반구, 우반구는 서로 별개의 의식을 가진 것처럼 보인다.
왜냐하면 그들은 서로 다른 욕망을 보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좌반구는 '제도사' 가 되는 것이 소원이라고 한 반면, 우측 반구는 '카레이서' 가 되기를 희망하였다.
그렇다면 이것은 두 개의 의식이 하나의 육체에 공생하고 있다는 증거가 아닌가?
뉴런 (Neuron)
뉴런은 하나의 독립적인 단위로서 체세포, 축색돌기, 연접마디, 수상돌기 등 모두를 감싸는 세포막을 가지고 있다.
신경신호의 전달은 하나의 뉴런의 연접마디가 다른 뉴런의 수상돌기 가지에 접촉되는 연결점에서 이루어지며 우리는
그곳을 '시냅스(Synapse)' 라고 부른다.
이렇게 연결된 뉴런의 조직은 가소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성장하는 동안 새로운 뉴런과 시냅스되기도 하고 기존의
시냅스를 끊기도 하면서 끊임없이 재배치한다.
이러한 재배치는 환경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이루어지며 자극이 풍부한 환경에서 성장하는 경우에는 수상돌기가 풍부
해지고 학습과 기억과제를 우수하게 수행할 능력이 생기게 된다.
신경신호는 어떻게 전달되는가?
뉴런은 튜브형태로 되어 있으며 튜브내부에는 나트륨이온(), 칼륨이온()과 염화이온()이 들어 있다.
신경이 휴식상태에 있을 때에는 신경섬유 내부에는 나트륨이온, 칼륨이온보다 염화이온의 농도가 높아 음전하(-) 상태로 되고, 신경섬유 외부에는 그 반대로 양전하(+) 상태로 된다.
이 때 신호가 들어오면 세포막의 나트륨 게이트라고 불리는 작은 문을 열리면서 밖에 있는 나트륨 이온이 튜브안으로 흘러들어오게 된다.
그 결과 튜브내부에는 양전하 그리고 외부에 음전하 상태가 된다.
이러한 상태가 연속적으로 이루어지면서 신경신호가 이동을 한다.
따라서 신경신호의 전달이란 단지 튜브를 따라서 전도된 부분이 이동하는 것일 뿐이다.
물질의 이동은 없다.
그리고 신호가 연접마디에 다다르면 일종의 화학물인 신경 전달물질(Neurotransmitter)을 방출하고 이것은 시냅스 간격을 통하여 다른 뉴런으로 전달된다.
신경신호에 강도는 존재하지 않느다. 말하자면 신호신호의 전달방식은 '도 아니면 모'(All or Nothing) 의 형식을 다른다.
신호는 있거나 없을 뿐이다.
이러한 신호전송시스템은 디지털 컴퓨터와 공통점을 갖는다. 실제로 상호 연결된 수많은 뉴런들의 작동 형태와 전류를
전송하는 회로 및 논리 게이트를 갖는 디지털 컴퓨터의 내부 작동 사이에는 수많은 유사점들이 있다.
그렇다면 자연스럽게 제기되는 한가지 가능성이 있다.
뉴런의 작동체계가 얼마나 복잡하건간에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이론적으로라도 말이다. 이제 본격적으로 강인공지능주의자의 주장을 살펴보자.
이들의 주장을 알아보기 위해서는 다소 엉뚱하지만 먼저 수학이야기부터 해야겠다.
에피메니테스 역설
어떤 마을의 이발사는 그 마을에 사는, 스스로 면도하지 않는 사람만을 모두 면도한다.
그렇다면 누가 그 이발사를 면도할 것인가?
이 이발사가 스스로 면도를 하지 않는다면 그는 이 명제에 의하여 자신을 면도해야 한다. 따라서 스스로 면도하는 사람이 된다. 그러면 이 명제에 의하여 자신을 면도하면 안된다.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이러한 역설을 에피메니테스 역설이라고 한다. 이 역설은 하나의 명제가 자기자신을 대상으로 할 때 발생하는 역설이다. 이러한 문장의 가장 단순한 형태는 다음과 같다. "이 문장은 거짓이다" 이 문장이 참이라면 명제에 의하여 이 문장은 거짓이다. 이 문장이 거짓이라면 이 명제는 참이다 라는 역설에 빠지게 된다.
이 문장은 자기자신의 생각을 자기자신에게 입력하는 컴퓨터와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또 다른 형태의 역설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아래 문장은 거짓이다."
"위의 문장은 참이다."
위의 문장이 참이라면 이 명제에 의하여 아래문장은 거짓이 된다. 아래문장이 거짓이라면 이 명제에 의하여 위의 문장
또한 거짓이 된다.
이 두 개의 문장은 명쾌하게 보여주는 그림이 있는데 그것은 에셔(M.C.Escher)의 '손을 그리는 손' 이다.
이 그림에서는 두 개의 손은 두 개의 명제를 대신한다. 오른손과 왼손이 서로를 그리고 있는 데 끝없이 반복되는 뫼비우스의 띠와 같이, 이 그림은 벗어날 수 없는 이상한 고리(Strange Loop)를 형성하고 있다.
힐베르트의 꿈, 힐베르트 프로그램
독일의 수학자 힐베르트는 '이발사 역설' 이 생기는 이유는 자연언어의 모호함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러한 역설이 수학세계에서 발생하는 것을 막기 위하여 수학적 진리 전체영역을 형식화하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형식체계' 안에서 수학적 진술들의 참 또는 거짓에 대해 말하고자 하였다.
하나의 형식체계내에서 '증명' 이란 공리들 중 하나로부터 출발해서 변형규칙들을 적용함으로써 그 공리를 일련의 새로운 기호열로 바꾸는 것이다.
새로 생성된 기호열은 그 자체로 공리이거나, 변형규칙을 적용함으로써 앞의 기호열에서 도출되는 것이어야 한다.
그러한 열에서 마지막 기호열은 그 체계의 '정리'하고 한다. 따라서 모든 정리들의 총체가 그 곧 체계 내에서 증명될 수
있다.
이러한 형식체계가 완성되면 수학적 구조의 참인 사실들과 형식체계의 정리들 사이에 완벽한 일 대 일 대응이 존재하리라고 생각할 수 있다. 말하자면 모든 수학적 진리가 각각 하나의 정리로 번역되고 또 역으로도 그러한 형식체계를 찾아내는 것이었다. 힐베르트는 수학을 공리에 근거한 추론체계로 간주한 자신의 이론에 모순이 없다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수학이 확고한 기초위에 서 있음을 입증할 수 있는 소위 '힐베르트 프로그램' 연구에 착수토록 전세계 수학자들을 독려하였다.
힐베르트의 이러한 제안에 따라 수학의 목적이 명쾌하게 제시됨에 따라 많은 형식주의자들은 수학 이 역설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는 생각에 들떠 있었다.
불과 몇 년 후에 괴델이 '불완전성 정리' 를 통하여 그의 꿈이 단칼에 무산되었지만 말이다.
튜링의 등장
강인공지능주의자들은 수학적 추론이란 기계적 과정이라 생각했다.
따라서 수학적 개념, 명제는 형식화할 수 있으며 수학적 증명은 그 형식체계내에서 규정된 절차로 환원시킬 수 있다.
그리고 이 형식체계는 하나의 기계로 간주할 수 있으며 이 체계 내에서의 정리와 산출 과정은 기계적 조작으로 간주할
수 있다.
이들은 더 나아가 수학적 추론의 상위 체계인 인간의 마음도 기계로 간주할 수 있으며, 그러므로 마음의 작용도 기계화,
형식화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이론을 체계적으로 전개한 사람이 지금 우리가 쓰고 있는 컴퓨터의 동작원리를 최초로 이론적으로 제시한 '튜링
(Allan Turing)' 이라는 사람이다.
그에게 있어서 수학적 추론과정은 실체가 없는 추상적이고 불가해한 과정이 아니라, 자동기계의 수리기호라는 상징을
조작하는 과정으로써 구체적인 절차에 의해 형식적으로 기술할 수 있다.
그리고 인간의 마음도 상징조작 체계로 간주할 수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 입력된 자극을 부호화하여 각종 정보를 추출,
조작하여 출력을 내어놓는 정보처리의 과정으로 환원할 수 있다.
따라서 인간의 마음도 상징조작 체계의 대표격인 컴퓨터로 시뮬레이션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인간의 마음은 무한한 과정이다. 따라서 마음을 컴퓨터로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는 생각의 핵심은 무한한 과정으로서의
사고현상을 유한한 프로그램으로 기술할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떠한 현상이란 현실에서 발생하는 사건들이며 따라서 '상황들이 발생할 수 있는 모든 가능한 양식의 집합'으로 규정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음이라는 현상에 대한 기술의 개념은 무한 기술의 필요성에서부터 유한 기술로, 유한 기술에서 규칙집합의
기술의 개념으로 옮아간다.
그런데 모든 불연속적 특정현상은 자연수를 연결시켜 주는 규칙에 의해 표상될 수 있으며 결론적으로 현상을 기술하는
문제는 규칙집합에 대한 유한 기술의 문제이다.
이것이 한 현상이라는 집합과 자연수집합을 대응시키는 규칙을 다루는 자동기계이론이며, 자동기계 이론 중에 가장 대표적인 이론으로서 계산가능성의 개념을 명확히 해주고 심리 현상의 기술에까지 적용된 이론이 '튜링'기계 이론이다.
튜링기계
튜링의 주장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그가 제안한 튜링기계의 동작원리를 먼저 알아보는 것이 중요하다.
튜링기계는 두 가지 구성 요소로 이루어진다.
첫째, 정사각형으로 칸을 매긴 무한히 긴 테이프이다. 각각의 각각의 정사각형에는 하나의 기호가 표시되어 있다.
둘째, 계산 절차의 각 단계에서 사각형에 있는 기호를 읽고 또 새로운 기호를 쓸 수 있는 검사헤드가 있다.
튜링기계는 프로그램(알고리즘)에 따라 사각형안에 있는 기호를 읽거나 쓰고 완쪽 또는 오른쪽 칸으로 이동을 한다.
그러면 튜링기계의 원리를 간단히 살펴보기 위하여 각각의 내부 상태에 0, 1, 2, 3, 4, 5, ... 와 같은 번호를 붙여보기로 하자. 그런면 이 튜링기계는 다음과 같은 변환 규칙으로서 기술될 수 있을 것이다.
