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나는 왜 죽음의 문턱을 통과하고 난 후 오로라를 떠올렸는가? 그리고 오로라를 볼 수 있는 많은 나라들 중 나는 왜 아이슬란드를 선택했을까?’
여행이 끝난 지금까지도 저는 아직도 제가 던진 질문에 답을 찾지 못했습니다. 왜 그토록 떠나려 했는지, 떠나고 싶어 했는지에 대한 마땅한 이유를 말입니다. 어쩌면 죽음 앞에 아무렇지 않은 척 주변을 안심시키고 스스로를 다독여 온 내가, 실은 죽음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하는 무의식의 발로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건강이 아직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은 퇴원 4주 후, 정확히는 29일 되던 날. 저는 주변 친구들의 염려와 가족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아이슬란드를 향해 떠났습니다. ‘나는 왜 떠나려 하는가, 나는 왜 하늘을, 별을, 그리고 오로라를 그토록 마주하려하는가’라는 물음을 안은 채 18박 20일의 여정은 1월 30일 AM12:55에 시작됐습니다. 비행기를 타기 전 수하물을 무료로 모두 붙여주겠다는 KLM항공사 직원의 배려 덕분에 기분 좋게 출발한 저는 2번의 경유와 함께 대략 20시간의 비행을 해야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장시간 비행이 주는 피곤함은 여행이 주는 설렘과 일상에서 벗어나는 해방감이 주는 아드레날린으로 모두 무마되었습니다. 오랜만에 만난 구름위의 풍경은 참 아름답더군요. 비행기에서 만난 구름 위 노을빛 태양과 저물어가는 태양 반대편 검푸른 하늘에 모습을 나타낸 개나리 빛을 닮은 노란 초승달, 그 옆에서 반짝거리는 금성을 보며 이 순간 이 광경을 선물해 준 하늘에 감사했습니다. 또한, 아이슬란드라는 낯선 땅, 낯선 길에서 지금까지의 고민과 고통은 모두 잊고 오롯이 나에게 집중하는 시간을 보내고 오리라 다짐했습니다.
하늘에서 바라본 아이슬란드는 눈으로 뒤덮여 온통 하얀색 뿐 이었습니다. 말 그대로 ICE LAND. 얼음 땅이라는 이름이 실감나는 순간이었습니다. 아이슬란드의 국가 면적은 대한민국(한반도의 절반)정도 크기이며 인구는 약 34만명 정도입니다. 서울의 인구수가 약 980만명 정도 된다고 하니, 인구수를 비교해 보더라도 우리나라의 인구밀도가 아이슬란드에 비해 얼마나 높은지를 가늠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아이슬란드의 건물들은 대부분 2~3층의 저층 건물로 지어져있어 도심에서 변두리의 바다가 보일정도로 시야가 트여 있어 국내에서는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습니다. 또한 제가 여행한 1~2월은 겨울이라 눈이 녹지 않아 어딜 가더라도 눈이 뒤덮인 하얀 세상을 볼 수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를 생각하면 먼저 떠오르는 것은 두 가지. ‘얼음’ 그리고 ‘오로라’일 것입니다. 오로라를 보고 싶어하는 많은 분들이 주로 북유럽이나 캐나다로 여행을 떠나곤 하지만, 사실 지구상에서 제일 따뜻하게 오로라를 볼 수 있는 곳은 다름 아닌 아이슬란드입니다. 12월부터 1월까지 캐나다 옐로나이프의 기온이 최저 영하 30도를 웃돌고, 북유럽에 있는 오슬로 역시 최저 영하 10도를 웃도는 것과 달리 아이슬란드는 멕시코 만류 덕분에 북위 66도에서도 기온이 많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물론 영하 23도의 추위도 있었지만 보통의 기온은 영하 10도 밑으로는 내려가지 않는다고 합니다. 거기에다 화산과 빙하, 환상적인 블루라군, 수많은 영화의 배경이 된 아름다운 자연환경이 더불어 수많은 해외여행자의 여행 성지와도 같은 곳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아이슬란드는 천혜의 자연환경으로 유명합니다. 아이슬란드는 개발되지 않은 깨끗한 천연 그대로의 자연환경과 풍경 덕분에 최근 우리나라의 <꽃보다 청춘>을 포함해 여러 드라마와 영화 등의 촬영지로도 주목을 받고 있습니다. 이 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폭포인데 아름다운 황금폭포라 불리는 굴포스 폭포를 비롯해 스코가포스 폭포, 고다포스 폭포 등 아이슬란드 전역에 걸쳐 분포되어 있는 여러 폭포들을 만나고 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와 아메리카판이 만나는 싱벨리어 국립공원, 지열로 인해 땅속을 흐르는 지하수가 하늘로 높게 치솟는 간헐천인 게이시르, 모험가들이 찾는 빙하(스카프타펠) 트래킹까지... 아이슬란드를 모두 보기에는 18박 20일의 일정이 짧다고 느껴질 정도로 관광할 곳이 넘치는 나라였습니다.
