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토니아]-탈린
탈린, 11세기 이후 유럽 각국 문화 흡수
발트해의 진주, 발트해의 순결한 보석, 발트해의 자존심. 에스토니아(Estonia)의 수도 탈린(Tallinn)은 우리나라 여행관련 프로그램의 인기 소재로 떠오르면서, 그에 따라 수식어도 많아지고 있다. 800년의 역사가 곳곳에 담긴 돌담길로 뒤덮인, 중세의 분위기를 그대로 끌어당기는 듯한 구시가지를 아무 생각 없이 돌아다니기만 해도 그러한 수식어가 남의 생각만은 아님을 느끼게 된다. 1991년 독립한 이후 북유럽 최고 관광도시로 떠오른 탈린은 독립 20주년을 맞는 2011년, 핀란드 투르쿠(Turku)와 함께 유럽 문화수도로 지정되어 일 년 내내 유럽을 오가는 관광객들의 관심을 사로잡을 계획이다. | |
하늘에서 내려다본 탈린 구시가지와 발트해. <사진: Allan Alajaan>
탈린 구시가지는 걸어서 한 바퀴 도는 데 몇 시간이 걸리지 않을 만큼 자그마한 규모이지만, 탈린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하루에 세 번은 그곳에 나가봐야 한다. 새벽안개도 가시지 않고 인적도 묘연한 이른 아침의 탈린은 마치 그림에서 튀어나온 듯 환상적인 느낌마저 준다. 특히 새벽녘 촉촉하게 젖은 자갈길은 수백 년 이 땅을 지켜온 역사의 흔적이 이슬로 내려앉은 듯 포근한 느낌을 연출한다. 동이 터 사람의 움직임으로 가득해지면 수백 년 전부터 발트해 무역의 관문으로서 사람들을 끌어모으던 탈린의 매력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해가 진 후 구시가지 곳곳에 마련된 전망대에 올라서면 발트해를 오가는 여객선과 구시가지 성벽의 야경을 밝히는 조명, 그리고 신시가지의 화려한 불빛이 조화를 이루는 환상적인 세계도 체험할 수 있다. 특히 북유럽 최고의 관광지라는 명성에 걸맞게, 밤에 이곳을 찾는 젊은이들이 즐길 수 있는 시설도 충분히 갖추어져 있다. | |
중세의 분위기가 아름다운 카타리나 골목 내 노천카페. 탈린에서 가장 아름다운 거리 중 하나로 꼽힌다. <사진: Toomas Volmer> |
현재 카타리나 골목에는 수공업자들의 모임인 카타리나 길드가 입주해 왕성한 활동을 보이고 있기도 하다. <사진: Toomas Volmer> |
카타리나 골목은 중세 종교개혁 전까지 구시가지 내에서 활동했던 카타리나 수도원으로 이르는 길이란 의미이다. 현재 수도원은 사라졌지만 1970년내에 대대적인 발굴과 보수 공사 이후 후 과거 수도원 성내에 안치되었던 귀족들의 비석을 골목 내부로 옮겨놓아 당시 분위기를 상당히 재현해놓았다. 현재는 14개의 수공업 공방이 결정해 조직한 카타리나 길드의 주요 활동지역이자 중세 분위기를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지역으로서 일년 내내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 |
멋진 광경을 만날 수 있는 톰페아 언덕. <사진: Kirsti Eerik > |
현재 국회의사당 건물로 사용되고 있는 톰페아 성의 웅대한 모습. <사진: Kaido Teesalu> |
현재 탈린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수도이지만, 엄밀히 말하면 이곳은 에스토니아 민중들을 농노로 부리던 강대국들이 만들어놓은 지배의 상징이기도 하다. 1219년 덴마크를 필두로 하여, 독일, 스웨덴, 제정 러시아 등이 차례차례 이 연약한 영토를 탐하였고, 그런 지배의 역사는 1990년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고난의 흔적을 없애지 않고 에스토니아 역사의 일부분으로 만들어, 한때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 소련의 비밀경찰들이 활동하던 건물도 구시가지에서 탈린 시민들과 소통하고 있다.
탈린 가장 높은 곳 톰페아(툼페아, Toompea) 언덕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 톰페아 성의 꼭대기에는 덴마크를 필두로 이곳을 지배해오던 권세가 어디에 있는지 보여주는 깃발이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에스토니아 공화국의 국회의사당으로 쓰이고 있고 에스토니아의 삼색기가 펄럭이고 있다. 이 아름다운 도시는 이제 엄연히 에스토니아인들의 소유가 되었음을 만방에 공표하고 있는 셈이다.
