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측은지심(惻隱之心)
사단(四端)의 하나로,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 타고난 착한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惻 : 슬플 측(⺖/9)
隱 : 숨을 은(阝/14)
之 갈 지(丿/3)
心 : 마음 심(心/0)
(유의어)
측심(惻心)
측심(測心)
출전 : 맹자(孟子)
사람은 태어나면서부터 성품이 착하나 나쁜 환경이나 물욕으로 인해 악하게 된다. 맹자(孟子)의 성선설(性善說)이다.
사람들은 천부적으로 선한 본성을 갖고 태어나기에 남의 고통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데 그것이 인의예지(仁義禮智)의 근본을 이루는 사단(四端)이란 이야기다.
이에 반해 순자(荀子)는 성악설(性惡說)을 주장하며 선천적으로 한없는 욕망을 가지고 있는 인간을 그대로 두면 파멸하기 때문에 예(禮)로써 바로잡아야 한다고 주장해 대조적이다.
맹자는 누구나 남의 고통을 차마 외면하지 못한다는 마음이 있다고 주장하며 재미있는 어린아이와 우물 이야기를 예로 든다. 공손추(公孫丑) 상편에 있는 내용을 보자.
한 어린아이가 우물 속으로 빠지게 되는 것을 보게 된다면, 누구나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게 된다.
見孺子將入於井, 皆有怵惕惻隱之心.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제자 공손추에게 문답을 통해 불쌍하게 여기는 마음, 부끄러워하는 마음, 사양하는 마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라고까지 강조한다.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인(仁)의 단서이고, 부끄러워하는 마음은 의(義)의 단서이며, 사양하는 마음은 예(禮)의 단서이고, 시비를 가리는 마음은 지(智)의 단서이다.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이 세상에 처음 오는 어린애의 성품이 성선인지 성악인지 측정할 수는 없다. 연쇄살인마나 강간 살인범같이 이 세상에 해악만 끼치는 사람을 보면 태어나면서 부터 악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진이나 화재, 수해의 재난을 입은 이재민들, 끝없는 행렬의 난민들에게 국가가 나서기 전에 일반 시민들이 줄이어 구호의 손길을 내미는 것을 볼 때는 선하게 태어났다고 볼 수밖에 없다.
측은지심(惻隱之心)
남을 불쌍하게 여기는 타고난 착한 마음을 이르는 말이다.
다음은 맹자의 사단설(四端說) 가운데서 나오는 말로, 맹자 공손추편(公孫丑篇)에 있는 말이다.
無惻隱之心 非人也
無羞惡之心 非人也
無辭讓之心 非人也
無是非之心 非人也.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없는 것은 사람이 아니고, 부끄러운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사양하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며,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이 없으면 사람이 아니다.
惻隱之心 仁之端也
羞惡之心 義之端也
辭讓之心 禮之端也
是非之心 智之端也.
불쌍히 여기는 마음은 어짊의 극치이고,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은 옳음의 극치이고, 사양하는 마음은 예절의 극치이고, 옳고 그름을 아는 마음은 지혜의 극치이다
이 말은 맹자가 독창적으로 주창한 인성론으로서 사단설(四端說) 또는 성선설(性善說)이라고도 한다. 성선설이란 사람의 본성은 선(善)이라고 보는 학설이다.
맹자에 따르면 사람의 본성은 의지적인 확충작용에 의해 덕성으로 높일 수 있는 단서를 천부적으로 가지고 있다. 측은(惻隱), 수오(羞惡), 사양(辭讓), 시비(是非)의 마음이 4단(四端)이며, 그것은 각각 인(仁), 의(義), 예(禮), 지(智)의 근원을 이룬다.
맹자의 정치사상의 핵심은왕도정치인데, 이 왕도정치가 가능한 것은 사람의 본성이 선하기 때문에 가능하다는 것이다. 즉, 사람의 본성은 착하다고 보고, 그 마음을 확대하여 나가면 인의예지(仁義禮智) 네 가지 덕을 완성하여, 다시 이 덕행으로 천하의 백성들을 교화시킴으로써 왕도정치가 실현된다고 보았다.
맹자는 왕도정치의 정신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사람은 다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 왕이 먼저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으면,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가 있다. 백성에게 차마 못하는 정치를 행하면 천하 다스리기를 손바닥 안에서 움직일 수 있다.”
