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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01.03
‘따로 또 같이’ 부부 평생회원의 아주 특별한 사랑법
[회원인터뷰] 새벽길-다시오는 봄님 “후원은 따로 활동은 함께…동지라서 더욱 좋아요”
운영자
희대의 패륜아 조현오 전 경찰총장의 구속수사를 외치며 1년 넘게 진행되었던 1인시위. 당시 우리 회원님들에게서 느껴지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준 종교적인 분위기 말입니다. 모든 종교의 기본정신이 뭐겠습니까. 남을 위한 마음, 이타심 아니겠습니까. 제가 스스럼없이 예수에 필적한다고 말하는 故 노무현 대통령님, 그분에 대한 우리 회원들의 마음가짐에서 그런 이타심을 봅니다.
이타심의 기본 공동체는 가족이고, 가족의 핵은 부부입니다. 만인에 대한 경쟁의 시대에 부러워함은 곧 지는 것임을 알면서도 제가 부러워 마이크를 들이민 부부가 있습니다. 중년의 아름다운 커플 주인공은 ‘새벽길’님과 ‘다시오는 봄’님입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라는데, 이 두 분은 평생후원회원에 따로따로 가입한 전력(?)을 갖고 있습니다. 새벽길·다시오는 봄 부부의 ‘따로 또 같이 사랑법’을 소개합니다.
3ㅅ : 두 분은 닉네임이 참 예쁩니다. 믿음과 희망의 기운이 느껴지기 때문이 아닌가 합니다. 특별히 그렇게 작명을 하신 이유가 있나요?
새벽길 : 제가 원래 닉보다는 인물이 더 참하다는 소리를 많이 듣긴 합니다만.
다시오는 봄 : 오호! 무슨 말씀? 인물이 참하기보다 그냥 허우대(?)가 참하지요. 본인 자랑하는 인물님도 있어요? 제가 보기에는 닉 땜에 인물이 커버되는 것 같은데요.
새벽길 : 사실, 새벽길에는 제 어린 시절 새겨진 부모님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저의 초중등학교 수업료는 부모님의 과일과 야채 리어카 행상에서 나왔습니다. 그때 5일장을 섰는데 부모님께서는 시장터에서 조금이라도 더 좋은 목을 잡으시려고 새벽부터 집을 떠나셨지요. 저도 이른 새벽에 일어나 두 분께서 준비하시는 일을 도와드리곤 했죠. 리어카를 끌고 밀면서 부모님이 새벽길 속으로 떠나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합니다. 늦은 밤 돌아오실 때 수레가 비어있으면 얼마나 좋았던지. 그러나 그런 날은 굉장히 드물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그랬나, 당시 여자가수 남정희가 부른 ‘새벽길’이란 노래도 좋아했지요.
3ㅅ : 1960년대만 해도 우리 국민의 70% 이상이 농촌 인구였다지요. 그런 면에서 새벽길님 가족은 대한민국의 보편적 촌놈의 정서 속에서 사셨습니다. 노무현재단 동호회 ‘산따라’의 맏언니이신 다시오는 봄님은?
다시오는 봄 : 일종의 자아최면 닉입니다. 저는 소시적부터 제일 싫어하는 계절이 봄이었습니다. 화려한 꽃들이 만발하긴 합니다만 여름과 겨울의 똑 부러지는 화끈한 맛이 없는 계절이랄까,
새벽길 : 노짱님처럼. ^^
다시오는 봄 : (웃음) 거기에다 뭔가 새로 시작해야 한다는 무언의 압박감이 있는데 현실은 힘들었고요. 노 대통령님의 서거로 봄은 저에게 더 힘든 계절이 되었지요. 그러다 이렇게 아픔과 슬픔만 반복되는 봄은 가신님에 대한 예의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노짱님뿐만 아니라 저를 위해서도 이기는 봄, 희망의 봄을 가꾸고 싶었습니다.
