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현지 공장에서 독일산 원목을 사용해 명품 악기 제작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악기 제작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
바이올린은 ‘악기의 여왕’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음색을 자랑한다. 발레리나의 몸짓과 같은 우아함을 가졌지만 때로는 화려함과 웅장함에 매료되기도 한다. 이처럼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나무 판, 네 개의 줄 등 많은 부속품들이 필요한데, 이들이 잘 조화됐을 때 비로소 악기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1986년 창립 이후 25년 동안 변함없는 열정으로 현악기를 제작, 생산하고 있는 효정악기(효정 바이올린) 신동진 사장을 만나보았다.
최상의 소리 만들기 위해 지난 25년 동안 힘써오다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효정바이올린은 넓은 매장에 레슨실과 수리실, 악기 제작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태리 크레모나 국제 현악기 제작학교에서 현악기 제작을 전공한 마에스트로 신동진 씨가 아버지 신효철 씨의 대를 이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바이올린 외에도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를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있는 효정바이올린은 국내에서 바이올린 제작에만 수십 년의 경력을 쌓은 제작자와 이태리 크레모나 바이올린 제작학교 출신 제작자등을 직접 스리랑카 공장에 투입하여 독일산 원목을 사용해 명품 악기들을 만들고 있다.
효정악기는 그동안 현악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를 가진 최상의 악기를 만드는데 정진해 오면서 보다 좋은 바이올린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교육용악기로 일찍이 국내는 물론 해외 바이어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아왔다. 이미 효정악기의 제품들은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일본 등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하여 우수한 제품으로 평가받았으며 2008년도에는 200만 불(약 26억 원)에 이르는 매출액을 달성하는 등 우리 손으로 손수 제작한 수공예 악기를 알리기 위해 한 발 한 발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바이올린 제작의 본고장인 이태리 크레모나 입학
“처음 바이올린은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생 시절이었어요. 아버지께서는 바이올린 공장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미술과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됐죠.” 신동진 사장은 “그 당시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밖에서 뛰어 놀고 싶어서 투정도 많이 부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사장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회사의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됐고, 그와 가족들은 효정바이올린 해외 현지공장이 있는 스리랑카로 떠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스리랑카에 있는 영국인 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후 곧바로 바이올린 제작의 본고장인 이태리의 크레모나로 유학을 갔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태리 유학을 결정했는데, 그 당시 한국에는 크레모나 제작학교에 대해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을 수도 없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는 시험을 위해 홀로 이태리로 향했고, 이듬해 무사히 입학 시험에 합격했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한동안은 집을 구하지 못해 밀라노에서 매일 2시간씩 새벽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가야 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유학 생활에 적응 할 무렵, 한국에 I.M.F 가 터지게 됐죠.” I.M.F는 국내 기업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그 또한 학업을 지속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휴학을 하고 귀국하게 됐다. “잠깐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갈 생각으로 귀국 했어요.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겁이 났습니다. 제대 후에도 경기가 회복되지 못한다면 다시는 유학을 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힘든 시기 통해 악기 제작에 대한 애착 더 커져”