아이슬란드의 비싼 물가로 인해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식당을 이용하기보다 마트에서 장을 봐서 숙소에서 요리해 먹는다고 합니다. 저 역시 비싼 물가를 이기지 못하고 주방이 딸린 호스텔 혹은 농장의 별장에서 묵으며 끼니를 해결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농장에 지어진 별장(Cottage) 숙박을 추천합니다. 왜냐하면 숙소 인근에 불빛이 없기 때문에 밤하늘의 별들이 매우 잘 보이며, 오로라 지수가 높은 날은 숙소 바로 앞에서 오로라를 볼 수 있는 행운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아이슬란드를 선택한 가장 큰 목적이 오로라였기에 여행 첫날 불빛이 적고 인적이 드문 곳에 숙소를 잡았습니다. 주변에서 볼 수 있는 불빛이라곤 밤하늘을 수놓은 별빛과 눈부시게 빛나는 초승달 뿐. 오로라를 기다리며 눈 위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노라면 고요와 적막이 나를 감싸 안아 영하 10도의 추운 바람마저도 포근하게 느껴지는 그런 밤이었습니다. 숙소에 도착해 처음 바라본 아이슬란드의 밤하늘은 이루 말할 수 없을 정도로 눈부셨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알리려는 듯 저마다 끊임없이 반짝이는 별들을 어떻게든 담아가고 싶은 마음에 카메라를 들이댔지만 결코 담기지 않는 자연의 아름다움을 눈에 그리고 마음에 담기로 마음먹고 카메라를 내려놓았습니다. 한참을 누워 이루마의 ‘회상’과 애덤리바인의 'Lost star'등 좋아하는 음악들을 별들과 함께 했습니다. 수차례 본 밤하늘이었지만 그 날 바라본 별들과 찬 공기와 눈부신 초승달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번 아이슬란드 여행에서 저는 4번 정도 오로라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처음 오로라를 만난 날은 그 빛이 오로라인지 도시에서 올라오는 불빛인지 가늠이 되질 않을 정도로 매우 옅은 빛이었습니다. 그 빛이 오로라였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지만 기대보다 약한 오로라의 모습에 적잖은 실망을 할 무렵 두 번째 오로라가 제게 다가왔습니다. 산 능선을 타고 옅게 나타난 초록빛은 어느새 온 하늘을 뒤덮어 넘실거렸습니다. 봄의 새순과도 같은 순한 녹색에서부터 사시사철 푸르른 소나무의 진한 녹색에 이르기까지 오로라의 빛은 쉴 새 없이 변화했고 저는 그저 아름답고 다채로운 우주의 선물인 그 빛을 바라보기만 했습니다. 왜 나는 그리고 우리는 자연이 주는 아름다운 별과 오로라에 감탄하는 것일까요. <우주이야기>의 저자인 토마스베리 신부님은 우리가 은하수를 응시하는 이유를 우리 자신을 탄생시킨 모체를 바라보는 것이라 표현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는 인간이라는 존재를 불러온 이 태초의 우주, 그리고 태초의 불꽃이라 불리는 거대하게 빛나는 무언가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그렇게 하늘의 별을 응시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