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uesday, May 15th, 2007
아침 일찍부터 부지런히 발품을 팔아 도착한 빅토리아 코치 스테이션.
오늘은 무려 36개의 대학들이 모여 있다는 세계적 명문대학의 요람, 옥스포드엘 가보자구.
옥스포드 코치 스테이션까지의 왕복 티켓, 11 파운드.
가이드 북엔 13파운드라고 나와있던데, 왠지 땡"잡은 느낌. 히힛-
아침부터 부지런떤다 싶더니 어느새 단잠에 빠져든 나를 깨운 건 다름아닌 폭풍우.
기껏 기분좋게 런던을 벗어나 나들이 분위기 좀 만끽해보려 했더니 정말 예외가 없구만.
요놈의 비, 으지간히 쫓아다닌다, 정말. 그나저나 쉽게 그칠 것 같지는 않고.
오늘 하루 일정이 걱정인데, 이거,,, 씁쓸. =.,=
런던 출발 1시간 40분여가 지나 도착한 옥스포드.
버스 하차와 동시에 바로 왕복 티켓을 가지고 그냥 돌아가 버릴까도 심히 고민해 보았지만,
까페의 향긋한 커피 한 잔에 몸을 녹이며 대학 도시의 낭만을 즐겨보는 것도 좋겠다 싶어
무작정 빗 속을 뚫고 전진, 전진, 고고~
중심가에 다다르자 내 눈앞에 펼쳐진 대학가.
건물들 모습하며 색깔이 마치 영화 스튜디오같다. 길거리에 마차만 다니면 딱"일듯.
그리고 빠질 수 없는 영화 제작 현장의 그룹 투어 관람객들. 이거 지대론데?? 나도 같이 껴봐??
까페를 찾아보자고 나선 길이었지만,
대학가의 초입에 들어서고 나니 근질거리는 몸을 도통 가눌 수가 없다.
에라 모르겠다, 빗 속의 캠퍼스 투어다.
한 손엔 우산, 한 손엔 지도, 아무리 빗 속의 캠퍼스 투어라지만 이건 정말 아닌 것 같아
작정하고 지도를 가방 속에 집어 넣고, 무작정 발 길 닿는대로 돌아다녀 보기로 한다.
그리고 처음 만난, 보들리언 도서관 옆"에 있던 이름모를 건물.
난 이상하게, 유명한 건물보다 그 옆에서 묵묵히 세간의 관심도 얻지 못한채
유명세의 그늘에 주눅 들어있는 것들에 더 관심이 가더라...
1602년에 창립되어 장서만도 무려 350만권에 이르고,
영국에서 발간된 서적의 초판이 모두 소장되어 있다는 그 유명한 보들리언 도서관이
바로 내 눈 앞에 떡하니 버티고 서서 그 놈의 위용을 자랑하고 있었지만,
절대 굴하지 않고 당당히 요 녀석의 사진을 찍어 두었더랬다.
이렇게라도, 작은 힘이나마 보탬이 되어주고 싶었던 나.
아무리 힘들다 한들 이 세상 어딘가에는
반드시 나를 위해 간절히 응원하고 있는 이가 단 한 명이라도 있음을 나는 믿는다.
나의 눈길을 사로 잡았던, 기둥 위의 흉상들 그리고 그들의 이색 표정들.
옛날엔 수염도 저렇게 커텐처럼 길렀나..? 밥 먹을 땐 커텐치고 먹어야 겠넹,,
가지고 있던 머리끈을 매주고 오고 싶어 혼났네,,-_ -
나를 보고 놀란건지, 도리어 나를 놀래키려는 건지, 도통 알 수 없는 모호한 저 표정.
영국의 명문대학 도시로 캠버리지와 함께 양대 산맥을 이루는 이 곳, 옥스포드.
도시의 성격상 그래서 비슷한 점도 많다.
이름이 같은 대학들이 있는 것은 물론 이렇게 똑같은 탄식의 다리가 있는가 하면,
두 대학 도시 모두 펀팅으로 유명.
세계 어딜가나 대학생이 가난하단 사실은 불변하는 법칙인듯.
캠퍼스 임을 버젓이 광고라도 하듯 주차된 넘쳐나는 자전차"들.
