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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교통을 이용해 '운교리 → 문재 터널 입구 → 백덕산 갈림길 → 임도 → 차단기 → 오봉산 → 암릉 → 산죽 조릿대 → 송전 철탑 → 임도 → 조항산 → 헬기장 → 벌목지대 → 인수봉 → 동산 → 주천강 자연 휴양림 매표소 → 포장도로 → 영랑리 → 영량교'의 15km, 6시간 코스의 오지를 탐험할 예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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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봉산
높이: 1,136m
위치: 강원도 횡성군
5만 분의 1 지도상에 한낱 무명봉으로 남아 있는 산으로 주민들은 오봉산으로 부르고 있다. 다섯 개의 암봉이 나란히 있음으로 그렇게 불린다고 한다.
문재 마루턱에서 능선을 따라 키 작은 잡목과 잡초만 무성한 경사 길을 한동안 올라가다 1,126고지에 올라서면 이때부터 빽빽한 참나무 숲이 하늘을 가린다.
여기서 무덤 하나를 지나면 곧 정상에 이른다. 하산길은 서남 능선을 따라 나가다 901고지를 넘어서 바로 남쪽 계곡 길로 내려서면 상안리 상안홍교 앞에 이른다.
이름 없는 무명 산이 인적이 드물고 자연 그대로 훼손되지 않아 산을 즐겨 찾는 산꾼들이 한 번쯤 찾아볼 만한 산이다. 또한 춘천 소양강 댐과 함께 위치한 동일한 이름의 "오봉산"이 있어 비교해 볼 만하다. - 한국의 산하
밥 빌어먹고 사는 게 중요해 아주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평일 산행을 하지 않는다. 그 아주 특별한 경우는 산악회에서 몇 년에 한번 진행할까 말까 하는 천고지 또는 오지 산행을 가리킨다. 당연히 언제 다시 기회가 올지 모르는 산행이라, 평일이라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참여해 왔고, 참여할 예정이다. 그중 하나가 홍천 석화산이다. 우연히 산악회 게시판을 기웃거리다가 발견한 산으로, 처음 듣는 산이라, '한국의 산하'에서 찾아봤으나, 정보가 없어, 구글링으로 홍천군 사이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홍천군에 따르면 "묘미한 바위 봉우리들은 항상 눈꽃에 뒤덮인 산 같이 보인다."라고 했다. 그리고 해발 고도가 1,146m로 한국의 산하가 놓친 천고지 중 하나다.
천고지 산이라는 걸 확인한 순간 더 볼 것도 없이 6월 28일 화요일 평일 출발임에도 혹시 마중물이 되어 성원을 채울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6월 8일 바로 신청하고, 회비도 입금했다. 그런데 역시 예상대로 성원을 채우지 못해 두 달 후인 8월 16일 화요일로 연기됐다. 그나마 취소하지 않고 연기한 것에 감사하며, 어떠한 조치도 취하지 않고, 산행 일인 8월 16일만 기다렸다. 이번에는 분위기 좋게 성원을 넘어서고 있어, 예정대로 산행을 진행할 거라는 판단에, 주말 산행 후 바로 평일 산행은 체력적으로 문제가 있어 석화산행 날짜에 맞춰 최소 사흘을 휴식할 수 있도록 앞뒤 산행을 조정했다. 그런데, 사망자까지 발생한 폭우와 산행 당일 새벽 폭우 예보에 취소자가 속출하더니, 최종, 성원에 4명이 모자라, 이번에도 10월 4일로 두 달 연기됐다. 두 번째 연기다!
이번 산행을 위해 한 달 전부터 날짜를 조정했는데, 이렇게 허무하게 집에서 죽치고 있을 수는 없어, Plan B를 찾았다. 그런데, 평일이라 다른 산악회는 산행 계획이 없고, 산행 계획이 있는 산악회도 마음에 드는 산행이 없었다. 그나마, 백두대간 산행인 늘재에서 문장대까지는 괜찮아 보였으나, 애초 늘재에서 피앗재 또는 갈령삼거리까지 무박으로 달릴 생각이었는데, 그걸 문장대를 기준으로 둘로 나눈 산행이라 선택지에서 삭제했다. 그럼 남은 건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이다. 해서 그동안 아껴뒀던 산행 중 가성비가 좋은 원주 매봉산을 선택하고, 만들어 둔 계획에 그동안 변화가 없었는지 다시 검토했다. 물론 교통편 위주로! 변함이 없다. 해서 Plan B로 대중교통을 이용해 원주 매봉산을 다녀오기로 했다.
