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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글
스 4:7-16
7 아닥사스다 때에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동료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글을 올렸으니 그 글은 아람 문자와 아람 방언으로 써서 진술하였더라
8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가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려 예루살렘 백성을 고발한 그 글에
9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디나 사람과 아바삿 사람과 다블래 사람과 아바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과
10 그 밖에 백성 곧 존귀한 오스납발이 사마리아 성과 유브라데 강 건너편 다른 땅에 옮겨 둔 자들과 함께 고발한다 하였더라
11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건너편에 있는 신하들은
12 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
13 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14 우리가 이제 왕궁의 소금을 먹으므로 왕이 수치 당함을 차마 보지 못하여 사람을 보내어 왕에게 아뢰오니
15 왕은 조상들의 사기를 살펴보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무너짐도 이 때문이니이다
16 이제 감히 왕에게 아뢰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스 4:1-16 / [성전건축 방해] 유다와 베냐민 지파가 성전을 재건하기 시작하자 이에 항의하며 대적하는 부류들이 있었다. 그들은 이스라엘이 멸망한 다음 앗수르의 사마리아 지방에 편입되어 살던 잔류 이스라엘 백성과 그곳으로 이주해 온 이방인들이었다. 이들이 이른바 `사마리아 사람들'로서 혈통과 신앙에서 이방인들과 혼합된 상태에서 여호와를 섬기는 자들이었다. 2) 그들이 이스라엘 백성의 지도자인 스룹바벨과 가문의 어른들 앞에 나서서 이렇게 제안하였다. `우리도 여러분과 함께 성전을 재건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우리도 여러분과 똑같은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며 그것도 앗수르 왕 에살핫돈이 우리를 이곳에 정착시켜 준 날로부터 계속 그분에게 제물을 바치고 있습니다.' 3) 그러나 스룹바벨과 예수아와 이스라엘 가문의 다른 어른들이 이렇게 거절하였다. `여러분은 우리와 함께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건축할 권리가 없습니다.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 성전을 지어 드릴 권리는 우리에게만 있습니다. 바사 왕 고레스가 우리에게만 특권을 주었습니다.' 4) 그런 다음부터는 그 땅의 토지를 소유하고 살던 사람들이 귀환한 사람들을 실의와 좌절에 빠뜨려 더 이상 공사를 진척시키지 못하게 하려고 온갖 방해 공작을 하였다. 5) 그들은 귀환한 유다인들의 성전재건 계획을 좌절시키기 위하여 유다에 와 있는 바사 왕궁의 관리들까지 뇌물로 매수하였다. 그들은 고레스왕이 통치하던 시대부터 ㄱ) 다리오왕 2년에 이르기까지 거의 20년 동안 계속 그렇게 방해하였다. (ㄱ. BC 520년) 6) [예루살렘 성벽재건의 방해] 그로부터 50여 년이 지났을 때에도 그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방해하였다. ㄴ) 아하수에로왕이 즉위한 해에 그들은 왕에게 예루살렘과 유다 주민들을 고발하는 상소문을 올렸다. (ㄴ. BC 486년) 7) 그로부터 20여 년이 또 지나서 ㄷ) 아닥사스다왕 1세가 다스리던 때에도 그들은 예루살렘 성벽 공사를 방해하였다. 