00 00R | 기계의 내부상태가 0 이고, 지금 읽은 테이터가 0 이면, 현재 내부상태 0 을 유지하고 현재읽은 내용을 그대로 둔채 오른쪽으로 움직여라 |
01 131L | 기계의 내부상태가 0이고 지금 읽은 데이터가 1이면, 내부상태를 13으로 바꾸고 현재 데이터를 그대로 둔채 왼쪽으로 움직여라 |
21 660L | 기계의 내부상태가 2이고 지금 읽은 데이터가 1이면, 내부상태를 66으로 바꾸고 현재 테이터를 1로 고치고, 왼쪽으로 움직여라 |
2580 00RSTOP | 기계의 내부상태가 258이고 지금 읽은 데이터가 0이면, 내부상태를 0으로 바꾸고 현재데이터를 그대로 둔재 왼쪽으로 움직이고 멈추어라 |
< UN + 1 >
이 기계은 단순히 일진법 숫자에다가 1을 더하는 튜링기계이다. (일진법에서 4이라는 숫자는 1을 연속 네 개의 기호열로
표시한다.)
이 기계의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00→00R 01→11R 10→01STOP 11→11R
그렇다면 4 + 1 = 5를 계산하는 과정을 보라
D A T A | 적용규칙 | 기계상태 | 읽은DATA | 기계상태 | DATA | 이동 |
0 0 0 0 1 1 1 1 0 0 0 0 | 00→00R | 0 | 0 | 0 | 0 | 오른쪽 |
0 0 0 0 1 1 1 1 0 0 0 0 | 00→00R | 0 | 0 | 0 | 0 | 오른쪽 |
0 0 0 0 1 1 1 1 0 0 0 0 | 00→00R | 0 | 0 | 0 | 0 | 오른쪽 |
0 0 0 0 1 1 1 1 0 0 0 0 | 00→00R | 0 | 0 | 0 | 0 | 오른쪽 |
0 0 0 0 1 1 1 1 0 0 0 0 | 01→11R | 0 | 1 | 1 | 1 | 오른쪽 |
0 0 0 0 1 1 1 1 0 0 0 0 | 11→11R | 1 | 1 | 1 | 1 | 오른쪽 |
0 0 0 0 1 1 1 1 0 0 0 0 | 11→11R | 1 | 1 | 1 | 1 | 오른쪽 |
0 0 0 0 1 1 1 1 0 0 0 0 | 11→11R | 1 | 1 | 1 | 1 | 오른쪽 |
0 0 0 0 1 1 1 1 1 0 0 0 | 10→01STOP | 1 | 0 | 0 | 1 | 정지 |
< UN x 2 >
이 기계는 일진법 숫자에다가 2를 곱하는 튜링기계이다. 이 기계의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00→00R 01→10R 10→101L 11→11R 100→110R 101→1000R
110→01STOP 111→111R 1000→1011L 1001→1001R 1010→101L 1011→1011L
3 x 2 = 6을 계산하는 과정을 보라 !!
하지만 일진법 체계는 데이터의 크기가 커지면 비효율적이 된다. 말하자면 343,532 이라는 숫자를 표현하기 위하여는 1의 343,532 개의 연속체를 사용하여야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점을 보완하기 위하여 2진수 체계를 사용하기로 하자.
2진수 체계란 2진수를 그대로 읽는 것이 아니고 축약(Contraction)이라는 방법을 사용한다.
이것은 일단 0, 1, 2, 3, 4 등의 문자열로 바꾸고 0과 0사이의 1의 갯수를 이용하여 이러한 문자열을 만들 수 있다.
예를들면 테이프에 표시된 아래 기호열을 보면 0과 0 사이의 1의 숫자를 보면
0 1 0 0 0 1 0 1 1 0 1 0 1 0 1 1 0 1 0 0 0 1 1 1 0 1 0 1 0 1 1 1 1 0 0 1 1 0
1 0 0 1 2 1 1 2 1 0 0 3 1 1 4 0 2
여기에서 2는 쉼표, 3 가 4는 어떤 명령어라고 약속하면
(이진수 1001)(쉼표)(이진수 11)(쉼표)(이진수100)(명령어3)(이진수11)(명령어4)(이진수0)(쉼표)
따라서
9 , 3 , 4 (명령어3) 3 (명령어4) 0 ,
마지막에 쉼표( , )를 붙임으로서 오른쪽으로 끝없이 이어진 0들로부터 그 숫자를 구분할 수 있게 되었고 임의의 유한개수의 자연수로 이루어진 수열도 쉼표로 각각을 구분함으로써 0과 1만으로 이루어진 하나의 커다란 문자열로서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그러면 다음 수열을 하나의 데이터로 만들어 보자
5 , 13 , 0 , 1 , 1 , 4 ,
이를 이진수로 표시하면
101 , 1101 , 0 , 1 , 1 , 100 ,
이를 확장(위에 설명한 축약과정의 반대)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테이프 내용을 바꿀 수 있다.
0 1 0 0 1 0 1 1 0 1 0 1 0 0 1 0 1 1 0 0 1 1 0 1 0 1 1 0 1 0 1 1 0 1 0 0 0 1 1 0
이러한 것을 확장 2진수 표현법이라고 부르기로 하자.
이를 위해서는 앞에서 구한 2진수 문자열에 다음과 같은 간단한 변환 규칙을 적용한 뒤 무한개의 0을 앞뒤에 붙이면
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0 → 0 1 → 10 , → 110
여기에서 앞의 0 과 뒤의 0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또한 빈칸도 0이 되어야 하므로 두 개의 쉼표 사이에 있는 0 대신 그냥
연속된 쉼표(,,)로 표현하면 된다.
그러므로 앞의 숫자열을 다음과 같이 표시될 수 있다.
101 , 1101 , , 1 , 1 , 100 ,
0 1 0 0 1 0 1 1 0 1 0 1 0 0 1 0 1 1 0 1 1 0 1 0 1 1 0 1 0 1 1 0 1 0 0 0 1 1 0
< XN + 1 >
이 기계는 확장2진수 표현의 자연수에 단순히 1을 더하는 튜링기계이다. 이 기계의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00→00R 01→11R 10→00R 11→101R 100→110L 101→101R
110→01STOP 111→1000L 1000→1011L 1001→1001L 1010→1100R
1011→101R 1101→1111R 1110→111R 1111→1110R
< XN x 2 >
이 기계는 확장2진수 표현의 자연수를 2로 곱하는 튜링기계이다. 이 기계의 프로그램은 아래와 같다.
00→00R 01→11R 10→00R 11→100R 100→111R 110→00STOP
한가지 덧붙이고 싶은 것은 어떤 계산은 확장 2진 표현을 이용하는 기계가 일진법을 사용하는 기계보다 단순해진다는
것이다. 주어진 확장 이진 표현의 자연수를 2배해 주는 튜링기계 XN x 2 는이며 이는 앞에서 제시한 일진법 튜링기계
UN x 2 보다 훨씬 간단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보편튜링기계 (Universal Turing Machine)
임의의 튜링기계 T 의 프로그램 명령어들 또한 0 과 1 의 연속체로 코드화할 수 있다. 그러면 이 코드화된 명령어를 입력
부의 앞에 두고 계산하고자 하는 데이터를 뒤부분에 두면 프로그램과 데이터를 하나의 연속체로 코드화된 입력부를 가지게 된다. 그러면 하나의 테이타를 입력하게 되면 원하는 숫자를 원하는 계산을 할 수 잇는 보편튜링기계 U 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때 보편튜링기계는 입력부의 뒷부분의 데이터를 이용하여 마치 T 처럼 행동하게 된다. 이것이 바로 튜링의 기본 아이디어이다.
그러면 앞서보았던 XN+1 튜링기계의 명렁어를 코드화하는 과정을 살펴보자.
00→00R 01→11R 10→00R 11→101R 100→110L 101→101R
110→01STOP 111→1000L 1000→1011L 1001→1001L 1010→1100R
1011→101R 1101→1111R 1110→111R 1111→1110R
여기에서 좌측의 기호는 순서가 있으므로 표시를 하지 않아도 위치만으로 그 기호를 알 수 있으므로 생략이 가능하다.
따라서 좌측의 기호, 화살표( ), 쉼표(,)를 생략하면
00R 11R 00R 101R 110L 101R 01STOP 1000L 1011L 1001L 1100R 101R 1111R 111R 1110R
여기에서 00을 없애고 01은 단순히 1로 바꾸어지면
R 11R R 101R 110L 101R 1STOP 1000L 1011L 1001L 1100R 101R 1111R 111R 1110R
여기에서 R,L, STOP, 화살표( ), 쉼표(,)를 각각 2, 3, 4, 5, 6 과 같은 숫자로 대치하면 각각은 축약코드
110, 1110, 11110, 111110, 1111110 로서 나타낼 수 있다.
1101010110110100101101010011101001011010111101000011101001010111010001011101010
1111010110110101010101101010101101010100110 로 표시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제일 처음 등장하는 110 기호는 생략될 수 있는 왜냐하면 이것은 00 00R를 간략화 한 것인데 이 명령문을 모든
튜링기계가 공통적으로 갖는다고 가정한 것이기 때문이다.
마지막의 110 도 생략이 가능한데 그 이유는 모든 명령어에 공통적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앞의 110 과 뒤의 110을 생략하면
10101101101001011010100111010010110101111010000111010010101110100010111010101111
010110110101010101101010101101010100 이 된다.
이것을 십진수로 나타내면 450813704461563958982113775643437908 이 된다.
번호가 n 인 튜링기계를 번째 튜링기계라고 부르고
으로 표시하자.
그러면 XN+1 은 450813704461563958982113775643437908 번째 튜링기계가 된다.
참고로 UN + 1 은 177642 번째 튜링기계, UN x 2 는 1492923420919872026917547669 번째 튜링기계, XN x 2 는 1456581339 번째 튜링기계이다.
특정한 튜링기계 에 0과 1의 연속체인 데이터 를 입력하면 그 기계는 얼마간의 작동을 한 후 어떤 결과 를 내놓을 것이다. 또한 물론 0과 1의 연속체인 테이터이다. 이러한 관계 즉. 번째 튜링기계가 입력 테이터 에 작동하여 를 생성한다는 것은 로 표시할 수 있다.
이것은 달리 표현하면 과 의 순서쌍을 작용하여 를 생성하는 특정한 연산으로 볼 수 있다.
말하자면 보편튜링기계 에다가 두 개의 숫자 , 를 입력하고 결과 를 얻었다고 볼 수 있으며 이것은 로 표현하자. 기계는 값이 주어지면 정확하게 번째 튜링기계를 흉내내는 것이다.