신동진 사장은 그 당시 다시 유학을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군대 가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시작했고, 2000년 동국대 연극영상학과에 합격했다. “군대 제대 후 동국대에 다녔지만 항상 마음 한 구석에는 다시 이태리로 가서 악기 제작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결정적으로 다시 제작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어느 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난 뒤였다”며 “예전에는 그렇게 크고 당당해 보였던 아버지의 등이 왠지 작고 왜소하게 느껴져 이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이태리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지난 2004년 이태리 크레모나로 돌아갔다. 그리고 2008년 처음 입학했던 해로부터 10년 만에 졸업장을 받게 됐다. “잠시 다른 길을 걸으며 힘들 시기를 겪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악기 제작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애착을 가지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다시 돌아온 후 학교 시스템이 더욱 발전되어 특화된 공부를 할 수 있었죠.” 그가 4학년이 되던 해 현악기제작과와 복원과로 과목이 나뉘게 됐는데 그는 한국인으로 최초로 복원과를 지망했다. “그 당시에 수리, 복원 과정은 제작 과정보다 더 많은 올드 악기를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완벽함을 가지고 있는 올드 악기에 대한 이해가 더 많이 쌓이면 내 악기를 만들 때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복원과를 지원했죠. 신설 과정이라 담당 선생님이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박물관의 악기나 손님이 복원을 맡긴 악기들을 자주 접하게 해주셨어요.” 그는 지난 2009년 이태리 피소냐 현악기 제작 콩쿨 프로페셔널 비올라 부문에서 동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비아체노 공방 열어 신동진 사장은 지난해 현악기 수리 및 제작을 전문적으로 하는 공방 ‘라보라또리오 디 비아체노(Laboratorio di Biaceno·비아체노 공방)’를 오픈해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는 “국내에 바이올린이 보급 된지 꽤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문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며 “악기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보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악기를 제공하고, 틈틈이 악기에 대한 잘못된 지식도 바로 잡아주기 위해 비아체노 공방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많은 전공자나 연주가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크고 강하며 굴러가는 듯 하게 맑고 부드러운 소리를 원합니다. 지금까지는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악기를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나의 생각이 많이 담겨있는 악기, 연주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악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을 할 것입니다.” 앞으로 국내외로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는 신동진 사장. 그와 함께 100여명의 효정악기의 직원들이 열정을 담아 정성스레 만들어내는 효정악기의 제품들이 국내를 넘어 세계 적인 명기로 자리매김 하길 기대해 본다. 노신영 기자/edit@musictoday.or.kr
효정바이올린 신동진 사장
1998년 I.P.I.A.L.L (크레모나 국제 현악기 제작학교) 입학 2008년 I.P.I.A.L.L 현악기 복원학과 졸업 2007년 크레모나 한인회 회장 역임 2009년 Corso di restauro 수료 2009년 Tirocinio 수료 2010년 비아체노공방 대표
논문 : Studio e applicazione della vernice tradizionale Coreana ‘Hwangchil’ 한국의 전통 황칠이 바이올린 제작에 미치는 영향
수상 : 2007년 이태리 피소냐 현악기 제작 콩쿨 학생부문 참가 2009년 이태리 피소냐 현악기 제작 콩쿨 프로부분 동상 수상
방송 : 2008년 EBS [특집] 21세기 멘토링 프로젝트 ‘세계의 명문직업학교’
현악기 관리! 이렇게 하자
1.Cleanliness(청결) 연주 후 에는 항상 부드러운 면으로 악기와 현을 닦아야 한다. 이것은 송진가루에 의한 오염을 방지해 주며 즉시 닦지 않으면 제거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가능하면 연주 중간 중간 송진가루를 닦는 습관을 갖자. Polish는 반드시 현악기를 위한 공인된 제품을 사용해야 하며 가구 광택제등 oil을 함유한 제품을 사용하면 악기표면에 oil막을 형성하며 계속 쌓이게 돼 소리에 나쁜 영향을 준다. 반대로 알콜 등으로 닦으면 표면의 칠을 벗겨내 악기에 악영향을 준다.
2. Temperature and Humidity(온도와 습도) 악기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히터 등 온도가 높은 곳은 삼가야 되고 급격한 온도의 변화도 악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직사광선은 피하는 게 좋고 장마철에는 자주 꺼내어 환기를 시켜 줘야 한다. 특히 여름철에 자동차의 트렁크 안에 장시간 보관하다 보면 없었던 균열을 발견할 수도 있다.
3. Bridge Bridge는 어떻게 설치하는냐에 따라 소리가 얼마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전문가가 설치해야 한다. Bridge는 소모품인데, 악기 표면과 직각을 유지하고 연주 후에는 현을 느슨하게 하여 Bridge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4. Strings(현) 현은 항상 최고급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안 좋은 현은 Stradivarius의 소리도 보통 악기의 소리로 만든다. 현은 영구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사용하는 동안 활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좋은 소리를 울린다. 현을 교체할 때는 모든 현을 뺀 다음 교체하면 안되고 한 줄씩 교체해야 Bridge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다.