여기서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란, 사람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차마 하지 못하여, 사람의 불행을 앉아서 차마 보지 못하는 마음, 이 마음으로 천하를 다스린다면 마치 손바닥 위에서 물건을 굴림과 같이 아주 쉽게 공을 거둘 수 있다는 말이다.
맹자는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은 사람에게 본래 있는 것이라며 성선설을 입증하고 있다.
사람들은 다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마음이 있다고 하는 까닭은 이러하다. 이제 사람들이 어린아이가 막 우물에 빠지는 것을 보면, 다 놀라고 불쌍한 마음을 가진다.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사귀려 함도 아니며, 마을 사람들과 벗들에게 칭찬을 받기 위하여 그러는 까닭도 아니며, 그 원성을 듣기 싫어서 그렇게 하는 것도 아니다.
맹자는 사람들은 다 차마 못하는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앞의 이야기로 설명하고 있다. 즉, 어린아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사람들은 누구나 두려워 근심하고 깊이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들어, 반드시 달려가 구하려고 하는데, 이는 사람에게 차마 못하는 근본 마음이 본능적으로 행동하게 할 뿐이라는 것이다.
측은지심(惻隱之心)과 인(仁)
인(仁)은 자기 한 몸을 넘어 자신의 세계를 확장시키는데 작용하는 덕이다. 즉 타인에게로 퍼져가는 나의 관심과 사랑이다.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 혹은 불인지심(不忍之心)이 인(仁)의 단서라고 말한다(공손추상6). 측은지심이라고 하거나 불인지심이라고 하거나 의미는 타인의 불행을 남의 일 같지 않게 느끼는 마음이다. 즉 동정심이다.
맹자는 인간과 인간 사이를 잇는 마음, 현대어로 표현하면 사랑이라고 할 그 마음이 바로 동정심이라고 생각했다. 동정심을 가지고 있으므로 나는 내 안에만 갇히지 않고 타인의 느낌을 공감하며, 그럼으로써 나를 보살피고 내 가족을 보살피듯이 타인을 보살핀다.
맹자는 한편에서 어버이를 사랑하는 것이 인(仁)이라고 말한다(진심상15). 또 맹자는 '군자는 사물에 대해서는 아끼기는 하지만 인(仁)으로 대하지는 않고, 백성에 대해서는 인으로 대하지만 친애하지는 않는다'는 말도 한다(진심상45).
이 구절은 부모에 대한 애정과 백성에 대한 애정, 그리고 그 밖의 동물이나 무생물에 대한 애정의 강도가 다르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부모에 대한 사랑을 능가할 것은 없다. 맹자는 어버이, 또는 혈육에 대한 사랑을 의미하는 친애(親)를 사랑의 근본이자 출발점으로 삼은 것 같다.
측은지심이 남의 불행을 느낄 수 있는 감정이므로, 그 함께 느낌의 능력은 공간적으로 가까운 곳에서 시작될 것이다. 즉 자신의 부모를 가장 사랑할 것이며 집안의 친척어른은 그보다는 덜 절실한 마음으로 사랑할 것이며 동네 어른은 그보다 더 엷은 마음으로 사랑할 것이다.
그런 식으로 그 사랑의 영역을 확대해 나가면 점점 사랑이 엷어지기는 하지만 이 세상에 사랑하지 않는 존재는 하나도 없게 된다. 그 관심과 사랑을 통해 나의 존재가 확대되는 것이라면 나의 존재는 이 세상 전체로 확대된다.
절실함의 차이는 있지만 이 세상 모든 존재의 아픔과 기쁨을 함께 느낀다. 그 과정을 맹자는 '동정심을 느끼는 마음을 느끼지 않는 부분까지 이르도록 하는' 과정이라고 표현했다(진심하31).
측은지심(惻隱之心)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고 함께 아파하는 마음으로, 맹자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사양지심(辭讓之心) 시비지심(是非之心)과 함께 사람이 가진 선천적 도덕능력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주말 심한 미세먼지 속에서도 정동길은 봄을 만끽하려는 시민들로 가득했다. 평소처럼 정동길을 걷던 필자도 사람들 틈에서 덕수궁 돌담길과 어우러진 새꽃을 둘레둘레 구경했다. 그때 맞은 편에서 유모차를 타고오던 두어살되는 아이가 벌떡 일어나더니 앞으로 고꾸라지려는 것이었다. 마침 옆을 지나던 나는 앗! 소리와 함께 아이를 안으려 뛰어갔다. 그러자 맞은편에서 오던 한 아주머니도 뛰어와서 아이를 안았다. 그 와중에 우리는 서로 가볍게 이마를 부딪쳤지만 아이는 무사했다.