자체도 튜링기계이기 때문에 그 자신에 대한 숫자가 있을 것이다.
즉 를 만족하는 u 가 존재할 것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u 는 얼마나 큰 숫자일까?
현대의 범용 컴퓨터는 그 기능면에서 보편 튜링기계와 비슷하다. 이 말은 컴퓨터의 동작원리가 앞서 제시한 만능튜링기계와 사양과 비슷하다는 뜻은 아니다.
단지 적합한 프로그램(입력 테이프의 앞부분)을 만능 튜링기계에 주어지면 그것이 어떤 튜링기계라도 흉내낼 수 있도록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것이다.
튜링기계의 의미
튜링기계는 일상적 의미의 기계 즉 하드웨어가 아닌 프로그램 즉 알고리즘을 의미한다.
튜링이 인식한 것은 어떤 튜링기계에서 수행 가능한 알고리즘도 보편튜링기계(UTM)의 특정한 형태로 수행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튜링은 보편튜링기계를 규정하기 위하여는 입력자료뿐 아니라 프로그램 자체도 0과 1의 열로 코드화할 수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또한 하나의 입력자료로 여길 수 있다고 보았다.
보편 튜링기계 정리는 어떠한 튜링기계 에 대해서도 이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보편 튜링기계 가 존재한다는 것이다.
튜링기계는 하나의 절차 또는 그 집합이라고 볼 수 있다.
하나의 튜링기계 은 기계표와 테이프만 주어진다면 그 절차를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이는 시뮬레이션 절차가 완전히 알고리즘적이며 그 알고리즘적 절차가 다른 기계에 의해도 수행될 수 있음을 의미한다.
보편 튜링기계가 존재한다면 계산을 하는 기계, 장기두는 기계, 문자 복사기계, 문제 해결 기계 등 용도에 따라 서로 다른 기계를 따로 만들 필요가 없다. 서로 다른 여러 일들을 하는 기계들을 시뮬레이션할 수 있는 하나의 보편 튜링기계만 있으면 되기 때문이다. 각 튜링기계들의 행동이 유한히 기술될 수 있으며 보편 튜링기계가 각 튜링기계를 합한 기억 및 처리능력만 보유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다. 또한 그러한 보편 튜링기계는 인간의 지능을 구현할 수 있을 것이다.
유연성
앞절의 뜬금없는 마지막 문장이 무척이나 못마땅하게 생각될 수 도 있다.
과연 앞에서 설명한 보편튜링기계가 어떻게 인간의 지능을 구현한다는 말인가? 튜링기계가 3x2=6 계산을 수행하는 것이 인간의 지능을 시뮬래이션하는 것이 과연 무슨 연관이 있는가? 인간의 지능은 계산하는 것과는 달리 유연성이 있다.
인간 지능의 유연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속성을 말한다.
o그때 그때 상황에 대해서 매우 유연하게 대응한다.
o우발적인 주변조건을 활용한다.
o애매하거나 모순적인 메시지로부터 의미를 도출한다.
o상황의 상이한 성분들 사이의 차이를 분별해서 비교적 더 중요한 것을 인식한다.
낡은 개념들을 새롭게 결합하는 가운데 새로운 개념들을 합성한다. 등등
이러한 유연성은 아주 다양한 층위의 규칙들로부터 나오는 것 같다. 말하자면 저변에는 아주 '간단한 규칙들' 이 존재할 것이다.
그리고 아주 '간단한 규칙들' 을 수정하기 위한 '메타 규칙들' 이 있을 것이고 이 '메타 규칙들' 을 수정하기 위한 '메타-
메타 규칙들' 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 '메타-메타 규칙' 들을 수정하기 위한 ' 메타-메타-메타 규칙' 들이 있을 것이다. 한편으론 '간단한 규칙' 과 '메타-메타 규칙들' 과의 관계를 설정하는 규칙들도 있을 수 있다. 인간지능의 유연성은 바로
이 엄청난 수의 상이한 규칙들과 그 규칙의 층위들로부터 발생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째서 그렇게 많은 층위가 존재하는가? 그 이유는 바로 하나의 생물은 생애에 걸쳐 수백 만 가지의 판이한 유형의 상황들과 대면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떤 상황들에서는 '아주 간단한' 규칙들 중 어느 것을 적용해야 할 지를 결정하기 위한 규칙을 요구한다. 또 어떤 상황들은 어떤 규칙을 적용할 지 분류될 수 없어서 새로운 규칙을 고안하기 위한 규칙들이 존재해야 한다. .... 이렇듯 지능의 핵심부에는 직접 또는 간접적인 자신을 변경하는 규칙들을 요구하는 이상한 고리가 자리잡고 있다.
의식의 층위
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체스 컴퓨터 개발의 포인트는 행마를 더 빨리, 더 정확히 예측하는 컴퓨터를 만드는 데 역점을 두었었다.
그래서 그 목표가 어느 정도 달성되면 컴퓨터의 체스실력이 인간의 실력을 앞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목표가 달성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컴퓨터의 체스실력이 인간의 체스수준을 넘는 것이 무척이나 힘들어 보였다. 서두에 말했듯이 체스컴퓨터 '딥 블루'는 1초에 2억번의 행마를 검토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껏해야 1초에 2~3개의
행마밖에 검토하지 못하는 '카스파로프' 와의 경기에서 고전을 했다.
행마의 검토속도가 체스실력의 잣대가 아님은 분명하다.
그 이유는 인간은 체스말을 하나의 '덩어리' 로 된 조각들의 분포로 지각하기 때문이다.
즉 흰색의 말은 어디로 움직여라 처럼 직접적으로 기술하는게 아니라 체스판 전체에 대하여 한 차원 높은 정신적인 이미지를 만든다는 것이다. 따라서 사람은 컴퓨터보다 한단계 높은 층위에서 체스를 둔다는 것이다.
(다양한 층위에서의 전술과 전략이 필요한 바둑이 적절한 예시가 될거라고 생각한다.
필자는 바둑을 두지 못하기 때문에 이 예시를 들지는 못하겠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심리에 대해서 숙고해보면 우리의 정신적인 구조 속에는 여러 층위가 존재함을 느낄 수 있다.
그것들은 분명히 우리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체계이다.
우리가 모든 정신적인 층위들에 대해서 동일한 언어를 사용한다면 개별적인 층위들 사이의 혼란이 발생할 것이다.
예를 들면 우리는 성, 권력, 명예, 사랑 등에 대한 본능적 욕구를 언급한다.
하지만 이러한 본능적 욕구들이 인간의 정신적인 구조의 어디에서 유래하는지 알지 못한다.
우리 자신의 정체에 대해서 우리가 겪는 혼란은 분명히 우리가 매우 많은 층위들의 집합으로 이루어지며 이 모든 층위에서 우리 자신을 기술하는 중복되는 언어를 사용한다는 점과 관계가 있다.
유연성을 구현하는 소프트웨어의 층위
컴퓨터 하드웨어는 회로들이 적절한 연산을 할 수 있도록 고정배선되어 있다.
그리고 이 하드웨어 층위의 위에는 기계언어 층위가 있다.
하드웨어는 기계언어로 된 프로그램을 이해하도록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이 기계언어 층위의 위에는 어셈블리언어 층위가 있다. 하드웨어는 기계언어로 된 프로그램은 실행하지만 어셈블리 언어로 된 프로그램을 실행하지 못한다.
이것은 마치 화학물질 대신에 알파벳 활자로 핵산배열이 적힌 종이를 세포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과 같은 차원이다.
하지만 어셈블리 언어와 기계언어는 크게 다르지는 않다.
어셈블리 언어의 명령과 기계언어의 명령 사이에는 원칙적으로 1:1 대응관계가 존재하기 때문이다.
어셈블리 언어는 기계언어의 개별적인 명령들을 '덩어리' 로 묶어서 표현할 뿐이다.
말하자면 하나의 수를 다른 것에 더하는 명령할 때 기계언어는 1011000 라는 기호의 연쇄체로 표현하지만 어셈블리 언어에서는 간단하 ADD 라고 쓰면 된다.
따라서 우리는 주소를 이진 숫자로 표시하는 대신에 간단히 이름을 가진 낱말로 지시할 수 있다.
컴퓨터 프로그램 개발자들은 프로그램을 실행과정을 기술하는 알고리즘을 공식화하려고 할 때 체스에서와 유사하게 특유한 구조들이 존재한다는 것을 발견했다. 다른 말로 하자면 알고리즘은 제한된 기능을 가진 기계언어나 어셈블리 언어보다 쉽고 미학적으로 구체화된 더 높은 층위의 구성성분을 가진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을 기술하여 만들어진 새로운 언어들을 컴파일러 언어라고 불린다. 컴파일러 언어는 어셈블리 언어의 경우와는 달리 알골로 쓰인 명령어와 기계언어로 쓰인 명령사이에 1:1 대응은 없다.
물론 알골로부터 기계언어로 사상하는 유형이 여전히 있지만 그것은 어셈블리 언어와 기계언어 사이의 사상보다 훨씬 더 뒤죽박죽이다.
컴파일러 언어층위의 위에는 운영체계의 층위가 존재한다.
운영체계 자체는 사용자가 그 기계 자체에 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역할을 하며 프로그램을 판독할 때 발생하는 복잡하고
혼란스런 문제들로부터 프로그래머을 보호한다.
컴퓨터 시스템의 여러층위들은 총체적으로 사용자를 편안하게 해주고 사용자와는 무관한 심층적인 층위들에서의 많은
과정들을 고민하지 않게 해주는 효과를 가지고 있다.
이 글을 읽고 있는 여러분은 하드웨어의 구성방법, 기계언어, 컴파일러 언어, 윈도운 운영체계가 어떤 구조로 되어 있는지 알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모든 것은 소프프트웨어 내부의 다양한 층위의 위계질서에 있는 차원들이 알아서 처리하며 여러분은 그저 마우스를
클릭만 하면 될 뿐이다.
오늘날 인공지능 연구를 위해서 개발된 실험언어들만 해도 족히 30~40 개는 될 것이다.
그런데 중요한 사실은 하나의 언어로 쓰인 프로그램도 기본적으로 더 낮은 층위의 언어로 프로그램으로 변환될 수 있다는 것이다.
컴퓨터의 완전한 잠재력은 이미 기계언어로 된 명령집합 속에 존재하는 것이다.
지능을 갖춘 프로그램을 만들려면 모든 것을 가장 낮은 층위에서 보아야 하는 단조로움을 막도록 일련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층위들을 구축해야 한다.
