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년은 ‘코로나19’와 ‘미스터트롯’의 해로 기억될 만합니다. 지난겨울과 초봄은 참으로 ‘위태(危殆)’했어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 여파로 자의 반 타의 반 자가 격리를 하며 의욕을 잃고 하루하루를 때우던 시절이었죠. TV에서 이 채널 저 채널 돌리며 엇비슷한 뉴스와 시사토론에 지칠 무렵 아내의 권유로 한 종편 채널에서 방영하는 가요 프로그램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미스터트롯’! 트롯과는 평소 담쌓고 지낸 터라 처음엔 신파조려니 심드렁했다가 흠뻑 빠져들어 나중엔 ‘도시락 싸 들고’ 찾아 듣기에 이르렀답니다.
추억의 서랍 속에 대충 쟁여 두고 ‘내가 알바야?’ 듣거나 말거나 했던 이 장르가 그토록 마음에 와닿을 줄이야! ‘미스터트롯’이 없었다면 그 힘겨운 시절을 어떻게 견뎌냈을까? 종편 방송으로는 이례적으로 시청률 30%를 넘겨 지상파를 압도한 ‘역대급’ 프로그램은 무력감으로 시달리던 그 무렵의 나와 가족에게, 어쩌면 실의에 잠긴 국민 대다수에게, 그러니까 우리 모두에게 거의 유일한 통풍구였습니다. 왜 그 프로그램이 그처럼 선풍적인 인기를 누렸던 것일까요, 도대체? 그 프로그램의 좋은 점이 무엇이었기에 그다지도?
무엇보다 참여 가수들의 노래 실력이 우수해 감탄을 자아냈습니다. 실력이 없으면 될 일도 안 되잖아요. 무대에 오른 가수들의 노래 실력은 판정단석에 앉은 레전드급 가수(남진, 설운도, 진성, 노사연, 주현미, 장윤정)의 ‘리즈 시절’을 웃도는 것이었습니다. 잘 알려진 히트곡을 부르는데도 감성과 호소력이 오리지널 가수 못지않더라니까요. 마스터들도 후배들의 수월성을 흔쾌히 인정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새로운 감성으로 들려주는 트롯의 매력은 중장년층을 넘어서 젊은 세대까지 아우르는 것이었어요.
시청자들의 마음을 훔친 가수들의 면면을 살펴봅니다. 결선(7명)에 오른 가수들은 우열을 가리기 힘들었지만 어쩔 수 없이 그중에서 진, 선, 미를 정할 수밖에요. 임영웅은 타고난 목소리의 질이 발군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임영웅의 우승을 예상했을 것이에요. 낭랑하고 강한 음색이면서도 애수가 섞여 호소력이 짙었습니다. 영탁은 능수능란한 전형적인 트로트 창법이면서도 흥이 돋보였고요. 이찬원은 목소리에 힘이 있으면서도 외모에 걸맞은 순수함으로 어필했습니다.
‘미스터트롯’ 프로그램의 탁월함은 무엇보다 출연자들이 보여준 발군의 노래 실력과 예능감에 힘입은 바 크지만, 오늘의 성과를 일굼에 큰 몫을 했을 개개인의 비하인드 스토리(가족사) 또한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어머니가 집을 나가 할아버지 손에서 자란 정동원을 비롯해 미장원을 운영하는 홀어머니와 사는 임영웅, 막창집 아들 ‘찬또배기’ 이찬원, 아들의 건강을 염려하며 법당을 차린 어머니를 둔 영탁, 트롯 가수로 첫 앨범을 내기 직전 돌아가신 아버지를 그리워 하는 장민호 등등.
혼자 또는 그룹으로 보여준 팀워크도 눈에 삼삼합니다. 이를테면 예비 중학생인 ‘찐막내’ 정동원과 44세 최고령인 ‘신사의 품격’ 장민호의 조합 같은. 둘의 관계는 ‘아버지 같은 삼촌-아들 같은 조카’에 다름 아니었어요. 1:1 준결승 무대에서 장민호는 티 나지 않게 배경화음으로 물러나며 어린 조카 정동원을 메인 보컬로 알뜰살뜰 챙기더군요. 퍼포먼스가 끝난 후 뛰어오른 정동원을 가슴에 안고 무대를 떠나는 둘의 모습은 시청자들의 눈시울을 자극하는 가장 멋진 장면이었습니다.
위에서 언급한 트롯맨 외 성악가 출신의 트바로티 김호중은 전심전력으로 노래를 불러 마음속 깊은 곳을 건드렸지요. 현역 해군(당시)인 김희재의 목소리도 수줍은 듯 흥이 넘쳤고요. 김수찬, 신인선, 류지광, 황윤성, 김경민, 나태주, 강태관, 노지훈, 남승민도 거론하고 싶습니다. 레전드 판정단의 격한 공감과 MC 김성주의 진정성 있는 진행도 근래 보기 드문 조화를 이루었지요. 이들을 포함해 이 칼럼에서 미처 언급하지 못한 참여자 모두가 승자였습니다. 근데 진정한 수혜자는 따로 있었다니까요. 프로그램을 접한 시청자, 그러니까 우리 모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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