위험에 처한 사람을 무의식중에 구하려는 마음가짐, 이를 우리는 넓은 의미로 인지상정(人之常情)이라 하며, 이를 유가에서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있는 불인지심((不忍之心, 차마 하지못하는 마음)이라 한다.
아무것도 모르는 어린아이가 우물로 앙금앙금 기어가 빠지려는 모습을 보게 된다면, 사람이라면 누구나 깜짝 놀라며 자신도 모르게 달려가 아이를 구할 것이다. 누구에게 칭찬을 듣고자 하는 행동이 아니라 본능적으로 달려가 위험에서 구하려는 것이다. 이런 마음을 맹자는 측은지심(惻隱之心)이라 했다. 남의 불행을 보고 불쌍히 여기는 마음, 동정하는 마음이다.
맹자는 우리 인간이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네가지 마음을 지니고 태어난다고 했다. 이는 측은지심• 수오지심• 사양지심• 시비지심 등 4단(四端)으로, 각각 인• 의• 예• 지의 착한 본성에서 발로되어 나오는 감정이라 한다. 그래서 '실마리(端緖)'라고 이름 붙였는데, 이는 선(善)이 발생할 가능성을 지닌 시초를 말한다.
이에 대해서는 맹자가 공손추(公孫丑)편에서 역설하고 있다. 측은지심(惻隱之心)은 남의 불행을 함께 아파하는 마음, 수오지심(羞惡之心)은 부끄럽게 여기고 수치스럽게 여기는 마음, 사양지심(辭讓之心)은 남에게 양보하는 마음, 시비지심(是非之心)은 선악시비를 판별하는 마음이다.
이 중에서 측은지심은 나머지 삼단의 근원이 된다. 마치 사계절이 있지만 봄이 없으면 여름 가을 겨울이 있을 수 없는 것과 같다. 측은지심은 이 세상 만물을 사랑하고 길러주는 마음이다. 측은지심을 가지고 있으면 남에게 잔인하게 굴지 못하며, 정치지도자는 독재를 할 수가 없으며, 기업가는 노동자를 착취할 수가 없으며, 이른바 갑질도 할 수없을 것이다. 세월호 사고와 이태원 참사로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자식을 잃은 유족들의 아픔을 외면한 ‘시체팔이’ 등의 막말도 할 수없을 것이다.
우리들은 자신의 이익, 명예, 안락만 좇다보니 본래 가지고 있는 측은지심을 버리며 살고있다. 측은지심은 본성에서 우러나오는 것으로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해 내는 마음이 아니라는 것 또한 잊고 있다.
맹자에 의하면, 이 네가지 실마리는 모든 사람이 다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일종의 선천적인 도덕적 능력이다. 맹자는 이를 확충함으로써 인• 의• 예• 지의 덕을 실현할 수 있다고 했다. 사단설은 맹자 성선설의 근본으로 인간의 도덕적 주체 내지 도덕적 규범의 근거를 이루고 있다.
논어 팔일편(八佾篇)에는 자하가 시경 위풍 석인(衛風 碩人)의 한 구절인 ‘巧笑倩兮 美目盼兮 素以爲絢兮(교소천혜 미목반혜 소위위현혜)’의 뜻을 공자에게 묻는 대목이 나온다. '아리따운 웃음과 예쁜 보조개, 아름다운 눈과 검은 눈동자, 소(素)가 곧 아름다움이로다'가 무슨 뜻이냐는 물음이다. 공자는 "그림은 바탕을 깨끗이 한 후에 그리는 법이다(繪事後素 회사후소)"라고 대답한다.
이 대화의 요체는 아름다움의 겉모습과 그 알맹이에 대한 담론이다. 미소와 보조개와 검은 눈동자는 외적인 아름다움이고, 그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인간적인 바탕이 순수해야 아름답다는 것이다. 소(素)의 의미는 인간이 타고난 본래의 선한 인간적 품성을 뜻한다. 공자의 말씀은 우리 내면의 아름다움이 받쳐주지 못하는 외모는 허상이란 뜻이다.