3ㅅ : 한국현대사의 아픈 사건들이 봄에 집중되어 있는 것도 참 아이러니합니다. 하긴 한(恨)이 없는 계절이 있기나 하겠습니까만 이기자는 봄, 내년에는 꼭 이긴 봄이 되길 바랍니다. 이야기를 바꿔 지금 가족은 몇 분이세요?
다시오는 봄 : 신랑 달랑 하나, 아들 달랑 하나. 그리고 저요.
새벽길 : 달랑 셋인데 모두 나보다 더 노빠입니다.
3ㅅ : 가족이 아니라 이념으로 맺어진 정당 같습니다. 저도 숫자 3은 뭔지 위대하다는 근거 없는 믿음이 있습니다. 노짱님과의 개인적인 인연에 대해 한 말씀.
다시오는 봄 :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저에게도 5공 청문회에서 명패 던질 때의 모습에 상당히 신선한 충격을 받았고, 그때부터 노무현이란 분만 보면 심장이 뛰었지요. 개인적인 인연은 없었지만 대통령님 퇴임 후 2008년 8월에 봉하 자봉의 기회를 잡았습니다. 당시 전국에서 대통령님 한 분 뵙자고 매일 엄청난 인파가 봉하에 몰렸었지요. 저희 부부는 강의도 듣고, 사진도 찍으면서 정말 가까이서 뵈었는데 얼마나 가슴이 벅찼는지 아무것도 생각이 안 나더라고요. 이듬해 돌아가신 뒤 아직도 언론의 패악질 생각에 공중파 TV를 안봅니다. 저의 자연적인 수명이 단축될까봐서요.
사람사는 세상, 동호회, 정당 활동까지 ‘부부 2인3각 참여’
3ㅅ: 지난 총선 때였나요. 새벽길님이 직장 관계로 경상도 지역 거래처에 가셨을 때 개인 돈 써가면서 민주주의 선교활동을 펼치고 계시다는 글을 올리셨지요. 이렇게 개인적인 전사로 만든 동력은 무엇입니까?
새벽길 : 아마 제 개인의 정치적 성향과 제한된 능력 때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당시 총선 때나 그 전 보궐선거 때에 여기 사사세 회원들도 그랬지만 많은 시민들이 야권의 승리를 위해 굉장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직장인인 저의 처지에서는 그게 늘 미안했는데, 마침 거래처가 고담시(영화 <배트맨>에 나오는, 뉴욕을 빗댄 악당들의 도시. 정치적으로 수구보수의 본산이 돼 버린 경상도와 대구 지역을 지칭함) 쪽에 있어서 제 나름대로의 정치적 정체성을 드러낼 기회가 되었던 거지요.
3ㅅ : 그나마 사업관계에서 갑의 위치에 있었으니 투표 결과와 상관없이 계몽활동의 결과도 좋았지 않았을까 합니다. 정당(또는 다른 카페 등)에 가입하고 계시지요. 가입하셨다면 언제부터, 어떤 계기로 가입 하셨는지요?
새벽길 : 과거 국민참여당에 가입했고, 덩달아 통합진보당으로 함께 갔다 지금은 결국 무소속 상태입니다. 정당 가입 시에도 빡세게 정당 활동을 한 것은 아니고 대충 왔다갔다 언저리에서 머리 숫자 채워주는 정도였지요. 돈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대한민국 정치구조상 실제 당원이 주체가 되는 그런 정당을 만들어 보자고 평생 처음으로 정당인 국민참여당에 가입했었지요. 자연히 사회 소외층과 서민을 위해 정치인이 정당 활동을 해주었으면 하는 기대가 컸습니다. 사실, 노짱님도 이러한 형태의 백년정당을 만들어 보려고 생각했었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웠잖아요. 당신의 뜻을 아는 입장에서 정치권력(기득권세력)에서 소외되고 피해받기 쉬운 약자와 대중서민들을 보호할 수 있는 일이라면 저도 힘을 보태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 그래서 민족문제연구소와 명진스님의 ‘단지불회’에 회비 내는 회원으로 있습니다. 남들이 안하는 힘든 일을 그분들이 대신하는 분들이기에 작은 보탬이라도 될까 해서죠. 또 故 리영희 교수님, 시민광장, 소리꾼 장사익의 카페 회원이기도 하고요. 근데 회원으로서 정서적 마음만이고 실체적 몸의 참여행동은 영 아닙니다. 열정의 결핍으로.
