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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과 딸아이가 갈등이 심합니다. 남편은 아이를 문제 삼고, 딸은 아빠가 문제라고 하면서 다툽니다. 다투고 나면 두 달가량 서로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볼 때 아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남편은 아이 교육을 자기가 하지 않고 저한테 맡긴 것을 자책하며 힘들어 합니다. 아이가 그렇게 문제로 보이면 가족 상담을 통해 해결해 보자고 해도 자기 말이 옳다고만 할 뿐 상담은 받지 않으려 합니다. 둘 사이가 원만해졌으면 합니다. 어떻게 해야 남편과 아이가 잘 지낼 수 있을까요?”
“딸이 몇 살이에요?”
“16살이에요. 중학교 3학년입니다.”
“중학교 3학년이면 사춘기잖아요. 사람의 특성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어요. 사춘기 때는 자기 나름대로 뭘 해보고 싶은 욕구가 일어납니다. 그게 나쁜 게 아니에요. 자립해가는 과정에서 일어나는 자연스러운 모습입니다.
일반적으로 13살 즈음부터 19살에 이르는 5년은 어린아이에서 어른으로 전환해가는 때입니다. 이 시기를 ‘사춘기’라 부르는데, 사춘기는 인생살이에서 특별히 나쁜 시기가 아니에요. 어린아이는 그냥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하고 따라 배우는 데 반해 어른은 자기가 알아서 합니다. 사춘기에는 따라 배우는 시기와 자기가 알아서 하는 시기가 같이 겹치게 돼요. 부모 입장에서는 시키는 대로 안 하는 것이 불만이 되고, 아이는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하는 것이 불만이 되죠. 그래서 이때 어른과 아이 사이에 갈등이 일어납니다.
여러분은 말만 안 들으면 아이더러 사춘기라고 해요. 말 안 듣는 시기가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오면 ‘사춘기가 빨리 왔다’라고 하고, 말 안 듣는 모습을 고등학생이 되어서 보이기 시작하면 ‘사춘기가 늦게 왔다’라고 합니다. 그런데 이런 표현은 맞지 않습니다. 부모 말을 전적으로 듣는다면 그 아이는 부모의 노예지, 어떻게 자유인이라고 할 수 있겠어요? 또 제 부모 말마저 아예 안 듣는다면 세상을 어떻게 살아가겠어요? 부모와의 관계에서 말을 듣는 것도 사람이 되는 하나의 길이고, 말을 안 듣고 제 마음대로 하려고 하는 것도 사람이 되는 하나의 길입니다. 자립할 수 있는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이런 두 가지 특징이 다 필요한 거예요. 하나만 필요한 게 아닙니다.
남편은 아무래도 남자의 권위, 아버지의 권위가 있어서 ‘말을 들어라’ 하는 쪽에 비중을 더 많이 두다 보니 딸이 문제처럼 보이는 거예요. 딸은 ‘내가 알아서 하겠다’ 하는 측면을 더 많이 갖고 있다 보니까 아버지가 자기를 억압하는 것처럼 느낍니다. 그래서 갈등이 생겨나게 되는 거예요. 그런데 이 갈등이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갈등이 안 생기고 딸이 아버지한테 계속 순종하기만 하면 아버지가 계속 ‘내 말을 잘 듣는 착한 딸’이라는 생각만 하게 되거든요. 그래서 아이가 컸다는 사실을 잘 못 느낍니다. 그러나 아이가 자꾸 저항을 하면 처음에는 힘들어도 시간이 흐르면 적응하게 됩니다. 비록 아이라 해도 함부로 대하면 안 되겠다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조금씩 애착을 내려놓게 되는 거예요. 저는 이걸 ‘정이 떨어진다’라고 표현합니다.
또 아이도 어릴 때부터 자기 마음대로만 하면 나중에는 그것이 도리어 자신의 인생에 큰 장애가 돼요. 엄마는 제 맘대로 하도록 놔둘지언정 아빠라도 제재를 가해줘야 ‘아, 세상이 내 마음대로 안 되는구나’ 하는 것을 깨우칩니다. 제 마음대로 하려는 걸 누군가가 이렇게 억제해 줘야 세상을 살아갈 때 ‘세상이 내 마음대로 안 된다’라는 사실을 알게 돼요. 그런데 본인이 하려는 대로 다 하고만 살면 훗날 성인이 되어 직장생활이나 사회생활하는 데에 큰 장애가 됩니다.
아이를 너무 억압해버리면 심리적 위축을 가져오고, 반대로 너무 오냐오냐하고 내버려 두면 버릇이 없어집니다. 부모가 짜증을 내고 화를 내면 심리적 억압이 일어나기 때문에 짜증과 화는 가능하면 줄이는 게 좋아요. 그렇다고 아이가 하자는 대로 다 해줄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안 된다고 하면서 막아줘야 아이가 원만히 사회생활을 하는 데에 도움이 됩니다.