성선설을 주장한 맹자는 물론 성악설을 주장한 순자도 인성교육, 즉 인간 됨됨이의 바탕을 중요시하고 있다. 순자는 우리가 비록 악한 마음을 타고났더라도 그것을 지우기 위해, 맹자는 그 선한 마음을 유지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고 참구(參究)해야 한다는 것이다.
'오지랖이 넓다'라는 말은 '아무 일에나 쓸데없이 참견한다'는 부정적인 뜻으로 쓰이며, 이런 이들을 신조어로 '오지라퍼(오지랖+er)‘라 한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 또한 주변사람에 관심이 있어서일 것이다. 그 관심이 쓸데없는 참견을 넘어 상대방의 가슴에 대못을 박는 행위가 된다면 진지하게 숙고해야하겠지만. 그러나 착한 오지랖은 넓은 의미의 인지상정 또는 측은지심이라 여기는 아량도 필요할 것이다.
성선설(性善說)
인간의 성품이 본래부터 선(善)한 것이라고 보는 맹자(孟子)의 학설이다. 순자(荀子)의 성악설(性惡說)과 대립되는 이론이다.
맹자는 천명지위성(天命之謂性)이라고 한 중용의 내용을 계승해 성을 만물에 내재된 하늘의 작용, 즉 천명으로 파악함으로써 만물은 성, 즉 천명을 중심으로 볼 때 모두 하나라고 하는 만물일체사상(萬物一體思想)을 확립하였다.
그리고 하늘의 작용이 천지 자연의 대조화(大調和)를 연출하고 있으므로 그 하늘의 작용을 성으로 이어받은 인간도 성의 움직임을 따르면 인간 사회는 저절로 조화를 이루게 된다는 의미에서 성선설을 주장하였다.
하늘의 작용인 천명은 만물을 낳고자 하는 작용으로 이해할 수 있는데, 맹자에 의하면 이 천명의 작용은 여천지동류(與天地同流)로 표현된 바와 같이 유(流) 즉 흐름의 개념으로 파악된다.
모든 존재자의 근저에서 흐르고 있는 이 흐름은 형이상학적인 개념이다. 맹자에 의하면 모든 존재자의 존재하는 현상들은 이 흐름에 편승하여 조화를 이룬 상태에서 유지되는 것으로 설명된다.
이러한 흐름을 존재의 본질로서 이어받고 있는 인간의 성은 남을 사랑하는 작용으로 나타나는데, 만물을 낳고자 하는 천명이나 남을 사랑하는 인성(人性)은 모두 인간의 의식이나 감정의 밑바닥에서 흐르는 인간 행위의 원동력이다.
인성의 내용으로서 설명되는 구체적인 예는 맹자에 의하면, 인의예지(仁義禮智)로 설명된다. 인(仁)은 측은지심(惻隱之心), 의(義)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禮)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智)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이 나타나는 바탕이 된다.
측은지심의 구체적인 예로 맹자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다. 즉, 사람들은 어린아이가 우물에 들어가려 하는 것을 언뜻 보면 다 깜짝 놀라며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생기는데, 이는 그 어린아이의 부모와 교제하기 위한 것도 아니고 동네의 친구들에게 어린아이를 구해 주었다는 명예를 얻기 위함도 아니며, 어린아이를 구해 주지 않았다고 비난하는 소리가 싫어서도 아니라는 것이다.
이 측은지심과 같은 성의 작용은 인간의 생각이나 판단을 초월해 존재하는 만인 공통의 것이며 그러한 의미에서 이를 천명이라 설명하는 것인데, 이러한 성이나 천명의 작용을 맹자는 선(善)이라고 한 것이다.
그러므로 맹자가 성선이라고 했을 때의 선은 인간의 의식이나 생각이 개입된 판단에 의해 이루어진 도덕적 행위를 표현한 말이 아니라, 의식을 초월해 그 밑바닥에서 흐르고 있는 성의 움직임 그 자체를 표현한 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의미의 선은 주역의 계지자선 성지자성(繼之者善 成之者性)이라 했을 때의 선의 개념처럼 악에 대립되는 상대 개념이 아니라 상대 개념의 선악을 초월한 절대 개념이다.
