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리의 어원
현대 한국어에서 "누리"는 세상(world)을 의미하는 순우리말입니다. 그러니까 '한 누리'라는 이름이 넓은 세상을 뜻한다는 말은 틀린 말이 아닙니다. (물론 그 이름의 어원을 추찰해 보면, 조선시대의 눌이대 訥伊大, 신라시대의 노리부 弩里夫 같은 이름에 쓰인 [누리/노리]에서 비롯된 이름이란 걸 알 수 있습니다)
◾(1)고대의 인류는 넓은 곳을 가리켜 [놀/nor] 비슷하게 말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어 "누리, 나라, 내, 논, 너르다, 넓다" 같은 말은 모두 이 ]놀/nor]에서 분화된 말들입니다. 몽골어로 호수를 [노르]라고 하는데 역시 그 어원이 같으며, 일본어로 평야를 [노(の)]라고 하는데 역시 그 어원이 같습니다. 다시 말해, 같은 어원 [놀/nor]에서 발음과 의미가 세분화되면서 위와 같은 말들이 분화가 되어 나온 것입니다. "누리, 나라, 내, 논, 너르다, 넓다" 말고도 "늙다, 넉넉하다, 느긋하다, 높다, 너럭바위" 등도 모두 같은 어원 [놀/nor]에서 분화가 되어 나온 것입니다.
◾(2)이름은 짓는 사람이 의도한 바가 가장 먼저이고 그것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인식하는 바가 가장 크게 작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름에서 성씨는 고려하지 않습니다만, 지으신 분과 본인이 큰 세상이라는 뜻으로 알고 있고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해 준다면 그게 이름이 지닌 의미라 할 것입니다.
제가 이름에 대해서 주창하는 바는, 과거에 어떠한 말이었고 어떠한 이름이었던 것이 이런저런 변천과정을 거쳐서 현재와 같은 이름으로 정착되어 쓰이는지는 전혀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도 하지 않은 채 알량한 한자지식과 황당한 작명이론만 내세워 이름에 대해 함부로 떠들어대는 행위를 경계하고자 함일 뿐입니다.
(이름에 대해 떠들어대는 이들이 과연 옛날 우리 조상들의 이름에 대해 알아보려고 한번 생각을 해 본 적이나 있는지....... 그게 한심할 따름입니다)
님 의 2번 질문에 대한 답변이라면, "누리"라는 이름을 '세상'이라는 의미로 파악하는 것이 잘못된 건 아니다.......
다만, 그 변천사와 어원을 따져 본다면, 위와 같은 의미로 음과 의미가 세분화되어 언어분화가 이루어지기 전에는 "광대함, 노련함, 표준, 모범, 법률" 등의 의미를 나타내는 말로도 쓰였으며 그래서 사람의 이름에 아주 많이 사용되었던 바, 고구려와 신라의 왕들은 3명이나 [유리]라는 이름을 사용하였고, 신라 눌지왕의 이름 [눌지]도 [눌]을 사용한 이름이요, 여진족 "누르하치"의 이름에 쓰인 [누르] 역시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이름이며, 일본여성의 이름 "노리코"의 [노리]와 "유리코"의 [유리]역시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이름인 것입니다.
여기서 다 설명할 수 없지만, 러시아의 인명에 나오는 [유리, 예프, 네프, 노프...] 등도 같은 어원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이를 알고 사용하는 이름이라면 자연히 이름이 그러한 의미를 지니게 될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아주 넓고 높은 것을 일컫던 원시어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알고 사용한다면 "누리"라는 이름이 단순하게 world(世)의 의미라고만 생각하지는 않게 될 것입니다.
◾(3) 인류가 문자를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길게 잡아야 5천년 전부터입니다. 언어의 역사는 수십만 년이나 되지만 문자의 역사는 5천년밖에 안 되는 것입니다. 수만 년 수십만 년 전 인류가 사용한 언어는 같았을 것입니다. '중국어, 몽골어, 한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등으로 나누어지기 전에는 같았을 것입니다.
앞에서 잠깐 언급한 바와 같이 똑같은 어원 [놀/nor]에서 몽골어 "노르(=lake)" 일본어 "노(=field)"가 분화된 것이고, 한국어 "누리, 나라, 너르다, 넓다, 늙다, 높다"등이 분화된 것입니다. 다시 말해, 이들 언어가 모두 같은 어원에서 분화되었다는 얘기입니다.(원시인류와 그들이 사용한 언어는 같으며, 민족이나 그와 비슷한 개념을 들이대는 것은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말 [누리]를 한자로 음차 하는 것에 대해서는 답변하지 않겠습니다. 음차한 표기의 경우는 한자의 의미를 고려하지 않기 때문에 아무 글자나 써도 상관없습니다. 비슷한 음으로 쓴다면 "老里(노리), 樓里(루리)" 등으로도 쓸 수 있고 이들 중국어 老와 樓도 같은 원시어 [놀/nor]에서 분화된 말이라 할 수 있어 괜찮을 듯하지만 한국 한자음이 "노리, 루리"로 차이가 있어 마땅치가 않습니다. 세종대왕이 한글을 창제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꼭 필요한 경우에 한자로 음차해서 써야 한다면, 중국인들에게 음사(音寫)를 부탁하여 그것을 참고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