다양한 층위에서의 과정들의 기술들은 서로 상이한 것으로 보이는데 이때 오직 최고 수준의 층위만이 우리를 이해시키기에 충분할 정도로 응축되어 있다.
그림은 인공지능의 층위의 분석을 보여주는데 가장 아래에는 트랜지스터 같은 기계부품이 있고 가장 위에는 지능을 갖춘 프로그램들이 자리잡는다. 인공지능이 이런 식으로 분석이 되는 것에 대하여 많은 공감을 얻고 있다.
다만 그 정도의 빈약한 층위들로 설명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기계언어의 층위와 실제의 지능이 도달한 수준 사이에는 아마 10여개의 또는 수십개의 층위가 있어야 할 것이다.
이때 각각의 새로운 층위는 그 밑에 높인 층위를 토대로 구축되며 아래 층위의 유연성을 향상시킬 것이다.
튜링테스트
1950년 앨런 튜링은 정신(Mind) 라는 잡지에 " 계산기계와 지능" 이라는 인공지능에 대한 예언적이면서도 상당히 도발적인 내용의 논문을 발표했다.
이 논문은 '나는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라는 문제를 논의하려고 한다.' 라는 문장으로 시작한다.
그는 보편 튜링기계 정리에서 더 나아가 튜링 테스트(Turing Test) 라는 방법을 제시하면서 마음을 기계론적인 관점에서
볼 것을 강력히 제기하고 있다.
튜링 테스트란 질문자(사람), 답변자(사람), 답변자(기계) 세 개체와의 의사소통이 텔레타이프를 통해서만 질문과 답변을 하는 테스트이다. 튜링은 질문자가 자신의 질문에 대한 답이 기계 답변자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인간 답변자에게서 나오는 것인지 구분할 수 없다면 그 기계는 튜링테스트를 통과한 것이며 그 기계는 인간과 같이 사고할 수 있는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그들의 행동을 관찰하는 것뿐이라는 주장이다.
튜링테스트는 기계의 내적 구성에 대해서 어떻게 프로그램이 짜여 있는지 정보의 처리단위가 무엇인지, 그것의 물질적 구조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말하지 않는다.
단지 컴퓨터가 사람이 생각하며 행동하는 것과 똑같은 행동양상을 보인다면 그것은 사람과 같이 생각한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이다.
만약 컴퓨터가 진실로 주어진 모든 질문에 대하여 인간의 것과 구분이 안 될 정도로 답을 할 수만 있다면, 그리하여 분별력 있는 질문자를 정당하고 일관되게 속일 수만 있다면 이를 반증하는 증거가 없는 한 컴퓨터가 실제로 생각하고 느끼고 한다고 추정하겠다는 것이다. (뭐 잘못된게 있는가?)
행동주의 심리학
튜링테스트에 대한 강인공지능주의자의 입장은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의 입장과 유사함을 볼 수 있다.
미국의 심리학자 왓슨(Watson)의 다음과 대담한 발언을 통하여 이후 심리학계를 반세기동안 지배하게 될 행동주의 심리학파의 출현을 알렸다.
심리학은 자연 과학의 순수하게 객관적이고 실험적인 분야이다. 심리학의 이론적 목표는 행동을 예견하고 통제하는 것이다. 내성법은 심리학적 방법의 필수적인 부분을 형성하지 못할 뿐 아니라 의식에 의해서 그 자체에 제공하는 자료 또한
과학적 가치가 없다.
왓슨과 같은 골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에게는 심리학 연구의 올바른 대상은 정신이 아니라 오직 관찰가능한 행동뿐이다. 정신적 경험과는 달리 행동은 측정되어지고 다른 과학자들에 의하여 증명될 수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어떤 심리학자들은 배고픔에 대한 정신적 경험을 연구할 수도 있다.
그러나 행동주의 심리학자들은 관찰가능한 섭식행동을 연구하는 것을 선호한다.
왓슨은 정신과정이 행동을 야기시킨다는 것을 부정하였다.
그렇다고 정신의 존재를 부정한 것은 아니다.
그는 배고픔이라고 불리는 정신적 경험을 인간이 가지고 있다는 것은 부정하였다.
다만 섭식을 야기시키는 정신적 경험이 있다는 것은 부정하지 않았다.
그는 배고픈 느낌 같은 정신에서 섭식의 원인을 찾는 대신에 저혈당과 같은 신체 혹은 식욕을 자극하는 향기같은 환경에서 원인을 찾아 설명하려고 애썼다. 심리학에 대한 왓슨의 영향으로 실제로 1930년부터 1960년 까지 '정신' 이라는 용어는
심리학 연구 문헌에서 거의 찾아볼 수 없었다.
감정에 대한 행동주의 심리학적 접근
1950년 그레이 월터는 '거북'(Tortoise)이라는 장난감을 만들었다. 이 장난감은 자신의 동력으로 마루위를 다니다가 배터리가 약해지면 가장 가까운 전기 소켓으로 가서는 자기 스스로 플러그를 꽂고 재충전을 한다.
그리고 완전히 충전이 되면 소켓에서 자신을 분리한 후 다시 마루 위의 탐험을 재개하는 것이다.
인공지능주의자들은 궁극적으로 이것을 통하여 행복, 아픔 굶주림 등의 정신적인 특성들도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월터의 거북은 배터리의 힘이 약해지면 그 동작 패턴이 바뀌어 힘을 다시 축적할 수 있도록 설계된 방법에 따라 움직이게 된다. 이러한 행동과 인간이 배고픔을 느낄 때 하는 행동 사이에서는 분명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이다.
월터의 거북이 이러한 행동을 보일 때 그것이 '배고프다'고 말한다 하더라도 크게 틀리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인공지능주의자들은 아픔이나 행복과 같은 감정에 대하여 비슷한 방법으로 모형화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예를들어 '느낌' 에 대하여 극도의 아픔(점수 : -100)으로부터 극도의 즐거움(점수 : +100)까지 측정할 수 있다고 생각해
보자.
우리에게 어떤 장치가 있어서 자기 자신의 '기쁨, 아픔' 점수를 측정할 수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그 점수를 'pp 계수' 라 하자. 이 기계는 계수를 양의 값으로 최대한 증가시키는 방향으로, 음의 계수는 가능하면 피하는 방향으로 행동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 기계에 대하여 즐거운 감정의 양의 정도, 그리고 아픔의 느낌은 계수의 음의 정도에 따라 정의하는 것이 타당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정의가 타당한 것은 인간이 즐거움이나 아픔에 대하여 반응하는 것도 이와 똑같다는 것이다.
이들의 관점의 요지는 심적 활동이란 것도 단순히 잘 정의된 일련의 명령어, 즉 알고리즘을 수행하는 것에 다름 아니라는 것이다.
인간의 두뇌에서 일어나는 어떤 중요한 심적 활동도 비록 알고리즘이 엄청나게 복잡해지겠지만 궁극적으로는 알고리즘이라는 것이다. 그러한 알고리즘을 찾을 수만 있다면 그것은 튜링검사를 통과할 수 있을 것이다.
강인공지능을 지지하는 학자들은 주장하기를 그러한 알고리즘이 작동할 경우 그것을 그 자체로서 느낄 수 있고 의식을 소유하며 마음이 된다는 것이다.
터미네이터, 데이비드는 감정이 있는가?
영화 A. I.에서 데이비드는 그를 입양(?)한 어머니가 단추를 누르면서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시작된다. 그리고 그의 사랑은 잊혀지지도 퇴색되지도 않는다. 그는 어머니의 사랑을 되찾기 위하여 피노키오를 인간으로 만든 천사의 조각상 앞에서 2000년의 세월을 기다린다. 이때부터 관객은 그의 불멸의 사랑에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그런데 한가지 의문이 생긴다. 데이비드는 정말로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일까?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테이비드를 보면서 눈물을 흘리던 사람이 터미테이터를 보고 감동하지 않는건 정당하지 않다. 데이비드의 역할이 어머니를 사랑하는 것이듯이 터미네이터의 역할은 '존' 을 보호하는 것인 것이다. 데이비드가 어머니를 사랑하도록 각인되었듯이 터미네이터는 '존' 을 보호하도록 프로그램된 것이다. 엄청난 화염속에서 뼈대만 남있어도 '존'을 지키려는 그의 처절함을 보라!!! 왜 감동을 받지 않는가? 왜 그는 정당하게 대우해주지 않는가?
행동주의 심리학의 입장에서 데이비드는 사랑이라는 감정을 가지고 있는 것이며 터미네이터는 '존'을 지키려는 정의감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것 말고는 사랑과 정의를 설명할 길이 없다는 것이다.
자연발생한 인공지능
영화 스페이스 오디세이에 등장하는 'HAL 9000' 은 목성탐사을 위하여 만들어진 '디스커 버리' 호의 운전과 통제를 위하여 만들어진 컴퓨터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프로그램을 만들고 운행중에 HAL 에게 '자아의식' 자연발생적으로 출현한다. 그리고 이 자아의식은 죽음에 대한 공포을 느끼며, 자신이 살기 위해여 인간을 살해하는 범행도 저지를 줄도 알며, 자신이 죽음이 임박했음을 알자 선장 '보먼' 에게 선처를 호소하기도 한다. 인간의 자아의식과 완벽하게 똑같다. (60년대 영화치고는 정말 기발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또 하나의 인공지능은 일본 에니메이션 '공각기동대'의 '인형사' 이다.
인형사 또한 정보의 바다에서 의식이 자발적으로 출현한 경우이다.
정보의 축적으로 자연발생적으로 의식이 출현한다는 입장은 HAL 과 인형사의 출생배경은 똑같다고 보여진다.
그렇다면 무슨 근거로 의식이 자연발생적으로 출현했다고 주장하는가?
생명에 관한 나의 이론은 철저한 전체론(Holism)에 입각하고 있다.
그러나 이 이론은 신비적인 데서 나온 것이 아니고 수학적 필연성에서 도출된 것이다.
생명은 조금씩 조금씩 만들어진 것이 아니고 전체로서 출현했으며 또 그렇게 유지되고 있다.
이 말은 생기론자도 아니고 더더구나 창조론자도 아닌 카우프만(Kauffman)이 한 말이다.
나는 여기에서 생명이라는 말을 의식이라는 말로 대체하고자 한다.
카우프만의 실험이 생명 더 나아가 의식의 출현을 알리는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매우 비약된 생각이다.
다만 단서는 찾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소개하겠다.
