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지호수로
재택근무에 들어 이틀째인 십이월 넷째 목요일이다. 학생들은 어제 아침나절 학교에 잠시 들려 대학수학능력시험 성적표를 교부받았다. 성적에 따라 수시든, 정시든 자신이 지원하는 대학에 무난히 합격하길 바랐다. 하루 일과에서 논술 2시간, 고전읽기 2시간이 든 날이었다. 원격수업을 해야 하기에 학생들을 화상으로 만났다. 줌에서 스피커 육성과 채팅으로 몇 가지 안내를 했다.
내년 삼월까지 두어 달을 실속 있게 보내주길 바랐다. 코로나로 바깥활동 제약이 따르지만 집안에서 각자 나름의 시간을 잘 활용했으면 싶었다. 한국어 능력시험, 한국사 능력시험, 영어 공부와 한자 익히기, 컴퓨터 활용 능력, 운전면허 필 시험 등에 대비한 책을 펼쳐 보라고 했다. 자신이 진학하게 될 대학이 정해진 친구는 그 대학에 맞추어 학업 계획을 세워 잘 실천하십사고 했다.
학생들과 화상으로 만난 재택근무를 마쳐 놓고 집 근처로 산책을 나섰다. 아파트단지에서 밖으로 나가니 메타스퀘어 가로수 갈색 잎은 거의 떨어지고 일부만 달려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 낮은 아파트단지를 지나 초등학교 앞에서 용지호수로 향했다. 의창도서관이 자리한 언덕 편백나무 숲으로 들어 오솔길 따라 걸었다. 숲길에 마스크를 쓰고 나처럼 삼림욕을 하는 이들이 있었다.
편백나무 숲길에서 호숫가 산책로로 내려섰다. 도심 복판 물이 맑은 호수는 언제 봐도 시원스레 탁 트였다. 수면에는 겨울 철새 쇠물닭 여러 마리가 떼 지어 날아와 헤엄쳐 다녔다. 깃이 모두 새카맣고 덩치는 작았다. 산책객과 가까운 호수 가장자리까지 나와 물갈퀴가 달린 발가락으로 헤엄치는 모습이 귀여웠다. 사람이 가까이 가도 놀라 날아가지 않아 어쩌면 비둘기처럼 보였다.
호숫가 산책로는 숲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걷고 있었다. 당국에서는 한 방향 걷기를 권장하는 안내문을 걸어 놓았다. 호수 둘레길을 시계 반대 방향으로 걷도록 계도했다. 산책로가 넓긴 하나 맞은편에서 오는 이와 부딪히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요새처럼 코로나 감염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적절한 홍보인 듯했다. 산책 나온 이들은 모두 마스크를 낀 채 묵언보행 중이었다.
용호동 상가와 높은 아파트에 가려 응달진 곳은 얼음이 얼어 빙판이었다. 호숫가 줄지은 벚나무는 낙엽이 지면서 봄에 필 꽃눈은 점지된 채 나목으로 겨울을 나고 있었다. 아직 해가 지기는 일렀는데 비음산 위 동녘에는 동짓달 초아흐레 달이 걸려 있었다. 상현에서 만월로 채워져 가는 낮달이었다. 통일관이 가까운 호수 동편 가장자리엔 쇠물닭 네 마리가 얼음 위에서 놀고 있었다.
호수 가장자리 수련이 자라는데 얼음이 얼면서 잎이 보이질 않았다. 부들과 달뿌리풀과 같은 습지 식물들은 시드니 지저분해 보였던지 말끔히 잘라 흔적이 없었다. 호수 수면에는 연인이 탔을 무빙 보트 한 대가 유유히 떠 다녔다. 야외 조각 작품이 세워진 잔디밭을 지나니 수질 정화장치가 나왔다. 호수의 물이 고인 채 썩어가지 않도록 어디선가 늘 새로운 물이 유입되고 있었다.
호숫가 둘레길을 세 바퀴 돌았더니 하루해가 저무는 즈음이었다. 아까 거닐었던 편백나무 숲 언덕으로 다시 올랐다. 6.25참전용사를 기는 빗돌과 창원유허비가 세워진 공원이었다. 산마루를 따라간 끝에는 창원대종각이었다. 한 해가 가고 오는 섣달 그믐날 자정에 종로 보신각처럼 서른세 번 종을 쳐대는 곳이다. 세밑인데 일주일 뒤 새해맞이 타종 행사는 코로나로 하지 않을 듯했다.
종각에서 소나무가 선 서쪽을 바라보면 낙조가 아름다운 곳이었다. 봉암다리 사이 무학산으로 넘어가는 해였다. 그런데 근년에 낮은 아파트를 재개발해 고층을 올려 저녁놀을 볼 수 없게 되어 아쉬웠다. 소나무와 높은 아파트 동과 동 사이로 놀과 함께 하루해가 저무는 붉은 해가 살짝 보였다. 발길을 돌려 의창도서관으로 내려서 집으로 향했다. 내일은 성탄절에 이어지는 주말이다. 20.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