5. Peg(줄감개) 연주를 하는 동안 Peg와 Peg hole은 많은 힘을 받고 있다. 연주 후에는 현을 느슨하게 하여 Peg의 부담을 줄여야 하고 틈새에 끼인 먼지를 청소해 주어 마찰력을 유지 해 주는 것이 좋다.
6. Bow (활) 활은 부러지기 쉽고 형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말총을 느슨한 상태로 보관해야 하며 사용 시에도 무리하게 팽팽한 상태를 유지하려다 보면 활의 곡선이 바뀔 수 있고 심지어 부러지는 경우도 생기니 주의해야 한다.
스리랑카 현지 공장에서 독일산 원목을 사용해 명품 악기 제작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 받을 수 있는 악기 제작 위해 끊임없이 노력할 것”
바이올린은 ‘악기의 여왕’이라고 할 만큼 다양한 음색을 자랑한다. 발레리나의 몸짓과 같은 우아함을 가졌지만 때로는 화려함과 웅장함에 매료되기도 한다. 이처럼 바이올린이 아름다운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나무 판, 네 개의 줄 등 많은 부속품들이 필요한데, 이들이 잘 조화됐을 때 비로소 악기의 역할을 할 수 있다고 한다. 1986년 창립 이후 25년 동안 변함없는 열정으로 현악기를 제작, 생산하고 있는 효정악기(효정 바이올린) 신동진 사장을 만나보았다.
최상의 소리 만들기 위해 지난 25년 동안 힘써오다
인천 부평구에 위치한 효정바이올린은 넓은 매장에 레슨실과 수리실, 악기 제작실이 자리 잡고 있으며, 이태리 크레모나 국제 현악기 제작학교에서 현악기 제작을 전공한 마에스트로 신동진 씨가 아버지 신효철 씨의 대를 이어 경영에 참여하고 있다. 바이올린 외에도 비올라, 첼로, 더블베이스를 수작업으로 생산하고 있는 효정바이올린은 국내에서 바이올린 제작에만 수십 년의 경력을 쌓은 제작자와 이태리 크레모나 바이올린 제작학교 출신 제작자등을 직접 스리랑카 공장에 투입하여 독일산 원목을 사용해 명품 악기들을 만들고 있다.
효정악기는 그동안 현악기가 낼 수 있는 최대한의 소리를 가진 최상의 악기를 만드는데 정진해 오면서 보다 좋은 바이올린을 저렴한 가격에 제공하는 교육용악기로 일찍이 국내는 물론 해외 바이어들에게 좋은 호응을 받아왔다. 이미 효정악기의 제품들은 미국, 캐나다, 유럽, 호주, 일본 등 해외 시장 진출에 성공하여 우수한 제품으로 평가받았으며 2008년도에는 200만 불(약 26억 원)에 이르는 매출액을 달성하는 등 우리 손으로 손수 제작한 수공예 악기를 알리기 위해 한 발 한 발 꾸준히 나아가고 있다.
