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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불인(天地不仁)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다는 뜻으로, 천지는 다만 본래대로 움직일 뿐이라는 말이다.
天 : 하늘 천(大/1)
地 : 땅 지(土/3)
不 : 아닐 불(一/3)
仁 : 어질 인(亻/2)
출전 : 도덕경(道德經) 第5章
이 성어는 노자 도덕경(道德經) 제5장에 나오는 말로,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天地不仁, 以萬物為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為芻狗。
천지는 너그럽지 않으니(仁) 세상 온갖 것을 장난감 인형(芻狗)처럼 다룰 뿐이고, 성인은 너그럽지 않으니(仁) 나라 백성을 장난감 인형(芻狗)처럼 다룰 뿐이네.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하늘과 땅 사이는 풀무와 같아 텅 비어 있으면서도 구부러지지 않고 움직일수록 오히려 더 나오는구나.
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이 많으면 자꾸만 궁색해지느니 가만히 가운데 지키는 것만 못하리.
(註解)
天地不仁, 以萬物為芻狗,
聖人不仁, 以百姓為芻狗。
천지란 것은 세상을 뜻하는 말로, 요즘 말로 우주라고 해도 될 것이다. 예컨대 우리가 살아가는 존재의 바탕을 총제적으로 지칭할 때 쓰는 말이다.
노자는 5장 첫머리에서 '이 우주는 너그럽지 않다'고 선언하고 있는데, 나는 이 말이 참으로 명쾌하게 느껴진다.
유가에서 최고의 덕목으로 삼는 인(仁)을 부정했다는 측면에서 유가와의 대립적인 성격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문구로 인식되기도 하지만, 나는 그런 것보다는 세상의 이치를 단적으로 설명하는 명쾌한 구문으로 인식하고 있다. '천지에 무슨 인함이 있느냐, 쓸 때 쓰고 버릴 때 버릴 뿐이다.'
추구(芻狗)는 당시의 중국 사람들이 제사를 지낼 때 관습적로 제사상에 올리던 풀로 만든 강아지다.
이 '너그럽다' 혹은 '어질다'고 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의 감정의 발로일 뿐이다. 따라서 그것은 어디까지나 인간세의 관계에서만 유용한 개념일 뿐, 이 세상을 총체적으로 설명하는 원리로는 적절치 않은 것이다.
이 세상 어디에 너그럽거나 어진 것이 있을 쏘냐. 이 세상은 다만 스스로 그러한(自然) 방식으로 존재할 뿐이다. 천지가 만물을 대하는 것은 인(仁)함에 따르는 것이 아니라 필요(必要)와 불요(不要)의 관계일 뿐이라는 것이다. 필요할 때는 중히 쓰고, 필요치 않으면 가차 없이 버리는 것이다.
그것은 매정한 것과는 다르다. 다시 말하지만, 인(仁)이니 정(情)이니 하는 것은 인간의 감정일 뿐이다. 천지가 움직이는 것은 다만 쓰임에 따를 뿐이라는 것이다.
물론 인간은 인간의 방식이 있으므로 인간의 길을 가야 한다. 그것은 인(仁)일 수도 있고 또는 정(情)일 수도 있다. 하지만 결정적일 때는 천지의 길을 따라야 하는 것이다. 천지의 길이 인간의 길보다는 보다 근본적이기 때문이다.
인이 필요한 상황일 때는 인을 베풀되, 인이 불요한 상황에서는 어리석게 인을 붙들고 같이 망하는 길을 선택할 것이 아니라, 가차없이 버리고 천지의 길을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큰 길이고 그것이 큰 행동이다.
天地不仁, 천지는 근본적으로 인하지 않은 것이다.
세렝게티 초원에서 사자가 영양을 잡아먹는 것은 인(仁)과는 하등 관계가 없는 것이다. 사자에게 무슨 너그러움이 있겠는가. 사자에게 인과 정이 있다면 사자는 모조리 굶어죽고 말 것이다.
인(仁)은 다만 인간의 것일 뿐, 사자에게는 필요치 않은 것이다. 달리 얘기한다면, 배가 부른데도 짐승을 잡아먹는 인간이 오히려 불인한 것이다.