이때에는 느헤미야가 성벽재건을 하고 있었는데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들과 함께 일하던 친구들이 바사 왕 아닥사스다에게 성벽재건을 고발하였다. 이들은 모두 바사와 아람과 바벨론 지역에서 들어온 외국인들이었다. 그들의 고발장은 그 당시 국제 통용어였던 ㄹ) 아람어로 기록되었는데 그것은 아람어로 번역한 것이었다. (ㄷ. BC 464-424년. ㄹ. 원문에서 아람어로 기록된 부분은 4:8-6:14,18. 7:12-26절이다) 8) 또 아닥사스다 1세가 다스리던 기간에 사마리아의 총독 르훔이 자기의 서기관 심새와 함께 예루살렘의 성벽재건을 막도록 왕에게 상소문을 써서 보냈다. 그 고발장에는 다음과 같은 상소자들의 이름이 나열되어 있었다. 9) 총독 르훔, 서기관 심새, 총독 관저의 직원들, 디나 사람들, 아바삿 사람들, 다블래 사람들, 아바새 사람들, 아렉 사람들, 바벨론 사람들, 엘람 사람이라고도 하는 수사 사람들, 10) 그리고 온 세상에서 유명하고 위대한 에살핫돈과 그의 아들 오스납발왕이 사마리아 도성을 비롯하여 유브라데강의 서쪽 지역에 있는 여러 고을에 이주시켜 두었던 다른 민족들 모두가 연명하여 상소합니다.' 11) 이어서 상소문에는 다음과 같이 쓰여 있었다. `아닥사스다 폐하, 유브라데강 서쪽의 신하들이 모두 상소를 올립니다. 12) 저희가 임금님께 드릴 말씀은 유다인 문제입니다. 그들은 임금님의 본토에서 떠나 저희가 관할하는 예루살렘으로 내려와서 이미 임금님께 반역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성벽을 다시 세우기 시작하여 기초도 벌써 보수가 끝났습니다. 그들은 이제 자체 방어가 가능한 성읍을 세우고 독립하여 반역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이미 흉악한 폭도의 성읍이 되었습니다. 13) 폐하 이것이 얼마나 위험하고 손해 되는 일인가를 말씀드리겠습니다. 이 성읍과 성벽재건이 완성되면, 어느 주민도 조공이나 세금이나 관세를 바치지 않을 것이며 결국은 왕궁의 재원에 손실이 생겨날 것입니다. 14) 저희는 임금님께 충성을 맹세하고 왕궁의 녹을 먹는 신하들이기 때문에 폐하의 권리가 손상되는 것을 보고서 가만히 있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저희가 이런 소식을 보내어 아룁니다. 15) 선왕들의 궁중 기록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그러면 이 성읍이 항상 반항과 폭동을 일삼아 왔으며 뭇왕들과 지방 관리들에게 골칫거리였다는 것을 확인하시게 될 것입니다. 이곳 주민들은 옛날부터 반란과 폭동을 일으키는 자들이었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이 성읍이 지금 무너져 있는 것입니다. 16) 저희들은 또 하나 더 큰 위험을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성읍이 다시 건설되고 성벽까지 재건되면 유브라데강 서쪽의 온 지역이 폐하의 통치권에서 벗어나 독립할 것입니다.'
새로운 왕에게 보낸 유다인들의 성전 재건에 대한 또다른 고발입니다.
아닥사스다의 통치(7-10) 주전 464–주전 424년에 아하수에로의 아들 아닥사스다가 새로운 왕이 되었습니다. 이때 유다인들에 대한 고발이 세 번 있었습니다. 첫째, 비슬람과 미드르닷과 다브엘과 그의 나머지 동료들은 아닥사스다 왕에게 고발장을 썼습니다. 그 글이 궁정 언어인 아람어로 진술되었습니다. 고발이란 적대감을 품는다는 뜻입니다. 둘째, 사마리아 주재 지방장관 르흠과 지방장관을 도와 그 지방의 소식을 왕에게 보고하는 서기관 심새도 유다인을 고발하는 글을 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렸습니다. 사마리아 거주민들의 사주를 받은 것 같습니다. 셋째, 디나 사람과 아비새 사람과 아렉 사람과 바벨론 사람과 수산 사람과 데해 사람과 엘람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앗수르의 오스납발 왕이 사마리아와 강 서편 다른 땅에 강제로 이주시킨 이방 민족들이었습니다.
