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 계신 분들 중에 지금껏 살아오면서 한번도 점을 본 적이 없는 분?
점이 잘 맞던가요?
불경기일 때 가장 장사가 잘되는 집이 어떤 집일까요?
점집이라고 합니다.
왜 그럴까요? 점은 불안과 밀접한 관계가 있기 때문입니다.
과학시대라서 점집이 줄어들 것같지만 점점 더 늘어나는 추세라고 합니다.
지성의 원천인 대학가 앞에서도 점집이 성업중이고 동남아나 우리나라의 정치인들에게는
전속점쟁이가 있을 정도입니다.
몇해전 점쟁이 한분과 우연히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습니다.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그 양반이 자기 집에 오는 손님들에 대하여 말하기를
자기 집을 찾는 손님의 반수가 천주교신자라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떻게 아느냐고 물으니 들어오면서 왠지 쭈삣거리고, 손가락에 반지낀 자국이 있어서 안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당신 천주교신자지’ 그러면 놀라서 ‘어떻게 아셨어요? 영험하시네’ 한다는 것입니다.
어쨌건 점을 본 신자분들은 결국 고해성사를 보시는데 이를 대하는 본당신부들의 모습은
여러 가지입니다.
어떤 양반은 야단야단을 칩니다.
하느님을 모독하는 대죄를 지었다고 말입니다. 보속도 왕창왕창 줍니다.
다시는 점집에 안 간다는 서약을 받는 분도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점을 보신 분들에 대하여 관대한 편입니다.
왜냐? 몇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는 얼마나 불안했으면 그 비싼 돈을 주고 거기까지 찾아갔을까 하는 생각때문입니다.
기도해도 하느님이 무슨 확실한 말씀을 주시는 것도 아니고,
본당신부를 찾아가서 물으면 기도나 하라 그러고,
답답하고 불안한 마음에 나중에 고해소에서 야단맞는 한이 있어도 점집을 찾아서
확실한 사람의 소리를 듣고 싶어하는 분들을 비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점집을 찾는 분들 중 상당수가 신경증적 불안증세를 가진 분들인 때문에 심하게 질책해서는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만약 본당신부가 심하게 야단치면 그 증세가 더 심해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본당신부가 왜 저렇게 난리법석인지 알아보기 위해 점집에 또 간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야단치기보다는 무엇 때문에 불안이 생겼는지 불안에 대한 치료를 해 주어야 하는 것입니다.
어쨌건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는데 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귀찮은 감정들 중에 불안이란 감정이
선두주자이기에 오늘은 불안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하여 깊이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불안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정상적인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우리가 태어날 때부터 가지고 나오는 불안입니다.
이 불안은 앞날이 분명하지 않은데서 생기는 것입니다.
이런 불안은 누구나 가지고 있는 것이며 건강한 사람이라면 적당한 불안감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무리하지 않고 조심하며 살게 되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자기는 온전히 하느님을 믿고 살기 때문에 하나도 불안하지 않다고 한다면
그 사람은 믿음이 좋은 것이 아니라 비현실적이거나 어떤 면에서는 병적인 상태에 놓여 있다고
보아도 무방한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정도만 있으면 좋을 불안감이 너무 지나쳐서 일상생활을 하지 못할 정도가 되는 것을
병적인 불안, 신경증적인 불안이라고 하는데 이 병에 걸린 분들이 대개 점집을 찾는 것입니다.
이 신경증적 불안에 걸린 분들의 몇 가지 특징은
자기 앞날을 생각할 때 아주 최악의 경우만을 생각하는 습관이 있습니다.
그것도 아주 영화 한 편을 만드는 것입니다.
몇해전 수능시험이 끝난 후 한 주부가 울면서 상담을 청했습니다.
아이가 시험을 못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게 그렇게 울 일이냐고 했더니 화를 내더군요.
애를 키워보지 않아서 부모마음을 모른다나요.
그런데 이야기를 듣다보니 그 엄마가 한편의 영화를 만들고 있더군요.
아이가 시험을 못 보았으니 틀림없이 쪽박을 차고 나중에 걸인신세로
지하철에서 노숙자신세가 될거다 라고 말입니다.
생기지도 않은 일을 최악의 경우까지 생각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경증적, 병적 불안입니다.
신경증적 불안을 가진 분들은 남의 말을 잘 듣지 않고, 자기 병을 자기 스스로 키우는 습성이 있습니다. 그래서 ‘걱정도 팔자다’ 라는 말을 듣기도 하시는데, 왜 그렇게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사서
하는가 하면 걱정을 하지 않으면 더 안 좋은 일이 생길지도 모른다는 생각 때문에 아주 걱정을
달고 사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분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순조롭게 잘 돼도 걱정하는 요상한 습관을 가지고 계십니다.
그럼 이런 신경증적 불안에 시달리는 분들은 어떻게 해야 마음의 병을 고칠 수 있는가?
한 마디로 말하자면 걱정스런 생각에서 손을 떼셔야 합니다.
왜냐?
생각이 불안을 일으키고 몸의 병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생각을 내려놓고 그냥 즐거운 마음으로 살려고 노력하면 되는데
현실적으로는 신경성불안을 가진 분들은 이게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런 분들께 권해드리는 것이 묵주기도입니다.
단조롭게 반복되는 기도문을 따라가면서 걱정스런 생각들을 이겨내는 기도가 바로 묵주기도인 것입니다.
제가 병원에 있을 때, 중환자실 앞에 있는 보호자의 모습에서
신자인 분과 아닌 분의 차이를 보곤 하였습니다.
신자가 아닌 분들은 정말 안절부절하시면서 자신뿐만이 아니라 같이 있는 사람들까지도 힘들게 합니다. 그런데 신자인 분들은 조용히 앉아서 묵주기도에만 전념하시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면서 ‘환자나 본인에게 필요한 것은 걱정된다고 야단법석하는 것이 아니라 기도구나’ 하고
생각하곤 하였습니다.
그래서 불안에 시달리는 분들께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을 때까지
단조로운 묵주기도를 길게 바칠 것을 권합니다.
15단이면 웬만한 불안감은 다 가라앉습니다.
도반 홍성남 마테오 신부님 (서울 가좌동 주임신부님, 평화신문 상담, 전 평화방송 상담, 가톨릭심리학회)
첫댓글 맞습니다,,우울증에 잠못이루는 분에게 진정으로 묵주기도를 권햇더니 평화로워지면서 잠을 잘 들수가 있었다네요,,화가 머리끝까지 차올라도 묵주1단만 바쳐도 가라앉습니다,,정말 좋은기도입니다..
저역시 어려움에 처할 때는 그냥 묵주기도를 합니다....결과에 상관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