사자나 호랑이는 자신이 위협을 받거나 혹은 배가 고픈 상황이 아니라면 결코 다른 짐승을 해하지 않는다.
미물인 짐승도 필요(必要)한 상황과 불요(不要)한 상황을 정확히 구분하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은 욕(欲)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것을 구분하지 못한다.
필요치 않은 상황에서 불인(不仁)한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는 것이다.
천지는 필요에 따라 움직이므로 인하지 않은 것이다. 장난감 인형이 필요할 때는 소중히 여기지만 필요 없을 때는 내 팽개치는 것이 천지의 방식이다. 사사로운 것에, 또는 필요치 않은 것에 집착하는 것은 천지가 움직이는 방식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장난감 인형은 그것을 쓸 때에 비로소 가치를 발현하는 것일 뿐 쓰이지 않을 때는 아무런 가치를 가질 수 없는 것이라는 말이다. 이것은 앞에서도 말한 바 있듯이 '쓰임이 곧 그 존재를 규정한다'는 도의 특성을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다.
성인 또한 마찬가지다. 성인은 도를 따르는 사람으로서, 도의 방식에 따라 사람을 다스린다. 성인이 사사로운 정에 연연한다면 전체를 그르치므로 다만 필요에 따라 사람을 대할 뿐이다.
天地之間, 其猶橐籥乎, 虛而不屈, 動而愈出。
노자 5장은 내용이 좀 파편적이다. 앞의 '천지불인'으로 시작되는 문장과, 이 '천지지간'으로 시작되는 문장이 내용에서 그다지 큰 연관성을 찾기 힘들다.
그리고 이 다음에 오는 마지막 문장(多言數窮,不如守中)도 또한 앞의 문장과 크게 연관성이 없는 별개의 내용을 담고 있다. 아마도 별개의 구문들이 특정한 내용의 연관성 없이 묶여서 한 장을 이룬 것 같다.
이 문장에서는 천지의 움직이는 모습을 비유하여 도의 움직이는 모습을 설명하고 있다. 이 우주가 움직이는 모습은 마치 풀무와도 같아서 텅 비어있으면서도 구부러지지 않고, 움직일수록 오히려 더 나온다고 묘사하고 있다.
풀무라는 것은 아마도 이 글이 쓰여졌던 당시에, 상당한 기술력을 필요로 하는 정교한 기계장치였을 것이기 때문에 그 신묘한 작동원리를 우주의 움직임에 비유해서 설명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노자 시대에 컴퓨터가 있었다면 아마 컴퓨터로 비유했을 지도 모른다.
虛而不屈,動而愈出
텅 비어있으면서도 구부러지지 않고, 움직일수록 오히려 더 나온다는 표현 속에 도의 움직이는 원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이것은 앞에도 계속 표현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은 것이다.
비어있으면 쭈그러져야 되는데 쭈그러지지 않고, 움직이면 계속 고갈되어야 하는데 오히려 더욱 더 나온다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일상적으로 생각하는 것의 반대로, 도의 역설적인 모습을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채우는 것보다 비우는 것이 더 유용한 것이고, 하나를 지니고서 움직이지 않는 것보다 때에 따라 계속 바꿔 쓰는 것이 더욱 유용한 것임을 역설하고 있다.
多言數窮, 不如守中。
말을 많이 하면 자꾸만 궁해지니, 가만히 속에 담고 있는 것이 낫다.
앞서 얘기한 것처럼 이 문장은 다른 문장과 다소 이질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하나의 경구(警句)로서 이해하면 될 듯하다. 간결하면서 삶의 지침으로 삼기에 더 없이 좋은 내용이다.
말이란 것은 아무래도 내용(생각)을 온전히 담기도 힘들 뿐 아니라 전달되는 과정에서 로스(loss)가 생기기 때문에 자꾸만 많이 하다보면 그 로스들이 모여서 나중에는 수습하기 힘든 상황을 만들어 내는 경우가 허다한 것이다. 그러니 가급적 말을 속에서 삭이고 삭이는 것이 살아가는데 더 큰 도움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천지불인(天地不仁)
태양의 황경이 330도에 위치함에 따라 대동강이 풀리기 시작한다는 우수(雨水)가 지났다. 금년은 눈이 녹아서 비가 된다는 우수와 정월 대보름이 지난 19일로 겹쳤다. 그래선지 그 어느 해 보다도 새봄에 대한 희망이 보름달처럼 더욱더 크고 밝다.