고발장 사본(11-16) 고발장 사본을 발송한 지역은 강 서편에 있는 신복들이라는 표현에서 암시되어 있습니다. 고발장의 내용은 왕에게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닥사스다의 선의에 의해 예루살렘에 온 에스라와 유다인을 가리킬 것입니다. 이미 그 기본을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한다는 그들의 고발장은 왕을 자극할 의도로 꾸민 내용입니다. 그들은 성곽이 완성되면 유대인들이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왕에게 바치지 않을 것이라 말합니다.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될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고발인들은 자신들이 궁의 소금을 먹는 고로 왕의 수치를 차마 보기를 원치 않는다고 아부하며 아닥사스다 왕에 대한 그들의 충성심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그들은 왕에게 예루살렘의 역사와 이전 통치자들과 예루살렘의 관계에 대한 기록들을 살펴보면 예루살렘이 패역한 성읍이며, 예부터 반역하는 일을 하였음이 확인될 것이니 성전 건축의 일을 중단시키지 않으면 왕의 강 서편의 영지가 없어질 것이라고 주장을 이어갑니다. 왕의 두려움을 부추기고 있는 것입니다. 참소하는 것은 사탄의 본성입니다(계 12:10; 욥 1:11-12). 성도는 이런 본성을 멀리하고 의와 화평을 추구해야 합니다.
적용: 하나님의 나라는 계속 건설되어 갑니다. 말씀을 따름으로 닥칠 수 있는 어려움을 피하지 마십시오. 중요한 것은 신실함입니다.
“겸손이란 마음의 고요함이다. 그것은 탐욕이 없는 상태이며 자신에게 일어난 어떤 일에도 놀라지 않는 것이다. 또한 해로운 일에 과민 반응하기 않는 것이며 칭찬을 받거나 멸시를 받아도 동요하지 않는 것이다. 그것은 세상 살아가는 일이 참으로 어렵고 고통스러울 때 조용히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기도함으로 써 침묵의 바다와도 같은 평화를 얻을 수 있는 마음이다. 사람이 겸손한 마음을 갖는다는 것은 은총의 보금자리에 있다는 뜻이다.” - 앤드루 머레이
< 설 교 >
중단된 공사
에스라 4:11-20 / 글쓴이: 성경 벌레
사람들은 자기가 동의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졌을 때 종종 공동체를 파괴하는 태도를 보입니다. 본래 표면에 떠올라 있던 우호적인 태도, 목적의식, 사명감, 구호 등은 사라지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언행이 드러납니다.
드러난 의도
종종 우리 주변에는 정치적 논리가 신앙의 이름으로 위장하고 나타날 때가 있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이 하나님의 전을 건축하겠다고 나섰던 모습이 바로 그렇습니다. 혹자는 사마리아인들은 순수한 신앙의 동기로 성전 건축에 참여하려고 했는데 유다 지도자들이 민족 감정을 앞세운 것이 아니냐는 주장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의 이야기는 이러한 견해를 정면으로 부정합니다.
만약 그들의 의도가 순수한 신앙이었다고 하면, 정말 하나님의 전이 온전하게 중건되기를 원했다면, 자신들이 배제되었다고 해서 성전 건축의 역사를 중단하게끔 정치적 공작을 펼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들의 관심은 성전이 아니라 정치였습니다. 심중의 의도는 협의 과정보다도 결정이 내려진 다음에 드러나는 것입니다.
모함
본문에서 그들은 이용할 수 있는 모든 표현과 방법을 동원해서 유다를 모함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골자는 이것입니다.
‘유다는 패역하고 악한 성읍(12절)이며, 세금을 내지 않아 제국에 피해를 줄 것이다(13절). 뿐만 아니라 그들은 잠재적 반역세력이고 과거 역사가 그것을 증명하고 있다(15절)’. 중요한 사실은 그들의 고소 어디에도 ‘성전’에 대한 이야기는 없다는 점입니다. 왕에게 정치적인 위험성을 경고하기 위해 이들은 단지 ‘성곽’만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반역’이라는 예민한 용어가 등장하고, 바사 제국의 관리들의 서명까지 동원했으며(8-9절), 역사까지 끄집어내어 모함의 효과를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이웃에 대해 거짓 증거하지 말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출 20:16).
