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유백령도(夢遊白翎圖) / 정희성
풍경은 얼마쯤 낯설어야 풍경이고
시도 얼마쯤 낯설어야 시가 된다
이 섬의 이름은 원래 곡도(鵠島)
따오기 모양의 거대한 흰 날개를 가졌다는
이 섬의 아름다움은 기이하다
평화와 상생을 위한 문학축전을 마치고
두무진(頭武津)으로 가 유람선을 탔다
아홉시 방향을 보라
선장의 말에 시선이 한쪽으로 쏠린다
구멍 뻥 뚫린 바위 옆에 우뚝 솟은 촛대바위
괭이갈매기 가마우지 똥이 하얗게 쌓인
촛대바위 뒤로는 병풍절벽 가까스로
절벽을 기어오른 덩굴식물 사이로 초소가 보이고
구멍 속에는 초병(哨兵)이 하나 서서
장산곶 하늘의 매를 감시하고 있다
아니, 그는 아마 눈먼 아비를 위해
심청이 몸을 던졌다는 인당수에
연꽃이 언제 피는가 지켜보고 있을 것이다
가마우지가 몇 번 자맥질을 하고
물개가 몇 번이나 솟구쳐 휘바람을 불고
괭이갈매기는 또 몇 번이나 울며 날았는지
하루 종일 심심풀이로 헤아렸을 터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바다 한가운데
병사를 세워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언제가는 병사들도 심봉사처럼
눈뜰 날이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심청이 환생했다는
연화리(蓮花里)가 여기 있을 턱이 없지
그렇지 않고서야 심청각 옆에
탱크를 세워둘 이유가 무엇이란 말인가
옛날 이 바다에 곤(鯤)이라는 물고기가 살고 있었다*
크기가 몇 천리가 되는지 모르나
이것이 변해 붕(鵬)이란 새가 되었다
붕새는 얼마나 큰지
한번 날면 하늘을 뒤덮는 구름과 같았다
지금까지 바다 한가운데 웅크리고 있던 그 큰 새가
제 몸에 얹힌 온갖 것 훌훌 털고
크고 흰 날개 퍼득여 하늘로 오를 날
오기는 올 것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백령도가 황해바다 한가운데 서있을 수 있겠는가
* 장자 <소요유 逍遙遊>에 나오는 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