밝고 환하고 따듯한 희망의 빛에 온몸을 내맡기니, 돌연 정치, 경제 등의 이런저런 현실적 문제들이 툭 떨어져 나가고, 하늘과 땅만큼 크고 넓으면서 시작도 끝도 없는 무시무종(無始無終)의 마음자리가 뚜렷해진다. 문득 시간과 공간이 사라짐으로써 저절로 본 마음자리가 밝아진 것이다.
시공(時空)이 사라졌으니 시공을 벗어난 나도 없고, 없다고 할 것도 없음은 당연하다. 굳이 이름을 붙이자니 공(空)이고 무극(無極)이며 무념무상(無念無想)이고, 심령이 가난한 자일 뿐, 넉넉하다는 느낌마저 초극했으니 한없는 지복만이 홀로 빛날 뿐이다.
이와 같은 경지를 노자는 천지불인(天地不仁) 및 성인불인(聖人不仁)이란 구절로 설파했다. 하늘과 땅 및 성인은 어질지 않다. 또는 하늘과 땅 및 성인은 어짊조차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천지불인 및 성인불인이 하늘과 땅 및 성인이 아주 못되고 나쁜 존재라는 말은 결코 아니다. 하늘과 땅 및 성인은 어질지도 않고 못되지도 않으며, 어짊조차 없고 못됨조차 없음을 강조한 말일 뿐이다.
이는 지공무사한 마음에서, 자기 자신의 이득을 위한 어떤 의도도 없이 매 순간을 물처럼 흐르는 무위자연(無爲自然), 즉 대소유무(大小有無) 득실시비(得失是非) 등의 양변을 여읜 중도(中道) 무아(無我) 및 심령이 가난한 자를 드러낸 말이다.
공자의 군자불기(君子不器)와도 일맥상통하는 가르침이다. 군자는 정형화된 틀인 그릇이 아니라는 것이 군자불기다. 나는 이러저러하다는 아상(我相)이 없다는 의미다. 요즘의 표현으로는 자신만을 위해 뭔가를 고집하고 주장하는 그 어떤 틀도 없는 NO-FRAM E이다.
장자는 제물론에서 최고의 큰 사랑인 인(仁)은 어짊조차도 내세우지 않는다고 강조한 바 있다. 순자는 천론(天論)을 통해 사람이 추위를 싫어한다고 해서 하늘이 겨울을 거둬 가는 법은 결코 없다고 설파한 바 있다.
장자와 순자의 이와 같은 말들도 노자의 천지불인과 다르지 않다. 결국 공(空), 무극(無極), 무념무상(無念無想), 심령이 가난한 자 등이 다 한통속이다.
천지불인을 이해하기 쉽도록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하늘은 기도하지 않는 도둑놈이라고 해서 햇빛을 차단하고, 기도하는 성직자라고 해서 햇빛을 더 비춰주는 법은 없다는 말이다. 오직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기 때문이다.
꽃피고 새우는 춘삼월이 열흘도 남지 않았다. 이제 크게 기지개를 켜고 하늘과 땅 같은 담연한 마음으로, 우리 모두 다 함께 희망찬 새봄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나갈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온갖 종교와 교파 및 사상과 주의 주장의 벽들을 지금 즉시 다 허물고, 생명체 본연의 순수한 본마음 자리로 돌아가, 서로서로 손을 잡고 하늘 높이 훨훨 날아오를 수 있기를 서원한다.
이 글을 읽는 모든 독자들의 찬란한 봄맞이를 위해, 선친(先親)께서 연필을 꼭 쥔 필자의 고사리 같은 어린 손을 감싸 쥔 채, 함께 써 주시던 명심보감의 시 한 구절을 소개한다.
花開不擇貧家地(화개불택빈가지)
月照山河到處明(월조산하도처명)
꽃은 가난한 집 땅이라고 해서 가려 피지 않고, 달은 산과 강 모든 곳을 두루두루 밝게 비추는구나.