지금 아이도 아빠도 이런 두 가지 문제를 갖고 갈등을 일으키고 있는 거예요. 그 갈등은 나쁜 게 아닙니다. 아빠도 젊은 세대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고, 딸도 기성세대에 대해서 공부하게 되는 과정입니다. 그러니 ‘아무런 갈등이 없도록 하는 게 좋다’ 하는 질문자의 생각이 잘못된 겁니다. 그냥 내버려 두세요.” (웃음)
“두 달 동안 서로 얘기를 안 하는 데도요?”
“얘기 안 해도 괜찮아요. 딸의 그런 저항을 받아야 아빠도 지금은 힘들지만 앞으로 딸을 대할 때 조금 조심하게 되고, 딸도 그렇게 불편을 느껴야 아빠에 대해서 조금 더 신경을 쓰게 됩니다.”
“눈도 안 마주치고 거실에서 왔다 갔다 할 때도 서로를 그림자 취급하면서 지내거든요. 제가 보기에는 굉장히 불편해요.”
“방금 전에는 별로 안 불편하다면서요? 이제 본심이 나오네요. (웃음) 질문자가 불편한 것은 딸 문제도 아니고 남편 문제도 아니에요. 두 사람이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라는 내 욕구가 이루어지지 않아서 내가 불편한 거예요.”
“아...”
“그런 모습도 편안하게 볼 수 있어야 합니다. 불편한 마음이 올라오면 생각을 이렇게 바꿔보세요.
‘우리 딸이 커가는구나. 남편이 아이의 성장에 도움을 주고 있구나.’
남편도 딸에게 부정적인 역할만 하고 있는 게 아니에요. 딸을 좋게 봐주는 나만 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게 아니라, 딸이 제 마음대로만 하려 들 때 제재를 가해주는 남편도 딸의 성장에 도움이 되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두 사람을 모두 좋게 보면 됩니다.”
“영영 사이가 멀어질까 봐 걱정이 돼서요.”
“그렇게 될 가능성은 아주 낮아요. 딸도 앞으로 고등학교며 대학까지 다니려면 아빠의 지원을 받아야 하니까 마냥 자기 고집대로는 못 해요. 그리고 아빠도 하나밖에 없는 딸을 그렇게 미워하면 어떻게 살겠어요? 부부도 결혼하면 처음에는 찌그럭찌그럭 많이 싸우잖아요. 이걸 두고 ‘사랑싸움’이라고 하죠. 남이 볼 때는 싸우는 것 같지만 사랑싸움이에요. 사랑싸움에 대해서는 옆에서 일일이 끼어들면 안 돼요. 당사자들끼리 싸우도록 좀 놔두는 게 낫습니다. 그러는 가운데 서로 적응하고 관계를 조율하게 돼요. 옆에서 억지로 끼어들면 관계만 나빠지기 십상입니다. 이 정도는 그냥 성장하는 과정이자 적응해 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하고 편안하게 봐주면 돼요. 나와는 관계없는 아빠와 딸의 일상생활이라고 생각하고 구경꾼이 돼서 그냥 지켜보면 됩니다. 그걸 두고 안달복달할 필요가 없어요.”
“저는 남편 하고도 잘 지내고 있고, 딸아이하고도 잘 지내고 있거든요.”
“잘하고 있어요. 그런데 질문자가 두 사람에게 ‘잘해라’ 이러면, 질문자는 양쪽 모두와 싸우게 됩니다. ‘너희 둘이 관계를 잘 풀어라’ 이렇게 말하면, 우선은 딸이 내 말을 안 들으니까 나와 딸의 사이가 나빠져요. 그리고 남편과도 딸 문제를 갖고 싸우면 나와 남편의 사이도 나빠지겠죠. 그래서 딸과 남편의 관계가 나쁜 걸로 인해 나와 딸의 관계도 나빠지고, 나와 남편의 관계도 나빠지고, 결국 나와 남편과 딸의 관계가 모두 나빠지게 됩니다.
세 사람의 관계를 삼각형에 비유한다면 삼각형의 세 변이 다 관계가 나빠지는 게 나을까요? 아니면 지금처럼 딸과 남편만 관계가 나빠지고, 나와 남편은 관계가 괜찮고, 나와 딸은 관계가 괜찮은 편이 더 나을까요?”
“...”
“그러니 이런 문제는 옆에서 뭐라고 말한다고 해결되는 게 아니에요. 당사자들끼리 좀 싸우는 과정을 거쳐야 적응이 되는 거예요.”
“남편과 딸이 1년에 네다섯 번은 싸우는 것 같아요.”
“그 정도면 자주 싸우는 것도 아니에요. 1년에 스물다섯 번쯤 싸운다면 또 모르겠지만, 네다섯 번이면 별 일 아닙니다. 그 정도면 드문 편에 속해요.”
“싸울 때마다 두 달씩 얘기를 안 하니까 1년 중 6개월은 서로 얘기를 안 하고 사는 셈이에요.”