바이올린 제작의 본고장인 이태리 크레모나 입학
“처음 바이올린은 접하게 된 것은 초등학생 시절이었어요. 아버지께서는 바이올린 공장을 운영하고 계셨는데, 아버지의 권유로 미술과 바이올린을 시작하게 됐죠.” 신동진 사장은 “그 당시에는 다른 아이들처럼 밖에서 뛰어 놀고 싶어서 투정도 많이 부렸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그런 과정이 있었기에 지금의 모습이 있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신 사장이 중학교에 들어갈 무렵 회사의 규모가 점점 커지게 됐고, 그와 가족들은 효정바이올린 해외 현지공장이 있는 스리랑카로 떠나게 됐다고 한다. 그는 스리랑카에 있는 영국인 학교에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친 후 곧바로 바이올린 제작의 본고장인 이태리의 크레모나로 유학을 갔다. “새로운 분야에 도전 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 이태리 유학을 결정했는데, 그 당시 한국에는 크레모나 제작학교에 대해 아는 사람도 거의 없고, 지금처럼 인터넷으로 정보를 얻을 수도 없어서 많이 힘들었어요.” 그는 시험을 위해 홀로 이태리로 향했고, 이듬해 무사히 입학 시험에 합격했다. “학교에 입학한 후에도 한동안은 집을 구하지 못해 밀라노에서 매일 2시간씩 새벽 기차를 타고 학교에 가야 했어요. 그리고 시간이 흘러 어느 정도 유학 생활에 적응 할 무렵, 한국에 I.M.F 가 터지게 됐죠.” I.M.F는 국내 기업들에게 큰 타격을 주었고, 그 또한 학업을 지속하기는 힘들다는 생각에 휴학을 하고 귀국하게 됐다. “잠깐 휴학을 하고 군대에 갈 생각으로 귀국 했어요. 군 입대를 기다리고 있는데 문득 겁이 났습니다. 제대 후에도 경기가 회복되지 못한다면 다시는 유학을 갈 수 없을 거란 생각이 들었죠.”
“힘든 시기 통해 악기 제작에 대한 애착 더 커져”
신동진 사장은 그 당시 다시 유학을 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해 군대 가기 전까지 아르바이트를 하며 공부를 시작했고, 2000년 동국대 연극영상학과에 합격했다. “군대 제대 후 동국대에 다녔지만 항상 마음 한 구석에는 다시 이태리로 가서 악기 제작 공부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는 “결정적으로 다시 제작을 해야겠다는 다짐을 한 것은 어느 날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고난 뒤였다”며 “예전에는 그렇게 크고 당당해 보였던 아버지의 등이 왠지 작고 왜소하게 느껴져 이제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곧바로 이태리로 떠나기로 결심하고 지난 2004년 이태리 크레모나로 돌아갔다. 그리고 2008년 처음 입학했던 해로부터 10년 만에 졸업장을 받게 됐다. “잠시 다른 길을 걸으며 힘들 시기를 겪었지만 그것이 오히려 큰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악기 제작에 대한 더 깊은 이해와 애착을 가지게 되었고, 무엇보다도 다시 돌아온 후 학교 시스템이 더욱 발전되어 특화된 공부를 할 수 있었죠.” 그가 4학년이 되던 해 현악기제작과와 복원과로 과목이 나뉘게 됐는데 그는 한국인으로 최초로 복원과를 지망했다. “그 당시에 수리, 복원 과정은 제작 과정보다 더 많은 올드 악기를 가깝게 접근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미 완벽함을 가지고 있는 올드 악기에 대한 이해가 더 많이 쌓이면 내 악기를 만들 때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을까라는 생각에 복원과를 지원했죠. 신설 과정이라 담당 선생님이 자기가 담당하고 있는 박물관의 악기나 손님이 복원을 맡긴 악기들을 자주 접하게 해주셨어요.” 그는 지난 2009년 이태리 피소냐 현악기 제작 콩쿨 프로페셔널 비올라 부문에서 동상을 수상하는 등 국제적으로도 실력을 인정받고 있다.