천지불인(天地不仁)
흔히 황하의 물길이 수천 년 동안 변하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는데,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황하는 범람이 잦았고, 그 범람으로 말미암아 저지대는 충적층으로 메워지고 물길도 수시로 바뀌었다.
가령 1850년대 이전에는 황하의 물길이 산동반도의 남쪽을 지나 황해로 이어졌다. 그런데 1850년대에 대홍수로 충적지의 일부가 침식되면서 강의 하구가 지금처럼 북쪽으로 320㎞나 이동하게 되었다.
이를 생각하면, 황하는 중원에서 문명이 꽃을 피운 뒤로도 수천 년 동안 끊임없이 물길 곧 수도(水道)를 바꾸어 왔을 것이다. 인간의 기억보다 더 많이...
노자는 도를 大(대) 곧 크다고 했고, 逝(서) 곧 아득히 가버린다고 했으며, 遠(원) 곧 멀다고 했다. 이야말로 황하의 물길을 두고 한 말 같지 않은가?
또 노자는 返(반)이라고도 했다. 되돌아 온다는 뜻이면서 되풀이 된다는 뜻이기도 하다. 동쪽으로 흘러서 북해나 황해에 이른 황하의 물은 다시금 구름이 되어 황하 상류에서 비가 되어 내릴 것이고, 그러면 다시 황하는 거침없이 흐르고 흘러 범람할 것이다.
이야말로 되돌아오는 것이면서 되풀이되는 것 아닌가. 그런 도도하고 광막하며 쉼이 없는 황하의 물에서 도의 실체, 도의 속성을 엿보았던 사람이 노자이리라.
통행본 도덕경 5장에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라는 구절이 나온다. “하늘과 땅은 어질지 않으니, 온갖 것을 풀강아지처럼 여긴다”는 뜻이다.
추구(芻狗), 곧 풀강아지는 옛날 중국에서 제사를 지낼 때 쓰던, 짚으로 만든 개였다. 제사가 끝나면 더 이상 쓸모가 없어 버려지는 물건이다.
온갖 것들은 그렇게 세상에 나와서 잠시 쓰이다가 추구처럼 버려진다. 참으로 모질고 냉정해서 끔찍하게 느껴질 테지만, 엄연한 현실이고 실상이다.
사람도 거기서 예외는 아니다. 예외라고 믿고 싶겠지만, 그래서 하백이나 신에게 제물을 바치고 간절하게 빌면 열외가 되리라 믿겠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노자도 분명히 말했고 천지도 명명백백하게 보여주었다. 하늘과 땅은 결코 어질지 않으니, 터럭만큼이라도 어질기를 바라지 말라고.
▶️ 天(하늘 천)은 ❶회의문자로 사람이 서 있는 모양(大)과 그 위로 끝없이 펼쳐져 있는 하늘(一)의 뜻을 합(合)한 글자로 하늘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天자는 ‘하늘’이나 ‘하느님’, ‘천자’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天자는 大(큰 대)자와 一(한 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런데 갑골문에 나온 天자를 보면 大자 위로 동그란 모양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사람의 머리 위에 하늘이 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고대 중국인들은 하늘은 동그랗고 땅은 네모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天자는 사람의 머리 위에 동그라미를 그려 ‘하늘’을 뜻했었지만 소전에서는 단순히 획을 하나 그은 것으로 바뀌게 되었다. 그래서 天(천)은 (1)하늘 (2)범 인도(印度)에서 모든 신을 통들어 이르는 말. 천지 만물을 주재 하는 사람, 곧 조물주(造物主)나 상제(上帝) 등 (3)인간세계보다 훨씬 나은 과보(果報)를 받는 좋은 곳. 곧 욕계친(欲界責), 색계친(色界天), 무색계천(無色界天) 등 (4)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하늘 ②하느님 ③임금, 제왕(帝王), 천자(天子) ④자연(自然) ⑤천체(天體), 천체(天體)의 운행(運行) ⑥성질(性質), 타고난 천성(天性) ⑦운명(運命) ⑧의지(意志) ⑨아버지, 남편(男便) ⑩형벌(刑罰)의 이름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민(旻), 하늘 호(昊), 하늘 궁(穹),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지(地), 땅 곤(坤), 흙덩이 양(壤)이다. 