날마다 묵상하며
살며 생각하며 : 거짓 증거가 나라 잡는다.
옛것을 낡은 것이라 하여 업신여기는 자는 어리석은 자이리라.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도 있듯 옛것 안에 들어 있는 지혜는 사람을 이롭게 한다. 하물며 창조주 하나님의 지혜의 말씀에 무슨 수식어를 덧붙이겠는가.
계몽주의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말씀에 대한 회의와 교만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와서 그 절정에 달한 것 같다. 말씀을 거룩한 하나님의 계시로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 것이 이 시대의 코드가 되어가고 있지 아니한가? 여기에 십계명은 외치고 있다. 십계명은 낡은 것도 아니요 시효가 다 된 율법이 아니라고. 십계명은 예나 지금이나 유효한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중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우리 시대에 무엇을 교훈하는가?
단적으로 말하자면 이 사회에 거짓 증거가 너무 판치고 있다.
가정의 작은 영역에서부터 국가적 단위에 이르기까지.
예를 들면 가정에서는 전화벨이 울리면 “집에 없다고 그래”라는 말이 쉽게 나온다. 부모들의 거짓말 때문에 애꿎은 아이들이 거짓 증거를 하게 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학교에서는 교사와 학생들 간에 오해가 발생한다.
그 원인도 거짓 증거에 내재하고 있다.
개인 영업장에서 영수증 처리기가 조작되고, 택시 미터기에도 기계가 조작되고 심지어는 건강에 직접 영향을 미치는 식품에도 가짜가 있다니 거짓 증거는 그 도를 넘어서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짓 증거가 사람을 잡고 있다. 올해는 지방선거도 있다. 선거철이 되면 난무하는 흑색선전,상대방 사생활 파헤치기,모함하기,무고하기 등 기막힌 전술의 거짓 증거들이 미디어를 타고 사람을 홀릴 것이다. 우리는 최근 거짓 증거가 남긴 또 하나의 서글픈 사례를 체험했다.
황우석 교수의 생명공학 연구를 중심으로 벌어진 거짓 증거는 우리나라 뿐 아니라 세계까지 놀라게 했다.
어렵게 쌓아올린 신뢰와 지명도는 하루아침에 바벨탑처럼 무너지고 국민의 마음까지 상처를 입었다. 거짓 증거가 나라를 잡는 형국이다. 거짓 증거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한 것인지 온 국민이 이제야 깨달은 듯하다.
“묵시가 없으면 백성이 방자히 행하거니와”(잠 29:18) 삶도 문화도 거짓 증거의 희생물이 되지 않아야 한다. 그러기 위하여 묵시를 붙잡을 일이다. 필사적으로 붙잡을 일이다. 거짓 증거는 필경 나라를 잡겠지만 묵시는 나라를 살릴 것이다.
출처: 한태환목사 예화집/추태화(안양대 기독교문화학과 교수)
질문하며 적용하며
1. 사마리아인들은 어떤 주장으로 유다를 모함하고 있습니까? (12-16절)
2. 사마리아인들이 본래 하나님의 전을 세우는 일보다 다른 일에 더 관심이 있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증거는 무엇입니까?(13, 16절)
3. 몸 담고 있는 교회나 다른 공동체에서 당신이 원하지 않는 방향으로 결정이 내려졌을 때 당신이 취하는 태도는 어떤 것입니까? 최근 자신의 주장을 관철시키기 위해 무리한 방법으로 어떤 일의 본질을 왜곡시킨 경험은 없습니까?
