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독서치일본어교실입니다.
# 2025년 11월 둘 째주
(6일.목~9일.일)에 있을
"일본 도쿄.요코하마.하코네 현장실습"의 일정이 정해져서 3명이 신청했습니다.
# 2024년 3/4분기
(7월, 8월, 9월)시간표
* 포천시(월):
. 입문시작반(19시~20시30분)
* 행주동(화):
. 입문시작반(10시~11시30분)
* 능곡동(화): 13시~16시
. 입문시작반(13시~14시30분)
. 초급반(14시30분~16시)
(독서치일본어교실: 010-7357-7861)
# 독서치일본어정보(244)
# 독서치여행일본어회화(64)
316. 私(わたし)があなたに何(なに)かしたかしら。
(내가 너에게 무슨 짓을 한 거니?)
317. 後悔(こうかい)しています。(후회하고 있습니다.)
318. いつか後悔(こうかい)するかも。(언젠가 후회할지도.)
319. ちょっと失礼(しつれい)します。(잠깐 실례하겠습니다.)
320. ここでたばこを吸(す)ってもいいですか。(여기서 담배를 피워도 될까요?)
# 오늘의 단어
* ~かしら: ...걸까(의문을 나타냄)
* 後悔(こうかい): 후회
* いつか: 언젠가
* ~かも: ...일지도(의문을 나타냄)
* ちょっと: 좀, 잠시
* 失礼(しつれい): 실례
* ここ: 여기(장소를 나타내는 지시대명사)
* たばこを吸(す)う: 담배를 피우다
* いい: 좋다
(출처: 생활일본어 일상편, 움터미디어)
안녕하세요?
독서치일본어교실/사랑터포천점/독서치하루장터/도서출판서치세상대표/ 독서치일본어 인포프래너 대표
독서치 이규승입니다.
# 살며 생각하며
* 폭염은 ‘성난 지구’의 절규(이경란 소설가)
처서에도 꺾일 줄 모르는 폭염
더워도 좀 적당히 더웠으면…
소비와 탐욕의 끝은 어디일까
없어도 될 물건 샀다가 버리고
성난 지구에 호되게 당하면서도
‘폭주하는 체제’와 공모하는 나
성석제 작가의 단편 소설 ‘이 인간이 정말’은 무척 재미있다. 그의 많은 작품이 그러하듯 이 소설 역시 읽는 내내 능청스러운 해학으로 피식피식 웃게 한다.
소설에는 도무지 적당한 선을 모르는 남자가 등장한다. 금수저인 그는 엄마가 마련해준 맞선 자리에서 소위 ‘맨스플레이션’의 폭주를 감행한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차례대로 제공되는 음식을 보며 접시마다 끝없이 ‘썰’을 푸는데, 여자가 스테이크를 주문하자마자 소의 종자 ‘썰’부터 시작해서 새우가 나오면 새우 ‘썰’을, 소고기가 나오면 O-157 대장균 ‘썰’로 넘어가고, 아이스크림이 나온 다음에는 우유 ‘썰’로 넘어간다. 그의 ‘썰’은 대체로 인간이 이것들을 먹기 위해 얼마나 잔혹한 짓을 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여자는 아무것도 제대로 먹지 못하고 접시를 물린다. 남자는 아예 아무것도 먹지 않는다. 말하느라 바빠서 먹을 틈이 없다. 대화의 9할 이상을 혼자 떠들던 남자는 점점 더 자기 이야기에 도취해 급기야 중국의 매춘 이야기로 넘어가고, 여자가 기함할 말을 지껄인다. ‘그렇게 빠진 거 하나 없는 여자들이 남자를 계속 우습게 알면서 살다가 결혼도 못 하고 하면 남자 생각이 날 때 어떻게 하’는지 궁금하다나. 폭탄 맞은 기분으로 자리를 지키던 여자는 남자가 자리를 뜨고 나서야 길게 한숨을 내뿜은 뒤 말한다. “됐다 새끼야, 제발 그만 좀 해라.”
그가 늘어놓은 말의 내용에는 물론 꽤 괜찮은 정보도 있었다. 그러나 매사 과하면 탈이 나는 법. 그는 멈춰야 할 때를 몰랐던 것이다.