용례로는 타고난 수명을 천수(天壽), 하늘과 땅 또는 온 세상이나 대단히 많음을 천지(天地), 타고난 수명 또는 하늘의 명령을 천명(天命), 사람의 힘을 가하지 않은 상태를 천연(天然), 하늘을 대신하여 천하를 다스리는 이 곧 황제나 하느님의 아들을 천자(天子), 우주에 존재하는 물체의 총칭을 천체(天體), 부자나 형제 사이의 마땅히 지켜야 할 떳떳한 도리를 천륜(天倫), 타고난 성품을 천성(天性), 하늘 아래의 온 세상을 천하(天下), 천체에서 일어나는 온갖 현상을 천문(天文), 하늘과 땅을 천양(天壤), 선천적으로 타고난 뛰어난 재주를 천재(天才), 하늘에 나타난 조짐을 천기(天氣), 하늘이 정한 운수를 천운(天運), 자연 현상으로 일어나는 재난을 천재(天災), 하늘이 높고 말이 살찐다는 천고마비(天高馬肥), 하늘과 땅 사이와 같이 엄청난 차이를 천양지차(天壤之差), 선녀의 옷에는 바느질한 자리가 없다는 천의무봉(天衣無縫), 세상에 뛰어난 미인이라는 천하일색(天下一色) 등에 쓰인다.
▶️ 地(땅 지)는 ❶회의문자로 埅(지), 埊(지), 墬(지), 嶳(지)가 고자(古字)이다. 온누리(也; 큰 뱀의 형상)에 잇달아 흙(土)이 깔려 있다는 뜻을 합(合)한 글자로 땅을 뜻한다. ❷회의문자로 地자는 ‘땅’이나 ‘대지’, ‘장소’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地자는 土(흙 토)자와 也(어조사 야)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也자는 주전자를 그린 것이다. 地자는 이렇게 물을 담는 주전자를 그린 也자에 土자를 결합한 것으로 흙과 물이 있는 ‘땅’을 표현하고 있다. 地자는 잡초가 무성한 곳에서는 뱀을 흔히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대지(土)와 뱀(也)’을 함께 그린 것으로 보기도 한다. 그래서 地(지)는 (1)일부 명사(名詞)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곳임을 나타내는 말 (2)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 명사가 뜻하는 그 옷의 감을 나타냄 (3)사대종(四大種)의 하나 견고를 성(性)으로 하고, 능지(能持)를 용(用)으로 함 등의 뜻으로 ①땅, 대지(大地) ②곳, 장소(場所) ③노정(路程: 목적지까지의 거리) ④논밭 ⑤뭍, 육지(陸地) ⑥영토(領土), 국토(國土) ⑦토지(土地)의 신(神) ⑧처지(處地), 처해 있는 형편 ⑨바탕, 본래(本來)의 성질(性質) ⑩신분(身分), 자리, 문벌(門閥), 지위(地位) ⑪분별(分別), 구별(區別) ⑫다만, 뿐 ⑬살다, 거주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흙 토(土), 땅 곤(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하늘 건(乾), 하늘 천(天)이다. 용례로는 일정한 땅의 구역을 지역(地域), 어느 방면의 땅이나 서울 이외의 지역을 지방(地方), 사람이 살고 있는 땅 덩어리를 지구(地球), 땅의 경계 또는 어떠한 처지나 형편을 지경(地境), 개인이 차지하는 사회적 위치를 지위(地位), 마을이나 산천이나 지역 따위의 이름을 지명(地名), 땅이 흔들리고 갈라지는 지각 변동 현상을 지진(地震), 땅의 위나 이 세상을 지상(地上), 땅의 표면을 지반(地盤), 집터로 집을 지을 땅을 택지(宅地), 건축물이나 도로에 쓰이는 땅을 부지(敷地), 자기가 처해 있는 경우 또는 환경을 처지(處地), 남은 땅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나 희망을 여지(餘地), 토지를 조각조각 나누어서 매겨 놓은 땅의 번호를 번지(番地), 하늘과 땅을 천지(天地), 주택이나 공장 등이 집단을 이루고 있는 일정 구역을 단지(團地), 어떤 일이 벌어진 바로 그 곳을 현지(現地), 바닥이 평평한 땅을 평지(平地), 자기 집을 멀리 떠나 있는 곳을 객지(客地), 처지를 서로 바꾸어 생각함이란 뜻으로 상대방의 처지에서 생각해 봄을 역지사지(易地思之),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고 몸을 사림을 복지부동(伏地不動), 하늘을 놀라게 하고 땅을 움직이게 한다는 경천동지(驚天動地), 하늘 방향이 어디이고 땅의 방향이 어디인지 모른다는 천방지방(天方地方), 감격스런 마음을 이루 헤아릴 수 없음을 감격무지(感激無地) 등에 쓰인다.
