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돈으로 살 수 없는 것’ - 성슬기 수습기자
우산 살까 망설이다 비 맞고 취재하던 날… 함께 쓰자 손짓하던 수녀님 한 우산 아래 행복 느끼고
2,500원. 사순 체험을 시작하고 가장 행복했던 날 사용한 금액이다. 지하철 왕복 교통비다. 그날, 서울 광화문 인근에서 야외미사를 봉헌 중인데 갑자기 비가 쏟아졌다. 우산이 없던 나는 빗줄기가 점점 굵어지자 편의점으로 냉큼 달려갔다. 나도 모르는 사이 벌어진 일이다. 정말이다.
계산을 하려고 보니 생각났다. 신용카드가 없었다. 사순이 시작되기 전날, 이미 잘라서 버렸다. 현금을 꺼내다보니, 너무 충동적인 구매가 아닌가 망설였다. 비, 좀 더 맞아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취재수첩이 젖어 꼬깃꼬깃해져 가는데, 누군가 뒤에서 ‘툭툭’ 나를 불렀다. 돌아보니 꽤 큰 검정 우산 아래 수녀님 세 분이 함께 있었다. 한 수녀님께서 우산을 같이 쓰자는 손짓을 했다. 네 명이 하나의 우산 아래에서 차가운 빗줄기를 피했다. 그 우산이 마치 하느님 나라 지붕처럼 느껴졌다.
지출을 참는 순간들. 모든 순간이 특별했던 건 아니다. 봄 분위기 가득, 화사한 쇼윈도를 지나칠 때면 절로 눈길이 갔다.
보통의 가정에서 지출하는 항목은 내 은행 가계부 지출 항목 기준으로 볼 때 크게 11가지로 구분할 수 있다. 그 중에서 2017년 2월까지 지난 세 달 간 내가 지출한 항목은 총 9가지다. ▲식비 ▲통신비 ▲교통비 ▲생활용품비 ▲의복·미용비 ▲건강·문화비 ▲경조사·모임비 ▲저축·보험비 ▲기타비(기부금 등). 나는 사순 시기 동안 이중에서 4가지 항목, 식비와 교통비, 의복·미용비, 모임비 등에서 지출을 최대한 줄이는 중이다.
간식과 외식은 아예 없앴다. 동행취재가 없는 날이면 도시락을 싸오기도 했다.
모임비는 아예 안 쓰기가 어려웠다. 어지간한 약속은 예수부활대축일 이후로 미뤘다. 하지만 취업했다고 2년 만에 연락 온 친구와의 만남은 거절하기 힘들어 차 한 잔 마시기로 했다. 다행히(?) 취업한 그가 한 턱 냈다. 사회초년생인 나로서는 의복비도 소비 유혹을 참기 쉽지 않은 항목 중 하나다.
이쯤에서 조용히 고백하자면, 지금까지 택시비로만 1만6200원을 지출했다. 교통비 긴축을 위해 스마트폰에서 택시 앱을 곧바로 삭제했다. 아예 없애지 않으면, 이런저런 핑계로 나의 편의를 버리지 못할 거 같았다.
유명 심리학자가 TV 강연에서 “행복해지려면 경험을 위한 소비를 해야 하고, 소유물을 샀을 때 느끼는 행복감은 강도도 약하고 그리 오래가지 않는다”고 한 말이 생각났다. 그래, 꼭 ‘돈을 써야’ 행복한 순간을 만들 수 있을까? 문득 검정 우산 안에서 본 풍경이 떠올랐다. 한 수녀님은 어린아이가 비에 젖지 않도록 옷매무새를 만져주고 있었다. 또 다른 신자는 비를 맞으며 성체를 분배하고 있던 신부님에게 다가가 우산을 씌워드렸다. ‘내 우산’을 사서 썼으면 보지 못했을 배려들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