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울을 보면 거기 한 남자 혹은 한 여자가 있다
거울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기란 쉽다
남자라면 면도를 할 것이고
여자라면 화장을 할 것이다
우리들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자신인 줄 안다
물론 자신인 건 맞다
그러나 그 모습은 변해 간다
그러니까 거울에 비춰보는 자신은 변해가는 자신인 것이다
곧 자신들의 아버지나 어머니처럼 나이 들 것이고 노인이 될 것이며
할아버지 할머니처럼 죽을 것이다
성형하고 좋은 것 먹고 아무리 용을 쓴다 한들
쭈글쭈글 늙어서 죽을 것이다
그것은 자연이다
우리 인간들은 다른 모든 존재가 그러하듯이 불사의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몸뚱이에만 신경을 쓰다가 죽는다
사실 몸뚱이는 신경을 쓰든 안쓰든 살만큼 살다가
죽을 날(?)에 죽는다
그러니까 신경 쓸 게 없다
밥이나 먹고 운동이나 하고 자연스레 늙으면 된다
그런데 자연스럽게 늙는 것이 그리도 싫은가보다
남자는 언제나 정력제에 환장하고
여자는 언제나 미용에 집착한다
남자는 자기 힘대로 즐기면 되는 것이고
여자는 타고난 모습대로 살 수 밖에 없다
여자한테 정력을 과시할 것이 아니라 다정하게 다가갈 일이고
남자한테 예쁘게 보일 것이 아니라 우아하게 보일 일이다
우아한 여성과 다정한 남성은 시적이다
예쁜 여자에게 달려드는 무기는 동물적이다
시적으로 살면 동물적인 것도 아름답지만
동물적으로 살면 <개같은 인생>이 되기 쉽상이다
시적인 남녀의 그림이 아름다운가?
동물적이고 자극적인 남녀의 모습이 아름다운가?
포르노의 애정행위는 동물적이다
수준 있는 영화에서의 남녀의 사랑은 시적이다
둘 다 남녀의 결합이지만 그대는 포르노 배우가 될텐가?
아니면 영화배우가 될텐가?
이런 비유로 보자면 영화배우는 드물다고 봐야 한다
그래서 그 동물들은 데이트가 마음대로 안되면 폭력을 휘두르는 것이고
부부라는 이름으로 살아도 <아릅답다>라는 개념의 사랑을 모른다
그런 삶은 고단하고 짜증나고 우울할 수 밖에 없다
말이 헛나갔다
거울에 비춰볼 수 있는 자신의 모습은 늙어가는 육신의 모습이고
" 나는 누구인가? " 라는 철학적 질문으로 들어갈 때
답할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다른 말로 하면
거울로 비춰보는 자신 말고는 자신에 대해서 무지하다
거울에 비춰보는 자신은 남들도 안다
그러나 자기 내면의 세계, 자기 마음의 세계는
자기자신도 모르고 남들도 모른다
그러니까 우리들은 껍데기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다
말이 헛나갔다고 했지만 예쁜(마광수의 표현으로는 '야한') 여자와 힘센 남자로 살고픈
세상사람들의 몸부림은 껍데기 인생인 것이다
골은 빈 주제에 명품으로 둘둘 말아서 다니면
" 우와 돈 많나보네! " 하고 말지
" 우와 아름답네! " 할 사람 아무도 없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 잘 난 줄 알고
돈자랑 밖에 안되는 저급한 몰골을 하고 다니는 것이다
명품을 하고 다닌다고 꼭히 저급한 몰골은 아니지만
명품만 하고 다닌다면 다시 말해 든 게 없다면 그건 저급하다고 밖에 볼 수 없다
가끔 중이 고급차를 몰고 다니는 것에 대해 질문을 받은 적이 있다
나의 대답은 간단했다
<차를 보지 말고 중을 보세요!>
소형차 타면 훌륭하고 외제차 타면 땡중이라는 공식이 있는가?
돈 있으면 명품 걸칠 수 있다
그러나 명품만 걸쳤다면 흉한 몰골이라고 했듯이
중들도 돈 있으면 외제차 탈 수도 있다
그러나 든 게 없다면, 정신세계가 빈약하다면, 그건 뭐 무슨 욕을 해도 부족하다
그러니 명품으로 치장하고 다니는 사람을 보거든 <명품으로 감쌌네! 돈 많나 봐!> 하지 말고
그가 명품보다 우아한 사람인지 보라
만일 명품보다 우아한 사람이면 명품 정도는 걸쳐줘야 된다고 봐도 무방하다
만일 고급세단을 타는 중을 보거든 <신도가 많나 봐! 돈도 많겠네!> 하지 말고
그 중이 고급차보다 더 번쩍이는 광채가 나는지 보라
만일 그 중한테서 비범한 광채나 분위기가 풍긴다면 고급차 타도 되는 스님이다
그러나 만일 개기름이 질질 흐르거나 분위기가 속가의 아저씨 같이 칙칙하면
갖다 바치는 골 빈 신도나 그걸 좋다고 고급차 타는 중이나 나란히 손잡고 지옥 간다고 보면 된다
말이 이렇게 자꾸 헛나간다
주제는 <<나는 누구인가?>>이다
거울이 육신을 비춰 준다면
마음을 비춰 주는 것은 무엇일까?