3ㅅ : 다시오는 봄님도 바늘 가는 데 실 가듯?
다시오는 봄 : 누가 바늘인지 잘 모르겠지만요. ^^ 저는 예전부터 뭔가 이 사회를 변화시키려면 정치로 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일 거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노무현 대통령님께서 시민들이 참여하여 변화하는 만큼, 꼭 그만큼씩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말씀이 항상 머릿속을 맴돌았고, 용기 내어 국민참여당에 가입했던 거지요. 노무현 대통령님의 업적이 묻혀버릴 것 같았고, 저를 분노하게 한 사람들을 조금이나마 혼내주고, ‘난 (너희들이 바라는) 바보가 아니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다고나 할까요. 참고로 가입당시 제 닉은 ‘끝내이기리’였답니다. 저도 단지불회부터 리영희 선생님 카페까지 신랑과 2인3각의 처지로 함께 하고 있지요.
“우리도 노래하게 해주세요!”
3ㅅ : 산따라 동호회는 봄님이 먼저 가입하셨죠. 그러다 일요일만 되면 뛰쳐나가는 부인의 늦바람에 새벽길님이 머리끈 동여매고 뒤따라서 가입하셨다구요. 지금은 가장 모범적인 부부 회원으로 동호회 활동을 즐기시고 또 활력을 불어넣고 계시죠. 대답 안 하셔도 되는데, 집에서도 그러세요?
새벽길 : 먹고사는 업무로 해외와 국내 거래처의 출장이 좀 많은 편입니다. 그리고 아내도 직장생활을 하고 있기에 집에서 가장이나 남편으로써의 ‘모범’과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입니다. 늘 늦게 귀가하고...그렇다고 술에 절어 오는 경우는 많지 않고요. 많이 마시지도 못해요. 그래서 산따라 동호회 활동은 느슨해질 수도 있는 부부의 정도 키우면서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도 만나는 아주 유익한 소일거리입니다.
다시오는 봄 : 집에서 만나 ‘안녕하세요, 오래간만입니다’ 할 때도 있다는.
3ㅅ : 그럼 노짱님과 관련된 활동이나 생각이 전부 제외된 시간에 즐기는 것은 무엇인지요?
다시오는 봄 : 요가도 하고요, 제가 보기와 달리 스릴러 영화의 광팬입니다. 집안 취미생활은 살림 재배치. 장롱도 옮깁니다. ^^
새벽길 : 저는 가끔 친구들과 바둑을 즐깁니다. 때때로 막걸리도 사면서 녀석들 의식을 계몽시키는 데 끈질긴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봉사활동? 그래도 휴일의 대부분은 산행이 전부입니다. 외국 출장 중일 때도 자유게시판이라도 들락거릴 정도로요.
3ㅅ : 금년 재단에서는 추모앨범 ‘노무현을 위한 레퀴엠’ 출시 등 대통령님 3주기를 정말 성공적으로 치렀습니다. 시민학교와 청소년캠프 등 많은 프로그램이 정착단계에 접어들어 회원들의 박수를 받고 있습니다. 우리 재단의 지금까지의 업적을 평가해 주시겠습니까. 또 애정 어린 쓴 소리나 개인적인 바람 같은 말씀도 부탁합니다.
새벽길 : 대통령님의 묘역관리부터 추모제, 봉하의 오리농사 등 개인적으로 칭찬하고 감사할 일이 너무 많지요.
다시오는 봄 : 재단에서 판매하는 티셔츠에 대해 말씀 드리고 싶어요. 이번 여름에도 4벌을 샀는데 좋은 디자인임에도 너무 두껍고 잘 안 말라요. 재단을 널리 홍보하는 차원에서라도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되 품질을 더 높여주시면 감동이 배가 되지 않을까 합니다.
