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귀한 존재로 태어난 당신은 어떻게 살 것인가?
당신의 안녕이 곧 나의 안녕이라네
로마인들은 편지 서두에‘시 발레스 베네, 발레오’라는 인사말을 즐겨 썼다고 한다.
“당신이 잘 있으면 나는 잘 있습니다”라는 뜻이다.
한동일의 ‘라틴어 수업’에 나오는 이 대목을 오랜만에 다시 읽었다.
죽음과 우정의 연대를 품위 있게 그려 낸 영화를 보게 되었다
내친김에 원작 소설인 시그리드 누네즈의 ‘어떻게 지내요’
(What Are You Going Through)까지 읽었다.
‘안녕’, ‘잘 있니’ 같은 일상의 말이 사람을 어떻게 살리는지 실감하면서.
살갑고 다정하게 안부를 묻는 것은 위기를 살게 하는 든든한 힘이다.
소설에 이런 대목이 있다.
“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고 했다.
고통받는 사람을 보면서 내게도 저런 일이 일어날 수 있어,
생각하는 사람과 내게는 절대 저런 일이 일어나지 않을 거야, 생각하는 사람.”
첫 유형의 사람들 덕분에 우리는 견디고,
두 번째 유형의 사람들은 탓, 때문에로 삶을 지옥으로 만든다
무엇보다 희망은 손쉬운 위무나 동정을 청하지 않는다.
희망을 희망이게 하는 것은 이 올곧은 힘이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며 세상을 지옥으로 만드는 이들이 거짓과 아첨 속에서
승승장구할 때 희망은 구걸 않고 당당히 버틴다.
비루한 아첨꾼들이 몰락할 때 희망은 여전히 올곧은 시선으로
그 너머를 보며 자기 길을 간다.
보이지 않아도 간절히 귀 기울이면 들리는 희망. 희망이 우리에게 온다.
쉼 없이 직선으로 온다.
희망은 여전히 올곧은 시선으로 그 너머를 보며 자기 길을 간다.
내 탓이요 네 덕이다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작은 불빛으로 살자
가난한 마음으로 살고 있다
'내 탓이요 네 덕이다’
'제 탓이요, 제 탓이요, 저의 큰 탓이옵니다' 가슴을 치며 기도 했는데
'네 덕이다'라는 문구가 큰 울림을 주었다.
요즘 세상은 잘된 것은 모두 내 덕이고 잘못된 건 모두 네 탓이라는 정서가 깔려있다.
극도로 이기주의가 팽배하다 보니 관용도 없고 배려심도 없다.
세상이 너무 삭막하다.
남이야 어찌 되건 나만, 우리 쪽만 등 따습고 배부르면 그만이다.
'내 탓이오. 때문에'에는 참회가 있고,
'네 덕이다. 덕분에'에는 감사가 있다.
내 덕이고 네 탓이면 자만과 원망과 미움과 저주만 있을 뿐이다.
끊임없는 기도와 용기 있는 행동은 기적을 만들어 낸다.
우리 얼굴에, 눈에, 미소에, 마음에, 사랑을 심어 마주 보며 살아가는
이 세상을 행복한 세상으로 바꿔보자.
내 탓이요를 네 덕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세상으로 바꿔보자.
남을 아름답게만 보아라
삶의 에너지는 마음 가짐에 달려있다
매사를 긍정적으로 보는
세상에 대한 긍정성이‘에너지’.(The power of positive thinking)
'덕분에'로 살고 있습니까?
매사를 감사로 생각하며 살고 있습니까?
부정적인 눈인
‘때문에’로 자신을 배척하고 살고 있습니까?
‘탓’으로 책임을 해피하고 살고 있습니까?
주인공 에너지는 긍정의 에너지다
늘 부정적으로 한탄하며 탄식하는 '때문에'로 살고 있습니까?
"덕분에"라는 말과 "때문에" 라는 말이 있다.
멋지게 살려면
늘 웃어라
"덕분에" 말을 많이 써라
"때문에" 말을 거의 쓰지 말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