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2월 08일“3분의 기적”
(하루 3분의 말씀 묵상을 통해 당신의 삶에 기적을 체험하세요!)
성령의 열매 다섯번째 _ 자비
제목: 기독교의 자비는 어떻게 다른가요?
[갈라디아서 5:22~23]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누가복음 6:36] 너희 아버지의 자비로우심 같이 너희도 자비로운 자가 되라
🍒오늘은 성령의 열매 다섯번째 '자비'입니다.
‘자비’라 하면 타종교의 고유명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자비는 자기들만의 전유물인데 왜 남의 것을 도용하느냐는 방송을 본적이 있습니다.
타종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자비는 어떻게 다를까요?
https://youtu.be/FHtHcVOTCec
🍀존 뉴튼(1725~1807)은 런던에서 태어나 11살 때 지중해 무역선의 선장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바다에 처음 나갔습니다.
뉴튼은 사역자가 되기를 바랐던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를 져버리고, 큰 부를 얻기 위하여 잔인하기 이를 데 없던 아프리카 노예무역선 그레이하운드 호의 선장이 되었습니다.
그는 노예들을 물건처럼 사고 팔며 돈을 벌면서 도덕과 양심을 비웃고 종교를 조롱했습니다.
어느 날 밤 그레이하운드 호는 엄청난 폭풍우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그가 잠을 깨어 보니 선실에 물이 가득 차 있었고 배의 옆 부분이 파손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밤새도록 펌프로 물을 퍼냈습니다. 9시간 동안, 그는 선원들과 함께 배가 가라앉지 않도록 모든 수단을 다 동원했지만 가망이 없었습니다.
그는 임박한 죽음 앞에서, 어렸을적 들었던 성경말씀을 떠올리며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주여, 우리 모두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그는 자신의 죽음과 심판이 두려웠고 만일 하나님이 정말 살아계시다면 자신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음을 생각하며 최악의 상황을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뉴튼의 영혼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하나님은 자비를 받을 가치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자비를 베푸셨고, 그의 기도는 까마귀 울음소리 같았지만, 주님은 멸시치 않으시고 그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존 뉴튼과 모든 탑승원들은 살아남았습니다.
그는 폭풍이 몰아치던 대서양에서의 그날 밤에 나타난 하나님의 자비를 결코 잊을 수 없었습니다.
이 일을 통해 그는 어떠한 죄인이라도 품어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자신의 기도조차 들으시고 응답하시는 하나님의 존재,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경험했습니다.
그는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한 후 노예 무역을 그만 두고, 하나님의 종이 되었습니다.
그는 추악하고 더러운 범죄 가운데서 있었던 자신을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일생 간직하며 자신의 삶에 일어난 하나님의 놀라운 기적과 은혜와 사랑에 기초하여, 유명한 찬송가 405장인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를 썼습니다.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네🎵
뉴튼은 자신의 묘비에 다음과 같은 글귀를 적어달라고 유언하였습니다.
“한 때 이교도였으며 탕자였고 아프리카 노예상이었던 존 뉴튼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풍성하신 자비로 말미암아 용서받고 크게 변화되어 마침내 성직자가 되었으며, 자신이 그토록 오랫동안 부인했던 바로 그 믿음을 전파하며 버킹검에서 16년 간을, 올니 교회에서 27년 간을 봉사하였다."🌱
[신명기 4:31] 네 하나님 여호와는 자비하신 하나님이심이라 그가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며 너를 멸하지 아니하시며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잊지 아니하시리라
우리 하나님은 참으로 자비로우신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이 무궁하시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결코 진멸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자비를 베푸시고 회복시켜 주십니다.
성령의 다섯 번째 열매는 ‘자비’입니다.
자비는 국어 사전에 의하면 사랑하고 불쌍히 여김, 남을 깊이 사랑하고 가엾게 여김, 영어로는 mercy에 해당합니다.
성령의 열매인 자비를 영어성경 NIV에서는 kindness, 친절로 명시했습니다.
‘자비’라 하면 타종교의 고유명사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타종교의 자비와 기독교의 자비는 어떻게 다를까요?