새벽길 : 이번 레퀴엠 프로젝트도 그렇고, 재단행사의 내용이나 제목에 한글을 사용했으면 하는 바람이 큽니다. 같은 관점에서, 매년 추모행사가 시청 등에서 열리는데 가수들의 노래가 너무 젊은 층 위주인 것 같아요. 행사에 오시는 분들은 30대 이상이 대부분이고 50, 60, 70대도 많은데 말입니다. 행사 내내 시끄럽게 음악은 나오는데 무슨 내용인지도 모르고 공감이 안 되니 저와 주위 많은 분들이 의무감으로 자리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회원 중 어린이도 있으니 동요도 부르고 가곡도 부르고, 나같이 연식 있는 이들을 위해 뽕작도 양념처럼 섞으면 더 좋고 말입니다(솔직히 전 뽕작밖에 아는 게 없지만 ^^). 가수 수배가 정 어려우면 전국노래자랑처럼 회원들이 열심히 노래하면 안 되나요?
“우리 부부는 한 곳을 보며 손잡고 갈 수 있는 동지에요”
3ㅅ : 윽! 이 질문 안 했으면 욕먹을 뻔 했습니다. ^^ 좋습니다, 그럼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물어보겠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느꼈던 서로 간의 장점 좀 칭찬해 주세요. 아니면 아직도 미숙한 부분에 대한 격려의 말씀이나.
새벽길 : 하하. 자기 배우자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것이 우리 정서에 맞지 않는데요. 유명인들이 늘 매스컴에 자신들이 가장 이상적 부부인양 거룩하게 얘기하는 모습들이 실상 자기 자랑하는 것으로 보여 낯간지럽더라고요. 다들 열심히 사는 그 자체가 큰 장점이지요. 하나만 짚고 넘어가자면, 뭐 도시처녀 데려다가 신혼생활부터 40대까지 다소 어렵게 셋방살이와 이사를 참 많이 했었지요. (다들 집 없이 결혼한 80,90년대 시절 그러했지만) 지하셋방살이서 연탄가스 마시고 죽을 고비 넘기기도 했습니다. 그런 생활에 도시 색시가 생활고 불평하지 않고 살아온 게 제일 고맙고, 서방에 대한 기 살리기(?) 배려가 감사할 뿐이지요.
다시오는 봄 : 힘든 상황이라도 성실하고 열심히 헤쳐 나가는 모습이라고나 할까요. 부도난 회사에서 나와 개인회사를 만들 때까지 많은 어려움을 겪어내고 지금까지 왔으니까요. 이공계 대 문과적 사고방식 차이로 서로 미숙하게 느낄 때가 많지만, 지금은 제가 식물인간이 되어도 옆을 지켜줄 것 같은 믿음이 있고, 게다가 노무현대통령님께서 꿈꾸셨던 사람사는 세상이 될 때까지 한 곳을 보고 손잡고 갈 수 있는 동지라서 더욱 좋지요. 좀 소설 같다. 그쵸? 그래서 다시, 등산갈 때 신발 두 켤레를 나란히 내어 놓았을 때, 자고 일어나서 잘 잤느냐고 인사 건넬 때. 그런 때가 신랑의 장점이라기보다는 많이 예뻐 보이지요.
3ㅅ : 다시오는 봄님, 새벽길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의 대통령님께서는 “민주주의 최후의 보루는 깨어 있는 시민의 조직된 힘”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 조직된 힘의 기본 단위는 가정이라고 믿습니다. 두 분의 가정과 가족에 항상 노짱님의 가호가 함께 하시길 빌겠습니다.
* ‘3ㅅ’님은 대통령님 추모행사, 1인시위, 노무현 시민학교, 문화탐방, 산행 등 재단에서 주최하는 각종 행사는 물론 다양한 소재와 깊이 있는 주제의 글쓰기로 늘 참여를 실천하고 있는 후원회원입니다. 닉네임은 ‘사람사는 세상’에 들어있는 3개의 ‘ㅅ’(시옷)자를 의미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