맹자의 성선설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맹자 고자장(告子章)에서 펼쳐진 고자와의 논쟁에서 살펴보면 대략 다음과 같다.
① 성은 기류(杞柳) 즉 버드나무와 같고 의는 배권(桮棬 : 나무를 구부려 만든 술잔)과 같으니, 인성을 가지고 인의라 하면 버드나무를 가지고 그릇이라 하는 것과 같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옳지 않다고 한 고자의 말에 대해, 맹자는 답했다. “자네는 능히 버드나무의 성질을 이용해 그 그릇을 만드는가 아니면 버드나무의 성질을 없애어 그릇을 만드는가, 만약 버드나무의 성질을 없애서 그릇을 만든다면 사람의 본성을 없애서 인의를 만드는가”라고 되물으며, 버드나무로 만든 그릇은 버드나무의 성질을 이용해 만드는 것처럼 성과 인의도 일직선상에서 파악되어야 함을 설명하였다.
② 성은 고여 있는 물과 같아 동쪽으로 터놓으면 동쪽으로 흐르고 서쪽으로 터놓으면 서쪽으로 흐르게 되어 물의 흐름이 동서로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인성에도 선과 악으로 나누어져 있지 않다고 하여 성선설에 반대한 고자에 답했다,
맹자는 물의 흐름은 동서로 나누어져 있지 않지만 상하로는 나누어져 있는 것이니, 인성이 선한 것은 물이 아래로 흐르는 것과 같다고 함으로써 성선의 선이 절대 개념임을 강조하였다.
③ 생지위성(生之謂性)이라 하여 성을 생(生)으로 해석함으로써 성을 육체적인 생명 현상으로 파악한 고자에 대해, 맹자는 개의 성과 소의 성, 사람의 성은 천명으로서의 근원은 같지만 현상 속에서 구체화되어 나타날 때는 다른 양상으로 나타난다고 함으로써 성은 육체적인 생명 현상이 아니라 선천적인 것임을 설명하였다.
④ 식(食)이나 색(色)을 좋아하는 것과 같은 육체적인 생명 현상이 성이며 또 맹자가 성의 내용으로 설명한 인의예지 가운데 인은 심(心)의 안에 있지만 의는 저 사람이 연장자이기 때문에 내가 연장자 대접을 해주는 것과 같이 심의 바깥에 있는 것이므로 인의예지의 성을 인간의 심 내부에 있는 선험적(先驗的)인 것이라고 한 맹자의 성설(性說)을 옳지 않다고 고자가 비판하였다.
고자의 비판 대해, 맹자는 연장자를 보고 연장자로 대접하는 심의 작용이 의이기 때문에 연장자로 대접하는 작용은 심 속에 있는 것이며, 따라서 성의 내용이 된다고 답변해 성의 내면적 선천성을 설명하였다.
성선설에 반해, 인간의 육체가 가지는 기본적인 욕구를 성으로 파악한 순자는 투쟁으로 나아가는 육체적인 욕구의 방향성에 주목하여 성악설을 주장하였다.
그 밖에 중국 철학 사상에서 전개된 성설을 보면, 성에는 선이나 악이 결정되어 있지 않다는 고자의 성무선무악설(性無善無惡說), 모든 사람의 성에는 선과 악이 동시에 내재해 있다는 양웅(揚雄)의 성선악혼효설(性善惡混殽說), 사람 중에는 선한 성을 가진 자, 악한 성을 가진 자, 그리고 선으로 인도하면 선하게 되고 악으로 인도하면 악하게 되는 중간자의 삼품(三品)으로 구분된다는 한유(韓愈)의 성삼품설(性三品說) 등이 있다.
송대에 완성된 성리학에서는 특히 맹자의 성을 본연지성(本然之性), 순자의 성을 기질지성(氣質之性)으로 파악해 맹자의 성선설과 순자의 성악설을 통합하였다.
한편, 인성론(人性論) 중심으로 발달한 한국 유학에 있어서는 성론이 철학의 중심 과제가 되어온 것은 사실이나, 맹자의 성설이 주로 수용되고, 다른 성설은 수용되지 않았기 때문에, 성설이 다양하게 전개되지 않고 맹자의 성설을 전제한 상태에서 주로 성을 실천하기 위한 수양 철학(修養哲學)이 발달하였다.
퇴계 철학에 있어서의 경사상(敬思想)이나 율곡 철학에 있어서의 경사상이 바로 성의 실천을 위한 수양 철학인 것이다.