모든 검토가 끝나고, 동서울터미널 발 원주행 버스를 예매하기 전 다시 산행 계획을 훑어보다가 산 소개의 다음 두 문장이 걸렸다. "가을이면 치악산에서 매봉까지 병풍처럼 펼쳐지는 오색단풍이 일품이다." 그리고 "매봉산은 늦가을 낙엽산행의 백미로도 꼽힌다." 단풍과 낙엽은 같이할 수 없으나, 어쨌든 원주 매봉산은 가을산이라는 얘기다. 해서 매봉산을 버리고 산악회의 백두대간 산행인 늘재, 문장대 구간 산행으로 선회했다. 사실 무박 산행을 싫어함에도 소위 접속 구간이라 부르는 속리산 화북탐방지원센터에서 문장대까지 두 번이나, 올라야 한다는 게 싫어 무박 산행을 하기로 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미 달린 문장대에서 천왕봉까지의 백두대간을 다시 가지 않는다면, 속리산 2구간은 장각폭포에서 천왕봉으로 오르는 선택지가 있다는 걸 깨달았다. 그럼 속리산에서 가보지 않은 두 코스를 감상할 기회도 생겨 비록 비용은 많이 드나, 나눠서 진행하는 것도 나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8월 14일 9시 29분 산악회로부터 석화산 연기 문자를 받자마자 바로 석화산과 같은 날짜의 백두대간 산행을 신청했다. 이유는 빈자리가 하나라, 나와 같은 상태의 등산객이 선점할까 봐! 그리고 바로 입금도 하고. 그런데, 산행 하루 전인 8월 15일 아침에 백두대간 종주팀의 인솔 대장으로부터 비로 위험해 10월 4일로 연기한다는 문자를 받았다. 꼬여도 더럽게 꼬였다! 백두대간 늘재, 문장대 바위 능선은 평소도 위험해 국립공원 측에서 등산로를 폐쇄한 코스로, 비가 오면 대단히 위험하다. 따라서 인솔 대장의 산행 연기는 합리적이다. 어쨌든 비 덕분에 두 산행이 연기된 건 어쩔 수 없는데, 산행을 재개하는 날짜가 10월 4일 화요일로 같은 날이란 건 문제다. 그때 상황을 봐서 어디로 갈지 결정하는 수밖에 없다. 상황이 이러니 이제는 Plan C를 찾아야 한다. 산악회 산행 계획은 이미 검토했으니, 원주 매봉산이 아닌 대중교통으로 갈 수 있는 다른 천고지가 필요하다.
그래서 선택한 게 횡성의 오지 오봉산이다. 오지 중의 오지라, 어디를 둘러봐도 제대로 된 산 소개도 없다. 그저 한국의 산하에 "인적이 드물고 자연 그대로 훼손되지 않아 산을 즐겨 찾는 산꾼들이 한 번쯤 찾아볼 만한…"라는 소개가 다다. 고로 산꾼 구경하기도 쉽지 않아보여, 일단 배낭은 최대한 가볍게 하나, 준비는 철저하게 한다. 그리고 오랜만에 점심으로 라면을 끓일 예정이다. 물론 시간이 허락하면, 지역 경제 활성화를 위해 찐빵으로 유명한 안흥에서 하산주도 마시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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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에 기상해 끓인 누룽지로 아침을 먹고 미리 준비해둔 배낭을 둘러멨는데, 무게가 심상치 않다. 평소와 다른 게 있다면, 라면을 끓일 수 있는 버너와 코펠, 라면, 라면에 빠지면 안 되는 김치, 계곡이 없을 것에 대비해 라면을 끓이기 위한 생수 500mL 한 병이 추가되었을 뿐이다. 몇 년 전에는 30kg 육박하는 배낭을 어떻게 메고 다녔을까? 6시45분경 집을 나서 마을버스로 불광역으로, 불광역에서 동서울로 향해 6시 15분에 동서울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 출발까지는 아직 15분이 남아있어, 대기실에서 무인 발권기로 내가 타고 가야 할 버스 좌석 현황을 계속 확인했다. 혹시 내 옆자리에 누군가 앉으면, 배낭을 짐칸에 넣기 위해서다. 다행히 무인 발권기 가동 시간인 출발 10분 전까지는 승객이 없어, 안심하고 승차장으로 갔다.
내가 내려야 할 운교가 터미널이 아니라, 일반 버스 정류장이라, 넋 놓고 있다가는 지나칠 수도 있어, 도착 예정 시각인 8시 35분의 10분 전인 8시 25분부터 초 집중해 창밖으로 주변을 주시했다. 정차지 중 하나인 새말에 내리는 승객이 없어 그냥 지나치는 걸 보고 나니, 더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나마 터미널 비슷한 게 있는 안흥에서 승객을 내려주고 다시 버스가 달리는데, 다음 정차지가 운교다. 대중교통으로 들머리인 문재쉼터까지 가는 방법을 골머리 싸며 연구한 덕에 지도상으로나마 안흥부터 운교까지는 꿰뚫고 있어 문재터널을 지나자, 옆자리에 있던 배낭을 들어 통로에 두었다. 기사에게 이번에 내린다는 신호다. 기사가 봤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런데, 운교 정류장에 도착해 내리려고 보니, 앞자리에서 주민으로 보이는 승객이 내린다. 애초 지나치는 일은 없을 상황이었다. 그렇게 햇살이 내리쬐는 운교 정류장에 도착한 시각이 8시 45분으로 예정보다 10분 늦었다. 서울 빠져나오느라 추가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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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 정류장으로 들어가, 바람막이를 벗어 배낭에 넣고, 등산화 끈을 조인 후, 미니 스패츠를 착용했다. 그렇게 등산 준비를 마치고, 현재 있는 운교 정류장부터 문재터널 입구에 있는 문재쉼터까지 아스팔트 도로를 걸어가야 한다. 지도상 거리는 2.2km! 내리쬐는 햇살이 마치 불화살 같이 느껴지는 폭염은 덤! 각오하고 온 거라, 주저 없이, 인도조차 없는 도로를 따라 문재터널 앞 문재쉼터를 향해 가며 주변을 둘러봤는데, 오른쪽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오봉산인 거 같다. 8시 49분에 버스정류장을 떠나, 8시 53분에 해발 600m 표지판을 지나, 8시 58분에 칡사리 버스정류장을 지났다.
