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여 년 전 통일신라 도읍 경주의 왕족, 귀족들이 용변을 보던 화장실은 수세식이었다. 국립경주문화재연구소가 2017년 9월 경북 경주시 인왕동에 있는 옛 신라연못인 월지(안압지·국가사적)와 옛 동궁터(왕태자가 머물던 거처) 영역의 북동쪽 구역을 발굴한 결과다. 여기서 궁궐의 수세식 화장실터와 대형 배수시설 등이 확인됐다.
수세식 화장실터는 7.4평 넓이의 전체 건물터와 변기시설, 오물 배수시설이 온전히 갖춰진 모습. 초석 건물터는 변기가 있는 구역과 배수로와 전돌만 깔린 구역으로 나누어지는데 변기 구역은 화강암으로 만든 변기 구조물이 있고 변기를 통해 배출된 오물이 잘 흘러나가도록 기울어지게 설계된 암거暗渠(땅 밑에 고랑을 파 물을 빼는 시설)를 판 얼개였다. 변기 구조물의 경우 다리를 딛고 쪼그려 앉는 발판(판석)이 각각 있는 2개의 돌판을 맞물리게 한 얼개의 결합식 변기와 한 개의 돌판에 타원형 구멍을 뚫은 단독 변기석조물이 따로 출토돼 눈길을 끌었다. 발굴 당시 결합식 변기는 원래 붙어 있던 2개의 돌판이 각기 따로 떨어진 채 후대 제작된 것으로 보이는 단독변기 위에 놓여 있었다. 나중에는 따로 분리돼 발판 용도로 재활용된 것으로 보인다. 배수로와 전돌이 깔린 구역은 화장실의 전실로 일단 추정하지만, 정확한 공간적 기능은 명확하게 판명되지 않은 상태다.
연구소 쪽은 이 유적이 격식을 갖춘 신라 궁궐의 고급 화장실로, 변기에 물을 흘리는 수세식 구조를 통해 오물이 변기 아래 암거를 통해 배출되었던 것으로 보았다. 물을 유입하는 설비가 따로 갖춰지지 않은 것으로 조사돼 항아리 등에서 물을 떠서 오물을 씻어 내보내는 방식을 썼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 변기 하부와 오물 배수시설 바닥에는 타일 구실을 하는 전돌(쪼개어 만든 벽돌)을 깐 자취도 확인돼 통일신라 왕궁에서 최상위 계층이 쓴 고급 화장실의 생생한 얼개를 알 수 있게 됐다.
한반도의 고대 화장실 유적은 백제, 신라 유적에서 종종 발견된다. 경주 불국사에서 1970년대 변기형 석조물이 수습됐고, 2000년대 초엔 전북 익산시 왕궁리 백제궁터 추정 유적에서 뒤처리용 나무 막대와 함께 저수조식 공동화장실터가 발굴돼 눈길을 모은 바 있다. 그러나 발판과 구멍 달린 변기, 배출배수시설 등이 함께 붙은 화장실 유적의 전모가 온전히 드러난 것은 이번 발견이 처음이었다. 현재까지 조사된 통일신라 시대까지의 고대 화장실 중 가장 고급스런 유형으로 볼 수 있다. 신라 왕실 화장실 문화의 구체적인 면모를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점에서 생활사적 가치가 매우 크다.
이와 함께 발굴 현장 동쪽에서 동궁과 월지의 동문으로 추정되는 대형 가구식 기단 건물터, 창고시설, 우물터 등도 나왔고 토기 등 다량의 생활유물들도 수습됐다. 60평이 넘는 대형건물터인 동문 추정터는 월지·동궁터에서 처음 확인되는 출입문 유적으로 동궁터 전체의 규모와 영역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단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