톰페아 언덕에서 바라보는 장관
탈린의 구시가지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탈린의 지배세력들이 정치와 행정목적으로 사용하던 건물들이 남아 있는 고지대, 그리고 13세기경부터 발트해의 주요 무역 거점지 중 하나로 발전하면서 탈린에 자리 잡기 시작한 무역상들의 건물이 밀집해 있는 저지대가 바로 그것이다. 고지대라고 해도 국토 전체가 평지인 에스토니아이므로 기껏해야 해발 45미터에 불과하지만, 저지대 가운데 구불구불 이어진 골목들과 발트해를 아우르는 훌륭한 광경을 선사해주는 전망대가 곳곳에 있어 관광객들에게 잊지 못할 기억을 선사해준다. | |
탈린 고지대에 위치한 톰 성당. <사진: Kristjan Mändmaa> |
탈린의 명물 중세식 아몬드 판매대. <사진: Kärt Kübarsepp> |
탈린 고지대 전체는 ‘톰페아(Toompea)’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톰페아 언덕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바로 언덕의 이름을 지어준 ‘톰페아 성(Toompea loss)’이 될 수 있겠으나, 현재 이 성은 국회 건물인 만큼 일반 관광객들의 출입은 어렵다. 1219년 덴마크인들이 이곳에 진출한 이후 최초로 지은 성당으로 알려진 톰 성당(St Mary's Cathedral, Toomkirik)은 탈린의 변천을 오롯이 지켜봐 온 소중한 건물이다. 현재 내부는 중세 시절 탈린을 중심으로 활동하던 길드들이 사용한 문장들을 전시해 놓아 탈린의 역사를 한눈에 읽을 수 있도록 해준다.
도시 풍광의 밑그림을 그려준 길드들을 만날 수 있는 저지대
짧은 다리라는 이름의 ‘뤼히케 얄그(Lühike Jalg) 거리, 그리고 긴 다리라는 뜻의 ‘픽 얄그(Pikk Jalg)’. 이 재미있는 이름의 두 거리는 고지대에서 저지대를 이어주는 골목 두 개를 일컫는다.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올라갈 때는 ‘짧은 다리’, 반대로 내려갈 때는 ‘긴 다리’를 사용해서 내려오면 골목길의 정취를 한껏 더 느낄 수 있다. | |
저지대에서 고지대로 오르는 두 골목 중의 하나인 뤼히케 얄그 거리. <사진: Kärt Kübarsepp> |
탈린의 상징과도 같은 성벽과 성탑. <사진: Tavi Grepp> |
고지대에서 저지대를 내려다보면 주위를 빙 둘러 서있는 붉은색 벽돌지붕이 인상적인 성벽을 한눈에 볼 수 있다. 탈린이 가장 강성했던 15~16세기에는 그 성벽을 따라 총 길이 4.7km에 이르는 46개의 성탑이 있었고, 이는 북유럽 최고의 철옹성 중 하나였다. 현재는 그 중 1.85km의 성벽과 26개의 성탑만 남아 있지만, 그래도 다른 도시와 차별되는 탈린만의 분위기를 느끼기에는 충분하다. | |
중세 길드 건물의 진수를 보여주는 검은머리 길드 회당. <사진: Kaido Haagen> |
검은머리 길드 회당의 정문. 정문에 양각되어있는 이집트 출신의 흑인 성인의 얼굴 장식이 길드의 명칭을 탄생케 했다. <사진: Toomas Volmer> |
저지대의 볼거리는 뭐니뭐니 해도, 상공업자들의 공동조합조직인 길드(guild) 건물들이다. 무역 거점이었던 탈린에 정착해 경제와 무역활동에 종사하던 그들은 중세무역사뿐만 아니라 탈린이라는 도시 풍광의 밑그림을 그려준 미학적 관점에서도 엄청난 업적을 남겼다. 픽(Pikk) 거리와 라이(Lai) 거리에 남아 있는 3-4층 높이의 단아한 건물들은 중세 상공인들의 생활방식을 그대로 보여준다. 대부분의 건물은 식당, 갤러리, 호텔, 공연장 등으로 다양하게 쓰이고 있지만 당시 그대로의 모습을 허물지 않고 남겨둔 내부장식은 탈린 시민들에게 역사가 갖는 의미가 무엇인지 그대로 전달해준다. | |
하늘에서 내려다본 탈린 시청광장. <사진: Toomas Volmer>
저지대 한가운데 우뚝 솟아있는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고딕양식의 건물인 구시청사(Raekoda) 역시 성탑과 더불어 탈린 스카이라인의 중요한 부분을 장식한다. 여름철이면 중세 복장을 입은 장인들이 만드는 중세분위기의 시장이 이 공간을 가득 채우며, 노천카페 역시 여유로운 도시의 분위기를 한껏 고조시킨다.
