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여자 돌 속에 묻혀 있었네
그 여자 사랑에 나도 돌 속에 들어갔네
어느 여름 비 많이 오고
그 여자 울면서 돌 속에서 떠나갔네
떠나가는 그 여자 해와 달이 끌어주었네
남해 금산 푸른 하늘가에 나 혼자 있네
남해 금산 푸른 바닷물 속에 나 혼자 잠기네
-『조선일보/최영미의 어떤 시』2023.08.21. -
잘 다듬어진 조각 같은 작품이다. 그 아름다운 이미지가 단순 명료한 제목과 함께 내 뇌리에 박혀 있다 어느 여름날 불현듯 떠오른다. ‘그 여자’를 따라 돌 속에 들어간 사내. 사랑하면 어디든 못 가리. 지옥 불 속에라도, 망망대해 외딴섬에라도, 북극에라도 기꺼이 따라가겠지.
예스러운 ‘~네’로 끝나는 행들. 시를 베끼며 우리나라 오래된 시가의 전통과 맞닿은 ‘남해 금산’의 서정적 운율이 새롭게 다가왔다. 시에서 사랑이라는 단어는 딱 한 번 2행에 나온다. 7행짜리 짧은 시인데 앞의 다섯 행에 ‘여자’ 혹은 ‘여름’이 들어가 있다. 제목인 ‘남해 금산(南海 錦山)과 ‘여자(女子)’를 제외하고는 한자어나 외래어를 찾아볼 수 없는, 순수한 우리말로 지은 연가.
남해의 금산은 기암괴석이 많고 산 아래로 보이는 푸른 바다가 절경이다. 금산 38경 중에 ‘상사 바위’가 있다. 상사병에 걸린 어느 남자의 전설이 시인의 손에서 다시 태어난 게 아닐까, 감히 추측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