확신하며 간구하며
믿음의 주요 우리를 온전케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살아가는 우리를 기뻐하시는 하나님 !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음을 깨닫게 하시고
우리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신뢰하며
그뜻을 따라 소망 주에 즐거워하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게 하옵소서,
성령의 강력한 능력으로 붙드셔서 강하고 담대한 믿음을 주옵시고
거칠고 험난한 세상을 소망중에 승리하는 복된 삶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그럼에도 또 다시
스4:7-24 / 우루사야
오늘도 성실하신 우리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간 바벨론포로 2세대들이 하나님의 신실한 성품과 약속에 대한 믿음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어려움이 닦친 현실도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에스라서 저자는 오늘 본문에서 한번 내용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네, 지금 이 글은 포로2세대들의 이야기를 그 다음세대인 3-4세대들과 같은 후손들이 쓰고 있는 겁니다. 스룹바벨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리고 그 다음 에스라 때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쓰면서 지금 우리에게 닥친 신앙의 위기를 잘 이겨내자는 메시지인 것입니다.
먼저 7절을 보니 아닥사스다왕 때라고 되어 있습니다. 바벨론포로생활에서 풀어준 것은 고레스 왕이었죠. 고레스 왕이 칙령을 내려서 성전을 건축하게 했지만, 사마리아를 비롯해 예루살렘을 차지하고 있었던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세력이 침해당할까 하여 성전건축을 방해하는데, 고레스 왕 다음 다리오 왕이 즉위할 때까지 뇌물로 행정적 방해를 끼칩니다. 더 나아가 그 다음왕 아하수에로 왕때에는 고소고발로 성전건축진행을 난해하게 만듭니다. 가처분신청처럼 일단 보류로 만들어놓는 것이죠. 그런데 오늘 7절을 보니 이제 가장 강력한 처분인 성전건축취소요청을 왕에게 올리게 됩니다. 이런 사건의 나열이 총 100년에 해당하는 내용들입니다. 네, 포로2세대들이 귀환하여 성전을 건축하고자 시작할 때부터 1세기이상을 괴롭힘을 받았던 것입니다. 물론 성전은 도착하여 약 20년 안에 완공을 하게 됩니다. 그럼에도 그 뒤로도 계속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허위로 고소고발을 하여 정치적 압박을 받게끔, 즉 하나님의 나라가 세워지지 않게끔 막았던 것이지요. 네, 이제 이야기는 1세기가 흐른 뒤의 이야기, 계속되는 핍박의 이야기를 전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 고소내용이 11-14절과 같은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11아닥사스다 왕에게 올린 그 글의 초본은 이러하니 강 건너편에 있는 신하들은12왕에게 아뢰나이다 당신에게서 우리에게로 올라온 유다 사람들이 예루살렘에 이르러 이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는데 이미 그 기초를 수축하고 성곽을 건축하오니13이제 왕은 아시옵소서 만일 이 성읍을 건축하고 그 성곽을 완공하면 저 무리가 다시는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바치지 아니하리니 결국 왕들에게 손해가 되리이다
이들은 왕에게 손해가 될까 하는 충정어린 의도를 가지고 왕에게 아뢴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자신들은 선하고 자신들이 고발하는 자들이 악하다는 내용으로 진술을 하게 되죠. 12절에 보니 "패역하고 악한 성읍을 건축하려 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게다가 기초와 성곽을 건축하려한다는 보고를 전합니다. 실재로 이 때 에스라와 느헤미야가 2-3차 포로에서 귀환하여 성벽을 쌓고 있었던 때이기도 합니다. 13절에서 이들은 결국 독립을 함으로써 왕에게 유익함이 되지 못할 것이라는 사실을 전합니다. 게다가 15절에서는 예루살렘성이 역사적으로도 항상 반역을 해왔던 곳이라고 전합니다. 네, 틀린 말이 없어보입니다. 그런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유대인의 예루살렘은 그 이후로도 계속해서 강대국들의 통치를 받고 마침내 로마제국으로 말미암아 멸망하여 역사속으로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이 돌 위에 돌 하나 세워지지 않고 망할 것이라고까지 하셨죠. 왜냐하면 하나님은 물리적인 성이 아니라 "신앙공동체로써의 하나님나라"를 세우고자 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영적원리를 모르는 이방인 눈에는 오로지 세력다툼을 위한 예루살렘 재건 방해만이 목적이었습니다. 조공, 관세, 통행세를 앞으로 내지 않을 것 같다는 논리는 마침내 15절과 같은 발언을 낳게 만듭니다.
