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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도야 그따위로 우는 게 아니야
이 홍사
홍도야. 우는 게 왜 그따위야?
펑펑 울어버려! 더 서럽게.
순정? 그런 건 원래 없는 거야!
왜 느닷없이 홍도가 떠올랐을까? 홍도를 울린 적이 없는데? 홍도는 늘 울기만 했었나? 순정이란 걸 생각했기 때문일까?
순정? 순정이란 대체 뭘까? 홍도의 눈물을 생각하다가 잠깐, 말꼬리를 자르고 창밖으로 시선을 던졌다. 홍도는 보이지 않고 방콕에서 이륙한 비행기는 여객기지만 저공비행을 하고 있었다. 발아래 얕은 산야가 선명하게 보이는데 아직은 태국의 영역인 모양이다.
뭔 군용 정찰기도 아니고 이렇게 낮게 날아가는 겨?
기내 차창에 비딱하게 이마를 대고 내려다보는 시야엔 열대 나라의 황톳빛 산과 들이 무심하며 고요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겨우 칠팔십 남짓한 좌석에 승객 삼사십 명을 태운 작은 비행기는 고도를 높일 생각이 없는 건지, 자고로 여객기는 고도를 높여야 안전하다고 했는데 아무래도 비엔티안까지 저공비행을 할 모양이다.
미얀마, 양곤에서 출발해 방콕 돈므앙에서 갈아타고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가는 길이다. 비엔티안은 가본 적이 없다. 그래서 설레는 도시, 인터넷으로 뒤진 내용 외에는 아는 게 전혀 없다. 라오스에서 잘 나간다는 친구, 정말 잘 나간다는 친구 하나가 있다는 이유로. 연락도 없이 막연하게, 잠시 미얀마를 떠나야 한다는 심리적 중압감에 선택한 도시가 비엔티안! 아는 것이라고는 그 친구의 전화번호와 비엔티안을 라오스 현지 발음으로 위양짠이라는 불린다는 사실이 전부다. 만약 친구를 못 만나게 되면 혼자 이곳저곳 기웃거리며 사나흘 머물다가, 한국으로 향하든지 미얀마로 다시 돌아가든지, 그건 차차 생각하기로 하고.
고도를 높이지 않으니 발아래 흘러가는 풍경 속에 길이나 어지간히 큰 건물을 형체를 어렴풋이 파악할 정도다. 선명하게 잘 그려진 한 장의 지도 위를 날아간다는 기분! 창밖으로 비행 고도가 얼마쯤 되는지 어렴풋이 파악할 수 있을 정도. 보통 여객기는 고도, 일만 피터 상공으로 날아가는데 조종사가 저공비행에 자신이 있는 모양인지 계속 낮게 날고 있었다.
열대지방에 건기가 되니 내려다보는 풍경이 마음을 사로잡을 정도는 아니지만 그다지 나쁘지도 않다.
*
왜 느닷없이 홍도를 떠올렸을까?
머릿속 어디선가 새어 나와 질펀하게 가슴을 적시는 기억을 거스르니 그 아이, 아니 그 처녀의 순정을 생각하고 있었던 거. 과연 그 처녀에게 순정이 있는 걸까? 그놈의 순정이란 대체 뭔가?
청순한 감정을 순정의 정의를 치부하고.
그 처녀, 차라리 소녀, 아니 홍도라고 명명하자. 그 소녀를 만난 건 일주일 전쯤이었다. 일주일 전이라면 그 소녀, 홍도의 생각에 일주일이나 시달렸다는 얘기인데.
쌧꼬라고 했다. 나이가 몇이냐고 물었을 때 소녀는 거침없이 쌧꼬!
숫자를 뱉는 소녀의 입을 보고 살짝 놀라며 가슴이 뜨끔했다. 쌧꼬? 미얀마 말로 열아홉이라는 얘긴데, 육십 대 이방인 할아버지에게 나타난 열아홉. 분명히 듣고 왔을 터인데 어떤 모양새든 간에 사귐, 혹은 교제를 전제로 나타난 여자가 열아홉 살이라니.
잠시 영문 없이 치를 떨었는데, 이건 아무리 외국이고 경우가 없고 이해가 불가한 나라지만 과연 있을 수 있는 일인지? 성립이 가능하기나 한 일인가?
믿기지 않아 거듭 물었지만 쌧꼬라 했다. 어쩌면 정애 씨도 그 소녀에게 나를 소개해 준다며 부르기 전에 나이를 잘못 들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정애 씨에게 내가 나이를 잘못 들었을 수도 있는 문제고.
흐넷쌔꼬. 이게 스물아홉인데, 정애 씨가 잘못 말을 했거나, 내가 잘못 들었거나 그게 그다지 중요한 문제는 아니고 쌧꼬, 열아홉!
어느 면에서 훑어도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도대체 남들 눈에 내가 어떻게 보였으면 열아홉 살짜리가 교제를 목적으로 나타날 수가 있는지, 타국이라 익명성은 거론하지 않고 접어두더라도 이번 일은 체통 관리를 잘해야 한다는 교훈쯤으로 여겨지는데, 분명히 이건 타인의 불찰이 아니라 대체 내가 정애 씨의 눈에 어떻게 비쳤는지, 그걸 먼저 짚고 반성하는 방향으로 시선을 두어야 할 일이다.