무엇에 자신의 마음을 비춰 봐야 할까?
조용한 시간에 홀로 침묵하는 것이 마음을 비춰볼 수 있는 길이다
말은 간단히 한 줄이면 된다
그러나 일생동안 단 한 순간도 그걸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중들이 선방에서 적게는 하루에 8시간에서 보통은 10시간
많게는 12시간에서 그 이상의 시간동안 참선을 한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해서 자기마음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자기 마음을 보는 것은 오래 좌선한다고 가능해지는 시간적인 차원의 문제가 아니다
30년 40년 좌선해도 멍청한 중들은 많다
평생을 절에 살아도 불교사상의 정수를 모르는 중들도 많다
그건 시간과 연륜의 문제가 아니다
조용한 시간은, 시간의 개념을 벗어난 어떤 순간이고
홀로라는 것은, 고독을 아주 편안하게 여기는 마음이며
침묵이라는 것은, 마음이 고요해져 드러날 수 밖에 없는 그것을 말한다
이것을 경험하는 것은 시간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이다
이 세상 그 누구라도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진심으로 진정코 자신에게 던지는 사람이라면
그런 자는 이내 명료한 정신으로 자기 마음을 볼 것이다
철학자 니체는 이런 말을 했다
<<깊은 심연을 오랫동안 응시하면 결국에는 그 심연이 당신을 응시하고 있는 것을 알 것이다>>
'오랫동안'이라는 표현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시간적인 개념이 아니다
그럼 뭐겠는가?
그것은 <<순수한 집중>>의 개념이다
내가 고요히 심연을 응시하면 그 심연이 나를 응시하고 있음을 아는 것은 어떤 경지인가?
보는 자와 보여지는 자
관찰자와 관찰 대상
주관과 객관
그것은 한덩어리라는 것이다
참으로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해 보자
다른 말로 바꾸면
<내가 내 마음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나를 본다>이다
시적으로 바꿔 보면 더 이해가 쉬울 것이다
<내가 사랑하는 그대를 진심으로 바라보니
그대 또한 사랑으로 나를 진심으로 바라보네>
세상 사람들에게 가장 두려운 것은 외로움, 고독이다
그러나 나그네, 순례자, 구도자에게는 고독이 가장 소중한 벗이다
고독 속에서 내가 내 마음을 들여다 보면 내 마음도 나를 본다
내가 내 마음을 보는 그 에너지가 강해질수록 마침내 내 마음은 깨어나 나를 본다
내 안에 잠들어 있던 나의 연인을 내가 깨우는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고독 속(내 마음 보기)에서 고독을 초월하는 사랑(잠든 마음<연인>이 깨어나 나를 봄)의
진리와 합일하는 것이다
이런 긴 설명도 필요 없이
니체의 말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그는 전혀 진리를 모르는 자이다
나는 친절하게도 설명을 했지만 평소에 진리를 갈구하는 사람이 아니면
설명에도 불구하고 납득하기 어렵다
왜냐하면 니체는 우리가 알듯이 천재 철학자 그 이상의 탐구를 하는 구도자에 가까웠고
이 진리의 세계란 것은 자신이 경험해야만 납득이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내 사랑하는 연인이 있다고 하자
내 사랑하는 연인은 내가 만나서 바라보고 손잡고 거닐어야 행복한 것 아닌가?
어떤 바보가 <저기 가면 내 연인이 있으니 당신이 가서 내 소식을 전하고 데이트 하세요>
그렇게 한단 말인가!
대리인을 시켜서 연인을 만나는 미친바보는 없다
그처럼 내 마음 속 불멸의 연인은 내가 찾고 내가 만나서 내가 그와 하나임을 깨달아야 하는 것이다
<<나는 누구인가?>>를 묻지 않는 자
부처와 예수가 나타나 인도하더라도 의심하며 따르지 않을 것이고
<<나는 누구인가?>>를 물으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자
가슴 속 불멸의 연인을 만나 영원한 사랑을 이루리라
고독을 두려워 말고
침묵을 힘들어 말라
그 길을 따라 그가 오리라
찬란한 광채와 함께 그가 오리라
세상의 연인은 만나고 헤어지지만
불멸의 연인은 만나는 순간, 서로의 불멸을 알리라
첫댓글 끼아~ 고독을 두려워 말고 침묵을 힘들어 말라 불과 몇시간 전까지만해도 고독과 침묵에 힘겨워했어요 스님은 텔레파시가 있나봐욥 !!! 예쁘게가 아닌 열심히 생각하고 노력해서 우아한 인간이 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