15왕은 조상들의 사기를 살펴보시면 그 사기에서 이 성읍은 패역한 성읍이라 예로부터 그 중에서 항상 반역하는 일을 행하여 왕들과 각 도에 손해가 된 것을 보시고 아실지라 이 성읍이 무너짐도 이 때문이니이다 16이제 감히 왕에게 아뢰오니 이 성읍이 중건되어 성곽이 준공되면 이로 말미암아 왕의 강 건너편 영지가 없어지리이다 하였더라
예루살렘 성이 강대국에게 복종하지 않아서 멸망했다는 결론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이 멸망시키셨습니다. 강대국은 도구였을 뿐입니다. 어쨌든 이렇게 고소고발을 당한 이스라엘이었습니다. 이에 대한 아닥사스다왕의 답변을 살펴보죠. 18-21절을 보시죠.
17왕이 방백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사마리아에 거주하는 그들 동관들과 강 건너편 다른 땅 백성에게 조서를 내리니 일렀으되 너희는 평안할지어다18너희가 올린 글을 내 앞에서 낭독시키고19명령하여 살펴보니 과연 이 성읍이 예로부터 왕들을 거역하며 그 중에서 항상 패역하고 반역하는 일을 행하였으며20옛적에는 예루살렘을 다스리는 큰 군왕들이 있어서 강 건너편 모든 땅이 그들에게 조공과 관세와 통행세를 다 바쳤도다21이제 너희는 명령을 전하여 그 사람들에게 공사를 그치게 하여 그 성을 건축하지 못하게 하고 내가 다시 조서 내리기를 기다리라22너희는 삼가서 이 일에 게으르지 말라 어찌하여 화를 더하여 왕들에게 손해가 되게 하랴 하였더라23아닥사스다 왕의 조서 초본이 르훔과 서기관 심새와 그의 동료 앞에서 낭독되매 그들이 예루살렘으로 급히 가서 유다 사람들을 보고 권력으로 억제하여 그 공사를 그치게 하니24이에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성전 공사가 바사 왕 다리오 제이년까지 중단되니라
네, 100년동안의 괴롭힘의 결과로 결국 예루살렘성의 재건이 멈추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의문이 듭니다. 왜 갑자기 100년 후의 일을 스룹바벨 때 이야기에 집어넣는가? 그 이유는 스룹바벨 때 괴롭히던 그 사람들이 계속해서 괴롭혀 100년 후 에스라-느헤미야 재건팀에게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말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성경의 위인들은 시험과 고통에 대한 격언을 우리에게 남겨주기도 했습니다. "시험하려고 오는 불 같은 시련을 당할 때 마치 이상한 일이나 일어난 것처럼 놀라지 마십시오. 그 시련으로 여러분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니 기뻐하십시오. 그러면 그리스도께서 영광 중에 나타나실 때 여러분도 그분과 함께 기뻐하게 될 것입니다."(벧전4) 우리가 당하는 고난의 의미와 목적을 분명하게 말해주는 베드로 사도였습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사명에는 항상 어려움이 따릅니다. 죄의 세력은 하나님을 반대하려하기 때문이죠. 하나님은 그것을 우리에게 허용하사, 우리가 싸워 이기는 하나님의 동역자요 하나님의 상속자가 되게끔 해주십니다. 네. 싸우지 않는 자는 하나님께 받을 것이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자녀요 군사가 하나님께 상급을 받습니다. 하나님 나라에 종으로 있는 천사는 받을 상급이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자녀들은 싸워 이김으로써 하나님의 상속자가 됩니다. 신앙생활에서 다가오는 죄의 세력과의 싸움과 그 속에서의 승리의 목적을 아시고 나아가시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