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원 진씨 시조설화
전라북도 남원 지역에서 남원 진씨의 시조인 진함조의 출생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이다.
조선 후기에 이도(李燾)와 최여천(崔與天)이 편찬한 연대 미상의 전라도 남원읍지(邑誌)인 『용성지』와 1994년에 발행된 『남원진씨족보』에 수록되어 있다.
남원 진씨는 1본(本)이다.
시조는 고려 현종 때 상서(尙書)와 좌복야(左僕射)를 지낸 진함조(晉含祚)이다.
진함조는 10살 때 이미 문장과 도덕에 뛰어났고, 천문과 수학에 조예가 깊다는 소문이 자자했다.
그래서 고려 현종이 진함조를 불러 궁궐에 머물게 하고 자신의 스승으로 삼았다. 진함조는 호부상서 벼슬을 하고 현종으로부터 진씨 성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용성지(龍城誌)』와 『남원진씨족보(南原秦氏族譜)』에 남원 진씨의 시조인 진함조의 출생과 관련해서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서기 9세기 말엽의 어느 이른 따스한 봄날에 교룡산의 정기가 모인 옥정(玉井)이라는 우물에서 좋은 기운이 나타나고 오색찬란한 무지갯빛이 일었다.
한 옥녀(玉女)가 옥정 우물가에 이르러서 보니 한 옥동자(玉童子)가 나무조각[木片]을 타고 우물 가운데서 노닐고 있었다.
옥녀가 가까이 가자 옥동자가 순식간에 숨어 버렸다.
이를 신기하게 여긴 옥녀는 옥정 가에 숨어서 동정을 살폈다.
옥녀는 옥동자가 다시 물 위에 나타나자 재빨리 동자를 맞아서 자세히 살펴보니 옥인(玉人)이었다.
옥동자의 얼굴은 백옥같이 희고 눈은 영롱하게 빛났다.
이마는 번듯하고 콧날이 잘생겼으며 입은 한일자로 다물고 손은 산듯하게 희었다.
옥동자의 나이는 열대여섯 살가량 되어 보였다.
그는 키가 훤칠하여 대장부다웠다.
이렇게 인연이 된 두 사람은 부부가 되어 그 곳에 잡고 살았다.
이 옥동자가 진성(晉姓)의 비조이고, 옥정은 진씨의 발상지가 되었다.
그리고 샘 이름은 ‘옥정’이라고 불렀다.
얼마 후에 옥녀가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니 그가 남원 진씨의 시조인 진함조이다.
「남원진씨시조설화」는 시조의 탄생을 통해 진씨(晉氏)라는 성이 생기게 된 내력을 설명한 성씨 유래담이다.
『용성지』에서는 채녀(采女), 옥동자(玉童子), 승목편(乘木片) 등으로 표현되고, 『남원진씨족보』에서는 옥동자를 ‘강탄(降誕)’이라 하고, 옥녀(玉女), 신조(神祖), 대장부(大丈夫) 등으로 기술하고 있다.
『용성지』와 『남원진씨족보』의 내용을 비교해 보면, 족보의 내용이 진함조의 출생을 좀 더 신비롭게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남원 진씨의 시조인 진함조는 옥동자와 옥녀의 결합으로 태어난다.
진함조는 수신(水神)과 지신(地神) 사이에서 태어난 아이라는 점에서 신화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남원진씨시조설화」는 시조신의 제의를 통해 지속적으로 전승되면서 여느 성씨시조설화와 마찬가지로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와 미래에도 살아 있는 신화의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이러한 설화의 전승은 남원 진씨만의 정통성과 역사성을 드러내며 씨족의 정신적 구심체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