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3월 9일 사순절 첫째 주일예배
성경: 빌2:12-18절(신320)
제목: 너희 구원을 이루라 (나경수 목사)
성도 여러분,
오늘이 그리스도의 고난(죽음)을 묵상하는 사순절 첫째 주일입니다.
‘하나님의 복음(good news)’은 어떤 충고나 이론이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건, 즉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적 사건들(특히 그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좋은 소식(뉴스)입니다. 그것들이 우리에게 무슨 좋은 소식(뉴스)인 것을 알기 위해서는 그것들에 대한 사도들의 해석이 필요합니다. 즉 그의 역사적 사건들과 해석이 우리 복음입니다.
그래서 신약에서 그의 죽음(부활)에 대한 여러 이미지를 사용한 해석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우리는 2:6-11절의 그의 낮아지심(죽음)과 높아지심(부활)을 윤리적 모델의 이미지, 즉 우리 안에 두는 복음의 패턴으로 해석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그러므로’ 접속사로 시작한 오늘 본문(12-18)은 그리스도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6-11)에 근거하는데, 오늘 우리는 그것(6-11)을 신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그의 구원 복음에 기초하여 오늘 본문을 통해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1. ‘그러므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권면입니다(12-14).
먼저,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권면입니다(12).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여기서 ‘그러므로(호스테)’는 ‘너희 구원을 이루라’의 근거가 ‘그리스도 예수의 낮아지심과 높아지심(복음)’(6-11)에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복음(6-11)에 근거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무엇일까요?
첫째로 그것은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복종하는 것’입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카도스(~하는 것처럼)’ 접속사가 번역되지 않았습니다. 원문은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항상 복종하였던 것처럼,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이 과거에 항상 복종하였던 것같이 그가 없는 지금 ‘계속 두렵고 떨림으로 하나님께 복종하라’ 입니다. 여기서 ‘두렵고 떨림으로’는 하나님을 가볍게 여기지 않고 무겁게(경외) 여기는 태도입니다. 이것은 우리 죄와 무능력을 깊이 인식하고 죄악을 발견할 때마다 회개하며 다시 복종하고자 하는 태도입니다.
그러면 바울은 행위 구원을 말하는 것일까요?
결코, 아닙니다. 그는 구원을 위하여 복종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러므로’(12)가 가리키는 그리스도 예수의 복음(6-11)을 믿음(은혜)으로 이미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즉 계속 복종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성화 구원입니다.
(우리 구원을 과거(칭의), 현재(성화), 그리고 미래(영화) 시제로 말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13절입니다. “(왜냐하면)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이것이 우리가 복음을 믿어 ‘칭의의 구원 또는 중생’ 받은 결과로써 우리 구원을 계속 이루어야 할 이유이며, 또한 복종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즉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 때문에 우리가 복종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두 손 놓고 있어도 하나님이 다 하여주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를 강제적으로 복종하게 하신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우리 마음에 먼저 소원을 하게 하시고, 기쁨으로 복종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이렇게 하시는 목적은 바로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소원이 되어야 하며, 이것을 우리는 복종하여야 할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율법이 제3의 용도로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것(12)은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는 것’입니다(14).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 이것도 “왜냐하면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이 그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우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기 때문이라”(13)입니다.
여기서 ‘모든 일’(14)이 가장 앞에 두어져서 강조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설명이 없는 ‘모든 일’은 우리 구원을 포함하여 ‘우리가 행하는 모든 일’입니다. 다만, ‘그의 기쁘신 뜻’(13)에 일치한 ‘모든 일’입니다. ‘이 모든 일’도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행하게 하시기 때문에(13) 하나님과 다른 사람들에 대하여 원망과 시비하지 말고, 믿음과 감사 함으로 행하라는 것입니다(14).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모든 일을 어떻게 행하고 있나요? 우리는 우리 육체의 능력으로 하거나(3:2), 우리 안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과 자원으로 하거나(3:3), 둘 중의 하나의 방법으로 하고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일을 자신의 힘으로 하지 않으시고 오직 하나님을 의존해서 하셨습니다(요5:19, 30). 그래서 그는 죄가 없으신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믿음’입니다. 롬14:23절입니다. “믿음을 따라 하지 아니하는 것은 다 죄니라.” 즉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롬1:5)입니다. 성도 여러분, 정말 모든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는 비결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2. ‘구원을 이루는 목적’은 는 우리를 세상에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합니다(15-16).
먼저, ‘구원을 이루는 것’은 우리를 세상과 구별(거룩)되게 합니다(15a).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여기서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는 오늘을 포함한 타락한 모든 시대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에서 ‘자녀들(테크나)’는 ‘낳다(티크로)’에서 파생된 것이기에 ‘하나님의 자녀들’은 복음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 그의 생명(성품)을 가진 자녀들이며(벧전1:23),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은 그리스도의 속량으로 하나님 앞에서 그의 흠 없는 자녀들입니다(엡1:4-5). 이것이 칭의 구원입니다.
우리말 성경에 목적을 나타내는 ‘히나(목적절) 가정법의 동사인 되기(게네스데)’가 잘 번역되지 않았지만, 원문은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게(성화) 되기 위하여’입니다. 여기서 ‘너희가’는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과 동격입니다.