버스 정류장을 지나, 터널을 향해 위로 올라갈수록 오른쪽의 봉우리가 가까워지며 잘 보이는데, 오봉산이 틀림없다. 이렇게 가까울 거라곤 생각지도 못했다. 오봉산을 감상하며 계속 터널로 향해 9시 5분에 해발 700m 표지판을 지났다. 16분 만에 해발 100m 이상 올라왔다. 그리고 9시 18분에 해발 800m 표지판이 있는 문재쉼터에 도착했다. 오봉산 정상이 해발 1,136m니, 표고차 336m만 올라가면 된다. 동네 뒷산이다. 뭐 그렇다고 도로를 따라 올라온 해발 200여 미터가 쉬운 건 아니었다. 문재쉼터는 2018년 11월 18일 내 인생 최초의 안내 산악회를 이용한 산행이었던 백덕산행 이후 두 번째다[산행기]. 당시에는 안내 산악회 버스로 바로 쉼터까지 올라갔으니, 해발 800여 미터 지점에서 산행을 시작했다는 얘기다. 해서 산행에 별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앞으로 문재쉼터에 다시 올 일이 있을까?
2018년 첫 방문 때는 생소한 안내산악회와 같이하는 산행이라,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정신없이 백덕산을 향해 올라갔으나, 지금은 바쁠 이유가 없어, 쉼터 주변을 돌아다니며 이것저것 살펴봤다. 다시 올 일이 없어 더 자세히 관찰했는지도 모르겠다. 기록으로 남길 건 다 남긴 후 위로 올라가는 등산로 입구의 다리를 건너 백덕산과 같은 등산로로 오봉산행을 시작한 시각이 9시 22분이다. 일단 산행을 시작하자 한국 산의 자랑, 울창한 숲이 내리쬐는 햇살의 훌륭한 방패가 되어준다. 그런데 분명 2018년 올랐던 길인데, 전혀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긴 그동안 새롭게 오른 산이 300이 넘고, 거의 오 년 전 산행인데, 등산로를 기억하고 있다면 카메라지!
물길과 겹치는 돌계단을 올라가자, 괘 잘 정비된 등산로가 나타났다. 그 길을 따라 올라가니 갈림길이 나타났다. 왼쪽은 거의 사람이 다니지 않아, 길의 흔적을 찾기가 쉽지 않았으나, 어쨌든 갈림길의 흔적이다. 당연히 언제 사람이 다녔는지 모를 길이 아니라, 잘 정비된 길을 따라가니, 다시 갈림길이다. 왼쪽 위로 올라가는 길로 위에 이정표가 보인다. 오봉산으로 가는 산꾼은 직진, 백덕산이 목표인 등산객은 왼쪽 계단으로 위로 올라가야 한다. 물론 오봉산에 가는 산꾼도 위로 올라가는 게 정규코스다. 오봉산이 목표인 나는 어디로 갈까? 잠깐 망설이다가, 단독 오지 초행 산행에 모험하는 건 좋지 않다는 판단이 들어 왼쪽으로 방향을 틀어 위로 올라갔다.
계단을 올라가자 임도다! 지난 백덕산행 때도 임도를 지났나, 기억을 더듬어 봤으나 전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해서 산행기를 보니, 임도를 지났다. 그리고 이정표가 서 있다. 아래에서는 이정표라는 것만 알았지, 어떤 정보를 담고 있었는지 몰랐는데, 올라와서 보니, 앞선 산꾼들의 산행기에서 언제나 볼 수 있는 '백덕산 정상'과 '칡사리재' 갈림길 안내다. 오봉산은 칡사리재 방향으로 가야 한다. 그런데 임도다! 그 임도를 따라가자, 차단봉이 앞을 가로막고 있다. 산행기에서 봤던 내용이다. 그리고 무언가 표지석이 있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니, "백덕산 국유임도"임을 알리고 있다. 즉 국유림이란 얘기다. 그 앞은 임도 갈림길이고. 그 갈림길 왼쪽에 있는 이정표에 백덕산 정상 표시가 있고 지금은 흔적만 있는 등산로가 보인다. 과거 사용했던 등산로다.
문제는 이정표 어디에도 오봉산에 대한 언급이 없다.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방향을 틀어 내려가면 길이 있을 것도 같았지만, 산세로 보아서는 급경사이기는 하나, 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올라가는 게 맞아 보여 가까이 다가가 살펴봤다. 예상대로,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았던, 친숙한 리본이 보이고, 그 아래에 이끼가 잔뜩 끼어 글은 보이지 않는 표지석도 있다. 그 뒤에 철판으로 만든 표지가 횡성과 평창의 경계를 알려주고 있는 거로 봐선, 그 표지석도 횡성과 평창의 경계석일 확률이 100%다. 경계석과는 무관하게 리본이 오봉산 등산로 입구를 발견했다는 걸 알려준다. 오지답게 등산로 입구를 찾는 것도 쉽지 않다. 비에 젖어 미끄러운 급경사를 올라가니, 전형적인 능선의 모습이나, 길이 명확하지 않다. 그리고 그 길조차, 쓰러진 나무와 관목이 막고 있어, 지나기가 쉽지 않았다. 내가 본 가장 최근 산행기가 2019년이니, 그 이후에는 산꾼이 거의 찾지 않았다는 얘기라, 당연하다. 아니, 최소 산행기를 쓰는 산꾼은 찾지 않았다!
