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雞林歷史紀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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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천년고도 서라벌 순례 서라벌의 백제계 석탑 ㅡ 남산 늠비봉 오층석탑
계림 추천 0 조회 4 26.08.28 03:59 댓글 18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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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05:59 새글

    첫댓글 포석곡 제6사지에 위치한 경주 남산 늠비봉 오층석탑은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지역에서 백제계 석탑 양식이 엿보이는 매우 독특하고 이례적인 문화유산이다.

  • 06:00 새글

    용장사곡 삼층석탑과 유사하게 자연 암반을 다듬어 하층 기단으로 삼고, 그 위에 단층 기단을 올렸다. 남산 봉우리 정상에 우뚝 서 있어 경주 시내를 한눈에 조망하는 뛰어난 경관을 자랑한다.

  • 06:00 새글

    얇고 넓게 펼쳐진 옥개석(지붕돌)의 형태와 처마 끝의 표현 등에서 백제 석탑 특유의 경쾌하고 날렵한 조형감이 드러난다.

  • 06:01 새글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10세기 무렵)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 전형 양식에 백제계 기법이 융합된 고려시대 석탑의 전개 과정을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무너져 있던 부재들을 바탕으로 2002년 발굴조사를 거쳐 현재의 5층 석탑 형태로 복원되었다.

  • 06:03 새글

    백제 석탑의 조형 감각과 양식적 특징을 고스란히 품고 있는 늠비봉 오층석탑은 신라 전형 석탑(예: 불국사 석가탑)의 둔중하고 두꺼운 옥개석과 달리, 지붕돌이 얇고 넓게 퍼져 있어 경쾌하고 날렵한 느낌을 준다. 이는 부여 정림사지 오층석탑이나 익산 미륵사지 석탑 등 백제 석탑 특유의 수평적 개방감을 연상시킨다.

  • 06:04 새글

    신라 석탑은 보통 4~5단의 명확하고 각진 층단식 옥개받침을 두는 반면, 늠비봉 석탑은 옥개받침의 단수가 적고 높이가 낮아 경사가 완만하다. 이는 목조건축의 삼량가 구조나 백제계 석탑의 간결한 받침 표현 방식을 따른 것이다

  • 06:04 새글

    옥개석 아랫면의 처마선이 평평하게 나가다가 끝부분에서 살짝 위로 들리는 미세한 반전을 보인다. 목조 아치나 백제 석탑에서 흔히 발견되는 부드러운 곡선미가 반영된 부분이다.

  • 06:05 새글

    1층 탑신석에 비해 2층 이상부터 탑신석의 높이가 급격히 줄어들면서, 얇은 옥개석과 어우러져 위로 갈수록 날렵하게 수렴되는 백제계 탑 특유의 체감률과 유려한 상승감을 보여준다.

  • 06:06 새글

    지붕돌의 우동마루 선을 뚜렷하고 두툼하게 두어, 실제 기와지붕의 추녀마루나 용마루가 주는 입체감과 질감을 강조했다.
    ​옥개석의 두께 자체가 백제탑 특유의 얇은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에, 자칫 상부 지붕이 너무 납작하거나 평평해 보일 수 있다. 이때 중앙의 두툼한 우동마루 선이 지붕에 선명한 음영과 입체적인 음양감을 부여하여 석탑 전체에 시각적 안정감을 더해준다.

  • 06:07 새글

    우동마루의 두꺼운 경사 선은 빗물이 지붕에 고이지 않고 처마 끝으로 원활하게 흘러내리도록 돕는 실제적인 배수 기능을 수행한다.

  • 06:08 새글

    신라 전형 탑의 단순한 경사면과 달리, 우동마루를 두툼하게 도드라지게 표현하는 기법은 통일신라 말기~고려 시대에 백제 양식을 계승한 석탑들(예: 부여 정림사지 탑의 전통을 이은 지역 석탑들)에서 자주 나타나는 핵심적인 조형적 특징 중 하나이다.

  • 06:08 새글

    신라 석탑의 구조적 특징(자연 암반을 이용한 단층 기단 등) 위에 백제 석탑의 섬세한 조형 요소가 결합된 것은,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기로 넘어가는 이행기에 지역 간 양식 교류가 활발히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귀중한 학술적 지표이다.

  • 06:09 새글

    신라의 중심지였던 서라벌에 백제계 양식이 녹아든 석탑이 세워진 배경에는 시대적 변천, 장인의 이동, 그리고 문화적 융합이라는 역사적 맥락이 자리 잡고 있다.

  • 06:09 새글

    이 탑은 신라가 멸망한 후인 통일신라 말기에서 고려 초(10세기 무렵)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후삼국을 통일한 고려는 신라, 백제, 고구려의 문화 요소를 적극 수용했다. 이 과정에서 한반도 전역의 문화적 교류가 활발해지며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에도 백제계 조형 양식이 전파될 수 있었다.

  • 06:10 새글

    삼국통일 이후 신라가 국가적인 대형 사찰과 석탑을 건립할 때 옛 백제 지역의 뛰어난 석공과 장인들을 대거 동원했다. 후대에도 백제 석탑의 전통을 이은 석공 가문이나 기술 집단이 경주 지역으로 이동해 중수나 탑 건립에 참여하면서 자연스럽게 기법이 반영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 06:11 새글

    8~9세기 이후 신라 석탑은 전형적인 이중 기단의 삼층석탑 형태에서 벗어나 다층화(5층, 7층)되거나 지역색을 띠며 양식적 다양화를 겪었다. 경주라는 전통적 틀 안에서도 새로운 조형감을 시도하려는 경향이 백제계의 경쾌한 양식과 결합한 것이다.

  • 06:12 새글

    신라 특유의 '자연 암반을 기단으로 활용하는 산악 불교 양식'(용장사곡 삼층석탑 등)에 백제계 석탑의 '경쾌한 지붕돌과 우동마루 선'이 결합하여, 남산이라는 험준한 자연 지형에 가장 잘 어우러지는 조형미를 만들어냈다.

  • 06:12 새글

    늠비봉 오층석탑은 단순히 신라 문화의 단일한 산물이 아니라 삼국의 기술과 미의식이 통일 이후 세월을 거쳐 서라벌 땅에서 하나로 융합되었음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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