첨엔 가정부를 구한다고 했는데, 가정부 에모가 사정이 바뀌어 그만두지 않겠다는 쪽으로 마음을 굳히면서, 구하려던 사람이 가정부의 용도에서 애인이나, 맘을 줄 데이트 상대 정도로 전환되거나 변형된 것.
그게 정애 씨의 입에서 살짝 변한 거 같은데, 열아홉 살짜리 소녀가 나타나므로 덧나거나 가슴에 입은 내상은 내 몫으로 고스란히 굳었다.
그 아픔을 안고 느닷없이, 생각지도 않은 길을 나서게 되었다.
*
방콕에서는 어지간히 바빴다.
환승 시간이 두 시간, 충분할 거라 여겼는데 담배 한 대 피울 짬도 없이 이 작은 비행기의 마지막 승객으로 올랐다. 항공권을 예약하면서 다구간으로 끊을 때 방콕에서의 환승은 늘 조심하고 거듭 살펴야 한다.
방콕은 공항이 둘이다.
수완나품과 돈므앙, 돈므앙 공항은 옛날 공항이고 수완나품 공항이 새로 생겼는데, 수완나품 공항에 내려서 돈므앙 공항에서 갈아타는 경우가 있다. 그런 경우는 저가 항공료가 싸다 하더라도 두 공항 간에 이동 거리와 필요한 교통비, 소요 시간을 계산하면, 정말 끔찍할 정도인데 인터넷의 전산은 그런 오류를 완벽하게 걸러 내지 못하고 그대로 발권하는 일이 더러 있다.
두 공항 다 국제공항이라 연결편에서 그런 일이 가끔 일어나기도 하는데, 그 점을 눈여겨 살핀 다음, 다시 확인하고 항공권을 끊었다.
승객이 비교적 적은 돈므앙 공항에서 바로 환승을 하는 것이니 그리 바쁘지 않을 거라 느긋하게 생각했다. 환승이 두 시간의 여유라면, 입국했다가 다시 출국 수속을 밟고 타더라도 담배는 한 대 피우고 갈 여유가 있을 거라고 느긋하게 여겼는데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돈므앙 공항은 입국 심사대에는 입국 심사하려는 사람들로 발 디딜 틈이 없을 정도. 입국 심사대에서 줄은 구부러져 청사 밖까지 길게 늘어서 있었다. 방콕에서 갈아타는 비행기가 같은 항공사의 비행기라면 캐리어는 그대로 두고 몸만 빠져나와 환승 통로를 따라가, 입국이나 출국 절차를 거치지 않고 갈아타면 캐리어는 자동으로 갈아타는 비행기에 실려 목적지 공항에 도착한다. 그러나 이번에는 연결편이 같은 항공사의 비행기가 아니라 방콕에서 입국 절차를 거쳐서 짐을 찾고 바로 출국장으로 가서 갈아타는 것인데 입국장부터 길게 늘어선 줄!
뭐 이런 일이 다 있어?
그리 복잡하지 않을 거라 여겼는데 저가 항공을 선호하는 여행객이 넘쳐났는지 아니면 오늘따라 그렇게 복잡한지 비행기에서 내려서 캐리어를 찾고 입국하는 데만 한 시간이 넘게 걸렸다.
다시 출국 수속을 밟고 비행기를 갈아타야 하는데 출국장도 여행객이 네 줄이나 섰는데 길게 늘어져, 그 뒤에 줄을 서서 기다리다간 비행기를 못 탄다. 그렇다고 줄 앞자리에 끼어들 수는 없는 노릇.
그럴 때 쓰는 방법은 맨 앞으로 가서 출국 심사하는 작자에게 부탁하는 게 아니고 그 안에서 얼쩡거리는 검색대의 보안요원 하나를 부른다.
말이 안 통하면 한국어로, 야 인마! 일루와! 그렇게 마구 불러도 상관없다.
무슨 일인가 다가오는 작자에게, 나는 환승객이다, 비행기가 연착하는 바람에 시간이 없다. 영어가 젬병이라도 그 정도는 누구나 할 수가 있겠다. 그러면 티켓을 보자고 해서 시간이 얼마나 남았는지 들여다보고, 바로 항공기 승무원들이나 귀빈이 들락거리는 패스트트랙으로 안내한다. 그곳으로 들어가면 출국 수속과 보안 검색이 단 오 분도 걸리지 않는다.
미안하기는 뭐가 미안해? 누구나 그런 일을 당할 수가 있는데, 배려하고 생각해야지.
오늘도 그렇게 해서 간신히 비행기를 탔으니, 탑승구를 찾아가며 흡연실 앞을 통과했지만, 담배 한 모금 피울 짬이 없었다.
담배?
쌧꼬를 만났던 그날을 생각하니 입안이 텁텁한 게 담배가 더 당기기도 하는데.
*
일주일 전쯤 쌧꼬를 만났던 날의 기억을 뒤적이면, 그날, 점심나절이 좀 지났을 무렵이었다. 덩애 씨의 집에 한 여자가 와서 기다린다는 말을 듣고도, 닭이 길가에 버려진 폐비닐을 뒤져 모이를 쪼는 걸 한참이나 보고 있었다. 양곤의 변두리 무허가 판자촌, 폐비닐을 발톱으로 긁어서 뒤적이는 건 닭이 아니라 홍도?
난데없이 왜 자꾸 홍도가 계속 입에 맴도는지?
또 맨입을 손으로 쓰다듬었다.
홍도? 이 비행기 안에는 홍도가 없는데, 어디를 둘러보아도 홍도는 없을 건데.