“얘기 안 하면 어때요? 둘이 얘기 안 하면 집도 조용하고 좋죠. 나하고 딸하고 얘기하고, 나하고 남편하고 얘기하면 되잖아요. 질문자가 ‘내가 나서서 두 사람 사이를 개선시키겠다’ 자꾸 이렇게 생각하면 딸은 버릇이 안 고쳐져요. 왜냐하면 딸은 아빠와의 관계를 엄마를 통해서 풀려고 하고, 남편도 딸과의 관계를 본인이 직접 풀지 않고 아내를 시켜서 풀려고 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결국 질문자만 중간에 끼어서 처지가 어려워져요.
그러니 남편이 아이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그래, 당신 힘들지?’ 이렇게 토닥여 주고, 또 아이가 아빠에 대해서 뭐라고 하면 ‘그래, 아빠 때문에 힘들지?’ 이렇게 마음을 받아 주세요. 절대로 딸 편을 들어도 안 되고, 남편 편을 들어도 안 돼요. 반대로, 남편 말을 듣고 딸을 비판하거나, 딸 말을 듣고 남편을 비판해도 안 돼요. 누구의 편도 들지 말고, 누구의 비판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누가 뭐라고 얘기하면 그냥 ‘아이고, 그렇구나’ 이렇게 받아주기만 해야 합니다. 남편이 얘기하면 ‘우리 딸이 사춘기라 그런가 봐’라고 말해주고, 딸이 얘기하면 ‘아빠가 널 사랑해서 그래’라고 말해주세요. 그냥 이 정도로 하고 넘어가는 것이 좋습니다.”
“스님이 즉문즉설에서 비슷한 말씀을 예전에 하셨던 영상을 보고, 제가 똑같은 얘기를 남편한테 말하니까 굉장히 언짢아하더라고요.”
“똑같은 얘기라고 해도 그때 질문한 당사자한테 한 얘기이지, 지금 질문자에게 얘기한 게 아니잖아요. 그런 식으로 자꾸 스님의 말을 빌려 자기 얘기를 하면 안 돼요. 질문자가 자기 얘기를 하다가 안 되니까 스님 말을 빌려서 남편을 설득하려고 하는 거잖아요. 그러면 남편은 당연히 ‘왜 우리 일에 스님이 끼어드나’ 이렇게 느끼게 되어서 기분이 나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나에게 적용하지 않고 남에게 함부로 적용해서 말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법문은 나에게만 적용해서 들어야지, 남한테 적용하면 비수가 돼요.”
“알겠습니다. 스님.”
“자기 편하려고 스님의 말을 이용하니까 스님까지 미움의 대상이 되는 거예요. 항상 법문은 나에게만 적용해야 합니다. 남에게 ‘스님이 이래라 그랬다, 저래라 그랬다’ 이렇게 말하면, 말하는 즉시 그 말은 부처님의 말씀이 아니라 비수가 돼요. 누구든지 본인을 나무라면 싫어하게 마련이기 때문입니다.
법문을 빌려서 남편을 나무라니까 남편의 입장에서는 그 말이 듣기 싫을 수밖에 없어요. 아이의 입장에서도 싫을 수밖에 없고요. 질문자가 아이한테 ‘스님이 아이는 아빠 말을 잘 들어야 한다고 했다’라고 말하면 아이는 스님까지 싫어져요. 또 질문자가 남편한테 ‘스님이 아이들을 잘 감싸 안으라고 했다’ 이렇게 말하면 남편은 스님이 미워지는 거예요. 이런 건 옳지 않습니다.
항상 법문은 나에게만 적용해야 해요. 이것이 수행의 원칙이에요. ‘겸손하라’라고 하면 내가 겸손하면 되지, 다른 사람더러 ‘겸손하게 굴어라’ 이렇게 말하면 안 돼요. ‘보시하라’라고 하면 내가 그 말을 듣고 보시하면 되지, 다른 사람더러 ‘보시하라고 하더라’ 이러면 안 됩니다.
어떤 말이든 객관적으로 그 말이 항상 옳을 수는 없습니다. 그건 말을 절대화하는 거예요. ‘겸손하라’ 하는 말을 절대화하면 안 돼요. 그 말을 나에게 적용할 때는 나의 행복에 도움이 되지만, 그걸 남에게 적용하면 비수가 될 수 있습니다. 질문자는 지금 관점을 잘못 잡고 있어요.”
대화를 마치고 나서 마지막으로 스님이 질문자에게 한 줄 소감을 물어보았습니다. 남편과 딸의 갈등 때문에 힘들다는 질문자도 한층 밝아진 얼굴로 소감을 이야기했습니다.
“남편이 어른으로서 아이를 이해해 줘야 한다고 일방적으로 생각했는데, 남편의 행동도 아이에게 필요한 것인 줄 알게 되었으니 두 사람의 관계를 편안하게 지켜보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스님 말씀과 부처님 말씀을 저한테만 적용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출처 스님의 하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