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고 기계과 3학년이던 1975년 어느 여름날 서울을 접수 하겠노라 부푼꿈을 안고 개나리 보따리 하나들고 특급열차 타고 상경하여 처음 내린곳이 지금은 디지털단지로 바뀐 그 유명한 구로공단 이었다 퇴근시간이면 그 엄청나게 쏟아져 나오는 아가씨들 가관이었다 또래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도끼빗 뒷주머니 꼽고 판 돌려주는 DJ 형이있는 음악다방에서 영어도 잘 못하면서 어디서 듣기좋은 팝송이라도 하나 들으면 어떻게든 제목알아 신청해 듣기도 했다 신청 페퍼에 담배 한개비라도 말아서 주면 일찍 틀어주곤 했다 아님 가리봉시장 단골 포장마차에서 술마시고 그땐 형편들이 어려울때라 술값은 한사람이 장부에 그날 참석자 이름적어놓고 월급날 걷어 가져다 주면 공짜술도 주던 그당시 포장마차가 10 여개 있었는데 우리의 단골집은 끝에 있어서 간판도 없었지만 우리끼리는 끝번지라고 통했다 그때 사장님 내외분 어디서 잘 살고 계시리라 믿는다
일요일이면 야외로 뭉쳐 다녔는데 우리회사는 기계쪽만 하다보니 여사원은 사무실 총무과 몇명 뿐이었다 당연 다른회사 아가씨들을 섭외해야 하는데 친구중에 껌 한통이면 아가씨 일곱명 꼬신다는 재주좋은 녀석이 있어 항상 아가씨들은 함께 할수 있었다 다른 팀들은 야전에 LP판 싸들고 다녔지만 우리중 기타 잘치는 친구가 있어 이친구 기타에 FM 송신기를 달고 그때당시 쌍스피커 달린 쉐*코 라는 녹음기에 주파수 맞춰주면 엠프기타 처럼 소리가 났다 그때만 해도 둥그렇게 모여 노래하며 고고도 추고하면 부근 사람들 함께 놀자고 인기 많았다 지금같으면 죄다 잡혀 갔겠지만 그때 인연으로 결혼한 커플도 있었지만 난그져 어울려 다니는 것만 좋아해 변변한 파트너도 못 만들고 손한번 잡아보지 못했다 지금도 여자 앞에서 쑥스럼을 타지만
그러다 군대갈 나이 그때 친구들은 36개월인가 33개월 인지 정확치 않지만 난 60개월짜리 특별보안대에서 근무했다 하지만 이때 야간대학도 다녔으니 다행이다
특별보안대가 뭐냐구요? 방위산업체 특례 난 군대 그것도 특전사나 해병대같은 빡센 부대가서 국가와 민족을 위해 청춘을 불살으려 했는데 내가 꼭 필요하다며 붙잡는 바람에 제대 3개월 남기고 부당한 대우에 최고참으로 항의했다고 날 군대 보내려 한 공장장님 잘계신지 모르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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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게요 제가 복싱이라도 배웠으면
한방이 있었을텐데
@골드훅 재치있는 한방 댓글에
빵 터져 웃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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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내려 했지만 제얼굴보고 실패 ㅋㅋ
젊음을 불태우셨을
추억의 가리봉동 이네요.
혼술이라도 할라치면, 미소짓게 하는 추억안주일 즛 합니다.
몇년전 지나다 봤더니 시장이 외국촌이 되었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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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안대도 특자가 들어갑니다 ㅎㅎ
방위산업체에 근무하셨으면 기간은 길었지만 봉급도 만만치않게 받으셨겠네요.
3개월 남겨 놓고 하극상이라!
말년에 식겁 하셔겠네요.ㅎ
그때까지는 군면제 시켜준다는 미명아래
봉급은 그렇게 넉넉치 않았답니다
군필자 대비 3분의 2정도
그래서 후배들을 위해 항의 했구요
하극상이 아니라 정확히 건의
그때는 노조가 없어서
좋았던 시절 이야기네요~
뭐니 뭐니
그 자양분 으로 그간 잘 사셔서
지금 여기 계시잖아요 ? ㅎ
감사합니다
가리봉공단,그 유명한 벌집쪽방...가리봉5거리 추억이 생각납니다.
가발공장 데모가 빡셌지요.
그때 방직공장이 많고 숫자도 많아
방직공장 아가씨들 데모 많이 했지요
우린 꿈도 못꾸고
오래전 추억이 생각나네여
당시 가리봉쪽에선 안놀았고 종로에서 놀았습니다 ㅋㅋ 글잘보고갑니다
시내파셨네요 ㅎ 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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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습니다 구로공단
구로공단 발렌타인데이 때
쵸코렛 살려고 아가씨들 줄이
거의 이십미터 인걸 봤어요 ㅎ
한집에 초코렛 1,500만원어치
팔았어요 삼십년 전이네요 ㅋ
최근 얘기는 하기없기요
전 70후~80초
와~~
진짜
장사의 신이였네요
구로공단 ...
그시절이 생각나네요.
그때도 1호선 지하철은 구로역까지 있었죠~?
수원행 가리봉역 있었습니다
지금은 디지털역인가?
글쿤여~
나는 1호선 구로역에서 하차해서
버스타고 늘 구로 종점
댕긴거 같았는데~ㅋ
어쨌거나
젊은시절은
그리운 시절이죠..
서울 살아도
아직 가리봉을 못가본 듯 해요..^^
가보시고 싶어도 지금은 못 갑니다
지금은 옛날 흔적 없고 동네 이름도
가산동인가?
노동력 착취로
지금 민주화 운동하는
국회의원들이
위장 잠입 많이 했던 곳이죠.
이정도면
이벤트 참가 글 자격
충분합니다.
차분하게
글 잘 쓰시구먼
왜 지난번에는
그렇게나..
ㅋ
무슨 이런 극찬을 하시나요 방장님
성은이 망극 하옵니다
그당시 공고생들 방산업체 많이들 갔죠. 제 친구 형도 공고나와세 방산업체 나와서 안양 럭키금성 지금LG 들어가고 지금은 퇴직 .편한 휴일 되십시요.
방산뿐이 아니고 일반 업체도 많이 들어
갔지요 그리고 노동착취 당하고
감사합니다
그때 현역은 33개월이었는데
60개월이믄 고생은 많이 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