그리고 기질지성의 문제는 한원진(韓元震)의 인물성상이설(人物性相異說)을 중심으로 전개된 호학(湖學)과 실학(實學)에서 취급되었으나 한국 유학의 주류를 형성하는 데까지 발전하지는 못하였다.
▶️ 惻(슬플 측)은 형성문자로 恻(측)은 간자(簡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則(즉, 측)이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그래서 惻(측)은 ①슬퍼하다 ②감창(感愴)하다(사무쳐 슬프다) ③가엾게 여기다 ④간절(懇切)한 모양 ⑤진심(眞心)을 다하는 모양,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슬플 애(哀), 슬플 오(嗚), 슬플 창(愴), 슬플 강(慷), 슬플 비(悲), 슬퍼할 도(悼), 슬퍼할 처(悽), 슬퍼할 개(慨)이다. 용례로는 딱하고 가엾게 여김을 측은(惻隱), 가없게 여기어 걱정함을 측민(惻憫), 남을 가없게 생각하는 모양 또는 측은하게 여기는 모양을 측연(惻然), 몹시 가엽게 여겨 슬퍼함을 측절(惻切), 불쌍히 여기어 슬퍼함을 측달(惻怛), 괴롭고 슬픔을 측창(惻愴), 마음 속으로 가엾게 여김을 은측(隱惻), 몹시 딱하고 가여움 또는 간절하고 지성스러움을 간측(懇惻), 사단四端의 하나로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이르는 말을 측은지심(惻隱之心),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고 또는 이를 측은히 여겨야 한다는 말을 인자은측(仁慈隱惻) 등에 쓰인다.
▶️ 隱(숨을 은)은 ❶형성문자로 隠(은)의 본자(本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좌부변(阝=阜; 언덕)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㥯(은)으로 이루어졌다. 언덕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 것을 뜻한다. 전(轉)하여 '숨다, 가리다'의 뜻이 있다. ❷회의문자로 隱자는 ‘숨다’나 ‘음흉하다’, ‘수수께끼’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隱자는 阜(阝:언덕 부)자와 㥯(삼갈 은)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㥯자는 ‘삼가하다’나 ‘조급하다’라는 뜻을 갖고 있다. 이렇게 조급함을 뜻하는 㥯자에 阜자가 결합한 隱자는 조급히 산속으로 숨었다는 뜻이다. 그래서 隱(은)은 성(姓)의 하나로 ①숨다 ②점(占)치다 ③가엾어 하다 ④근심하다(속을 태우거나 우울해하다) ⑤음흉(陰凶)하다 ⑥쌓다 ⑦무게 있다 ⑧기대다 ⑨수수께끼,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숨을 둔(遁), 숨을 찬(竄), 숨을 칩(蟄), 숨을 암(闇),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나타날 현(現), 볼 견(見), 나타날 현(顯)이다. 용례로는 가리어 숨김이나 덮어 감춤을 은폐(隱蔽), 숨김이나 감춤을 은닉(隱匿), 숨어 있어서 형적이 나타나지 않음을 은밀(隱密), 직임에서 물러나거나 세속의 일에서 손을 떼고 한가히 삶을 은퇴(隱退), 세상을 버리고 숨음을 은둔(隱遁), 세상을 피해 숨어 삶을 은거(隱居), 세상을 피하여 조용히 살고 있는 선비를 은사(隱士), 속엣것이 흐릿하게 보임을 은은(隱隱), 숨은 그림을 은화(隱畫), 숨겨 비밀로 함을 은비(隱祕), 동아리끼리 저희들만 알도록 특정한 뜻을 숨겨 붙인 말을 은어(隱語), 숨어서 나오지 않음을 은폐(隱閉), 몸을 숨김을 은신(隱身), 뚜렷하지는 않으나 어딘지 모르게 모양이 드러남을 은연(隱然), 딱하고 가엾게 여김을 측은(惻隱), 앉아서 은둔한다는 뜻으로 바둑을 달리 이르는 말을 좌은(坐隱), 백성이 시달려 생활하는 데 겪는 괴로움을 민은(民隱), 엎드려 숨음을 복은(伏隱), 죄인을 숨겨준 죄를 용서함을 용은(容隱), 스스로 감추고 나타내지 아니함을 자은(自隱), 속이고 감춤을 기은(欺隱), 도망쳐 숨음을 도은(逃隱), 밖으로 드러내지 아니하고 참고 감추어 몸가짐을 신중히 함을 은인자중(隱忍自重), 속세를 떠나 산 속에 숨어들어도 어버이 섬기기를 게을리 하지 않음을 은불위친(隱不違親), 속세를 피하여 혼자 지내면서 품고 있는 생각을 거리낌 없이 말함을 은거방언(隱居放言), 나쁜 점은 숨기고 좋은 점은 드러냄을 은악양선(隱惡揚善), 서로 염려하는 마음이 미침을 은지상급(隱志相及), 남의 불행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을 측은지심(惻隱之心), 자식은 아비를 위해 아비의 나쁜 것을 숨긴다는 뜻으로 부자지간의 천륜을 이르는 말을 자위부은(子爲父隱), 스스로 은둔하여 이름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음을 자은무명(自隱無名), 머리를 감추고 꼬리를 숨긴다는 뜻으로 일의 전말을 확실히 밝히지 않음을 이르는 말을 장두은미(藏頭隱尾), 어진 마음으로 남을 사랑하고 또는 이를 측은히 여겨야 함을 인자은측(仁慈隱惻) 등에 쓰인다.