펀팅으로 유명하다지만, 비가 오면 영업을 안한다구요. -ㅁ -
나 같은 1일 여행객들은 뭐, 그럼 꽝인거지,,
사람은 찾지 않지만, 그래도 펀팅을 즐기러 온 원앙 신혼부부♡
낭만의 대학도시, 옥스포드에서 펀팅의 사명을 띠고 태어난 보트들이여, 쉬지말고 나아갈 지어다!
금방이라도 날려버릴 듯 휘몰아치던 비도 점점 소강상태,
우산을 접었다 폈다를 몇 번, 이젠 비도 더이상 내릴 마음이 없는지 해가 짱짱하다.
맥달렌 칼리지를 지나, 옥스포드의 중심도로 High Street를 따라 걷고 있던 찰나,
골목길로 빠지는 길목에 있던 아름다운 이름의 이정표가 눈에 들어왔다. Rose Lane..?!
비밀의 화원이라도 발견한 듯, 블랙홀에 빠져들듯 그만 그 길로 발길을 돌려 버렸다.
아직 장미가 만개하는 때가 아니었던지라 온통 초록빛 울타리였지만,
나의 상상력으로 그려낸 빨간장미, 분홍장미가 만개한 이 장미길이 어찌나 향기로웠던지.
`뭐가 나올까?` 어린아이 같은 나의 호기심을 잔뜩 부풀려 놓았던,, Rose Lane.
어느새 숨겨진 산책길이 나오고..
그 곳에서 나를 맞이하던 아까 그 신혼 원앙 부부.
"여보, 저 여자는 왜 여기까지 쫓아왔대요?"
"신경꺼, 우린 사랑이나 나눕시다."
-_ -; 뭐어, 난 쫓아간 거 아니라고. 쳇.
길버트, 이럴 땐 사람으로 변해 나를 지켜주는 센스 정도는 있어야 하는 거 아냐?!
들었는지 듣고도 흘려버렸는지, 귀에 꽂은 리시버에서 들려오는 길버트의 감미로운 음악소리.
`중간에 꺼지지않고 제대로 음악 서비스 해주는 것만으로도 만족하시라고..`
길버트의 푸념이 들리는 듯 하다.
산책길 안에 숨겨져 있던 Christ Church.
이것이 바로 옥스포드의 하이라이트라고 하는 크라이스트 교회.
이름은 교회지만 사실상 대학의 역할을 하고 있다고.
영국 내 수많은 시인, 정치가, 성직자들을 배출해 유명세를 만방에 떨치고 있는 옥스포드의 심장.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이 곳의 교수, 루이스 캐롤에 의해 태어났다.
크라이스트 교회 앞에 드넓게 펼쳐진 Christ Church's meadow.
클로드 모네의 `들판 위의 양산을 쓴 여자` 그림이 생각난다.
약간 언발란스하지만 내가 지금 들고 있는 검정 우산을 과감히 펴들고
이 들판 한 중간으로 뛰어 들어가 산들산들 불어오는 바람에 온 몸을 맡기고 서있노라면
제 2의 클로드 모네 명작이 탄생하지 않을까..?
주옥같이 펼쳐진 자연 풍광에 온 몸이 미쳐버릴 것만 같다.
영국의 자연이 여러 화가들에게 수많은 영감을 안겨주었던 순간 또한 바로 이러했을까.
미리 준비해간 샌드위치를 꺼내 소박한 점심을 떼우며
예전 화가들이 느꼈을 영감에 나도 한번 젖어본다.
캔버스만 있다면 당장 무엇이라도 하나 그려낼 수 있을 것 같다.
무언가 창조해 내고 싶은 이 넘쳐오르는 욕구를 어찌할소냐, 난 결국 일기장을 펴들고야 말았다.
간드러운 시 하나, 지어볼까 싶었으나 이내 포기하고 감정 서술에 그친 김양.
내가 그렇지 무얼,, 아무렴 어떠하리.
지금 이 순간, 천국보다 부러울 것이 없는 이 곳에서 숨 쉬고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이렇게 벅찬 행복에 몸둘 바를 모르겠는 걸.