카우프만의 전구실험
카우프만은 세포분화를 모형화한 실험을 하였다. 그는 100개의 전구를 무작위적으로 연결하고 하나의 전구가 켜지거나 꺼지는 상태를 결정하는 규칙을 부여했다. 말하자면 하나의 전구의 켜짐과 꺼짐의 상태는 그 전구와 연결된 전구의 다음 순차의 켜지거나 꺼짐의 상태를 결정하는 것이다. 각 전구는 켜지거나 꺼지거나 둘 중의 한 상태를 취할 수 있기 때문체적인 연결망은 또는 개의 가능한 상태를 가진다.
그러므로 특정한 한 상태가 다시 재현될 확률은 가운데 하나이기 때문에 거의 불가능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실험을 해본 결과 예상을 뒤엎고 10번째에 극적인 변화가 일어났다. 11, 12, 13번째 이후 14번째에서 다시 10번째의 상태로 복귀한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어서 11, 12, 13번쩨의 상태를 재현하면서 다시 10번째 상태로 복귀하는 순환을 보여주었다. 연결방식을 달리하면 재현되는 패턴의 형태는 물론 달라진다.
그래도 여전히 주기순환을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일치했다.
이것은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요소가 아니고 그 요소들을 연결하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이 연결에 의해서 요소와 요소, 요소와 전체간의 복잡한 상호되먹임 현상이 출현하고 이 과정에서 자기조직화 현상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카우프만을 이것을 자생적 질서라고 불렀다. 'HAL' 과 '인형사' 에게서 자연발생한 의식의 원천은 바로 이러한 자생적 질서라는 것이다.
컴퓨터가 '지능' 을 더 나아가 '감정' 을 가질 수 있다는 강인공지능주의자들의 터무늬없어 보이는 주장에 대하여 여러 가지 반론이 있을 수 있다. 여기저기의 글을 정리하다보니 대략 일곱가지의 반론으로 압축하였다. 물론 이 일곱가지의 반론이 대표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그냥 나름대로 쉽게 이해한 부분만을 정리한 것 뿐이다. 이 반론들이 명확하게 구분되는 것은 아니며 서로 논리적으로 연관이 되어 있는 부분도 있고 유사한 논증도 있다. 심지어는 서로 모순이 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 이제 좀 인간적인 음악을 들으면서 인간적인 이야기.
강인공지능주의자들에 대한 반론을 보도록 하자 !!!
튜링은 기계도 생각을 할 수 있으며 감정을 가질 수 있다는 그의 입장표명이 평지풍파를 일으킬 것을 직시하면서 예상되는 아홉가지 반론들을 아주 간명하고도 조목조목 반발하고 있다.
①신학적인 반론 :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 영혼의 기능이다.
②돌대가리 반론 : 생각할 수 있는 기계들의 결과는 끔찍할 것이다. 우리는 그런일은 일어나지 않히기를 또 일어날 수도
없다고 믿는다.
③수학적인 반론 : 기본적으로 루카스의 논거이다. ( 아래 설명 )
④의식에 기초하는 논거 : 진공관 퓨즈는 슬퍼하거나 감언이설에 넘어가거나 분노하거나 원하는 것을 얻지 못할 경우에
낙심하지 않는다.
⑤다양한 종류의 무능력에 기인하는 논거 : 친절, 원기왕성, 아름다움, 상냥함 유머 등은 낱말을 적절히 사용하는 경험으로부터 배우는 것이다. 그것은 무엇인가 새로운 것을 행할 때의 인간의 행동만큼이나 다양함을 가지는 사고 자체의 주체
이다.
⑥러블레이스 부인의 반론 : 해석기관은 무엇이라도 다 창출하라는 요구를 주장하지 않는다.
그것은 우리가 실행을 위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것만을 할 수 있다.
⑦신경체계의 연속성을 토대로 한 논거 : 신경체계는 정밀한 상태를 완벽하게 유지하는 기계는 아니다.
신경상의 자극이 뉴런에 미치는 정보상의 작은 오류만 있어도 그 결과는 상당한 차이를 유발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신경세계의 행동을 정밀한 세계의 상태에 비추어 모방할 수 있디고 기대할 수 없다.
⑧행동의 무정형성을 근거로 한 논거 : 모든 사람이 제각기 자신의 생명을 조절하는 정확한 행동규칙의 집합을 가진다면 기계보다 나을 게 없다. 그러나 그런 규칙들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인간을 기계일 수가 없다.
⑨초감각적 지가을 근거로한 논거 : 초능력!! 기계가 그것을 가질 수 있는가?
첫 번째 반론 : 통찰
BC 300년경 고대 그리스이 물리학자 아르키메테스(Archimedes)에게는 한 가지 풀어야 할 문제가 있었다. 당시 왕이었던 Hiero 가 새로 만든 왕관이 순금으로 만들어 졌는지 아니면 다른 금속이 섞여 있는지를 물어왔던 것이다. 덩어리로 있을 때에는 단순한 문제이지만 모양이 복잡한 왕관에서는 이 문제가 그리 간단치 않았다. 그는 목욕탕에서 물이 가득 찬 욕조에 앉자 넘쳐나는 물을 보고 이 문제가 해결할 방안을 찾아냈다. 그는 '유레카!'를 외치면서 알몸으로 거리를 내달였다. 그가 찾아낸 방법은 물을 가득 채운 그릇에 왕관을 넣고 그 왕관에 의해 넘쳐나는 물의 양을 측정한 후 왕관과 같은 무게의 순금 덩어리를 물에 담그고 나서 넘쳐나는 물의 양과 비교해 보는 것이었다. 그는 이를 통하여 그 왕관이 순금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그는 이러한 발견을 하기 위하여 통찰(Insight)에 의존했던 것이다. 통찰은 "아하!" 경험이라는 말로도 특징지워진다. 즉 문제에 대한 해결핵이 갑작스럽게 머리 속에 떠오른다는 것이다.
선사(禪師) 구데이는 참선에 대한 질문을 받으면 손가락을 높이 쳐들었다. 한 동자가(童子)가 그것을 흉내내기 시작했다. 구데이가 그 소식을 듣자, 그를 오라고 해서 그것이 참말인지를 물었다. 그는 그렇다고 했다. 구데이는 그가 이해하는지를 물었다. 그 동자는 자신의 대답의 징표로 두 번째 손가락을 쳐들었다. 구데이는 그 손가락을 즉각 잘라 버렸다. 아파서 펄펄 뛰는 그 동자는 방 밖으로 도망치려고 했다. 그가 문지방에 이르렀을 때 구데이는 고함을 쳤다. "네 이 놈 ! " 동자가 뒤를 돌아보자 구데이는 자기의 두 번째 손가락을 들어서 보여주었다. 그 순간 동자는 갑자기 깨우쳤다.
통찰 !!!!그것은 인간의 영역이다.
두 번째 반론 : 드라이푸스의 논지
버클리 대학에서 인지철학자인 드라이푸스는 인간의 지식을 둘로 나누고 있다. 그 하나는 논리적 수수께끼를 풀거나 배달트럭의 최단노선을 정하는 것과 같이 규칙에 따르는 사실적 지식(know-that)이며, 다른 하나는 자전거를 타거나 학생을 가르치는 것과 같이 경험에 근거하는 방법적 지식(know-how)이다. 사실적 지식의 영역은 일반적으로 관련된 요소들이 유한하고, 고정적이며 확실한 이른바 '구조화된'(Structured) 영역인 반면, 방법적 지식의 영역은 일반적으로 관련된 요소들이 무한하고 비고정적이며 불확실한 이른바 '비구조화된'(Unstructured) 영역이다. 그는 인간이 방법적 지식을 획득하는 과정을 구분함으로써 컴퓨터와 인간의 차이점을 지적하고 있다.
① 초보자(Novice)들은 새로운 기능과 관련된 여러 가지 사실들과 특징들을 배우고, 이러한 것들에 근거하여 어떤 행동을 결정할 원칙을 배운다. 예를 들면 '자동차 엔진의 RPM 이 1,500을 넘으면 기어를 변속해야 된다.', '차 포 마 상 졸 의 위계에 따라 상대방의 군사가 내 것보다 높은 것일 때는 공격하라'와 같은 지식이다.
② 초보자들이 실제적인 경험을 쌓아 면초보자(Advanced Novice) 단계가 되면 이와 같은 '원칙' 들이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러한 원칙들은 더 세련될 필요가 있게 되는데, 예컨대 '엔진이 필요이상으로 회전하는 소리를 낼 때 기어를 바꾸어라' '졸도 때로는 다른 군사보다 더 중요할 수도 있다'와 같은 것이 이 단계에 필요한 지식이다.
③ 실제적인 경험들이 더 쌓이게 되면 고려해야 할 상황적 사태들이 너무 많아지기 때문에 그것들을 다 고려할 수 없게 된다. 이러할 때 상황적 사태들에 우선 순위를 부여할 수 있는 자신의 고유한 안목이 필요하게 된다. 이로서 면초보자는 능력자(Competence)가 될 수 있다. 능력자는 자신의 안목에 의존하기 때문에 규칙지향적이라기 보다는 목표지향적이다. '최단시간에 목적지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사소한 위험은 무시해야 한다' '비록 공격에 동원되지 않는 군사들을 잃을 지라도 적장을 제압할 수 있다면 공격해야 한다' 와 같은 것이 자신의 새로운 원칙이 된다.
④ 숙달자(Proficiency)에게는 보다 많은 경험으로부터 목표가 의식적인 결정 없이도 자동적으로 떠오른다. 말하자면 분석적으로 목표를 선택된다기보다는 직관적으로 목표가 제시된다. 하지만 목표달성의 방식에 관한 한, 그는 분석적으로 선택한다. '미끄러운 커브 길에서 속도를 늦추어야 겠다는 것을 직감하고, 얼마만큼 늦추는 것이 적당할 것인지 고려한다' '판세를 직감하고 공격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어떤 군사를 움직일지를 계산한다'는 것이 숙달자의 특징이다.
⑤ 전문가(Expertise)란 상황을 더욱 세심하게 구분할 수 있을 정도의 경험을 쌓음으로써 목표는 물론이고 그 목표를 달성하는 방식까지도 선택할 필요가 없다. 전문가란 해야 할 일을 분석적인 선택없이 직관적으로 처리하는 사람으로서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을 거의 의식하지 못하며 그저 할뿐이다. 전문가는 '커브 길을 지나는지 속도를 늦추는지 생각하지 않았지만, 속도를 늦추어서 커브 길을 지난다.' '지도대국과 같이 여러 사람을 한꺼번에 상대할 때 잘 드러나듯이 공격의 방법을 고르지 않고 거저 공격한다.' 적어도 우리는 길을 걸을 때 길에서 마주치는 사람을 피해야 겠다거나 어떻게 피해야겠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우리는 걷기에서는 전문가들이다.