▶️ 之(갈 지/어조사 지)는 ❶상형문자로 㞢(지)는 고자(古字)이다. 대지에서 풀이 자라는 모양으로 전(轉)하여 간다는 뜻이 되었다. 음(音)을 빌어 대명사(代名詞)나 어조사(語助辭)로 차용(借用)한다. ❷상형문자로 之자는 ‘가다’나 ‘~의’, ‘~에’와 같은 뜻으로 쓰이는 글자이다. 之자는 사람의 발을 그린 것이다. 之자의 갑골문을 보면 발을 뜻하는 止(발 지)자가 그려져 있었다. 그리고 발아래에는 획이 하나 그어져 있었는데, 이것은 발이 움직이는 지점을 뜻하는 것이다. 그래서 之자의 본래 의미는 ‘가다’나 ‘도착하다’였다. 다만 지금은 止자나 去(갈 거)자가 ‘가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之자는 주로 문장을 연결하는 어조사 역할만을 하고 있다. 그래서 之(지)는 ①가다 ②영향을 끼치다 ③쓰다, 사용하다 ④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도달하다 ⑤어조사 ⑥가, 이(是) ⑦~의 ⑧에, ~에 있어서 ⑨와, ~과 ⑩이에, 이곳에⑪을 ⑫그리고 ⑬만일, 만약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이 아이라는 지자(之子), 之자 모양으로 꼬불꼬불한 치받잇 길을 지자로(之字路), 다음이나 버금을 지차(之次), 풍수 지리에서 내룡이 입수하려는 데서 꾸불거리는 현상을 지현(之玄), 딸이 시집가는 일을 지자우귀(之子于歸), 남쪽으로도 가고 북쪽으로도 간다 즉, 어떤 일에 주견이 없이 갈팡질팡 함을 이르는 지남지북(之南之北) 등에 쓰인다.