멀리서 보는 게 훨씬 멋진 것 같다, 크라이스트 교회.
따사로운 햇살에 초봄, 겨울 내 굳어 있던 맨 땅에서 아지랑이가 피어 오르듯 나긋나긋 밀려오는 졸음.
조그만 분수에서 졸졸졸 떨어지는 정겨운 물소리,
빨간색, 보라색 활짝 핀 꽃들이 바람결에 전해주는 은은한 꽃향기,
아무것도 바라지 않고 그저 베풀듯 이 아름다운 오후를 선물로 안겨준 옥스포드.
얼마나 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렇게 취해버렸고, 그렇게 한참을 앉아있었다.
가장 좋을 때 떠나야 한다고, 그렇게 한참을 앉아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일어나기 싫은 이 욕심.
그렇다고 아직 보지 못한 곳들을 그저 지나쳐 버릴 순 없잖아.
남은 오후, 가뿐하게 아이스크림 하나 물어들고 High street를 따라 시장 구경도 하고,
옥스포드 박물관도 둘러보고,,
마지막까지 뭐 하나라도 놓칠까 거리 이곳 저곳을 사진이 아닌 눈에 박아 두느라 여념이 없다.
이젠 정말 안녕할 시간, 하지만 쉽게 고개가 돌려지지 않는다.
오전내 야속하게도 비가 왔지만, 몇 배는 더 멋지게 선사해준 옥스포드의 오후.
이 오후의 여유로움을 만끽해 본 이상, 쉽게 손이 놓아지질 않는거다.
차곡차곡 몇번을 고이 접고 접어 호주머니 속에 넣아갈 수만 있다면,,,
한 없는 아쉬움을 등에 얹고는 가방이 왜 이리 무겁냐며 괜한데 투정하는 나.
이내 발걸음은 옥스포드 코치 스테이션으로 향하고 있다.
길이라는 거, 알고보면 참 재밌어.
오는 길, 가는 길, 가는 길, 오는 길, 죄다 이어져 있는 똑같은 길인데
사람에 따라 이 길이 시작하는 길이면 저 길은 돌아가는 길이고,
다리가 아파 잠시 멈춰 쉬어간 그 자리는 쉬어간 길이 되고,
아무 것도 몰라 헤맨 곳에선 미로가 되고,
예상치 않았던 예쁜 곳을 발견하는 숨겨진 그 길은 비밀의 통로가 되기도 하니까.
지금 내가 가는 길은, 무슨 길일까..
첫댓글 와.. ㅋㅋ 중간에 머리끈.. 재밌으세요~~~~ 옥스퍼드 역시..
아무리 조각이라지만 정말 독특하지 않아요? ㅎㅁㅎ''
또다른 매력이 있는 곳이네요. 전 어디로 가볼까요.ㅎㅎ
고민할거있나요~ 그냥 마음 가는대로 발 길만 돌리면 될텐데요- ㅎㅁㅎv
몇시차타고 가셨다 몇시차타고 오신거에요?
런던에서 오전 9시 40분에 출발해서 옥스포드에서 오후 5시 버스타고 턴~했어요~^-^
저런곳에서 공부하면 공부도 잘될꺼 같은데요~?ㅎㅎ
적극 공감! 책 몇 권 가슴 팍에 끼고 거닐고 싶어지는 충동 자제하느라 힘들었어요ㅋ
참으로 글을 잘 쓰시는 분이시군요. 준비 철저하고 여유 만땅, 탐구력에,.. 말랑한 감성, 정확한 정보 제공자....감사합니다. 계속 이어지기를 기대합니다.
다른 여행기들에 비해 조금 처지는 감이 있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좋게 봐주신다니 감사감사~ ^-^ 하나 올릴때마다 오랜 시간을 들여야하긴 하지만 끝까지 달려보렵니다.
앤님은 정말 공부 많이 하시고 가신거 같아요 차분하고 사진도 보기 좋고 정보도 많아서 굿이에요 굿굿굿!ㅋㅋ
사실 알고보면 저도 못말리는 천방지축 여행객들 중의 한 명일뿐인데, 너무 좋게 봐주셔서 감사해요~ 앞으로도 많이 많이 읽어주시고 따가운 피드백도 기대할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