지난해 비아체노 공방 열어 신동진 사장은 지난해 현악기 수리 및 제작을 전문적으로 하는 공방 ‘라보라또리오 디 비아체노(Laboratorio di Biaceno·비아체노 공방)’를 오픈해 학생과 학부모들 사이에 많은 관심을 불러 모았다. 그는 “국내에 바이올린이 보급 된지 꽤 오래됐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전문적인 정보가 부족하다”며 “악기를 공부하려는 학생들에게 보다 저렴한 가격에 좋은 악기를 제공하고, 틈틈이 악기에 대한 잘못된 지식도 바로 잡아주기 위해 비아체노 공방을 시작하게 됐다”고 전했다. “많은 전공자나 연주가들은 약간의 차이는 있으나 크고 강하며 굴러가는 듯 하게 맑고 부드러운 소리를 원합니다. 지금까지는 기존의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 악기를 만들었지만 앞으로는 나의 생각이 많이 담겨있는 악기, 연주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악기를 만들기 위해 끊임없는 고민과 노력을 할 것입니다.” 앞으로 국내외로 다양한 활동을 펼칠 계획이라는 신동진 사장. 그와 함께 100여명의 효정악기의 직원들이 열정을 담아 정성스레 만들어내는 효정악기의 제품들이 국내를 넘어 세계 적인 명기로 자리매김 하길 기대해 본다. 노신영 기자/edit@musictoday.or.kr
효정바이올린 신동진 사장
1998년 I.P.I.A.L.L (크레모나 국제 현악기 제작학교) 입학 2008년 I.P.I.A.L.L 현악기 복원학과 졸업 2007년 크레모나 한인회 회장 역임 2009년 Corso di restauro 수료 2009년 Tirocinio 수료 2010년 비아체노공방 대표
논문 : Studio e applicazione della vernice tradizionale Coreana ‘Hwangchil’ 한국의 전통 황칠이 바이올린 제작에 미치는 영향
수상 : 2007년 이태리 피소냐 현악기 제작 콩쿨 학생부문 참가 2009년 이태리 피소냐 현악기 제작 콩쿨 프로부분 동상 수상
방송 : 2008년 EBS [특집] 21세기 멘토링 프로젝트 ‘세계의 명문직업학교’
현악기 관리! 이렇게 하자
1.Cleanliness(청결) 연주 후 에는 항상 부드러운 면으로 악기와 현을 닦아야 한다. 이것은 송진가루에 의한 오염을 방지해 주며 즉시 닦지 않으면 제거하기가 매우 어려워진다. 가능하면 연주 중간 중간 송진가루를 닦는 습관을 갖자. Polish는 반드시 현악기를 위한 공인된 제품을 사용해야 하며 가구 광택제등 oil을 함유한 제품을 사용하면 악기표면에 oil막을 형성하며 계속 쌓이게 돼 소리에 나쁜 영향을 준다. 반대로 알콜 등으로 닦으면 표면의 칠을 벗겨내 악기에 악영향을 준다.
2. Temperature and Humidity(온도와 습도) 악기는 적당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는 것이 좋다. 히터 등 온도가 높은 곳은 삼가야 되고 급격한 온도의 변화도 악기에 나쁜 영향을 미친다. 직사광선은 피하는 게 좋고 장마철에는 자주 꺼내어 환기를 시켜 줘야 한다. 특히 여름철에 자동차의 트렁크 안에 장시간 보관하다 보면 없었던 균열을 발견할 수도 있다.
3. Bridge Bridge는 어떻게 설치하는냐에 따라 소리가 얼마나 차이가 크기 때문에 전문가가 설치해야 한다. Bridge는 소모품인데, 악기 표면과 직각을 유지하고 연주 후에는 현을 느슨하게 하여 Bridge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
4. Strings(현) 현은 항상 최고급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안 좋은 현은 Stradivarius의 소리도 보통 악기의 소리로 만든다. 현은 영구적으로 사용하지는 못하지만 사용하는 동안 활의 움직임에 민감하게 반응하여 좋은 소리를 울린다. 현을 교체할 때는 모든 현을 뺀 다음 교체하면 안되고 한 줄씩 교체해야 Bridge의 움직임을 막을 수 있다.
5. Peg(줄감개) 연주를 하는 동안 Peg와 Peg hole은 많은 힘을 받고 있다. 연주 후에는 현을 느슨하게 하여 Peg의 부담을 줄여야 하고 틈새에 끼인 먼지를 청소해 주어 마찰력을 유지 해 주는 것이 좋다.
6. Bow (활) 활은 부러지기 쉽고 형태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에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사용하지 않을 때에는 반드시 말총을 느슨한 상태로 보관해야 하며 사용 시에도 무리하게 팽팽한 상태를 유지하려다 보면 활의 곡선이 바뀔 수 있고 심지어 부러지는 경우도 생기니 주의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