타종교에서는 자비를 통해서 복을 받는다고 말하며, 자비는 사랑과 어여삐 여기는 마음, 조건 없는 베품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사랑과 어여삐 여기는 마음과 조건없는 베품은 어디서 나올까요?
혼자 수행을 하고 도를 닦으며 마음을 비우면 저절로 생길까요?
한번 비우면 그것이 영원히 비워진 채로 있을까요?
비워진 만큼 또 다른 탐심과 욕심이 생기지 않을까요?
기독교의 핵심을 표현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은혜와 자비입니다.
하형록 목사님은 은혜와 자비의 차이를 명확하게 구분해 주셨습니다.
“받을 수 없는 것을 받는 것이 은혜(grace)이고, 받아야 할 것을 안 받는 것이 자비(mercy)이다”
예를 들어, 햄버거 가게에 가서 3,000원을 내고 햄버거 세트를 받는 것은 당연합니다. 3,000원을 내고 햄버거도 받고 어벤져스 피규어까지 받으면 ‘은혜’입니다.
무단 횡단을 하다가 경찰에 적발되어 범칙금을 내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런데 경찰관이 다가와서 신분증만 확인하고 그냥 가신다면 경찰이 베푸신 ‘자비’입니다.
하나님이 베푸시는 자비는 세상적 자비를 뛰어넘는 것입니다.
천국을 갈 만한 자격이 없는 죄인인 나를 위해 대신 죄값을 치르시고 구원하셔서 영생인 천국에 가도록 해 주시는 것이 ‘은혜’입니다.
죄값으로 벌을 받아 지옥 가는 게 마땅한 우리를 벌하지 않으시고 지옥에 보내지 않는 것이 ‘자비’입니다.
하나님은 자비의 하나님이시기에 자격 없는 자에게 긍휼을 베푸시고, 죄를 지어 벌을 받아 마땅한 사람에게도 긍휼을 베푸십니다.
우리는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사람을 만나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존경스럽고 가까이하고 싶지만, 어떤 사람은 나에게 피해만 주고 자기 이익만 챙기므로 멀리하고 싶습니다.
나와 맞지 않는 이기적인 사람과 지내다 보면 화가 나고 분노가 생기기도 합니다.
나에게 상처를 주고 피해를 주는 사람을 인자한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것은 인간적으로 불가능하지만 성령님에게 의지하면 가능해집니다.
우리는 성령의 능력으로 인간적인 본성과 분노를 누르고 예수님이 원하시는 길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다윗은 자비로운 성품을 통해 하나님 나라의 질서와 권위를 세웠던 인물입니다.
사울을 피해 도망 다녔던 다윗은 굴에 숨어 있다가 원수 같은 사울왕을 죽이고 왕위에 오를 수 있는 절호의 기회가 있었지만, 복수대신 자비를 베풀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손으로 복수하기보다는 모든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고, 사울의 권세와 권위도 하나님께로부터 왔음을 인정하고 사울왕의 권위를 존중한 것입니다.
우리는 나의 입장에서 모든 현상을 파악하고 판단하고 심판합니다. 하지만 이것은 자신이 하나님 노릇을 하는 격입니다.
원수에게도 친절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이며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세상의 심판자는 오직 하나님 뿐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고, 죄를 용서받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자비는 하나님의 인자하신 성품이며, 자비는 성령님을 통해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성령님을 사모하고 성령 충만할 때 그 자비가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하나님의 은혜와 지옥에 갈수 밖에 없는 나를 살리신 ‘자비’를 생각하며, 우리의 삶과 행동과 말속에서 자비와 친절을 나타냄으로써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자가 되길 기도합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의 놀라운 자비와 친절과 사랑을 찬양합니다.
다윗처럼 하나님에게 합한 자 되어, 분노 대신 용서를, 불평 대신 감사를, 아픔 대신 기쁨으로 저의 마음을 채워주시옵소서.
주님의 자비를 누린 자로서 다른 사람의 아픔을 위로해 주고, 상처를 치유해주며 누군가에게 자비를 베푸는 제가 되도록 늘 성령 충만하게 하소서.
저 같은 죄인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신 자비로우신 나의 주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https://youtu.be/FHtHcVOTCe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