셋째 단계와 넷째 단계의 결정적인 차이점이 무엇인가? 그것은 분석적으로(Analytically) 목표를 설정하는가 아니면 직관적으로(Intuitively) 목표를 설정하는가의 차이이다. 드라이푸스의 견해에 '따르면 인간과 컴퓨터가 같은 일을 배우기 시작한다면 컴퓨터의 구조적인 특징상 셋째 단계까지는 컴퓨터가 혹 앞설 수도 있겠지만, 인간이 넷째 단계에 들어서면 컴퓨터를 앞지르게 했던 구조적인 특징, 즉 계산적 합리성이 컴퓨터가 인간을 앞지를 수 없도록 만든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컴퓨터와 인간의 이러한 차이는 '인지불능증'(Agnosia)라는 정신질환에 의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두뇌손상을 입은 어떤 사람들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컴퓨터와 똑같이, 일반인들에게는 익숙한 사물들을 완전히 논리적인 방식으로 대한다. 이들은 분석과 합리적 설명에 전적으로 의존하며, 그들에게는 모든 것들이 특징들과 관계들로 분해되어서만 이해된다. 예를 들어 인지불능증 환자에게 삼각형의 물건을 주면, 우선 그것이 세 변에 의해 둘러싸인 세 각을 가진 것이라고 이야기하고, 오직 그렇게 하고 난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삼각형이라고 결론짓는다.
따라서 지능과 전문적 기술에는 단순한 계산적 합리성 외에 그 이상의 어떤 것이 존재한다. 전문적 기술이 반드시 추론을 통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규칙을 적용하지 않고서도 무엇을 해야할 지를 안다. 바로 이것이 규칙에 기초한 프로그램이 순수한 인간 지능과 비슷한 것을 달성할 수 있는 가능성에 반대하는 드라이퍼스의 논변의 핵심이다.
세 번째 반론 : 설의 중국어방 사고실험
버클리 대학의 존 설(John Searle)은 인공지능에 대한 철학적 비판으로서 '중국어 방' 이라는 사고실험을 제시하였다. 방안에 한국어밖에 모르는 철수와 중국어의 기호들이 담겨져 있는 바구니들 그리고 그 중국어 기호들을 다루기 위한 한국말로된 규정집이 있다고 가정하자. 규정집의 규칙들은 기호들을 세분화해 다루도록 되어 있는데 그것은 의미론(Semantics)에 의한 것이 아니라 구문론(Syntax)에 의해 형식적으로 다루도록 된 것이다. 말하자면 '1번 바구니의 쓀라쓀라 기호를 꺼내서 2번 바구니의 쏠라쏠라 기호 다음에 놓으라는 식' 의 규칙일 것이다.
이제 어떤 중국어 기호들이 구멍을 통하여 방안으로 들어온다고 하자. 그러면 철수는 방안에 들어온 중국어 기호를 처리 하는 규정집에 규칙에 따라 방 밖으로 적절한 중국어 기호를 내보낸다. 방안으로 들어온 중국어 기호는 '질문' 이라고 하고 방 밖으로 내보낸 기호를 '그 질문에 대항 응답' 이라고 가정하자. 방 밖에 있는 사람은 방 안에서 적절하게 나오는 중국어 응답을 보고 철수가 중국어를 이해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하지만 철 수는 중국어를 전혀 알지 못하고 있다. 다만 그는 규정집에 따라서 중국어 기호를 처리하고 있는 것일 뿐이다.
설이 중국어 방 사고실험을 통해서 보이고자 하는 것은 이렇게 요약된다. "철수는 형식적 컴퓨터 프로그램을 작동함으로써 밖에 있는 사람이 보기에 중국어를 정확하게 이해한 것처럼 기호처리를 잘하지만 사실은 중국어를 한 자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그러므로 중국어 이해에 적절한 컴퓨터 프로그램의 수행이 철수에게 중국어를 이해시키는데 충분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다른 어떤 디지털 컴퓨터에게 중국어를 이해하도록 하는 데에도 충분하지 않다." 는 것이다.
중국어 방 사고실험과 유사한 비유를 하나 더 들어보겠다. 어느 도넛가게에는 20여종의 도넛을 만들어 팔고 있다. 이 가게의 도넛은 맛있기로 소문이 나서 손님들은 큰 상자째로 사갈뿐 아니라 손님 취향에 맞추어 특정 도넛도넛을 순서대로 상자안에 넣어준다. 처음에는 카운터에서 손님이 원하는 도넛의 종류의 갯수를 주방 아줌아메게 큰 소리로 불러주었는데 그러다 보니 실수가 많았다. 그래서 쪽지에다 주문을 받아적어 보았지만 아줌마가 글을 읽지 못해 그 방법도 쓸모없었다. 그런데 누군가가 네가지 색깔의 빨래집게를 이용한 아주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해냈다. 3가지 색깔의 빨래집게의 조합이 특정 도넛을 지칭하는 것으로 약속한 것이다. 그래서 빨강+파랑+노랑 빨래집게는 '젤리 도넛' 을, 노랑+빨강+초록빨래집게는 '초콜릿 도넛' 을 하는 식으로 말이다. 그래서 카운터에서는 손님의 주문을 받고 주문목록을 빨래집게 기호로 바꾸어서 색깔순서대로 줄에다 걸어두면 아줌마는 이것을 보고 해당되는 도넛을 포장해서 내보내면 되는 것이다.
여기서 주방 아줌마는 젤리, 초코렛 이라는 말을 이해했다고 볼 수 있는가? 아니다. 말에 대한 이해없이도 빨래집게의 조합과 그것에 대응하는 도넛과의 대응관계의 규칙표만 갖고 있으면 그 일을 할 수 있다. 따라서 아줌마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라는 것이 설의 주장인 것이다.
네섯번째 반론 : 괴델-루카스 논증
<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 >
누군가 자신을 독살하려고 한다는 강박관념에 음식을 거부하다 결국 영양실조조 죽음을 맞이한 천재 수학자 괴델!! 죽음을 피하기 위하여 죽음을 맞이함으로써 에피메니테스 역설을 몸소 실천한 괴델은 산술의 틀 내에서 그러한 역설적인 자기지시 진술들을 표현하는 방법을 찾고자 하였다. 그는 에피메니테스의 역설을 다음과 같은 괴델 문장으로 옯겼다.
'이 진술은 증명가능하지 않다.'
만일 그 진술이 증명가능하다면 그 진술은 참이다. 따라서 그것이 말하는 것은 참이어야 하고 진술은 증명가능하지 않다. 그러므로 진술과 그것의 부정은 둘 다 증명가능한 것이 되며 이는 그 체계가 유모순임을 뜻한다. 반면 만일 그 진술이 증명가능하지 않다면 그것이 주장하는 것은 참이다. 이 경우 그 진술은 참이지만 증명불가능하며, 이는 그 형식체계가 불완전하다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어떠한 형식체계일지라도 그 체계 내에서 증명될 수 없는 명제가 존재한다. 즉 어떤 명제 S가 있을 때 S도 또 S의 부정인 not S도 그 형식체계 내에서는 증명될 수 없는 명제가 있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 진술은 증명가능하지 않다.' 는 명제는 참인지 거짓인지를 증명할 수 없다. 만일 이 명제 전체가 참임을 증명할 수 없다면 내용상 이 명제는 참이 된다. 즉 증명될 수 없다는 것이 이 명제가 참이기 위한 필요충분조건이 된다. 이는 결정 불가능성 또는 불완전성의 문제가 된다. 즉 진리는 증명보다 크다는 것이다.
불완전성의 정리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 또는 모든 수학적 직관들을 모두 기계화, 형식화할 수 없다. 인간의 직관을 기화한다는 것은 한 형식체계를 유한히 기술한다는 것인데, 유한한 기술에서 우리는 이 형식체계에 모순되는 것을 발견하며 그것은 이 체계가 증명할 수 없다는 것을 안다. 괴델의 결과가 지니는 이러한 의미는 생각하는 컴퓨터를 만들어 낼 수 있다는 강인공지능주의자들의 주장을 일축했다. 만일 인간의 정신이 알 수는 있지만 계산기계에 의해 접근할 수 없는 진리들이 존재한다면 우리는 어떵게 인간의 인지적 절차들을 복제할 수 있는 '인공지능' 을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 루카스 논증 >
옥스퍼드 대학의 철학자 루카스는 1961년 '정신, 기계 그리고 괴델' 이라는 제목의 논문에서 괴델의 정리는 기계론적인 시각이 틀리다는 것, 즉 정신을 기계로서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의식을 가지는 존재가 무엇인가를 안다고 말한다면 우리는 그 존재가 안다는 것을 말할 뿐만 아니라, 그 존재는 자기가 안다는 것을 안다는 것, 그 존재가 그것을 안다는 것을 안다고 것을 안다는 것, 그 존재가....... 인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다.
괴델은 불완전성 정리를 통하여 인간은 알 수 있지만 알고리듬으로는 알 수 없는 어떤 진리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그 이유는 인간은 '계의 바깥에서 보기' 가 가능하지만 알고리듬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라고 루카스는 설명하고 있다.
화가는 세계를 모조리 화폭에 담으려고 시도한다. 그러나 그리고 있는 자기도 세계의 일부임에도 불구하고 그 그림에는 자기가 빠져 있다. 그는 자기를 그려넣는다. 그러나 세계-자기를 그리고 있는 자기 역시 세계의 일부가 아닌가? 그래서 다시 세계-자기를 그리고 있는 자기를 그려 넣는다. 이러한 시도는 어디선가 멈출 수 밖에 없고 결국 최종적 그림에는 '그리고 있는 자기' 가 빠져나갈 수 밖에 없다. 즉 화가는 세계를 완전하게 화폭속에 담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 (Cogito ergo sum) 라고 했다. 여기에서 '나는 생각한다' 는 것은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내가 안다' 는 의미이다. 그리고 이것의 의미는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의미는 '내가 생각한다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을 내가 아는 것이다.'
결국 루카스의 화가그림처럼 '나는 생각한다' 함은 자기를 확폭속에 담는 것이 불가능한 것 처럼 무한퇴행으로 빠져들 수밖에 없다. 하지만 이러한 문제를 데카르트는 '코키토' 를 제시함으로서 해결하려 하였다. 코키토는 바깥으로 나가는 통로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대상화 되지않는 코키토를 통해 세계를 비교해 봄으로써 자신의 존재와 함께 세계의 현존함을 확신할 수 있는 것이며,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에서 탈출한다.
