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의 마음 / 김민하
툭툭, 망치가 칠 때
아프다고 엄살 부리며
얼른 등 구부리는 못이 있다
살살 발끝만 넣고 힐끔 눈치 보다가
수건 한 장만 걸어도 툭, 떨어지는 못이 있다
꿋꿋이 참고 어깨까지 잘 박혀
뻐꾸기시계를 들어주는 못이 있다
꼭꼭 안 보이게 온몸 다 감춰
누군가 쉴 나무 의자를 만드는 못이 있다
다 마음먹은 그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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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밥그릇 / 김하
밤새 내린 비
개밥그릇에 고여 찰랑거려
목마른 강아지 혀 내밀다
빤히 바라보는 그릇 안에
웬 녀석 때문에 깜짝 놀라
내빼는데 목줄이 팽팽해졌어
가만가만 다가가 앞발로 칠까 말까
머리로 들이받을까 말까
망설이다 가장자리를 찔끔 핥다
혀끝으로 호로로 말아 올렸어
콧등에 올라앉은 물방울도 핥고
속눈썹에 매달린 한 방울까지 핥았지만
그 녀석은 찾을 수 없었지
괜히 사방을 둘레둘레하다
텅 빈 개밥그릇만
괜스레 길게 핥아보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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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값 / 송명원
과자 값이 올랐다
옷 값도 올랐다
떢볶이 값도 올랐다
모든 값이 다 오르는데
부처님도 어쩔 수 없었겠다
할머니랑 절에 갔더니
소원을 이뤄준다는
일 년 소원등
소원 값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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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속활자 전수관에서 / 전병호
섭씨 1,200도
쇳물이 끓는다.
거푸집에
쇳물을 붓는
활자장 아저씨 콧등에서
똑, 떨어지는 땀방울
쇳물이 식을 때까지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리면
마침내 활자장 아저씨가
씨앗을 쪼개듯 거푸집을 열고
활자 가지를 꺼낸다.
열매처럼 활자를 따서
한 자 한 자
쇠솔로 다음어 내놓으면
고로 불빛에
반짝,
눈을 뜨는 금속활자들
활자와 활자를 모아
책을 찍는다.
말씀을 담는다.
세상 사람들에게
말씀을 전하려면
얼마나 더 많은 활자를 만들어야 할까?
거푸집에서 다시 꺼낸
새 활자들이 반짝, 반짝
눈을 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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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치 없는 소매 / 김순영
할일이 많이 생기면
옷은
소매를 걷고 나선다
힘써 청소할 때
걷어 올리고
운동장 뛸 때도
걷어 올린다.
소매도 가끔
눈치 없을 때가 있다
싸우는 목소리보다
앞서 나서서
싸움판을 더 키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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