짧은 급경사에 바위도 있으나, 시작 고도가 800여 미터에 달하고, 정상이 1,136m에 불과해 표고차에 비해 2km 가까운 거리라, 체력적으로 힘든 산이 아니나, 길을 찾아간다기보다는 능선을 따라 관목을 뚫고 길을 만들며 가야 해서 힘이 들었다. 와중에 그 누구도 지나지 않은 길이라, 풀숲이 머금고 있는 비와 이슬을 고스란히 뒤집어써야 했다. 해서 아쿠아슈즈를 신고 올 걸 그랬나 하는 생각도 들었으나, 그나마 등산로가 있는 곳에서나 사용할 수 있지, 길 자체가 없는 곳에서는 위험해 일반 등산화를 신고 온 게 이번 산행에서 가장 잘한 결정이다. 그렇게 관목을 뚫고 올라가며, 5봉 중 여기가 1봉이 아닐까 하는 봉우리 정상에 도착해 주변을 둘러보니, 우리의 '준.희'가 아닌 '산너머'가 나무에 매단 "백덕지맥 1044.9m'의 팻말이 보였다. 1봉이다. 정상이 몇 봉인지는 모르나, 아래에서 본 바에 의하면 1봉이 제일 낮고, 나머지 4봉은 비슷한 높이였다. 고로 2봉에 올라서면 오르막 구간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바닥에 떨어진 정체 모를 열매를 주워 자세히 살펴보기도 하며 길을 가, 봉오리 두 갠가? 세 갠가를 넘어, 다시 봉우리로 오르는데 등산 앱이 음성으로 정상에 도착했음을 알려준다. 오봉산 정상이다. 5 봉 중 몇 번째 봉우리인지는 모르겠다. 봉우리를 세면서 왔는데 오다가 딴짓하느라 잊어버렸다. 10시 29분에 오봉산 정상에 도착해 보니, 'SEOUL MOUNTAIN'에서 나무에 매단 "오봉산" 정상 명패가 정상석을 대신하고 있었다. 아무리 오지라도 정상석을 기대했건만. 버림받은 산이다. 버림받았든 아니든 천고지 산이 목표인 나는 목표를 달성한 순간이니, 인증을 잠겨야 하는데, 카메라를 바닥에 두고는 내 키보다 높은 곳에 달린 명패와 사진 찍는 게 불가능해 나뭇가지 사이에 카메라를 두고 인증을 찍었다. 그런데 다른 나무의 '백두사랑산악회'에서 매단 명패에는 오봉산 정상의 높이가 한국의 산하 높이 1,136m가 아니라 1,124.6m로 기록되어 있다. 10m가 넘게 차이 나는 경우는 드문데.
운교 버스정류장에서 산행을 시작할 때, 날머리인 영량교 버스 정류장에 안흥행 버스 시각인 14시 10분에 맞춰 14시까지 도착을 목표로 했다. 시작을 8시 50분경에 했으니, 산행에 주어진 시간은 5시간이 조금 넘어, 이번 산행의 소요 시간 목표를 5시간으로 잡았다. 15km에 5시간이니, 3km/h의 속도를 유지하면 된다. 정상까지 올라오는데, 3.2km/h 정도를 유지했고, 이제부터 하산이라,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는 것에 기분이 좋아, 정상에서 다양한 자세로 기록을 남긴 후 10시 36분에 정상을 떠났다. 다음 목표인 무명봉으로 향하는 길목에는 부러진 나무가 막고 있어, 우회하기도 하고, 바위를 넘기도 하며, 그나마 완경사라 남아있는 백덕지맥의 잘 보이는 길을 따라가, 10시 53분에 산악회 리본이 잔뜩 달리 장소에 도착했다.
잔뜩 달린 산악회의 리본은 여기가 백덕지맥의 거점이라는 걸 알려준다. 해서 주변의 나무고 바닥이고 다 살펴봤는데, 여기가 어디라고 알려주는 아무런 표지가 없다. 분위기로 봐서는 무명봉이다. 무명봉은 조항산과 백덕지맥이 갈라지는 삼거리로 좌회전해서 조항산까지는 내가 사용하는 두 등산 앱 모두 지도에 등산로 표시가 없다. 고로 백덕지맥과 갈라지는 무명봉부터는 의지할 게 아무것도 없이, 그저 산악회의 표지나, 길의 흔적을 보고 찾아가야 한다. 좌회전해서 조항산으로 가는데 조릿대 숲의 급경사라, 간혹 길을 잃어버리기도 했다. 말 그대로 울창한 숲의 원시림을 뚫고 가는데, 왼쪽 아래로 마을이 보인다. 그리고 너무 많이 내려온 게 이상했다. 해서 핸드폰을 꺼내 등산 앱의 지도를 살펴봤다. 백덕지맥 왼쪽으로 등산로 표시가 없는 곳에 있는 거야 당연한데, 내가 생각한 무명봉에서 좌회전한 게 아니었다. 해서 능선을 따라 죽이어보니, 푯대봉이 나온다. 처음 내가 무명봉이라 생각했던 곳은 봉우리가 아니라, 푯대봉 갈림길이다.