< 바깥에서 보기 - 매트릭스 >
마그리뜨의 '인간의 조건' 이란 작품을 보면 창문 밖의 배경과 캔버스에 그려진 배경의 구분이 되질 않는다. 캔버스 안의 그림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나무는 밖에 실재로 존재하는 나무가 되고, 밖의 풍경에 있는 나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 나무는 어느새 캔버스 속에 그려진 가상의 나무가 되어 버린다.
과연 그 나무는 실재로 존재하는 것인가, 아니면 의식속에 존재하는 나무인가? 나의 의식속에 비친 상과 바깥에 존재하는 상을 비교해 보기 위해서 우리는 '의식' 밖으로 걸어나와서 우리 의식의 '안'과 '밖'을 비교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우리가 의식 바깥으로 나갈 수 있다면, 우리 의식'안'의 상이'밖'의 모습과 일치하는지, 아니면 그걸 왜곡했는지, 또는 아예 허깨비에 불과한지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어떻게 우리의 '의식'을 벗어난단 말인가?
하지만 영화 <매트릭스>에 나오는 메시아 '네오' 는 데카르트가 코키토를 통해 바깥으로 나가듯 그 자신이 매트릭스 바깥으로 나가 봄으로써 그가 있던 세계가 가상이었음을 인식한다. 거기에는 어떠한 의심도 없다. 말하자면 모피어스 일당이 네오에게 먹으라고 준 빨간약이 환각을 일으키는 약이고 그의 동료들은 사이비 광신도들이며, 그들을 쫓는 검은 양복의 사나이들은 사회의 치안유지를 위하여 노력하는 선량한 형사들일 수 있다는 사실에 대하여는 조금도 가능성을 제시하지 않는다.
< 바깥에서 보기, 하지만 진짜인지 알 수 없는 ... - 토탈리콜 >
러셀은 극단적 회의주의의 관점에서 '이 세계는 신에 의하여 5분전에 창조되었고, 나의 과거에 대한 기억은 모두 신에 의하여 조작된 것이다.' 라는 5분가설을 제시했다. 이 가설이 정말인지 아니면 말도 안되는 이야기인지 증명할 수 있는가? 만약 감각이 완벽하게 속아 넘어간다면 진실은 어떻게 밝힐 수 있는가?
이렇듯 네오가 매트릭스를 보았다고 생각하는 건 환상일 수 있다는 관점의 영화가 근육질의 사나이 아놀드 슈와츠제네거 주연의 <토탈리콜>이다. 토탈리콜에서는 장자의 <호접몽>처럼 '하우저' 와 ' 퀘이드' 중 어느것이 진짜 모습인지 끝까지 알지 못한다.
가상여행중에 발생한 기계의 고장이 진짜라면 '하우저' 는 실존하는 인물이고 기계가 고장난 것 자체가 또 하나의 가상현실이라면 '하우저' 는 실존하는 인물이 아닌 것이다. 그런데 그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퀘이드가 하우저이기 위해서는 스스로 자신이 리콜사의 가상현실에서 벗어났음을 보아야 하는데 그것이 가능하지가 않다. 가상여행을 시작할 때 생긴 기계의 고장이 현실인지 아니면 또 하나의 가상현실인지 알 수 가 없다. 내가 나이기 위해서는 나 밖으로 벗어나서 나를 바라보아야 하는데 자신을 화폭에 그리는 순간 자기자신은 그림밖에 나가 있게 되는 루카스의 그림처럼 '무한 퇴행' 이 계속되는 것이다.
퀘이드는 고민끝에 자신에게 주어지는 감각을 현실로서 인식한다. 말하자면 그는 '퀘이드' 이기를 포기하고 화성의 특수요원인 '하우저' 의 역할을 수행한다. 하지만 그는 영화의 마지막 부분에 불안스럽게 한마디 던진다. '이것이 전부 꿈이면 어떡하지?' 그렇다. '네오. 당신은 어떻게 당신 자신이 매트릭스 밖으로 나갔다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인가?' 초월에 대한 자신은 어디에 기초하고 자신할 수 있는 것인가? 토탈리콜은 매트릭스를 향해 정면으로 그 질문을 던지고 있다. 즉, 매트릭스의 밖으로 나간 그 상황 역시 또 하나의 매트릭스 일 수 있다는 것이다. 토탈리콜의 물음은 그것을 암시하고 있다. 때문에 우리는 데카르트의 명제에 대해서도 물어봐야 한다. 의식은 현실을, 앎을 보장해 줄 수 있는가? 나는 정말로 존재하는가?
장자가 어느 날 꿈을 꾸었다. 나비가 되어 꽃들 사이를 즐겁게 날아다녔다. 그러다가 문득 깨어 보니, 자기는 분명 장자가 되어 있었다. 나는 원래 장자인데 나비꿈을 꾼 것인가, 원래 나비인데 장자꿈을 꾸고 있는 것인가? - 장자의 호접몽 -
< 미친놈의 바깥에서 보기 - 뷰티풀 마인드 >
환각에 사로잡혀 있는 정신병자가 자신이 환각속에 사로잡혀 있음을 스스로 알 수 있을까? 자신이 환각속에 사로잡혀 있다는 것을 알려면 환각밖으로 나와야 하는데 그것이 논리적으로 가능한가? 이것은 하나의 형식체계의 일관성을 그 체계내에서 중명될 수 없다는 괴델의 불완전성 정리와 비슷한 구조하고 생각한다.
Beatiful Mind
94년 노벨 경제학상을 받는 천재수학자 존 내시가 정신분열증을 극복하는 과정을 실화를 바탕으로 그린 휴먼 드라마 'Beautiful Mind'
주인공 존 내쉬는 30여년간 정신분열증으로 환각과 망상에 사로잡히고 자신이 이룩해온 모든 것을 파괴시켜 버린다. 그러던 어느날 그는 그가 오래전부터 보아왔던 한 소년이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소년으로 남아있다는 알아차린다. 그리고 그는 그 소년이 환각이고 자신은 망각속에 살고 있음을 스스로 깨닫는다.
그런데 이런 불완전성 정리를 반증하는 사례가 하나 있다. 영화 '뷰티프 마인드' 를 보면 주인공은 30년간의 환각속에서 스스로 걸어나와 자신을 이성적으로 바라본다. 자신이 30년간 보아왔단 소년이 자라지 않는 것을 깨닫고 그 소년이 환상임을 자각한다. 늪에 빠진 소년이 자신의 신발끈을 끌어올려 늪에서 빠져나온다는 '구두끈 이론' 이 생각난다.
다섯 번째 반론 - 비트겐슈타인 논증
비트겐슈타인(1889~1951)은 cosmoscan 의 요청만 아니었다면 이런 자리에서 그와 대면하고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가 동성애자라는 사실은 그런대로 참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인공지능에 대한 말도 안되는 주장을 듣는 것은 참기가
어려웠다.
cosmoscan 의 체면을 지켜주기 위해서 참고 있을 뿐이지 사실 튜링(1912~1954)은 한 주먹거리도 안되는 애송이에 불과
했던 것이다. 이런 비트겐슈타인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튜링은 침까지 튀겨가면서 연신 이야기를 계속해 나갔다.
튜링 : ............. 반복되는 이야기지만 저는 두뇌의 작용과 계산 기계의 작용간에 차이점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고를 전달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언어를 포함헤서 말입니다. '물주전자' 같은 개념은 두뇌에 신경이 켜짐과 꺼짐을 반복하는 특정 집합으로 코드화되어 있습니다. 이 유형은 다른 신경 유형과 상호작용을 하는데 예를 들면 '물잔' 에 관련된 유형과 '따르다' 같이 좀 더 복잡한 생각을 발생시키는 거지요. 저는 기계도 같은 방식으로 생각할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cosmoscan : 튜링선생이 방금 설명하신 내용은 몇 년전 비트겐슈타인 선생의 언어에 관한 통찰과 가까운 것 같습니다. 비트겐슈타인 선생은 '그림이론'을 통하여 언어와 현실이 공통의 논리적 형태를 갖고 있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이것은 언어는 세계를 반영하며 언어적 진술은 사실을 그림처럼 서술한다는 점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맞습니까?
비트겐슈타인 : 틀림없소. 그리고 사실과 그것을 언어로 표현한 것의 관계는 결코 언어로 표현될 수 없는 것이요. 언어의 어휘로는 결코 이들의 상응성을 표현하지 못하오. 그러니 언어의 문제를 논리로 밝혀내겠다는 생각은 그만 접어둡시다.
cosmoscan : 하지만 튜링선생은 사고는 현실세계 대상에 대한 다양한 기호 표현들이 두뇌 속에서 결합하는 것에 가깝다고 말씀 하셨는데 이것은 선생의 그림 이론과 상당히 잘 맞지 않습니까? 튜링 선생의 기호코드화와 선생의 그림이론을 연관시키기만 하면 되는 거니까요.
비트겐슈타인 : 선생은 나의 그림이론을 완전히 오해했소, 그림은 생각속에 있는 대상을 표현해 낸 것이 아니오. 그것은 기차, 탁자, 아니면 모자 따위를 그림으로 나타낸 이미지를 말하고 있는 것이 아니오. 나는 대상과 그 대상에 언어로 붙어 있는 이름 간의 관계를 표현하는 것은 절대 불가능함을 설명하고 있는 것이요. 이 관계는 오직 자기 존재를 보여줄 수밖에 없으며, 결코 언어로 진술되지 못하는 것이요. 그러나 이는 언어에 대한 틀린 그림이었고 그래서 나는 이것을 완전히 폐기했소.
cosmoscan : 선생의 그림이론을 혼돈한 점 사과드립니다. 하지만 선생께서는 이것이 언어와 생각의 관계의 잘못된 이론이라고 생각하고 있으신 것 같은데. 사고에 있어서 언어의 역할에 관하여 현재는 어떻게 보고 계시는지 알고 싶군요.
비트겐슈타인 : 언어는 결코 그림이 아니오, 오히려 도구 , 정밀한 도구요.
튜링 : 무엇에 쓰는 도구입니까?
비트겐슈타인 : 판단을 내리는 데 쓰는 도구요. 개나 사자처럼 언어가 없는 존재는 어떤 것에 대해 옳다거나 틀리다거나 말할 능력이 없소.
cosmoscan : 그렇다면 어떤 종류의 유기체가 사람과 같은 종류의 언어를 가질 수 있습니까? 그건 두뇌 특정 구조의 특성입니까? 아니면 뭔가 다른 문제도 포함이 되는 건가요?
