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물이나 학벌, 가문, 지위, 인맥, 인기 등 세상에서 중요하게 여기는 일들 자체가 악하거나 해로울 수는 없고, 오히려 하나님의 백성들이나 사역들에 필요한 부분들도 많으며..
그 누구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빌립보서를 기록케 하신 사도 바울도 잘 알고 있었고, 실제로 필요한 대로 지혜롭게 활용하면서 하나님의 일들을 잘 감당했던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말씀들, 특히 그 한가운데 계신 구주 예수님, 곧 온 세상과 전 인류보다, 모든 시간과 공간들보다 더 크신 성자 하나님이신 구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의 목숨을 다하시고 마지막 피 한 방울까지 다 흘리시면서 시대와 나라들을 넘어 모두 다 이루신 대속과 대신, 나음과 화평 등의 구원의 일들에 비해서는, 좀 더 근원적으로는 우리 인생들이 경험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하늘의 힘과 구원의 일들의 중심, 근본, 실체이신 분인 것일 뿐 아니라 삼위일체라는 그 존재와 개념 상 구약과 신약 시대, 오늘날 우리들, 모든 인류 역사들, 심지어는 천지창조와 창세 전, 세상 끝 날과 부활, 영원에 이르기까지 그 존재와 개념 상 잠시라도 분리, 별개, 변개이실 수 없는 반면 언제나 함께 이시고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완벽히 조화되시며 완전히 하나되시어 한 뜻을 이루시는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으로 인한 모든 역사들에 비해서는, 곧 그로 인한 모든 하늘의 힘과 은혜들, 응답과 복들 등과 같은 복음의 능력과 하나님 나라의 역사들 앞에서는, 더 나아가 세상 끝 날의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과 영원한 나라, 영원한 생명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이고, 비교할 수조차도 없다는 것이며, 특히 그러한 세상적인 것들이 우선이 되거나 자랑이 되려는 유혹들이나 시험들, 오해들이나 착각들 등의 상황에서는 오히려 해롭다는 것이고, 따지고 보면 배설물 정도의 가치 밖에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실상 구주 예수님을 알고 믿으며, 의지하고 그 이름으로 기도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 진정 구원에 참예케 되었고 하나님 아버지를 실제로 아버지라 부를 수 있다는 사실 그 자체만으로 이미 말로 다 표현 못하는 은혜와 능력과 복들인 것이고, 더할 나위 없는 행복과 성취와 예비들인 것임이 아닐 수 없으며..
진정 이 세상에서의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 등에서 날마다 순간마다 누릴 수 있는 크고 작은 응답과 승리와 역사들인 것일 뿐 아니라 세상 끝 날과 하늘나라, 진정 신령한 몸으로의 부활, 영원한 생명에 까지 이어지는 모든 은혜와 복들, 상상 이상의 실제와 누림들인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입니다..
진정 오늘날의 우리들도 악한 세력들이 가득한 험악한 세상에서 연약한 육신의 몸을 입고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아래 본문에서 잘 증거되어 있는 것이듯이 사도 바울과 같은 안목과 영성, 통찰과 고백이 언제나 필요한 것이며, 무엇보다 그 위치와 역할과 권한에 따라 하나님 아버지의 창세 전부터의 뜻과 약속과 섭리 안에서 바울처럼 순간순간마다 구주 예수님의 십자가를 자랑하고 붙잡으며 그 이름으로 기도하고 찬미하면서 더 이상 옛 사람과 같이 내 힘과 의가 아니라, 세상적 능력과 방법들도 아닌 바로 그 이름에 약속되신 성령님으로 인한 하늘의 힘과 은혜와 실제를 의지하고 덧입으면서 죄악들이 아닌 말씀을 주야로 더욱 사모하고 가까이하며 다른 그 무엇보다 그 말씀을 최우선으로 결단하고 몸부림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고 또 중요하며, 긴급하고 또 긴급한 것임이 아닐 수 없는 것으로..
특히 그로 인해 직접적으로는 말씀의 영이신 성령님으로 더욱 충만해 질 수 있는 것이며, 근원적으로는 말씀으로 하나되신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하나님의 기뻐 역사하심들이 더욱 더 풍성하게 될 수 있는 것이고, 그러한 신앙이야 말로 삶의 자리와 사역의 현장들 속에서 순간순간마다 온갖 하늘의 힘과 응답과 복들 등을 생생하고 강렬하게 누리게 되는 살아 있는 믿음, 강한 군사와 같은 믿음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그러면서 가면 갈수록 더더욱 죄악들이 아닌 말씀의 신앙, 말씀의 열정이 됨과 함께 견고하고 강렬한 복음의 은혜와 능력들 가운데 거하고 누리며 나누고 증거하며 넘치게 될 수 있는 것이고, 심지어는 수많은 믿음의 선배들이 실제로 그러했듯이 목숨까지 아끼지 않는 말씀대로의 믿음, 가장 장성한 믿음, 최고 단계의 성화까지도 될 수 있는 것입니다..
바꾸어 말하면 참으로 아래 본문에서의 사도 바울처럼 진정 세상을 이기는 모든 믿음의 사람들에게는 없어서는 안 되는 그러한 신앙과 고백들, 그리고 그로 인한 하늘의 힘과 역사들 가운데 순간순간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도, 아니 이 시대 모든 믿음의 백성들마다 다 실제로 거할 수 있어야 하는 것으로..
무엇보다 그러한 믿음들이야 말로 하나님께 있어 최고의 뜻과 목적이 아닐 수 없는 것이며, 더할 나위 없는 기쁨과 영광의 제목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더 나아가 바로 그렇게 살아 있고 깨어 있는 믿음으로, 곧 본질적으로 말씀의 신앙으로 인해, 다시 말해 진정한 하나님의 백성들이라면 말씀의 결단과 몸부림과 열정과 함께 하는 심령과 영성과 간구로 인해 하나님의 모든 영광과 그 나라의 역사들을 그 누구도 예외 없이 마땅히 실질적으로 사모하고 경험하며 전하고 확장해 나갈 수 있어야 하는 것인데..
어쨌든 그와 함께 더 늦기 전에, 진정 이 세대가 가기 전에 영적 각성과 부흥의 시간들을 함께 맞이할 수 있도록 주님의 이름으로 같이 준비하고 더욱 몸부림치며 전심으로 애통해 하고 자복하며 갈망하고 돌이키면서 하나부터라도 실행하고 한 번이라도 더 결단하며 뜨겁게 간구할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다시 한 번 더 강조하면 바로 그러한 믿음들이야 말로 하나님을 향한 가장 클 수 있는 감격과 경배의 모범들인 것일 뿐 아니라 생생한 역사와 영광의 풍성들이 안 될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빌3:7~9)
('페북두란노서원66'중에서 인용과 추가/밀알서원)
*양범주목사의 '21세기 두란노서원'/2024년 12월 16일(월)2부/사진 조연진사모, 이미지 박원영집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