등산객 사이에 소위 알바라 불리는 걸, 왕복 1km가 넘게 했다. 대형 알바다. 그나마 푯대봉 도착하기 전에 알아차린 게 다행이다. 다시 푯대봉 갈림길로 돌아가 11시 17분에 도착했다. 10시 53분에 떠났으나. 24분 동안의 알바였다. 갈림길을 떠나 백덕지맥을 따라 무명봉으로 향하는데, 곳곳이 바위다. 몇 곳은 넘어가고 몇 곳은 우회하기도 하며 가, 11시 31분에 우리의 '준.희'가 매단 '백덕지맥 1,058.5m' 명패가 달린 나무가 있는 곳에 도착했다. '준.희'가 매단 명패가 있다는 건 혼동하기 쉬운 갈림길이라는 얘긴데, 이어지는 등산로 즉 백덕지맥 외에 다른 등산로는 흔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 대신 거기를 벗어나자 조릿대 숲이 이어졌는데, 아무리 봐도 길이 이상했다. 마치 과거 임도를 쓰였던 곳에 조릿대가 자란 모습이다. 작은 차량이 조릿대를 뚫고 달린 듯, 일정한 간격의 두 길이 조릿대 숲을 뚫고 나 있다. 크기로 보아, 임도는 아니고 방화선이 아닐까?
조릿대 숲 또는 관목지대를 뚫고 가다 보니, 울창한 숲에 들어섰고, 등산로는 봉우리를 향해 올라가는데 위에 뭐가 있는지 보이지 않아 그저 풀숲만 헤치고 갔다. 풀숲을 벗어나자 네 개의 철탑 기둥이 보여 고개를 들어보니, 송전탑이다. 오봉산 산행기에 늘 등장하는 철탑이다. 제대로 왔다. 그런데 어떤 산행기에는 송전탑 다음이 임도고, 그다음이 조항산이다. 해서 송전탑에서 임도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지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살펴봤으나, 없었다. 반면 무명봉에서 임도로 가는 거로 나온 산행기도 있어, 철탑에서 등산 앱의 지도와 산세, 인적을 토대로 조항산, 즉 임도로 내려가는 길이 있나 찾다가, 그런 길은 없고, 무명봉까지 가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고 지맥을 따라 계속 갔다. 송전탑을 지나 관목숲을 뚫고 나오자 다시 조릿대가 무성한 방화선이다.
방화선을 따라 계속 전진하자, 오른쪽으로 봉우리 정상이 보인다. 무시하며 방화선을 따라 계속 가다가 그래도 정상에는 가봐야지 하는 생각에 방화선을 버리고 봉우리 정상으로 향했다. 정상에 도착했으나, 어떠한 표지도 없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여기가 무명봉이다. 고로 거기서 임도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야 했다. 정확히는 방화선을 떠나 무명봉으로 올라가지 말고, 방화선을 따라 계속 가면 임도다! 그런데, 임도로 가는 등산 앱의 길 표시도, 주변에 어떠한 표지도 없다. 해서 아직 무명봉이 아니라 생각하고 계속 전진하니, 친숙한 리본을 포함해 많은 산악회의 리본이 달린 곳에 도착했다. 그럼 주요한 거점이라는 얘기라, 당시는 당연히 무명봉이라 생각했다. 해서 혹시 정상석이 있나 찾아보니, 정상석처럼 보이는 비석이 있다. 그걸 발견하고, 아니, 오봉산에도 없는 정상석이 무명봉에 있다니, 그럼 무명봉이 아니라고 투덜거리며 정상석이라 생각한 것에 가까이 다가가 보니, 정상석이 아니라 승전비다!
당시에는 오봉산 산행기 어디에서도 이 승전비에 관한 내용을 본 적이 없어, 그들이 발견하지 못했을 거로 생각했는데, 사실은 무명봉은 그 전 봉우리로 여기는 승전비가 있는 6.25 격전장이다. 말인즉 그들은 여기까지 오지 않았다. 그리고 갈림길이다. 당시 무명봉이라 여겼으니, 백덕지맥으로 이어지는 길 왼쪽으로 분기하는 길이 있어야 한다. 해서 찾아봤다. 그리고 찾았다! 리본도 있다. 갈림길이 맞다. 그것도 임도로 가는! 조항산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는 즐거움에 신이 나서 콧노래를 흥얼거리며 급경사를 내려갔다. 승전비가 있는 곳이 해발 1,000m가 넘고, 조항산이 해발 800여 미터에 불과하니, 당연히 아주 많이 내려가야 한다. 최소 해발 700m까지는. 가끔 리본도 보이는 길을 내려가는데, 저 앞에 등산로를 가로지르는 얇은 선이 보여, 당연히 오지 군부대 근처 산에는 반드시 있는 삐삐선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계속 내려가 가까워져서 보니, 삐삐선이 아니라, 나일론 선이다. 그런데 삐삐선과 같이 등산로를 따라 계속 이어지는 게, 마치 길을 잃을까 봐 알려주는 안전선 같았다. 수시로 등산로를 가로질러 열받게 했지만!