그런 말을 중얼거리면서도 눈은 비행기 안의 통로, 앞과 뒤를 다시 한번 훑었다.
쓰레기장을 뒤지는 닭의 날카로운 발톱, 쪼는 일보다 찾는 일에 능숙한 닭 다리에 눈길을 주는데 돌아가신 할머니가 눈에 고였다. 할머니는 닭 다리를 싫어했다. 고이 두지 못하고 자꾸 파헤치는 습성을 지녔다고. 내가 자란 지방에서는 그렇게 파헤치는 걸 두고 ‘뻐든다’ 고 했다. 발톱으로 파헤친다는 뜻인데, 어떤 어원에서 파생된 말인지 모르겠다. 할머니는 닭이고 사람이고 온전히 다독이지 못하고 뻐드는 건 정말 고약한 버릇이고 습성이라며 다리를 잘라야 한다고 했다.
가장 물가가 싸다는 나라 미얀마.
경제도시라고 불리는 예전의 수도. 양곤에서 좀 떨어진 변두리엔 무허가 판자촌이 어지럽게 난립하고 있었다. 전부가 땅 주인의 허락도 없이 난립한 판자촌, 아니 판자가 아니라 대나무에 야자잎으로 얼기설기 엮은 움막인데, 우기의 침수를 대비해서 원두막 형태로 허리춤만큼이나 올려 지었다. 두세 시간이면 뚝딱 지을 정도로 허술한 움막들이다.
저곳에서 또 누구는 오늘 밤 아이를 만들겠지.
정애 씨를 비롯한 아줌마들이 둘러보고 있는 저 땅을 내가 선택한다면 저 땅 위에 들어선 서너 개의 움막을 비워주어야 할 터.
그런데 땅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큰 도로가 가깝다고 했으나, 북향이고 무엇보다 땅값이 터무니없이 비싸다. 이 나라도 이제 부동산에 눈을 떴다. 양곤 주위의 논밭은 전부가 콘크리트 말뚝을 박아서 경계를 만들어 우리나라의 구획정리 지구처럼 땅을 판다고 난리다.
온 들판에 콘크리트 기둥을 박아 구획을 지은 땅.
저걸 다 팔면 미얀마를 통째로 사고도 남지 않을까?
저 땅에 집을 다 지으면 미얀마 전 국민이 들어와 살아도 남을 터인데?
농사를 짓는 것보다 말뚝을 박아 놓고 하나에 얼마라는 금액의 숫자가 더 매력적인 모양. 말뚝을 박아둔 땅은 가격이 형성되어 있으나 거래가 거의 없는 실정인데 나는 땅을 하나 샀었다.
땅을 샀으면 그만이지, 또 바꾸어야 한다는 건 뭔가?
세상에 뭐 이런 나라가 다 있어?
땅을 계약하고 사나흘 간 이 소리를 얼마나 뱉었는지 모르겠다.
무허가 판자촌이니 쓰레기차가 들어오지 않는지 잡초가 무성한 길섶엔 군데군데 쓰레기장이 되었고 무허가 움막에서 키우는 닭들은 쓰레기를 뒤져 모이를 찾고 있었다. 어미 닭 한 마리가 데리고 다니는 병아리가 쪼기 좋도록 비닐을 뒤져 먹이가 있을 만한 곳을 발톱으로 헤집고 있었다. 장끼처럼 줄무늬가 있는 병아리는 퍼뜩 보아도 일곱 마리였다.
일곱?
일곱이라는 숫자가 잠시 입에 맴돌았다.
바꾸어 줄 땅 일곱 개나 된다고 했으니, 그날 중으로 다 보고 결정해야 했다.
보고 있는 땅은 영 아니니, 빨리 다른 땅을 보러 갔으면 좋겠는데 움막이 들어선 땅을 둘러보는 정애 씨를 비롯한 여편네들은 무슨 청사진을 굽는지 밭두렁에 둘러서서 하는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지고 있었다.
안 들어도 알만한 이야기.
저쪽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온다는 말과 저쪽에는 시장이 형성된다는 말일 터. 저쪽이란 구획정리를 하지 않는 변두리를 말하는데 지금 잡초와 가시넝쿨만 무성한 곳이다. 여기 땅을 보러 오면 지주들은 반드시 그 말을 하곤 하는데 내가 보기에는 저쪽에 시장과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려면 오십 년은 넘게 기다려도 완공을 보기가 힘들 터인데, 또 그 이야기를 하며 청사진을 굽는 것이겠지.
땅을 샀다가 잘못된 땅, 등기가 넘어오지 않는 땅이면 계약금을 되돌려받으면 그만이지, 또 다른 땅으로 바꾸어 준다는 건 뭔가?
다른 땅으로 바꿀 것 없이 계약금 전부를 돌려달라고 했더니 땅을 판 여자는 이미 그 돈은 다 썼다. 다른 땅을 팔아야 계약금을 돌려줄 수 있다. 그게 육 개월이나 일 년이 걸릴 수도 있다.
우리의 상식으로는 이해되지 않는 일이다.
그런 일이 연일 속출하는 나라. 생각하니 한숨이 나온다.
그날 말도 하기 싫어 땅을 보러 간 무리에서 좀 떨어져서 닭을 보고 있는데, 한 아이가 패악을 부리며 찢어지는 비명처럼 울어 돌아보니 회초리를 든 엄마가 아랫도리를 발가벗은 아이를 다그치고 있었고 울던 아이는 제 할머니로 보이는 여자의 등 뒤로 몸을 숨기며 더 패악적으로 울어댔다. 회초리를 든 아이의 엄마도, 할머니도 남루한 차림으로 눈길을 주기가 민망할 정도였다.
