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2월 설 연휴,
하나도 새로울 것이 없는 일상들이 터억 버티고 서 있는 토요일이다
한 나절을 저당 잡히러 간다 저 청정한 길 바닥에,
이렇게 길을 나섰다
촌년, 서울에 상경 한지 채 일 이년이 안되는 터라 가볍게 길을 익히기 위해
몇 번의 걷기를 들락거리는 사치를 누렸지만 이번 길은 달랐다.
어쩌면 한 번도 몰랐을 뻔한 운명들이 길위에 놓여 있었다
지하철에 익숙치 못한 촌년에게 이미 목요걷기에서 부터 마천행을 타라고 일러 주던
어슬렁님 조셉님의 면면한 우정에서 깊은 신뢰의 가족애가 묻어나고...행여 도 다른 길로
샐까봐 저으기 염려하는 눈빛들, 이렇게 출발부터 설레였다
길들은 고왔다
천 만 년의 역사속에서도 변함없이 길을 내 주고 있었다
허물어지면 허물어 진 채로 새로 생기면 새로 생긴 대로...자박자박 걷던 서울 근변에 이런 촌락스런 곁 길들이
있는지 참으로 놀랐다. 엎어질 듯 오르락 거리던 일자산, 쑤욱 내려와 앉은 이성산성의 얉지 않는 산을 훒는 동안에도
몰아 쉬는 가뿐 숨결만큼 산이 풍기는 정기는 다채로왔다. 이 정월 섣달에 섬섬히 펼쳐진 낙엽을 밟던 길!!
소녀시절의 천지사방 날아 다니던 나비같은 몸짓으로 걸었다.
아아 그 낙낙히 앉았던 소나무 한그루,
그아래 펼쳐진 백제의 옛 흔적들, 폐사지 만큼 폐성도 일파만파로 역사의 눙한 감정을 불러 일으키기 충분했다.
산세에 눌리어 적요하게 밀려오는 삼국 이전의 조상들의 넋이 먼 먼, 고생대로부터 바람에 실려오고 있었다.
휘어지고 부러진 것이 어디 역사 뿐이랴마는 숨결 어린 흔적조차 고이 간직한 돌무더기 하나하나가 다 저렇듯
정겨운 것을 어쩌랴
공감이 부르는 감미로움이었다.
해다진 들길을 타박타박 걸었다 온갖 슬픔들이 가슴에서 들녘으로 쏟아지고 있었고
말수가 줄어 든 우리는 듬성듬성 서로의 감회를 건드리지 않았다. 말 없이 애궂은 땅에만 시선을 박고
어스럼 길의 애잔함을 꾹꾹 삼키고 있을때 조셉님이 소리쳤다.
-노을보세요!!
그대, 보았는가
그 미사리 들녘 뚝방에 서 서 한 마디 비명도 없이 아파트 사이로 숨져가던 노을을!!
그 붉디 붉은 노을 한자락이 우리를 삼켰다.
컥, 숨이 멎을 만큼 누구는 침묵하고 누구는 깊이 울고 있었고 누구는 소리 질렀다.
가슴에 노을 만큼 뻥한 구멍이 뚫리길 시작하고 땅거미는 내리고 또 누군가 가르키는 손끝에서 고라니도 뛰었다
고라니였을까?
컹컹짖는 개들의 소리도 잠길 어둠이 곧 밀어 닥치고 물밀 듯이 아름답던 덕소의 그 잔잔한 여울들이 눈밑까지
차 올랐다. 어둠이란 묘하여 사람의 감정을 더욱 이완시킨다.
곁에 선 누군가를 더욱 어여삐 보이고 앞 서 걷는 그대가 더욱 믿어워 지는걸 어쩌란 말인가
우리는 그 어둠을 무리지어 걸었다.
누구하나 불평하지 않고 달뜨지 않은 채, 어둠과 함께 풀밭을 헤치고 들 길을 뚝방 길을 농노를 걸었다.
