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는 주제는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다른 각도에서 이 주제를 보면 큰 유익을 얻게 될 것이다. 지금 이 시대는 '교육'을 최고의 위치에 두고 강조한다. 모든 문명국마다 잘 교육하고 주변 환경을 더 좋게 만들면 더 선하고 훌륭한 사람들이 만들어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러한 말과 이론들은 사람들의 마음을 부추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먼저 내면 세계가 제대로 되어야 교육이 의미가 있기 때문이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을 교육시키는 것은 오히려 교양 있는 범죄(교양을 갖추지만 더 높은 차원의 타락과 범죄를 일삼는 것)의 가능성을 증가시킨다. 교육과 문화의 고상한 업적들을 깎아내릴 생각은 없다. 다만 우리가 알아야 하는 것은 그러한 것들은 부차적인 문제라는 점이다 . 교육과 문화는 인간의 삶에서 첫째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사람 자체가 첫째 고려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리고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만이 그의 유일한 도움이 되실 수 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해 계속 이 점을 일깨우신다.
최고로 유능한 지도자였던 모세를 보자. 그는 애굽의 모든 교육을 다 받았다 . 그는 동족들의 비참한 모습과 고통을 보면서 자신이 그들을 구원할 장본인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를 40년 동안 광야로 보내어 양을 치게 하셨다. 그는 먼저 '자랑스러운 자신'을 제거해야 했고 스스로 '보잘것없는 자신'을 볼 수 있어야 했다. 모세에 관한 기록들을 자세히 보라, 그가 광야에서 40년을 보낸 후에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시 나타나 말씀하신다. "이제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에게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게 하리라"출3:10 이때 모세가 "내가 누구입니까?" 라고 묻는다. 모세는 그의 백성들을 구원할 수 있는 능력이 자신의 열망이나 교육수준, 유능함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한다.
요한복음15장에도 이와 같은 내용이 나온다.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새로운 성향에 대해 교훈하신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요15:5 제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예수님과 연결되는 것이다.
다른 높은 산으로 가서 도움을 요청해봤자 헛수고일 뿐이다. 어떤 사람은 산봉우리 끝에 서 있는 고상한 삶을 바라보면서 그러한 삶을 살고자 열정을 가지고 기도하고 집중하며 순종한다. 그러한 최고의 삶을 살았던 사람들과 비슷한 성품을 가져보려고 끝없이 노력한다. 그러나 고통스럽게도 언제나 뒤처진다. 그들은 좇아가던 중에 입술은 피곤과 갈등으로 파랗게 변해간다. 그러다가 산등성이에서 쓰러지고 만다. ...... 시편 121편을 읽어보라 그곳에서 새로운 소망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이 구절이 말하는 바는, 위대한 성도는 좋은 가문이나 문화,교육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작품이라는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