전부가 때에 찌든 풍경.
가난한 곳에서 울음소리가 자주 들리는 건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똑같고, 어린 시절에 어머니의 회초리를 피해 나도 할머니 그늘로 숨어들곤 했었지.
그래, 아이야! 거기가 안전지대야.
변두리 무허가 판자촌 꼬질꼬질한 아이도 할머니의 등 뒤가 안전 구역이라는 걸 아이는 알고 있는 듯했다.
그런 사소한 풍경에 눈을 주고 마음이 사로잡혀 있을 때가 아니었다.
얼른 다른 땅을 보러 갔으면 좋겠는데, 일곱 개나 된다는 땅을 다 보고 선택해야 하는데, 제일 좋은 땅이라며 데려간 곳인데 입지 조건을 아무리 둘러보아도 그 땅은 아니었다. 부동산으로서 어떤 매력도 지니지 못했는데 땅값은 오지게 비싸다. 입으로만 형성된 땅값, 팔 사람이 들먹이는 충족 요건, 부근에 아파트 단지가 들어오고 시장이 형성된다는 뻔한 이야기, 그게 가식적으로 현실이 되어 땅값이 오르려면 오십 년 아니, 백 년을 기다려야 할 터. 얼른 자리를 뜨고 싶은 마음뿐인데, 여편네들은 속이 타는 마음을 모르고 있는가?
홍도야 울지마라?
그따위 책임감 없는 소린 하지 않을 거다.
울고 싶을 때 울어야지.
그러나 그렇게 숨어서 울지 말고 더 서럽게 펑펑 울어버리라니까.
가슴이 저리는 건, 홍도의 눈물 때문이 아니다.
더 이상 자신이 없다. 더 이상 상처받을 자신이 없다. 그 나라에서 만나는 사람마다 상처를 안기고 갔다. 나하고는 정말 궁합이 맞지 않는 나라인가?
상처받은 가슴을 들추어 보는 시간이 잦아졌다.
그건 마치 게릴라 성 향수(鄕愁)처럼 문득문득 이는데 스스로 감당할 수가 없을 정도로 자괴감이나 자기 연민을 안기고 간다. 상처를 안기고 가는 것들. 말꼬리를 씹어보지만, 온통 상처에서 덧난 생채기를 보듬을 기운마저 없고, 마음속은 온전한 곳이라고는 송곳 꽂을 자리가 없을 정도가 되었는데, 이젠 누굴 만나면 나에게 해가 되는 사람이 아닌지, 상처를 안길 사람인가. 그것부터 살피게 되는데 처음 만나는 사람 겉모습으로 그런 걸 읽어내는 혜안이 내게는 없다.
정애 씨는 안다.
이 땅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았는지. 그래서 상처에 위안이 될 만한 사람을 골라서 소개해 주는데 그날도 정애 씨의 집에는 한 여자가 기다리고 있다는 말을 들었으나 별로 감흥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쌧꼬, 열아홉!
열아홉 살짜리를 소녀라고 해야 하나? 아가씨라고 불러야 하는가? 아무튼 여자가 기다리고 있어 마음이 조급했었다. 그때 열아홉 살짜리라는 걸 알았다면 정애 씨의 집으로 들르지 않고 바로 숙소로 돌아갔을 터인데, 땅을 둘러보던 중에 전화를 받은 정애 씨가 한 여자가 와서 기다린다고만 해서 내심 궁금해하면서 한 편으로는 마음을 줄 수 있는 대상이 아니더라도 상처를 받지 않았으면 하는 은근한 바람이 바탕화면에 깔려 있었다.
정애 씨의 말로는, 칫뚜 야바래! 메인마 야바래! 애인도 괜찮고 마누라를 만들어도 상관없다는 말을 농담처럼 했었다. 그래서 더 기대했었고. 누군가 기다린다고 하면 슬슬 맘이 급해지기 마련인데, 미얀마 사람들은 전혀 조급해 하지 않는다.
사람이 기다린다는데?
정애 씨는 남이 기다리든 말든 상관하지 않고 느긋하게 땅을 둘러보고 다른 복부인들과 얘기를 나누고 있었다. 정애 씨 그래도 한국을 자주 다녀봐서 시간 약속의 개념을 지녔다지만, 그럴 때 보면 뿌리는 미얀마다.
정애 씨는 한 사장의 부인! 다른 말로 직역하면 현지처!
한 사장이 한국서 이혼했는지 사별했는지 모르겠지만 홀아비인 한 사장을 만나고, 한 사장이 정애라고 한국 이름을 지어주었는데 우리로서는 혀가 돌아가지 않는 미얀마 이름을 버리고 정애 씨라고 불리고 있다.
정애 씨의 본명은 쑹뫼쇠제우? 쑨뫼쎄재우, 뭐라고 했는지, 성조를 지녀서 역시 한 번 들으면 잊어버릴 미얀마 이름이다. 아무튼, 미얀마에서 맘 줄 곳이 없다는 게 정애 씨의 마음에 걸렸는지, 그게 그 복부인에게 연민으로 작용했는지?