거의 막바지에 다다르자, 그 줄은 좌우로 분기한다. 등산로는 계속 아래로 내려가고, 그런데, 여기다 등산로임을 알려주는 안전선을 설치한다는 건 말도 안 되는 소리고, 뭘까? 궁금해하며 내려오다가 나무 곳곳에 표기된 기호를 보고, 벌목하기 위한 구분 선이라는 걸 깨달았다. 해서 그 선이야 좌로 가든 우로 가든 무시하고 계속 내려가자 낭떠러지다. 그 아래는 임도고. 사실이야 어떻든, 산행기에서 본 그대로 임도까지 왔다. 이제 조항산으로 가면 된다. 해서 낭떠러지에 가까운 절벽을 내려가 임도에 도착해 한숨 돌린 후 조항산으로 가는 길을 찾았다. 그런데, 어디에도 내려가는 길이 없다. 혹시나 해서 등산 앱의 지도도 확인해 봤으나, 임도도 표시되지 않는다. 일단 임도를 따라 오른쪽으로 갔다. 물론 왼쪽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는지 확인하며.
왼쪽으로 내려가는 등산로는 없고, 계속 가자 벌목한 개활지와 그 밑으로 마을이 보인다. 당연히 조항산이 있을 만한 능선 따위도 없다. 임도에 도착했을 때 반대편으로 가야 했다. 중요한 선택을 해야 할 시점이라, 임도가 표시조차 되지 않는 등산 앱이 아니라, 일반 지도 앱으로 확인해보니, 지금 가고 있는 임도는 문재쉼터에서 올라가 만난 임도가 백덕지맥을 따라 달리고 있는 거다. 말인즉 능선을 따라 산행을 하지 않고, 임도를 따라오면 여기다. 해서 어느 지도에도 없고, 해발 800여 미터에 불과한 조항산에 올라가는 건 포기하고, 천고지 오봉산과 무명봉, 아무도 찾지 않는 프랑스 승전비를 발견했다는 것에 만족하고, 일단 마을로 내려가기로 했다. 해서 고개를 돌기 직전의 임도 끝에 마을로 내려가는 길이 보여 불화살 같은 햇살을 온몸으로 맞으며 그 갈림길에 도착했는데, 그 시각이 12시 55분이다. 일단 고개를 돌아 임도가 어디로 향하는지 살펴보고, 지도 앱으로 보니, 평창으로 간다. 고로 임도를 따라 계속 가는 건 고려 대상이 아니다!
이 길이 가관이다. 내려가다 보니, 직진하는 길은 숲에 가려 보이지 않고, 임도 밑으로 좌회전한다. 무시하고 직진할까 하다가, 잘 보이는 좌회전 길을 선택했다. 고개에 가려 끝이 보이지 않지만, 고개를 돌면 마을로 내려가지 않을까 생각해서다, 역시 예상대로 앞을 가리고 있던 숲을 벗어나자, 바로 아래로 농장이 보인다. 문제는 내려가는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거. 인가가 없는 오지라면 다 무시하고 내려갔겠으나, 내려가는 능선이 뭔지 모를 과수를 막 심었다. 그 밖의 농작물도 보이고, 감히 그걸 짓밟고 내려갈 용기는 없어, 계속 길을 따라가자, 따라왔던 임도와 일정한 간격을 두고 반대편으로 가고 있다. 뭐 이런? 누굴 탓하겠는가? 내가 선택한 길인데, 어쩔 수 없이 길을 따라 다시 언덕으로 올라갔는데, 여전히 그 길은 마을로 향하는 게 아니라, 결국은 내가 지난 임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그런데, 내가 임도에서 왜, 이 길을 발견하지 못했을까?
가고 있는 길의 최종 합류점이 거의 한 시간 전에 지나온 임도라는 걸 확인하는 순간 정신을 놨다. 그리고 최대한 주민에게 피해를 주지 않고 마을로 내려가는 길을 탐색했다. 그래서 발견한 게 얼마 전에 벌목이 끝나, 이제 막 잡초가 자라는 지역이다. 당연히 길은 없으나, 벌목의 대가로 보이는 묘목이 듬성듬성 심어진 지역이다. 그 끝은 계곡이고. 해서 묘목을 피해 밑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는 늪지대와 잡초지대를 지나, 와중에 혹시 다른 길이 있나, 찾아 헤매기도 하며, 1시 17분에 계곡으로 가는 길을 발견했다. 그 길을 지나가자, 문명의 이기가 자리 잡은 작은 계곡이다. 물론 벌목 과정에서 망가진! 계곡을 건너가자, 짓다 만 시멘트 포장도로가 보인다.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나 기분이다. 해서 일단 배낭에서 얼음물을 꺼내 넘치도록 마시고, 임도라기보다는 마을 관통 도로에 발을 디뎠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조금 내려가자 아스팔트 포장도로 바뀐다. 해서 지도 앱으로 현재 위치에서 둔내역까지의 거리를 확인했다. 물론 대중교통편도. 거리는 8.8km, 버스 같은 대중교통은 없다. 물론 택시 빼고! 앱은 둔내역까지 2시간 49분 거리라지만, 내게는 2시간 거리다. 해서 둔내역까지 걸어가기로 했다. 점심은 계속 가다가 계곡에 자리 잡고 앉아 라면을 끓여 먹기로 하고. 그런데, 아주 잘 정비된 아스팔트 포장도로가 계곡, 아닌 개울과 나란히 가는데, 물이 발조차 씻기 싫은 흙탕이라, 라면 끓여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아 계속 내려가다 보니, 마을 표지석에 도착했다. 동막골이 아니라 "동박골"이란다. 그리고 조금 더 내려가자 조항2리 마을회관으로 길이 2차선으로 넓어졌다. 이런 환경이라면 당연히 버스가 다녀야 해 버스 정류장을 찾아보니, 마을회관 옆에 있다. 다만, 지도 앱의 대중교통을 찾아보니, 버스가 언제 올지는 앱도 모른다고. 해서 처음 계획대로 7.4km 아래에 있는 둔내역까지 걸어가기로 하고, 도로를 따라 내려가는데, 더워서 미칠 지경이다. 그리고 얼마 전에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생각이 나 메모리를 뒤져보니, 중왕산에서 하산할 때와 날씨나 거리나 거의 같았다[산행기].