비트겐슈타인 : 언어에서 사람의 두뇌구조가 주된 문제는 아니오. 당신 개의 두뇌와 내 두뇌는 내 것이 약간 더 크다는 것 말고는 구조상 크게 다른 점이 없소. 언어에서 본질적인 것, 그리고 당신의 개가 갖지 못한 것은 언어를 공유하는 다른 사용자들의 존재요.
튜링 : 그러면 선생께서는 근본적으로 언어는 사화적 관습의 문제이기 때문에 개인의 언어란 있을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비트겐슈타인 : 당연한 것 아니요? 언어는 규칙을 필요로 하오. 그리고 개인의 규칙은 규칙이라고 할 수 없소. 전적으로 규칙에 지배되는 행동을 하기 위해서는 규칙을 유지하고 어떤 것이 규칙에 따르는 것인지 어떤 것이 규칙에 따르지 않는 것인지를 그 권위로서 규정하는 한 사회의 성원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cosmoscan : 개인이 개인의 규칙을 따르면서 자신이 그 상황에서 사용하는 규칙에 관하여 우리와 구두계약을 맺는 것이 왜 안 된다는 것이오?
비트겐슈타인 : 그 개인이 자신이 어떤 규칙을 따르고 있는지를 말할 수 없는 단적인 이유는 그 자신이 어떤 규칙을 사용하는지 말하는 행위자제가 규칙에 지배되는 활동이기 때문이오.
튜링 : 그렇다면 어떤 사람이 다른 사람들과 같은 규칙을 따르고 있는지 어떻게 확신할 수 있겠습니까?
비트겐슈타인 : 수많은 사람이 동일한 규칙을 따르는 것은 이들이 하나의 규칙에 대해 서로 똑같은 개인적, 내면적 개념을 지니고 있는 것이기 때문 아니오? 말하자면 이들이 행하고 있는 것이 동일한 규칙을 따르는 것인가 여부를 결정하는 사회의 감독이 있다는 것이오. 한 사람이 규칙을 따를 때에는 적어도 한 명 이상의 사람이 그 규칙을 따라야 해요. 말하자면 규칙에 따르는 것이 무엇인가에 관해서는 개인의 언어나 개인의 해석이 있을 수 없다는 거지요. 허나 그렇게 되면 튜링기계같은 계산 기계는 그것이 규칙을 따르고 있는지 절대로 스스로 알 수 없으며 따라서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는 결코 있을 수 없다는 거예요. 말하자면 언어는 사회적 맥락 안에서만 획득될 수 있는 것이오. 그리고 사회적 맥락안에서 동일한 것을 획득하려면 생물학적 동일성이 있어야 하오.
튜링 : 그렇다면 한 대의 튜링기계에 사람이 지닌 모든 감각기관 말하자면 눈, 귀, 냄새를 위한 코, 감촉을 위한 피부를 부여하고 이 인공지능을 사람의 환경에 들어내어 인간 사회의 언어에 노풀시킨으로서 이 인공지능이 두뇌를 구성하는 전자회로를 재구성하는 과정을 거쳐 언어를 습득할 수 있지 않게습니까?
비트겐슈타인 : 아니 튜링선생 그걸 말이라고 하는거요? 의미를 지닌 언어적 표현을 포함해서 생각의 속성을 지녔다고 할 수 있는 것은 그러한 표현들이 말로 통하는 생활 방식에 결부되어 있은 존재들한데 뿐이오. 고통이라는 개념은 우리삶의 특정 기능으로 특징지어지는 것이오. 우리는 이 상태와 함께 오는 느낌만을 고통이라고 부르오. 선생이 그 기계의 행동에다 고통이라는 고리표를 달아줄 수는 있겠지만 그건 우리 사람이 고통이라고 부르는 것과는 아무런 관련도 없으며 그건 그 기계에 쾌락이나 익살, 기쁨 혹은 슬픔이라는 꼬리표를 붙이더라고 마찬가지요. 사람의 여타 감정을 기계가 이해하지 못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로 선생이 고통이라고 붙여놓은 것의 의미를 기계는 이해할 수 없소. 사람처럼 생각하는 기계라는 발상 자체가 완전한 모순이오. 소위 튜링테스트를 통과하였다 하더라도 속지 마시오. 사람의 생각은 전적으로 언어와 결합되어 있는데 언어는 삶, 이것은 사람의 삷이오. 삶의 양식을 고유한 데서 나온 직접적인 결과요. 그리고 제아무리 교묘하게 만들어놓은 기계라도 그것이 기계인 한 사람의 삷의 양식을 공유할 수 없는 것이오.
여섯번째 반론 : 복제 반론
하향진영의 강인공지능주의자의 관점인 심적상태에 대한 알고리즘의 논리적 구조가 중요한 것이지 그 알고리즘의 특정한 실체적 구현을 완전히 무관하다는 주장에 대하여 반론을 제시한다.
사람의 사고는 두뇌를 구성하는 원자와도 관계가 있는까? 한 사람의 사고의 개별성(Identity)은 그 두뇌를 구성하는 전자, 양자와 관계가 있을까?
양자역학에 따르면 전자, 양자들의 수준에서는 개별성은 없어진다. 그것들은 완전히 동일하고 양자들도 서로 동일하며 어떤 원소들이것 같은 종류들은 서로 동일하다. 좀 더 심하게 말하는 양자, 전자 수준에서는 개체성 자체가 의미가 없어진다.
따라서 만일 어떤 사람 두뇌 속의 전자를 벽돌 속의 전자와 교환하더라도 전체 시스템은 동일하다.
그런데 만일 그 여행자의 원본이 이 게임의 법칙이 정한대로 폐기 되지 않는다면 무슨 일이 발생할까?
그의 자아는 동시에 두 곳에 존재하게 되는 것인가? 물리학의 법칙 중에서 과연 원격 이동을 원칙적으로 불가능하게 하는 요소가 있는가? 이 문제는 인과율이 지켜지기 위해선 과거로의 시간여행이 불가능하다는 철학적인 이유와 유사한 구조를 보인다.
일곱 번째 반론 : 펜로즈의 양자역학적 반론
어둠에 익숙해진 인간의 눈이 빛의 신호의 도착을 감지하기 위해서는 약 일곱 개의 광자를 필요로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망막에 단일 광자를 감지할 수 있는 세포가 존재하는 것은 확실하며, 인간 신체에 단일 양자 활동에 의하여 반응되는 뉴런이 존재하는 것이 사실이라면, 이런 종류의 세포들이 인간 두뇌의 주요 부분 어딘가에도 있을 것이다.
스티븐 호킹박사와 더불어 블랙홀 이론을 정립한 수리 물리학자 '로저 펜로즈' 는 이러한 가정을 전제로 하여 원자나 소립자 수준에서 적용되는 양자역학이 두뇌작용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주장한다.
자유의지, 의식 등과 같은 문제의 철학적 논쟁의 배경에는 고전물리학에서의 결정론적인 사고관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비알고리즘적인 것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양자역학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양자역학에 따르면 입자들은 개별적인 설명이 불가능하고 그
대신 이들이 전체적으로 가질 수 있는 여러 가지 배열의 복잡한 중첩으로서 고려되어야 한다.
의식은 뉴런 속의 양자역학적 상태에 의해 발생한다. 의식이 없는 지능은 진정한 인간의 지능과 동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결국 프로그램에 의해 작동하는 기계의 지능과 양자역학적 상태에 의해 일어난 의식 있는 지능은 동일한 종류의 것이
될 수 없을 것이다.
로저 펜로즈는 두뇌의 가장 기본적 수준에서의 양자역학 현상의 비결정성에 놓인 창조성과 복잡성 때문에 인공지능보다 인간의 마음이 우월하다고 주장했다. 인공지능은 고전역학의 테두리에서 국한되었기 때문에 괴델 정리 같은 세련된 수학적 참의 증명들의 발견에 의해 막혀버린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양자 역학적 현상에 그것의 인과적 바탕을 가지지만 컴퓨터의 마음은 물리주의가 분자수준에서부터 소립자 양자 수준으로 환원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으로 물리적 물질적 생리학적 입장에 바탕을 갖는다는 점에서 인간의 마음과는 차이가 있다는 것이 펜로즈의 인간의 마음과 기계의 마음의 차이에 대한 주된 견해이다.
마음과 물질세계가 맺는 관계를 알고리즘으로 이해할 수 없다는 것 마음은 물질세계와 연결되는 부분을 이해하려면 양자역학적 관점을 택해야 할 것이라는 것이며 그것은 심신문제를 해결하는 또 하나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것이다. 수리논리학에서의 접근이 가져다 준 것이 인간의 마음과 기계의 마음이 동일하지 않다는 것에 불과했다면 양자역학에서의 접근은 인간의 마음과 기계의 마음이 동일하지 않음을 보여줄 뿐 아니라 인간의 마음이 몸과 어떠한 연결고리를 갖는가를 보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올 여름 아이작 아시모프의 SF 추리소설 '로봇'을 읽었다.
소문대로 너무나 재미있었다. 그래서 인공지능에 대한 이야기를 꾸며봐야겠다고 생각했다. 아주 쉽게 생각했다.
그런데 그 곳에는 생각지도 못한 난해한 문제들이 얽혀 있었다. 철학, 심리학, 인지과학, 신경과학, 수학, 언어학 등 도대체 걸려있지 않는 분야가 없었다. 이 광범위한 주제들을 밀도있게 정리하는 것이 나에게는 너무나 벅찬일이었다.
그래서 이렇게 서둘러 마감을 한다. 강인공지능주의자의 주장이나, 그 반대의 주장이나 모두 적절하게 설명하지 못했다. 기회가 되면 다시 손을 보겠다.
출 전
괴델, 에셔, 바흐(더클러스 호프스태더)
괴델 (존 캐스티/베르너 드파울리)
황제의 새마음 (로저 팬로즈)
인간 행동과 심리학 (오세진외 11인 공저)
인공지능 이야기 (존 카스티)
뇌 100가지 새로운 지식 (모리 아키디네)
작은 가이아 (조용현)
신과학 산책 (권재희 엮음)
인지과학 서설 (이정모 )
마음은 기계인가? 튜링기계와 괴델정리 (이정모)
강인공지능에 대한 논쟁에서 펜로즈의 주장이 갖는 의의 (박정혜)
컴퓨터시대의 인간의 위치-드라이푸스와 아이디를 중심으로 (김성동)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