수시로 여자를 소개해 주었는데, 정애 씨는 지금 미얀마에서 하는 일이 예전의 한국의 복부인과 같은 모양새다. 땅을 사서 등기를 넘기지 않고 웃돈이 조금이라도 붙으면 바로 팔아버린다. 지금, 그 나라에서는 그게 통한다. 한 사장은 지금 한국에 체류하고 있다. 미얀마에서 벌이로는 생활비가 안 되기에 잠시 한국으로 돌아가서 일하고 있는데, 들어보니, 양계장의 닭을 도계장으로 운송하는 작업을 하며 닭을 수천 마리 통째로 사서, 넘기면 닭값 차액과 운송비에서 짭짤하게 떨어진단다.
한 사장은 그렇게 벌고 정애 씨는 이곳에서 한 사장이 보내주는 돈으로 땅을 주물럭거리는데 어떻게 보면 가장 이상적인 방법으로 재산을 구축하는 셈. 코로나와 쿠데타 이후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경제 제재를 가해서 지금은 달러가 폭등한 시점에 한국에서 벌어서 이 나라에서 부동산을 사면 금세 부자가 될 거 같은 이치다.
그러나 그건 나와는 상당한 거리를 지닌 일이고 나는 역으로 투자 시점을 반대 잡아 미얀마 화폐가 우리나라보다 비쌀 때 투자했으니 지금 달러로 환산하면 거의 반 토막이 났다. 해외 투자란 늘 환차에서 생기는 손익을 염두에 두고 해야 하는데 그 환차의 전망을 잘못 짚었다. 미얀마에 쿠데타가 터져 미국과 유럽연합에서 경제 제재를 가할 줄이야 누가 알기나 했겠는가? 어떻게 생각하면 운이 맞지 않았다고 말할 수도 있는 문제고. 그렇게 생각하면 차라리 맘 편한 일이고.
정애 씨는 내가 어느 시점에 투자라는 명목으로 거대한 자금이 들어와서 지금 얼마나 처참하게 된 상황이라는 걸 낱낱이 알고 있으며, 그걸 자투리땅이라도 사고팔아서 복구하라고 여기저기 매물로 나온 땅을 보여주는데, 복구? 본전으로 올라선다는 건 현실적으로 아무래도 어렵겠고. 여기저기 둘러보며 마땅한 땅을 사겠다고 마음먹은 건 본전이 아니라 현지에서 들어가는 생활비라도 조금 충당하고 싶은 생각이었다.
워낙 물가가 싼 나라이니, 가정부를 둘이나 데리고 생활하더라도 큰돈이 드는 건 아니지만, 계속 한국 계좌에서 환치기 통장으로 보내 여기서 미얀마 돈으로 받아 생활비를 충당한다는 게 해외 투자자의 심리로서 허락이 되는가? 벌어서 보내지 못하고 적은 금액이지만 자꾸 빼내 온다는 게는 허락하질 않아 약간의 여윳돈으로 만만한 땅을 둘러보기도 했는데.
땅을 사면 정애 씨처럼 바로 되돌려 파는 일차원적인 방법이 아니라 미얀마 사람들이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공법으로 가장 싸게 진입로 다리를 놓고, 터를 돋우기 전에 경계 담장과 건물 기초공사를 동시에 하면서 철근으로 연결하면 굳이 물이 많은 땅에 기초 터파기를 하지 않아도 건물이 견고하며, 동시에 기초공사와 담장 기초를 싸게 할 수 있으며 튼실하고, 누구라도 눈독 들일만큼 예쁘게 나온다.
그렇게 부가가치를 높여서 팔면 땅값에 차액이 좀 생기고 기초공사에서 약간의 이윤을 볼 수가 있으며 무엇보다 매수자의 입질이 많이 들어온다는 점. 그걸 노리는데, 어쨌거나, 그건 땅이 확보된 뒤의 이야기고 그날은 땅을 결정짓지 못했다.
봐야 할 일곱 개 중에서 겨우 네 개를 보고 그중에서 가장 괜찮다고 생각되는 땅을 염두에 두고 눈도장을 찍고 돌아왔다.
점심을 먹고 바로 나가서 거의 네 시간을 돌아본 뒤에 들어왔는데, 정애 씨의 집에는 그때까지 여자, 아니 홍도가 기다리고 있었다. 정애 씨와 내가 들어서자, 여자는 엉거주춤 일어서서 고개를 까딱했는데, 콧날이 뭉툭한 버마족이었다. 머리에 옅은 갈색으로 염색하고 분홍 립스틱까지 발라 멋을 부렸다지만, 어딘가 모르게 촌티가 나고 어색했으며 입성은 맵시라기보다 남루했다.
셋이 마주 앉은 순간에 나는 이미 마음의 고개를 저었다. 한눈에 보아도 사귀거나 교제할 대상은 아니었다. 적어도 내가 마음을 주거나 상대가 내 마음을 풀어줄 여자는 아닌 듯했다.
누구의 소개를 받았는지 정애 씨도 홍도에 대해서 모르고 있었다. 이것저것, 여자에게 물어보고 내가 못 알아듣는 듯한 말은 통역을 해주었는데, 묻는 말은 아주 일상적인 거. 가족이 몇이며 고향이 어디냐, 나이가 몇이며 학교는 어디까지 나왔느냐, 아주 기본적인 걸 묻고 있었는데 내 귀에 탁, 걸리는 부분이 있었다. 그게 바로 나이였다.
쎗꼬! 열아홉이라는 말인데, 속으로 뜨끔해서 내가 잘못 들었나 싶어 되물었다.
쌧꼬?
쎗꼬!
대답은 단호했다.