아무 것도 보이지 않던 어둠이 아주 친숙한 벗처럼 동무 되었을 때, 간혹 멀리서 오는 차량의 헤드라이트마저
반가울 지경이었다.
어둠에게 뒤쳐진 벗들을 기다릴 동안 서로 염려를 해 주며 아주 끈끈한 애정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어둠이 우리를 결속시킨 탓이리라
어둠과 지친 다리와 배고픔이 일시에 몰려 와 있을즈음 누군가 소리쳤다
_상일역이다
또 누군가 소리쳤다
_ 상일역, 와 밥 먹자
듣지도 보지도 못한 상일역이 그렇게 반가울 수 있다니, 상일역이 그렇게 희망이었다니,
허기가 부끄럽게 몰려오는 욕정처럼 몸을 휘감았다. 밥...
발걸음이 나비처럼 가벼웠다.
문명의의 불빛이 보이고 누군가가 설명했다.
마천쪽에서 상일쪽으로 한 바퀴를 돌아 목적지에 도착하는 것이라고..
지도를 폈다. 혼자의 생각으론 어림도 없는일, 이 기막한 길을 디뎌왔단 말인가?
저 시멘트를 가르고 흙먼지를 일으키며 마른 땅 언 땅 조심스레 디디며 일곱시간을 유구히 걸었단 말인가
도착하니 8시 5분,
곱창 집에 앉아 검뎅이 볼에 묻었는지도 모르고 한 숟가락 더 먹겠다고 사투를 벌이던 어줍짢은 본능,
먹는 것에 목숨 건 촌년을 옆자리에서 안쓰럽게 지켜 보며 낮 달처럼 술을 드시던 갈매기님의 호기,
디와이님의 발 빠른 배려와 진선미님의 재치도 별미였고 반찬이었다.
표정하나 흐트려지지 않는 우리의 캡틴 신배드의 깃발은 오늘, 하늘에 꽂혀 있었다.
훗날,
고비사막이나 타클라마칸이나 사하라에 앉아 나는 말하리라
오늘의 자죽들이.
오늘의 길 동무들이 날 이 곳에 인도했노라고 당당히 말하리라
흙길에 감사하고 해 저문 서녘에 감사하며 말 없이 마음을 동여 맸던 그대들을 바람 결에 말하리라
벗이라고,
****
쥔장님, 설은 잘 보내셨는지요?
조선일보에 간간히 나가는 걷기의 기행 중...후기를 적어 본 것에요.
아름다움 세상천지에 깔려 있지만 내 맘은 항상 그 곳에 묻혀 있어요.
카페 게시글
벨라 자작글
그 노을 한자락, 그대 보았는가(둔촌역~일자산 ~이성산성~미사리~상일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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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글을 읽으며 점점 기쁜 마음이 들었습니다. 늘 상투적인 말들에 약간의 피로감내지 노여움(?)이 알었다는 것을 알게 하였습니다. 낯설게 보기라고 할까요 신선감을 주는 님의 글귀가 나를 기쁘게 하였습니다. 어쩌면 혀끝에서 아이스크림을 녹이는 기분이랄까...결코 촌년스런 표현이 아닌 그 샤프함에 박수 보냅니다.마돈나님 !!! 어찌 보내시나요 궁금하고 조금은 그립기도 하네요 ^^*종종 글 올리시어 겨울철의 난롯가 열기, 여름철의 에어컨 바람이 되어 주십시오 ^^* 감사합니다.
쥔장의 그 허허로운 미소가 제겐 더 없는 그리움입니다. 늘 유령처럼 들락거립니다. 참지 못 할 지경에 이르면, 오롯이 그리운 남쪽을 향해 토합니다...오늘은 정동극장에서 예원중,고의 발레, 한국무용공연을 보고 돌아오는길...뮤지컬, 연극에 흠씬 빠지며...미치도록 미치는 곳 입니다. 그래도 나의 넋은 그 곳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