▶️ 不(아닐 부, 아닐 불)은 ❶상형문자로 꽃의 씨방의 모양인데 씨방이란 암술 밑의 불룩한 곳으로 과실이 되는 부분으로 나중에 ~하지 않다, ~은 아니다 라는 말을 나타내게 되었다. 그 때문에 새가 날아 올라가서 내려오지 않음을 본뜬 글자라고 설명하게 되었다. ❷상형문자로 不자는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不자는 땅속으로 뿌리를 내린 씨앗을 그린 것이다. 그래서 아직 싹을 틔우지 못한 상태라는 의미에서 ‘아니다’나 ‘못하다’, ‘없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다. 참고로 不자는 ‘부’나 ‘불’ 두 가지 발음이 서로 혼용되기도 한다. 그래서 不(부/불)는 (1)한자로 된 말 위에 붙어 부정(否定)의 뜻을 나타내는 작용을 하는 말 (2)과거(科擧)를 볼 때 강경과(講經科)의 성적(成績)을 표시하는 등급의 하나. 순(純), 통(通), 약(略), 조(粗), 불(不)의 다섯 가지 등급(等級) 가운데 최하등(最下等)으로 불합격(不合格)을 뜻함 (3)활을 쏠 때 살 다섯 대에서 한 대도 맞히지 못한 성적(成績) 등의 뜻으로 ①아니다 ②아니하다 ③못하다 ④없다 ⑤말라 ⑥아니하냐 ⑦이르지 아니하다 ⑧크다 ⑨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 그리고 ⓐ아니다(불) ⓑ아니하다(불) ⓒ못하다(불) ⓓ없다(불) ⓔ말라(불) ⓕ아니하냐(불) ⓖ이르지 아니하다(불) ⓗ크다(불) ⓘ불통(不通: 과거에서 불합격의 등급)(불) ⓙ꽃받침, 꽃자루(불)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아닐 부(否), 아닐 불(弗), 아닐 미(未), 아닐 비(非)이고,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옳을 가(可), 옳을 시(是)이다. 용례로는 움직이지 않음을 부동(不動),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일정하지 않음을 부정(不定), 몸이 튼튼하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음을 부실(不實), 덕이 부족함을 부덕(不德), 필요한 양이나 한계에 미치지 못하고 모자람을 부족(不足), 안심이 되지 않아 마음이 조마조마함을 불안(不安), 법이나 도리 따위에 어긋남을 불법(不法), 어떠한 수량을 표하는 말 위에 붙어서 많지 않다고 생각되는 그 수량에 지나지 못함을 가리키는 말을 불과(不過), 마음에 차지 않아 언짢음을 불만(不滿), 편리하지 않음을 불편(不便), 행복하지 못함을 불행(不幸), 옳지 않음 또는 정당하지 아니함을 부정(不正), 그곳에 있지 아니함을 부재(不在), 속까지 비치게 환하지 못함을 불투명(不透明), 할 수 없거나 또는 그러한 것을 불가능(不可能), 적절하지 않음을 부적절(不適切), 부당한 일을 부당지사(不當之事), 생활이 바르지 못하고 썩을 대로 썩음을 부정부패(不正腐敗), 그 수를 알지 못한다는 부지기수(不知其數), 시대의 흐름에 따르지 못한다는 부달시변(不達時變) 등에 쓰인다.