얼굴이 후끈 달아오른 내가 뜨끔해하거나 말거나 진실 씨는 이것저것, 오빠는 직업이 있느냐? 아버지 나이가 얼마냐? 구석구석 캐물으면서 정작 내 눈이 휘둥그레질 말은 바로 결론!
이 꼬리아 쎄야, 미얀마말로 쎄야는 원래 뜻은 선생님이나, 사장님, 나이가 지긋한 어른, 호칭이 어중간한 아저씨는 모두가 쎄야라고 불리는데, 아무튼, 이 쎄야를 따라가서 맛있는 것도 사 달라고 하고, 네가 예쁘게 굴면 옷도 사줄 것이며 용돈도 줄 것이다. 집에 가정부가 있으니 하는 일은 없고 그냥 같이 다니면서 놀아주는 게 일이라고 못을 박아버렸다는 것.
진실 씨의 그 말에 마주 앉아 있던 처녀의 낯빛이 살짝 변하는 걸 순간적으로 감지했다. 그렇게 변하는 얼굴을 보고 순간적으로,
세상에 뭐 이런 경우가 다 있어? 내 의사는 전혀 반영하지도 않고?
그렇게 뜨악해하면서도 참말로 귀찮고 번거로운 일이 하나 생기겠다는 짐작. 가슴 속에 깊이 막혀버린 뭔가를 뚫어주거나, 풀어줄 대상을 요구했는데 이런 여자, 아니 소녀는 오히려 짐을 안겨준다고 생각하면서도 부디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랐다.
그 땅에서 받은 상처가 너무 많기 때문일까? 지금은 누구를 만나면 그것부터 짚어보게 된다. 누굴 만나서 받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른 이에게 또 상처받는 날의 되풀이. 상처가 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처녀와 정애 씨가 주고받는 말을 들으면서 마신 커피는 잔이 비었다. 커피를 마시고 담배를 한 대 피울 동안 나는 단 한마디도 거들지 않았다. 한참 후, 정애 씨는 면접이나 심사를 다 마쳤다는 듯이 턱짓으로 출입구를 가리키며 말했다.
이만하면 괜찮네요. 어디 데리고 가셔 데이트를 재미나게 즐기세요.
아니, 다음에 만나자고 하며 적당히 얼버무리고 돌려보낼 일이지, 이 나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서 뭔 데이트를 즐겨요?
처녀가 알아듣지 못하는 한국어로 난감함을 표하자, 정애 씨는 어눌한 한국어로 상관없다고 하면서 처녀를 힐끗 돌아보며 흐먓뽕디 있지? 라고 미얀마말로 묻고는, 거 봐요? 괜찮다니까, 하는 눈빛을 보냈다.
흐먓뽕디란 우리나라의 주민등록증쯤으로 불러야 할 신분증인데 열여덟 살이 되면 나온다. 그러니까, 성인이라는 말인데.
날도 저물어 가는데 저 나이를 데리고 어디를 가서 뭘 한담? 좀 예쁘거나 귀여우면 수양딸로 삼아 뭐라도 거두어 주면서 마음을 풀 수도 있다고 하겠지만, 아무리 봐도 수양딸의 대상으로는 맘이 열리지 않을 홍도였다.
한나절이나 기다렸는데, 어디 가서 뭐로 보상을 해주지? 숙제처럼 여기며 일어서서 나오는 뒤통수에 대고 정애 씨는 확인 사살과도 같은 한마디를 날렸다.
호텔로 바로 데려가도 상관없어요!
그건 홍도가 알아들을 수 없는 또렷한 한국어였다. 그 말에 신발을 신다가 잠시 주춤했다. 홍도야 울지마라. 속으로 그렇게 외쳤던가?
정애 씨의 말에는 대답도 하지 않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서 나와 승용차 운전석에 앉으니, 홍도는 뒷자리가 아닌 옆자리에 올라앉았다. 그 차는 일본에서 중고로 들어온 차라 운전석이 우리나라와는 반대편에 있는데 마땅히 그래야 하는 것처럼 차를 휙 돌아서 옆자리에 앉았다. 당연하다는 듯이, 어쩌면 당돌해 보이기까지 했는데.
어디로 갈 것인가?
배가 고프지 않으냐고 물으며 입을 뗐다.
차가 출발하고 조금 지난 뒤였다.
점심나절에 와서 기다렸으니, 점심을 거른 게 자명한데 체면을 차리는지 괜찮다고 했다. 무슨 이야기를 듣고 찾아와서 그때까지 기다렸는지 모르겠지만, 그런 걸 자세하게 물을 만큼 현지어는 능통하지 못하다. 그래서 늘 누구를 만나면 학교를 몇 년 다녔나? 묻고 영어로 소통 가능한가를 슬쩍 짚어보는데, 이미 이 처녀는 정애 씨가 그걸 물었으니, 영어는 언감생심. 학교는 사 학년을 마쳤다고 했으니, 물라당짜웅! 우리나라로 따지면 초등학교를 겨우 마친 셈인데 그 과정을 마쳤다면 영어는 못한다.
그렇다면, 어눌하기만 한 현지어로 대화해야 하는데 소통이나 제대로 될는지? 의심하며 일단 입을 푸는 셈으로 나이를 물었다. 나이는 이미 알고 있었으나 다시 입을 풀기 위함이었다. 열아홉이라 했고, 그다음에 물은 말은 부모님은 어디 계시느냐는 말이었다. 그런데 시골에서 예전에 우리의 누님들이 무작정 상경하듯이, 그렇게 온 처녀인 줄 알았는데 놀랍게도 바로 양곤, 저쪽 매오클라 다리 건너에서 부모님과 여동생만 넷인데, 일곱 식구가 산다고 했다.