폭염의 햇살 아래 그늘이라고는 구경도 할 수 없는 아스팔트 도로를 따라 4km/h가 넘는 속도로 내려가니, 어느 순간 내가 더위 먹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그렇다고 어디 쉴만한 곳도 없어, 빨리 둔내까지 가는 게 최선이었다. 와중에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사진으로 남기는 여유도 부리고. 그나마 여유를 부릴 수 있는 건 산행 계획을 세울 때 조사한바, 영량교에서 둔내로 가는 버스가 거의 40분 간격으로 있다는 걸 떠올렸기 때문이다. 굳이 둔내역까지 걸어가지 않아도, 영량교와 둔내역 사이에 분명 버스정류장이 있을 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예상대로 지도 앱에 따르면, 지금 내려가는 길과 안흥에서 둔내로 향하는 길의 합류점에 '조흥1리' 버스정류장이 있었다. 2시 17분 조항리 표지석을 지나, 2시 20분에 조항1리 버스정류장에 도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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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상 산행이 끝났다. 비록 둔내역까지 4km, 한 시간 거리에 불과하지만, 더 걸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니다. 비와 이슬을 머금은 풀숲은 산행 내내 통과하느라, 하체는 물에 빠진 생쥐 꼴이었다. 물로, 등산화도. 마을에 도착해 땡볕의 아스팔트 도로를 내려오는 동안 옷은 다 말랐지만, 질퍽거리는 등산화는 걷는 것 자체를 힘들게 했다. 와중에 더위도 먹었고, 해서 그나마 그늘이 있는 버스정류장으로 들어가 등산화와 양말을 벗은 후, 씻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어서 수건으로 발을 깨끗이 닦고 새 양말로 갈아신었다. 그러자 어느 정도 정신이 들어, 버스 정류장에 있는 시간표를 보니, 가장 빠른 버스가 3시 30분경이다. 현재 시각 2시 30분! 이건 기다릴 문제가 아니다. 그렇다고 걸어갔다가는 열사병으로 죽는다. 해서 택시를 불렀다. 그리고 택시가 도착할 때까지 땡볕에 등산화와 잠깐 등산화를 신었다가 물에 젖은 양말도!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둔내역에서 서울로 가는 기차를 예매하기 위해 찾아보니, 4시 3분 차가 제일 가깝다. 내가 막 확인했을 때는 모든 게 매진이라, 그다음 차인 5시 14분 차의 '입석+좌석'을 예매하려는 순간 갑자기 4시 차에 같은 조건의 표가 나와 그걸 예매했다. 고로 내게는 1시간이 조금 넘는 하산주 겸 점심시간이 주어졌다. 그것도 택시가 일찍 도착했을 때. 뭘 먹느냐는 말도 안 되는 상상을 하고 있는데, 2시 40분경 택시가 도착하자, 바로 둔내역으로 달려, 역전 즉 역 앞에서 내렸다. 물론 식당을 찾아가기 위해. 그 시각이 2시 50분이 조금 넘었다. 그런데 둔내역 가까운 곳에는 횡성 한우집이 다 차지하고 있어, 먹을 만한 걸 찾아 역에서 멀어져야 해 가다 보니 "송어회 전문" 식당이다. 혼밥 또는 혼술은 할 수 없는 밥집이다. 어쩔 수 없이 조금 더 내려가자 건너편에 '세영'이라고, 야생산삼 삼계탕·백숙, 산채비빔밥이 전문인 식당이 보인다. 백숙은 몰라도 나머지는 혼밥, 혼술이 가능한 메뉴라, 길을 건너 그 식당으로 들어갔다.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차림표를 보니, 야생 산삼이 주재료라서 그런지, 가격이 상상 이상이다. 더위를 먹어 체력이 고갈된 상태라, 다음 산행을 위해, ‘하루 한정 판매’한다는 '야생산삼 삼계탕'을 주문했다. 물론 시간이 얼마나 걸리는지 묻고. 이후 화장실로 가서 씻고 나와 삼계탕이 나올 때까지 주변을 두리번거리는데, 입구에 있는 두 화분의 풀? 이 아무래도 산삼 같아, 가까이 다가가 사진을 찍었다. 그러자, 지켜보고 있던 주인장이 다가와 야생 산삼이라고 얘기를 꺼내며 산삼의 이것저것에 관해 얘기해 주는데, 아무리 봐도, 오지를 다니다 본 풀과 같다! 그래서 알아야 면장을 하는 거다. 내가 산삼에 흥미를 느끼자, 설명하던 주인장이 나를 냉장고 앞으로 데려가더니, 냉장고에서 특과 대라고 적힌 스티로폼 상자 두 개를 꺼낸다. 그리고 사진을 찍으라며, 상자를 열어 내용물을 보여준다. 내일모레 새로운 주인이 가져갈 물건이란다..
