갯버들
변 종 호
긴 동면에서 깨어나 틔우고 피워내는 연 녹의 향연이 막 펼쳐지는 아름다운
산하 그 안에서 우주의 섭리를 깨우치고, 자연을 가슴에 담기위해 찾아
나서는 것은 설레임으로 가득했다. 우리나라의 사계는 참으로 아름답다.
그중에서도 잿빛 산야에, 움트는 싹으로 덧칠을 하고, 흐드러지게 핀 산 벚꽃을 하얗
게 군데군데 번진그림을 그려낸 4월에 화폭이 좋다.
급한 마음에 서둘러 나선 실버들은 연한 녹색 옷으로 갈아입고, 처녀의 찰랑거리는
생머리로 바람을 타는 하늘거림이 좋기만 하다 계곡물에는 두둥실 떠가는 구름도 띄
우고 이파리가 피어난 갯버들 개지도 비춰주며, 볼품없는 돌멩이도 담고 소리 내어
흐른다.
계곡물이 흐르는 방향에는 졸린 듯 반쯤은 드러누운 갯버들이 반긴다 겨울이면 물
가에 가지 끝을 내려놓아 햇살 받은 영롱한 얼음 조각들로 장식을 하고 모진 눈보라
살을 에이 는 추위조차도 털 복숭이 버들개지를 틔워 이겨내기도 했다 봄을 알리는
햇살이 따가워지면, 몸을 늘린 버들개지는 하얀 솜털로 몸단장을 마치고 피침형의 연
한 잎새를 틔우며, 한껏 물을 빨아올린다.
봄소식을 가장먼저 알리는 갯버들을 좋아하게 된 것은 기르던 개가 없어지고 난 이
후였다 하얀 털이 복스럽게 나있던 순하디 순한 개였다 그런 복실이는 첫 휴가를 나
온 큰형의 허리가 아프다는 얘기를 들은 고모부가 안방을 나간 뒤에는 다시는 볼 수가
없었다.
동네 개들과 어울려 다니다가도 때가 되면 집으로 돌아와 삽짝 문 앞에서 집을 지키- 27
던 복실이는 새끼를 배고 있었다. 뱃속에 들은 새끼가 허리 아픈데 좋다며, 동네 앞
강둑에 서있는 미루나무 가지에 새끼 밴 개를 매달았던 고모부. 4마리의 생명을 한꺼
번에 빼앗는 모진살생을 한건 당신의 욕망 때문이었다는 걸 알게 된 것은 오랜 세월이
흐른 뒤였다.
출렁거리는 보에는 버들개지같이 잿빛 솜털이 보송보송 난 채 숨져간 세 마리의 강
아지가 들어 있었다. 비록 동물이지만 아무런 영문도 모른 채 뱃속에 꿈틀대는 새 생
명의 새끼를 안고 죽어간 어미의 안타까운 마음은 지금 생각해봐도 마냥 아프기만 하
다. 나갔다 돌아오면 그렇게나 좋다고 쫄랑거리며 따라다니던 충복이었는데.
한동안 그리워하고 못 잊어하다 겨울이 떠나가는 강가에서 갯버들개지를 통해 볼 수
있었다. 보송보송하고 보드라운 털을 피워낸 갯버들 강아지는 마치, 어미가 숨져가는
뱃속에서 버둥대다 안타깝게 죽어간 강아지의 잿빛 솜털 같았다.
그 후로 강가에 많이 자라는 갯버들을 유독 좋아하게 되었고, 이른 봄 갯버들 개지
가 피어오를 때면 찾아 나서게 되었다. 냇가나 저습지에서 잘 자라는 갯버들은 잎보다
먼저 꽃을 피운다 잎 가장자리는 둔거치가 있고, 자세히 들여다보면 잎 새 뒷면에는
융 모가 있어 흰빛이 돌기도 한다.
고향 마을에는 한해에도 몇 번씩이나 큰물이 나간다. 장마가 끝나고 나면 지류가 바
뀌어 자갈밭이 모래로 덥히기 도 하며, 모래밭이 자갈밭으로 바뀌기도 한다. 그럴 때
면 끈질긴 생명력의 갯버들은, 물살에 씻긴 하얀 뿌리를 드러내놓고, 세 마리의 새끼
를 가슴에 품은 채 죽어간 어미개의 영혼으로 울부짖는 것 같았다. 모래에 파묻힌 채
고개만 내놓고 살려 달라 애원하는 모습도 미류 나무에 매달려 버둥대던 복실이의 환
상으로 비쳐지기도 했었다.
생명은 매우소중하며, 더군다나 새끼를 배고 있는 동물은 더욱 보호해야하며 사람
의 이기적인욕구에 희생 되서는 안 되지 않을까 갯버들은 세찬바람에도 꺾이지 않으
며 거센 물살에도 절대로 맞서지 않고, 물길이 흐르는 데로 굽어지고 누우며, 거부하
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자연에 섭리에 순응하는 중용(中庸)의 도(道)와 생명
(生命)의 존엄성을 나에게 전해주는 것 같다.
<2005.04.14>
첫댓글 갯버들은 세찬바람에도 꺾이지 않으
며 거센 물살에도 절대로 맞서지 않고, 물길이 흐르는 데로 굽어지고 누우며, 거부하
지 않고 쉽게 포기하지 않으며, 자연에 섭리에 순응하는 중용(中庸)의 도(道)와 생명
(生命)의 존엄성을 나에게 전해주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