입추도 처서도 지났는데 폭염이 숙을 줄 모른다. 더워도 좀 적당히 더웠으면 좋겠다는 푸념이 저절로 나온다. 그런데 실은 그런 푸념을 할 자격이 내게 있을까 싶다. 지구상에서 쓰레기를 생산하는 유일한 종의 일원으로, 나도 오십 년 넘게 이루 측정할 수 없는 부피와 무게의 쓰레기를 생산해 오지 않았던가. 욕심에 겨워 없어도 되는 물건을 사들이고 처박아 두었다가 버리기를 얼마나 반복했던가. 혼자 차를 몰고 고속도로에 올랐던 적은 또 몇 번이었던가. 작년은 지구가 10만 년 만에 가장 뜨거웠던 해였다. 지구 온난화의 마지노선이라는 1.5도 상승은 향후 5년 이내에 무너질 것이란 전망도 나왔다. 너무 많이 들어 무감해진 이야기이다. 많은 사람이 예민한 지점은, 폭염에 에어컨을 종일 틀었으니 전기요금이 얼마나 많이 나올까 같은 것이다. 겨울이 되면 난방을 위한 화석연료 값으로 얼마나 쓰게 될지로 걱정은 바뀔 것이다. 요컨대 돈 걱정이다.
그렇게 돈 걱정을 하면서도 사람들은 돈을 쓴다. 꼭 필요하지도 않은 물건들을 사서 처박아두거나 버리는 데에 쓴다. 시도 때도 없이 유혹하는 온라인 쇼핑몰이여! 꼰대 같은 소리로 들리겠지만, 예전에는 추석빔, 설빔이라는 게 있었다. 명절이나 돼야 겨우 옷 한 벌 얻어 입던 시절이 좋았다는 건 아니다. 그러나 언젠가 본, 옷더미로 된 산 귀퉁이에서 소인지 염소인지가 먹이 대신 옷가지를 질겅질겅 씹어 삼키던 영상을 떠올리면 소비에 보수적이 될 수밖에. 이빨 사이로 늘어져 있던 칙칙한 섬유 쓰레기와 그것들을 삼키느라 꿀렁거리던 목 줄기를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 그래놓고도 무언가 꼭 사들이게 되니 문제다.
수돗물을 꼭 잠근 상태로 이를 닦는다는 누군가에게 수도요금 그거 아껴서 부자 되겠냐고 응수하던 사람이 있었다. 누군가가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요금은 돈 내면 된다. 진짜 문제는 하루에 몇 킬로씩 맨발로 뜨거운 흙길을 걸어 흙탕물을 길어와 마시고 병이 나는 아프리카의 소녀들이 있다는 거지. 오가는 길에 강간을 당하기도 한대. 그걸 생각하면 잠깐이라도 물을 틀어둘 수가 없어. 빈정거리던 이의 다음 반응은 기억나지 않는다. 옆에서 듣기에도 민망한 나머지 기억에서 삭제했을 것이다.
“자본주의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기가 더 쉽다”라고 철학자이자 평론가인 프레드릭 제임슨은 말했다. 기후위기는 사실 생태계만의 문제가 아니다. 거의 모든 재난에서 연약한 사람들이 먼저 나가떨어진다. 영화 ‘기생충’의 폭우 장면을 보면 반지하에 물이 차자 거기 살던 주인공 가족이 탈출한다. 현실의 어느 장애인 가족은 탈출하지 못하고 반지하 집에서 익사했다. 지구상 곳곳에서 발생하는 대규모의 장기간 산불에 대해 영화감독이자 환경운동가인 이송희일은 저서 ‘기후위기 시대에 춤을 추어라’에서 이렇게 지적한다. “소고기와 대두를 위해 대농장과 기업들이 아마존 열대우림에 가공할 만한 규모로 불을 지르는 것처럼, 돈벌이에 미쳐 다국적 기업들이 유칼립투스를 심고 그것을 불태우며 탄소중립을 이루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처럼,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나무와 식물을 태우고 끝내 지구에 불을 지르며 폭주하는 체제다.”
자본 앞에 한없이 무기력한 우리는 성난 지구에 호되게 당하면서도 별수 없이 ‘폭주하는 체제’와 공모하면서 산다. 소시민들의 ‘돈’이 힘 있는 자들의 ‘자본’과는 물론 다르겠지만, 이윤과 편리 앞에 다른 가치는 빛이 바랜 지 오랠지도 모른다. 이런 이야기도 닿지 않는 연서처럼 중얼거림에 그칠 것이다. ‘운수 좋았던’ 인력거꾼 김 첨지도 일찍이 이렇게 절규하지 않았던가. “이 원수엣 돈! 이 육시를 할 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