▶️ 心(마음 심)은 ❶상형문자로 忄(심)은 동자(同字)이다. 사람의 심장의 모양, 마음, 물건의 중심의, 뜻으로 옛날 사람은 심장이 몸의 한가운데 있고 사물을 생각하는 곳으로 알았다. 말로서도 心(심)은 身(신; 몸)이나 神(신; 정신)과 관계가 깊다. 부수로 쓸 때는 심방변(忄=心; 마음, 심장)部로 쓰이는 일이 많다. ❷상형문자로 心자는 '마음'이나 '생각', '심장', '중앙'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心자는 사람이나 동물의 심장을 그린 것이다. 갑골문에 나온 心자를 보면 심장이 간략하게 표현되어 있었다. 심장은 신체의 중앙에 있으므로 心자는 '중심'이라는 뜻도 가지고 있다. 옛사람들은 감정과 관련된 기능은 머리가 아닌 심장이 하는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心자가 다른 글자와 결합할 때는 마음이나 감정과 관련된 뜻을 전달한다. 참고로 心자가 부수로 쓰일 때는 위치에 따라 忄자나 㣺자로 바뀌게 된다. 그래서 心(심)은 (1)종기(腫氣) 구멍이나 수술한 구멍에 집어넣는 약을 바른 종이나 가제 조각 (2)나무 줄기 한 복판에 있는 연한 부분 (3)무, 배추 따위의 뿌리 속에 박인 질긴 부분 (4)양복(洋服)의 어깨나 깃 따위를 빳빳하게 하려고 받쳐 놓는 헝겊(천) (5)초의 심지 (6)팥죽에 섞인 새알심 (7)촉심(燭心) (8)심성(心星) (9)연필 따위의 한복판에 들어 있는 빛깔을 내는 부분 (10)어떤 명사 다음에 붙이어 그 명사가 뜻하는 마음을 나타내는 말 등의 뜻으로 ①마음, 뜻, 의지(意志) ②생각 ③염통, 심장(心臟) ④가슴 ⑤근본(根本), 본성(本性) ⑥가운데, 중앙(中央), 중심(中心) ⑦도(道)의 본원(本源) ⑧꽃술, 꽃수염 ⑨별자리의 이름 ⑩진수(眞修: 보살이 행하는 관법(觀法) 수행) ⑪고갱이, 알맹이 ⑫생각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물건 물(物), 몸 신(身), 몸 체(體)이다. 용례로는 마음과 몸을 심신(心身), 마음이 움직이는 상태를 심리(心理), 마음에 품은 생각과 감정을 심정(心情), 마음의 상태를 심경(心境), 마음 속을 심중(心中), 마음속에 떠오르는 직관적 인상을 심상(心象), 어떤 일에 깊이 빠져 마음을 빼앗기는 일을 심취(心醉), 마음에 관한 것을 심적(心的), 마음의 속을 심리(心裏), 가슴과 배 또는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심복(心腹), 본디부터 타고난 마음씨를 심성(心性), 마음의 본바탕을 심지(心地), 마음으로 사귄 벗을 심우(心友), 마음에서 마음으로 전한다는 뜻으로 묵묵한 가운데 서로 마음이 통함을 일컫는 말을 심심상인(心心相印), 어떠한 동기에 의하여 이제까지의 먹었던 마음을 바꿈을 일컫는 말을 심기일전(心機一轉), 충심으로 기뻐하며 성심을 다하여 순종함을 일컫는 말을 심열성복(心悅誠服), 마음이 너그러워서 몸에 살이 오름을 일컫는 말을 심광체반(心廣體胖), 바둑을 두면서 마음은 기러기나 고니가 날아오면 쏘아 맞출 것만 생각한다면 어찌 되겠느냐는 맹자의 언질에서 비롯된 말로 학업을 닦으면서 마음은 다른 곳에 씀을 일컫는 말을 심재홍곡(心在鴻鵠), 썩 가까워 마음놓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일컫는 말을 심복지인(心腹之人), 높은 산속의 깊은 골짜기를 일컫는 말을 심산계곡(心山溪谷), 심술꾸러기는 복을 받지 못한다는 말을 심술거복(心術去福), 마음이 번거롭고 뜻이 어지럽다는 뜻으로 의지가 뒤흔들려 마음이 안정되지 않음을 일컫는 말을 심번의란(心煩意亂), 마음에 줏대가 없음을 일컫는 말을 심무소주(心無所主), 시간을 보내기 위하여 심심풀이로 어떤 일을 함 또는 그 일을 일컫는 말을 심심소일(心心消日), 마음이 움직이면 신기가 피곤하니 마음이 불안하면 신기가 불편함을 일컫는 말을 심동신피(心動神疲), 마음속의 생각이나 느낌을 이르는 말을 심중소회(心中所懷), 사람의 생각이 미치지 못하는 경지를 일컫는 말을 심행소멸(心行消滅), 마음속의 생각을 모두 털어놓음을 일컫는 말을 심복수사(心腹輸寫), 마음을 다하여 도를 구함을 일컫는 말을 심성구지(心誠求之), 심두 즉 마음을 멸각하면 불 또한 시원하다라는 뜻으로 잡념을 버리고 무념무상의 경지에 이르면 불 속에서도 오히려 시원함을 느낀다는 말을 심두멸각(心頭滅却), 마음은 원숭이 같고 생각은 말과 같다는 뜻으로 마음이 안정되지 않아 생각을 집중할 수 없다는 말을 심원의마(心猿意馬)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