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0일 취임 1년을 맞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초기 공식적인 연설과 회의 발언에 더해 출근길 문답(도어스테핑)까지 진행하는 등 각종 현안에 대한 적극적으로 발언했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후보 시절이나 당선 초기 내세운 약속과 다짐을 스스로 뒤집으며 자기모순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지난 1년 사이 윤 대통령이 자신의 말을 부정한 세 장면을 꼽아봅니다.
전 정권 핑계는 통하지 않아
윤석열 대통령은 지난해 8월25일 충남 천안 재능교육연수원에서 열린 국민의힘 연찬회에 참석했습니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좋지 않은 성적표와 국제 경제위기 상황에서 우리 정권이 출범했지만 국제 상황에 대한 핑계, 전 정권에서 물려받았다는 핑계가 이제 더 이상은 국민에게 통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남 탓하지 말고 당정이 책임 있는 정치에 나서자는 주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의 다짐은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12월27일 국무회의에서 북한 군용 무인기가 우리 영공을 침범한 일을 두고 “지난 수년간 우리 군의 대비태세와 훈련이 대단히 부족했음을 보여주고 더 강도 높은 대비태세와 훈련이 필요하다는 것을 여실히 확인해 준 사건”이라고 말했습니다. 무인기 침범을 막지 못한 기저엔 전 정권의 훈련 부족 등이 있었다는 뜻으로 읽힙니다.
해가 바뀌어도 지난 정부 탓은 이어졌습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18일 국무회의에서 국가채무가 1천조원을 넘어선 점을 언급하며 “정부 수립 이후 7년간 쌓인 채무가 약 600조원이었는데 지난 정권에서 무려 400조원이 추가로 늘어났다”고 발언했습니다.
윤 대통령은 취임 1년 하루 전에도 지난 정권 탓을 했습니다. 9일 국무회의에서 전세 사기 피해를 두고 “집값 급등과 시장교란을 초래한 과거 정부의 반시장적, 비정상적 정책이 전세 사기의 토양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는 또 “과거 정부의 검찰개혁 과정에서 마약조직과 유통에 관한 법 집행력이 현격히 위축된 결과가 어떠하였는지 국민 여러분께서 모두 목격했다”고도 했습니다.
당 사무와 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다
윤 대통령은 20대 대선 이튿날인 지난해 3월10일 국회도서관 대강당에서 국민의힘 선거대책본부 해단식을 가졌습니다. 당시 당선인 신분이던 윤 대통령은 “대통령이 된 저는 모든 공무를 지휘하는 입장에 있기 때문에 당의 사무와 정치에는 관여할 수 없다”고 발언했습니다. 대선 승리를 거머쥔 직후 당무에 개입하지 않겠다는 기조를 밝힌 셈입니다. 이후 윤 대통령은 공식 석상에서 당무와 관련된 발언을 자제해왔습니다.
하지만 윤 대통령과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이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가 공개되면서 ‘당무 불개입’ 원칙이 깨진 게 아니냐는 지적이 나왔습니다. 지난해 7월26일 권성동 당시 국민의힘 대표 직무대행 겸 원내대표가 윤 대통령과 주고받은 텔레그램 메시지 사진을 보면, 윤 대통령은 권 대행에게 “우리 당도 잘하네요. 계속 이렇게 해야”라거나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가 바뀌니 달라졌습니다”라는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내부총질이나 하던 당 대표”는 당시 윤 대통령 측근들과 갈등을 빚어 온 이준석 당시 국민의힘 당대표를 뜻합니다. 권 대행은 윤 대통령의 메시지에 “대통령님의 뜻을 잘 받들어 당정이 하나 되는 모습을 보이겠다”고 답했습니다.
지난 3월 치러진 국민의힘 전당대회를 앞두고도 대통령이 당무에 개입하는 게 아니냐는 논란이 일기도 했습니다. 이에 2월6일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는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은 한 달에 300만원 당비를 내는데 1년이면 3600만원(이다)”이라며 “(대통령이 당비를 일반 의원보다) 10배는 더 내는데 당원으로서 할 말이 없을 수 없지 않으냐”고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일본의 사과 반드시 이끌어내겠다
윤 대통령은 대선 예비후보 신분이던 2021년 9월11일 대구 중구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에서 ‘위안부’ 피해자 이용수 할머니를 만났습니다. 당시 윤 후보자는 일본 위안부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이 할머니의 말에 “일본의 사과를 반드시 이끌어내고, 할머니들이 마음의 상처를 받았던 것들을 다 (해결) 해드리겠다”고 답했습니다. 당시 윤 대통령의 공약집에도 ‘과거사·주권 문제는 당당한 입장을 견지’ 등의 표현이 적혀있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된 뒤, 윤 후보의 태도는 180도 바뀐듯합니다. 윤 대통령은 지난달 미국 국빈방문을 앞두고 진행된 <워싱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100년 전 일을 가지고 (일본에) ‘무조건 무릎 꿇어라’라고 하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논란이 일자 국민의힘은 ‘받아들일 수 없다’는 문장의 주어가 윤 대통령이 아니라 일본이라고 주장했지만, <워싱턴포스트>기자는 윤 대통령의 원문 녹취록을 공개해 주어가 윤 대통령임을 분명히 밝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