묻고 싶었으나, 부모님의 나이는 묻지 않았다. 틀림없이 나보다 적을 것이기에 그걸 물으면 할 말은 지극히 제한될 것이고 그다음부턴 말투부터 행동까지, 모든 게 어색해지게 된다.
입성이 하도 남루해서 옷이라도 하나 사줘야겠다는 마음으로 저쪽에 깐따야 쇼핑센터를 염두에 두고 어디를 가고 싶으냐고 물었더니 고개를 갸웃하며 ‘짜익대로 로웃바!’ 좋을 대로 하라는 말을 했는데 어디를 가든 상관없다는 뜻이니 깐따야 쇼핑센터를 향해 우회전했다.
저속으로 운전하며 처녀의 얼굴을 힐끔힐끔 살피며 본격적인 탐색전에 들어갔다. 나랑 어떤 관계로 사귀고 싶으냐고 물었다. 사실은 그게 가장 중요한 관건이기도 했다. 분명히 교재가 목적이라는 듣고 왔을 터이니 재확인하는 게 당연했다. 열아홉과는 어떤 목적으로 교재를 해야 마땅하고 자신이 나를 돌아보기에 흉하지 않을까? 그걸 확실히 짚어야 내 말과 행동이 자유롭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물었는데 열아홉 처녀는 그 질문에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니마 (여동생) 오케이?
무야부라? (안돼?) 그럼. 따미 (딸) 오케이?
헐라? (그래?) 그럼 메인마! 메인마 얄라? (그래? 그럼 메인마 되겠어?)
메인마라는 말은 마누라나 아내를 지칭하는 현지어인데 그 말에는 피식 실소까지 흘리며 살짝 고개를 저었다.
오케이! 쩌노 띠래, 칫뚜! 오케이? (좋아! 내가 알겠다. 애인! 좋아?)
그 말에 열아홉 살짜리가 힐끔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이고는 멋쩍은 듯 미소를 지었다. 칫뚜란 미얀마 말로 애인을 뜻한다. 이미 정애 씨에게 다 듣고 온 줄은 알고 있다. 사귀면 옷도 사주고 그렇게 간절히 원하는 핸드폰도 사줄 것이며 용돈도 넉넉히 줄 것이라고 말했을 것이다. 분명히 그렇게 듣고 왔을 것인데, 딸을 하자고 했으니 조금 실망하기도 했겠지. 애인이 되어야 저를 위해 돈을 잘 쓰는 게 한국인이라는 말도 어디선가 이미 듣고 온 듯했다.
일단 깐따야 쇼핑센터를 향했다.
그곳은 여러 종류의 식당과 옷과 잡화 등 여러 가지가 있는 쇼핑몰이다. 그곳에 가면 미얀마 여성의 옷은 비싸지 않다. 여름 나라의 얇은 옷이라 골라잡아도 한국의 담배 서너 갑 가격 정도면 골라잡을 수 있다.
쇼핑센터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지하에 있는 식당가로 먼저 내려갔다. 아무래도 홍도가 기다리는 동안, 점심을 걸렀겠다 싶어 식당이 있는 지하로 내려섰다. 이 나라의 식당이란 청결도 측면에서 따지면 하도 더러워서 밥이 넘어가지 않을 지경인데 그 쇼핑몰에 있는 밥집들은 그런대로 좀 나은 편이다. 하지만 현지인들은 잘 찾지 않을 정도로 가격이 비싸다. 지하에는 작은 식당이 여럿 모여있다. 분식코너부터 고깃집까지. 즐비한 식당 중에서도 깔끔해 보이는 밥집으로 들어서는데 열아홉 홍도가 내 옷깃을 슬쩍 잡아당겼다.
왜 그래?
들어서던 식당에서 발을 빼고 물러나며 물었더니, 검지로 입을 살짝 가리며 어양 재찌래! 비싸다는 말이다. 비싸도 그냥 비싼 게 아니고 어양재찌래라 했으니 엄청나게 비싸다는 말이다.
그래?
비싼 음식은 나도 좋아하지 않는다. 예전 선현들의 입고 먹음은 간소하게 하라는 말씀을 따르는 게 아니라 비싸다 싶으면 희한하게도 거부감이 일어 맛을 모를 정도로 식대에 예민하다. 다른 사람들이 싼 음식을 아주 맛있게 먹고 있으면 내게 묻곤 한다. 맛있느냐고, 맛있다! 그 대답 뒤에 반드시 따라오는 질문이 있다. 그건 바로, 대체 못 먹는 게 뭐가 있느냐는 질문인데, 그때마다 내 대답은 한결같다.
못 먹는 음식은 내겐 딱 두 가지가 있는데, 안 줘서 못 먹는 것과 없어서 못 먹는 것뿐이라고.
그럴 때마다 한바탕 웃고 넘어가긴 하는데, 아마도 이 처녀도 나랑 같은 유형인 모양이라 생각하고, 바로 옆의 식당으로 들어섰다. 한국의 돼지국밥과 비슷한 음식을 시켰는데 홍도는 국그릇에 코를 박고 정신없이 퍼먹었다. 역시 점심을 거르고 나를 기다렸던 게 확실했다.
비엔티안이 가까워지는지 비행기는 고도를 더 낮추었다.