시청 광장에서 꼭 가봐야 할 곳은 바로 1422년부터 현재까지 한 곳에서 영업을 이어가고 있는 약국이다. 약국의 한쪽 구석에는 당시 사용되었던 말린 두꺼비, 이집트 미라, 불에 그을린 벌들을 비롯한 여러 가지 다양한 약초 등 재료들이 (물론 모조품이긴 하지만) 중세시절의 분위기를 되살리며 전시되어 있다. 게다가 약품이 모아져있는 진열장 안에 놓여진, 약 200년 전 이 약국을 운영하던 가문의 한 젋은이가 후세의 약사들을 위해 남겨둔 편지 등을 보고 있노라면 중세와 현재가 한 곳에서 충돌한 4차원의 세계로 들어간 느낌까지 갖게 한다.
가는 길
핀에어 직항을 타고 헬싱키에 도착한 후 탈린행 비행기로 갈아타면 된다. 헬싱키에서 탈린까지는 비행기로 35분이다. 북유럽 여행 중 탈린을 방문하고자 한다면 헬싱키 항구에서 수시로 출발하는 쾌속선을 이용하거나, 스톡홀름에서 하루에 한 번 운행되는 여객선을 타면 된다. 모스크바에서 탈린으로 오는 기차가 있으나 서유럽 및 기타 발트국가로의 철도노선은 현재로는 전무하다. 유럽국제버스인 유로라인 (Euroline)에서 유럽 주요 도시간 이어주는 버스노선을 운행하고 있으며, 이지젯 같은 저가항공이나 주요 유럽항공사의 비행기를 타고 입국이 가능하다. 물론 비자는 필요 없다. | |
◆ 에스토니아 탈린
= 발트3국 구도심은 격동의 역사 속에서도 유적이 잘 보존돼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역사와 문화를 보존하고자 하는 국민들의 강한 의지를 살펴볼 수 있다.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은 11세기 덴마크인에 의해 도시가 형성되었다. 그 후 스웨덴, 독일, 구소련, 러시아 지배를 받으며 유럽 각국 문화를 흡수하게 되었다. 고풍스러운 중세건물 위로 솟은 뾰족한 첨탑, 그리고 아기자기한 골목길은 탈린 구시가의 매력이다. 저지대에 위치한 탈린 시청사와 광장은 노천카페, 거리의 예술가와 함께 어우러져 낭만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13세기에 건립된 시청사는 북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시청 건물로 유명하다. 고딕 양식 2층 건물, 석회암으로 장식된 외벽과 예쁜 지붕, 창문이 시선을 끈다.
구시청 남쪽에 위치한 니굴리스테 교회는 13세기 고딕양식이었다가 17세기에 바로크 양식으로 개조되었다. 독특한 건축문화와 함께 베른트 노트케가 그린 `죽음의 춤`이 특히 유명하다. 첨탑에 올라 시내를 조망하는 것도 좋겠다.
툼페아 언덕은 탈린 구시가 중심에 해당한다. 툼페아는 `가장 높은 곳`이라는 의미다. 언덕을 감싸고 있는 성곽은 길이 4㎞, 높이 15m, 두께 3m에 이른다. 중세 유적이 잘 보존되어 있어 방문할 만한 가치가 있다.
◆ 고풍스러운 도시, 탈린
발트 3국을 이루는 나라, 에스토니아와 리투아니아, 라트비아는 1991년 러시아에서 분리되어 독립국가가 되었다. 800년이 넘게 이어진 주변국들의 정벌 전쟁에도 이 세 나라는 문화유산을 보존하기 위해 노력했고, 현재 이곳의 구시가지들이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발트 3국 중에서도 가장 아름답다고 알려진 에스토니아는 북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핀란드와 마주보고 있다. 보통은 에스토니아 수도 탈린에서 여행을 시작하는 경우가 많다.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기차를 타고 7시간 정도 소요된다.