특을 보고 나서 대의 뚜껑을 열었는데, 솔직히 나는 특과 대의 차이를 구분 못 하겠는데, 주인장의 말에 따르면 엄청난 차이라고. 그렇게 산삼 구경이 끝나자, 주인장이 삼계탕이고 쓴 스티로폼에서 산삼을 하나 꺼내 내게 보여 주면 이게 삼계탕에 들어갈 거라고 알려준다. 산삼인지, 인삼인지. 도라지인지 구분할 수 있었으면, 오지 산행 때 다 깼지?! 어쨌든 자리로 돌아오니 눈에 보이는 게 몇 병인지 세다가 지칠 산삼주 병의 열병이다. 그리고 주문한 지 10분 만에 '야생' 산삼 삼계탕이 나왔다. 주인장에 따르면, 반찬의 나물도 다 야생이라고. 일단 삼계탕에 든 산삼을 찾아 닭 위에 올려놓고 사진을 찍은 후 이슬이 반주로 점심을 먹었다. 당연히, 인삼주, 아니 산삼주가 반주로 나올 거로 생각했는데, 아니어서 주문한 이슬이다.
내가 산삼 삼계탕을 안주로 이슬이를 홀짝이는 동안, 주인장과 주방장 두 노인네가 내 주위에 앉아 이것저것 말을 시킨다. 해서 나도 궁금한 걸 물어봤다. 먼저 식당 개장 축하 화분이 있어 언제 열었는지 물었더니, 삼 개월이 조금 안 됐다고, 그리고 화분의 보낸 사람이 심상치 않아 어떻게 되는 관계냐고 물었다. 주방을 맡는 노인장이 국가대표 출신 체육인이고, 골프도 좀 했다고, 그 말을 들으니, 이회택, 박세리가 보낸 화분과 같이 찍은 사진이 이해됐다. 와중에 주인장은 산삼으로 여러 공중파 프로그램에 출연도 했고.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이슬이를 마셨는데, 더위 먹은 후유증인지 이슬이를 더 마실 수 없어, 한 병만 비우고 3시 50분경에 4시 3분 열차를 타기 위해 식당을 나왔다. 다른 건 모르겠고, 불편해할까 봐 묻지 않았는데, 일흔이 넘어 보이는 두 노인네가 경영하는 식당으로 보였다.
식당을 나와 도로변에 심은 가로수의 열매를 사진으로 남기기도 하며, 둔내역으로 향해 3시 59분에 도착했다. 5분 연착이라는 정보에 따라 화장실에 들러 볼 일을 보고, 승차장으로 올라가 4시 6분경 도착한 열차를 탔다. 구매한 표가 '좌석+입석'이지만, 좌석 구간은 둔내에서 양평까지 한 구간에 불과해 나머지는 서서 가야 했다. 그런데 확실히 내가 더위 먹었다는 걸 실감한 게 서 있는 걸 견딜 수 없어 결국 열차 문 옆에 주저앉았다. 그리고 KTX 열차 안에서 벌어진 해프닝이 많지만, 그것만 책 한 권 분량이라 패스, 이후 청량리에 도착해 더위 먹은 몸을 끌고 온갖 교통수단을 활용해 6시 10분경 집에 도착하는 거로 152번째 천고지 오지 중의 오지 횡성 오봉산행을 마감했다.
애초 계획과는 달리 '운교 버스정류장 → 문재 터널 입구 → 백덕산 갈림길 → 임도 → 차단기 → 오봉산 → 암릉 → 산죽 조릿대 → 송전 철탑 → 무명봉 → 백덕지맥 갈림길 → 임도 → 벌목지대 → 동박골 → 조항2리 마을회관 → 조항1리 버스정류장' 19.41km(트랭글) 코스의 오지를 5시간 44분 동안 탐험했다. 이동 5시간 41분, 휴식 3분!
처음 계획대로 진행했으면, 북쪽으로 이어진 많은 산을 조망했겠으나, 길을 잃는 바람에 특별히 내세울 만한 전경은 없었다.
비록 중간에서 다른 길로 들어섰으나, 152번째 천고지인 횡성 오봉산에 오른 거로 목표는 달성했다. 프랑스 대대의 승전비가 있는 봉우리 발견과 무명봉의 위치 확인은 큰 소득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산행이 어려운 이유는 대중교통의 문제도 있으나, 안내산악회가 찾지 않을 정도의 산이라, 길을 찾기 쉽지 않다는 거다. 와중에 등산 앱에도 길 표시가 없으면 답이 없다. 그걸 일러, 오지라 부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