그러므로 성도 여러분, “이미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인 너희가 어그러지고 거스르는 세대 가운데서 흠이 없고 순전하게, 즉 악한 세대와 구별되기 위하여”(15a) ‘성화 구원을 이루시기’(12-14) 바랍니다.
이제, 우리의 성화 구원은 우리를 세상에 복음의 증인이 되게 합니다(15b-16).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생명의 말씀을 밝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 이것(15b-16)은 3개의 부분으로 나누어질 수 있습니다.
첫째는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라”(15b)입니다. 여기서 ‘그들 가운데(엔 호이스)’는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을 가리키는 관계대명사인데, 전치사 ‘엔(가운데)’은 ‘다 함께(in union with)’라는 의미입니다(요10:38). 그리고 ‘나타내라’는 직설법이나 명령법으로 읽을 수 있는데, 현재 중간태 명령법으로 이해합니다.
둘째는 “생명의 말씀을 밝혀”(16a)입니다. 여기서 ‘생명의 말씀’은 복음입니다. ‘생명’은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연합의 경험을 통하여 아는 것입니다(요17:3).
‘생명의 말씀을 밝혀’에서 ‘밝혀(에페콘테스)’는 ‘세상에 빛들로 나타내라’(15b)는 주동사 명령을 설명하는 현재 분사로서 ‘굳게 잡아’와 ‘제시하여’라는 두 가지 의미인데, 우리는 후자인 ‘제시하여(보여주어)’로 이해합니다.
성도 여러분, 복음의 열매를 제시하여 세상에 빛들로 나타내시기 바랍니다(마5:14).
셋째는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으로 그리스도의 날에 내가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16b)입니다. 전치사 ‘에이스(위하여)’로 시작하는 이것은 15-16a절의 궁극적인 목적입니다. 그 목적은 바울이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것이 있게 하려 함이라”입니다. 그의 자랑은 “나의 달음질이 헛되지 아니하고 수고도 헛되지 아니함”입니다. 여기서 ‘달음질’과 ‘수고’는 빌립보 교인들을 위한 바울의 복음 사역을 가리키며, ‘헛되지 아니함으로’는 그의 사역의 열매로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들로서 성화와 영화 구원을 이루는 빌립보 교인들을 가리킵니다((15-16a). 성화와 영화 구원을 이루는 그들이 그리스도 날에 바울의 자랑이 될 것을 목적합니다. 이것은 그의 확실한 목적입니다(롬15:17-19). 이는 1:5-6절 때문입니다. “너희가 첫날부터 이제까지 복음을 위한 일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라. 너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는 확신하노라.”
성도 여러분, 바울과 같이 이것에 대해서 확신하시기 바랍니다.
3. ‘너희 구원을 이루라’의 결론적 요약입니다(17-18)
첫째로 바울은 ‘구원을 이루는’ 빌립보 교인과 자신을 각각 하나님께 드려지는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과 ‘전제’라는 희생 제사의 용어들로 설명합니다(17a). “만일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 여기서 ‘전제’는 희생 제물 위에 한 잔의 포도주를 붓는 의식입니다. 우리말 성경은 ‘내가 나를 전제로 드릴지라도’라는 현재 능동태로 번역되었지만, 원문은 ‘내가 전제로 드려질지라도’라는 현재 수동태이기에 ‘전제’는 바울의 피 흘림(순교)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제물(두시아)과 섬김(레이투르기아)’은 하나의 관사 ‘테’를 공유하는 동의어로 ‘희생 제물인 섬김(봉사)’을 의미합니다. ‘믿음의 제물과 섬김’은 ‘믿음’의 삶(내용)이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희생적인 섬김’(창12:1)이라는 것입니다. 이는 이것이 복음의 진리(롬14:7-9)이기 때문입니다. 고후4:5절입니다. “우리는 우리를 전파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또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종 된 것을 전파함이라.”
성도 여러분, 이처럼 복음은 우리가 주님과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종, 즉 ‘타자를 위한 새로운 피조물’임을 계시합니다(3-4).
둘째로 바울은 구원을 이루는 너희 믿음의 제물과 섬김 위에 전제로 드려진다고 해도 기뻐하며, 너희도 자신과 함께 기뻐하라는 것입니다(17b-18). “나는 기뻐하고 너희 무리와 함께 기뻐하리니, 이와 같이 너희도 기뻐하고 나와 함께 기뻐하라.”
바울은 이렇게 기쁨의 용어를 반복하면서 그 자신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인들과 함께 기뻐하기를 원하였습니다. 성도 여러분, 왜 그랬을까요, 바울은? 이것이 복음의 진리임을 그가 알았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 본문을 통하여 성화 구원을 이루라는 권면과 그것을 이루는 방법과 복음 증거하는 방법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우리가 윤리적으로 세상과 구별되는 그 자체가 복음 증거입니다. 이것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선교(Missio Dei)’이기 때문입니다(13, 1:5-6, 롬15:17-19). 특히 성도 여러분, 모든 일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시는 방법을 알아가시기 바랍니다, 새 언약대로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