탈린은 `발트해의 진주`라는 수식어만큼이나 고풍스럽고 이국적인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800년 역사가 잘 묻어나는 오래된 건축물 사이 골목길을 따라가다 보면 북유럽 최고 관광도시로 떠오른 탈린의 진가를 확인할 수 있다.
탈린은 구시가지와 신시가지로 구분되는데 중세 분위기가 고스란히 느껴지는 구시가지는 그 자체가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규모는 작지만 조약돌이 깔린 길을 따라서 옛 수도원과 웅장한 성, 운치 있는 노천카페 등이 들어서 둘러보는 재미가 있다. 구시가지 중심인 시청광장에서는 거리 공연이나 공예품 전시도 감상할 수 있다. 1442년 문을 열어 지금까지 손님을 받는 오래된 약국을 비롯해 1267년에 세워진 올라프 고딕교회, 구시가지를 둘러싼 중세 성 등 발길 닿는 곳마다 소중한 볼거리다.
또 탈린에서 가장 높은 곳 톰페아 언덕으로 올라가면 구시가지와 시내 경관이 아름답게 펼쳐진다. 구불구불 골목과 붉은색 지붕의 건물이 어우러져 멋진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에스토니아 탈린
탈린은 한국인에겐 생소하다. 역사에 탈린이란 도시가 등장한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탈린이 역사서에 처음 등장한 것은 1154년이다. 12세기에 십자군들이 몰려오면서 기독교를 이곳에 전파했다. 탈린은 발트해의 한가운데 위치해 북유럽과 무역하기에 좋은 여건을 지니고 있다. 독일 상인들이 중심이 된 한자동맹에 가입한 이후 도시는 북유럽 최대의 무역항으로 번영을 구가했다.
한자동맹이란 독일 도시를 중심으로 중계무역과 상권을 장악하던 도시들의 연합을 뜻한다. 자국 도시에게는 세금을 물리지 않고 타국에서 들어온 물자는 제대로 팔지 못하도록 세금을 물리거나 훼방을 놓는 보호무역을 했다. 한자동맹에 발끈한 덴마크가 침입해왔다. 근대에는 스웨덴과 러시아라는 두 강대국이 탈린을 놓고 영토 다툼을 벌였다. 중세엔 스웨덴에 복속돼 있다가 1710년에는 러시아에 병합됐다. 러시아가 에스토니아를 합병한 뒤 표트르 대제는 서유럽의 우수한 건축물과 전통이 남아 있는 탈린에 여름 별장을 지었다. 표트르 대제는 수도를 상트페테르부르크로 정하고, 에스토니아의 탈린과 발트해 너머 핀란드의 헬싱키를 묶어 이 세 도시를 러시아의 중심축으로 삼으려 했다. 헬싱키는 당시 신도시였다. 표트르 대제가 지은 여름 별장은 후대에 도스토예프스키, 차이코프스키 같은 러시아의 이름난 예술가들이 찾아와 휴가를 보낸 곳이다. 이런 우여곡절을 겪은 에스토니아는 구소련 붕괴 후 1991년에야 독립할 수 있었다.
중세가 완벽히 보존된 북유럽 사람들의 관광지
탈린은 핀란드 사람들이 가장 많이 찾는 관광지다. 북유럽은 물가가 워낙 비싸다. 술에도 세금이 많이 붙는다. 해외에 나가서 술을 사오면 면세된다. 이런 이유로 핀란드 사람들은 주말이면 두어 시간 배를 타고 탈린에 가서 면세품 술을 두세 상자씩 사온다. 탈린항에 들어가면 입국심사대도 없다. 면세점엔 옷가게나 구두 같은 명품이 있는 게 아니라 술가게만 즐비하다. 명품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왜? 북유럽은 밤이 길다. 겨울에는 헬싱키도 오전 10시에 해가 떠서 오후 2시에 진다. 누가 봐줄 사람이 없다. 그러니 명품 입을 이유가 없다. 명품은 질이 좋아서 입고 차는 게 아니라 '폼 잡기' 위해 구입한다. 북유럽에서 실용적이고 단순한 디자인이 유행한 것은 바로 이러한 기후, 계절적인 요인 때문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