비엔티안에서 잘 나간다고 소문난 친구는 얼마나 실속있게 해외사업을 했을까? 다녀온 친구들 입에서 끝내주더라는 말이 나올 정도면 어느 정도인지.
참말로 막연하기만 한데.
발아래 들판 가운데, 창고인지 건물의 윤곽과 아마도 메콩강의 상류이지 싶은데 강줄기가 선명하게 드러날 정도의 고도로 날아가며 속력에 제동을 거느라 비행기 날개 위의 바람막이를 들었다가 낮추곤 했다. 좌석이 바로 날개 위, 중간지점이라 그렇게 제동하는 장치를 고스란히 볼 수가 있었는데, 비행기에 왜 AIR(공기나 바람)이라는 말이 꼭 들어가는지 실감할 수가 있었다. 홍도의 가슴에 든 바람에도 저런 제동장치를 설치할 순 없는가.
식사를 마친 다음에 순서처럼 따르는 쇼핑 과정의 이야기는 생략하자.
굶고서 한나절이나 기다린 홍도였기에 그 기다림에 따른 대가는 확실히 해주어 한국 늙은이의 이미지를 추락시키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그 쇼핑센터를 돌아다니며 옷가지 두어 점과 신발, 그리고 마음에 든다는 핸드백까지 사주었다. 그건 진실 씨가 이미 그럴 거라고 말했는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그렇게 쇼핑하는 가운데 특별한 게 있었다면 홍도가 돌아다니는 동안 내 팔짱을 끼고 따라다녔다는 점인데, 그건 장사치에게 다정한 오누이처럼 보이기 위한 눈가림으로 여겨질 수도 있겠다 싶어 대수롭잖게 여겼는데 정작 놀란 건 홍도의 집이 매오클라 다리 건너라고 해서 쇼핑을 끝내고 그쪽 방면으로 돌아서 가면 되겠구나, 하고 다리 건너서 소방서 앞에서 물었다.
집이 어디야? 어디에 내릴래?
그 말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왜 내려야 하느냐는 듯이 바라보는 홍도의 시선에 오히려 낯이 뜨거워지면서 했던 말.
그렇지. 그게 빠졌구나!
머리를 긁적이며, 소방서 앞에서 차를 세우고 주머니를 뒤져 현금 삼만 짯을 내밀었다. 공무원 평균 월급 이십만인 나라에서 삼만이면 결코 적은 돈은 아니다.
일단 돈은 받아 쥐었지만, 내릴 생각은 하지 않고 시선만 가로등이 없는 컴컴한 도로에 박은 열아홉 살.
어디 내릴 거야? 여기 내려도 되는 거야?
왜 호텔로 가지 않는데요?
열아홉 살짜리 홍도의 입에서 나올 수 있는 말이라고 상상하지 못했다. 잠시 내가 굳었던가, 약간의 시간이 지나서, 깊은 심호흡을 하고 내뱉은 다음에 겨우 입을 열었다.
왜 그런 생각을 하니? 호텔에 왜 가야 하는데?
호텔에 가면 삼만이 아니라 십만, 운이 좋으면 십오만을 받을 수가 있다는 서슴없는 대답에 또 내가 전율했다. 나라가 망하면 제일 먼저 여자가 이웃 나라에 몸 팔러 간다는 대수롭잖게 흘려들은 말, 비수가 되어 뇌리에 꽂혔다.
사실이었구나.
잠시, 긴장감이 돌았는지 모르겠지만, 울먹이던 홍도가 차 문을 난폭하게 열고, 쇼핑백을 챙겨서 문은 닫아주지 않고 소방서 옆 컴컴한 골목으로 뛰어 들어가는 모습이 비현실적으로 보였다.
쟤가 분명히 울며 뛰는 거지?
점무늬의 하얀 원피스! 그날 사준 옷이었는데, 옷 가게에서 어울리는지 입어보고는 그 길로 벗지 않은 원피스!
그 하늘거리는 원피스가 비엔티안 왓따이 국제공항에 착륙할 때까지 눈에 어른거렸다.
다음날 진실 씨에게서 전화가 왔다. 어제 왔던 열아홉 살짜리 그 처녀가 와서 기다린다고. 그다음 날 또 진실 씨에게서 연락이 왔다. 왜 어제 오지 않았느냐고, 그 처녀가 또 와서 기다리는데.
말없이 전화를 끊고 허공에 대고 토하듯이 읊조렸다.
홍도가 뭐 그따위로 울어? 펑펑 울어버리라고 하셔!
비행기가 완전히 멈추고 선반에 달린 사인 등이 켜졌다. 이젠 일어서도 좋다는 뜻인데 나는 일어서지 못하고 한 소절 노랫말의 가사를 마저 더듬고 있었다. 홍도야 울지 마라. 첫 대가리에 사랑을 팔고 산다고 했었나?
사랑을 팔고 산다?
팔고 사는 그게 무슨 제품인데? 재질은 뭐, 플라스틱이야?
그걸 생각하고 있다가 승객이 빠져나간 통로로 다가오는 여승무원과 눈이 마주쳤다. 너 인마! 왜 일어나지 않느냐는 듯한 저 눈빛.
일어나면 될 거 아니야? 이 예쁜 가서나야!
아무래도 오늘 라오스에서 맹활약한다는 친구를 만나면 한국인 노래방에 가서 홍도야 울지 마라를 거하게 한 곡조 때려야 할 것만 같다.
비엔티안에도 분명 한국 노래방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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