▶️ 仁(어질 인)은 ❶형성문자로 忈(인)과 忎(인)은 고자(古字)이다. 뜻을 나타내는 사람인변(亻=人; 사람)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二(이)가 합(合)하여 이루어졌다.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냄을 뜻하는 데서 어질다의 뜻으로 쓰인다. 공자(孔子)가 특히 仁(인)을 도덕의 중심으로 삼은 후로는 자기에게는 엄하게 하지만 남에게는 어질게 하는 정신을 인(仁)이라고 설명한다. ❷회의문자로 仁자는 ‘어질다’나 ‘자애롭다’, ‘인자하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仁자는 人(사람 인)자와 二(두 이)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仁자에 쓰인 二자는 ‘두 사람’이라는 뜻을 위해 쓰인 것이다. 仁자는 본래 두 사람이 친하게 지냄을 뜻했던 글자였다. 그러나 공자가 仁을 도덕의 중심으로 삼은 후부터는 인간의 근본적인 마음가짐을 대표하는 글자로 쓰이게 되었다. 그래서 仁(인)은 (1)공자가 주장한 유교의 도덕 이념, 또는 정치 이념 오상(五常)의 하나로 모든 덕의 기초로서 공자는 이것을 극기복례(克己復禮)라고 설명하고 일반적으로 사랑 또는 박애가 그 내용으로 됨. 천도(天道)가 발현하여 인이 되고, 이를 실천하면 만사 모두 조화, 발전된다는 사상임 (2)애정(愛情)을 타에 미침. 곧 어짐, 착함, 박애(博愛) (3)식물의 씨에서 껍질을 벗긴 배(胚), 배젖의 통틀어 일컬음 (4)세포(細胞)의 핵(核) 안에 있는 작은 구형(球形)의 구조. 핵 하나에 한 개 또는 몇 개 들어 있고 리보 핵산과 단백질을 함유하여 단백 합성을 하는 것으로 생각됨. 비교적 큰 입상체(粒狀體) (5)성(姓)의 하나 등의 뜻으로 ①어질다, 자애롭다, 인자하다 ②감각이 있다, 민감하다 ③사랑하다 ④불쌍히 여기다 ⑤어진 이, 현자(賢者) ⑥인, 어진 마음, 박애(博愛) ⑦자네 ⑧씨 ⑨과실(果實) 씨의 흰 알맹이, 속살,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사랑 자(慈), 어질 량/양(良), 어질 현(賢)이다. 용례로는 마음이 어진 사람을 인자(仁者),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인자(仁慈), 어진 임금을 인군(仁君), 타고난 성질이 어질고 착함을 인선(仁善), 인덕이 있고 수명이 긺을 인수(仁壽), 인덕의 감화를 인화(仁化), 어질고 후덕함을 인후(仁厚), 어진 덕을 인덕(仁德), 어질고 명철함을 인명(仁明), 인자스러운 마음을 인심(仁心), 어질고 남을 사랑하는 마음을 인애(仁愛), 어질며 은혜가 있는 일을 인혜(仁惠), 어진 마음으로 사랑을 베풀어 구제함을 인휼(仁恤), 어진 것과 의로운 것을 인의(仁義), 어질고 덕망이 있는 성인을 인성(仁聖), 성질이 어질고 순함을 인순(仁順), 어질고 착하지 아니함을 불인(不仁), 너그럽고 어짊을 관인(寬仁), 어질다고 소문난 명성을 인문(仁聞), 친소의 차별없이 널리 평등하게 사랑하는 일을 동임(同仁), 복숭아씨의 알맹이를 도인(桃仁), 사람으로서 갖추어야 할 네 가지 마음가짐 곧 어짊과 의로움과 예의와 지혜를 인의예지(仁義禮智), 어진 사람은 널리 사람을 사랑하므로 천하에 적대할 사람이 없음을 인자무적(仁者無敵), 인과 의와의 도를 인의지도(仁義之道), 의를 위하여 나서는 어진 사람의 용기를 인자지용(仁者之勇), 어진 사람은 도리에 따라 행하고 양심에 거리낌이 없으므로 근심을 하지 않는다는 인자불우(仁者不憂), 인자는 의리에 만족하며 생각이 깊고 행동이 신중함이 산과 같으므로 자연히 산을 좋아한다는 인자요산(仁者樂山)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