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터 순례
그 나라의 과거를 알려면 박물관으로 가보라고 했다. 그 나라의 미래를 알려면 도서관을 가보라고 했다. 그 나라 현재를 알려면 어디로 가야할까? 당연히 삶의 현장인 시장이다. 오늘날 시장은 다원화 되었다. 명품이 즐비한 백화점이 있는가 하면, 다양한 생필품을 한 곳에 모아 싸게 파는 대형 할인매장도 있다. 각 지역마다 상설 전통시장이 있고 닷새마다 돌아오는 오일장도 있다.
작년 거제로 와 재래시장을 찾은 적 있다. 고현 시외버스터미널과 거리가 제법 떨어진 곳에 있는 상설시장이었다. 거제면 동부면 남부면 사등면 둔덕면으로 드나드는 시내버스가 정차하는 거제 관문이었다. 해안과 인접하지 않아도 수족관에 활어와 각종 어패류가 보였다. 과일채소를 비롯한 여러 가게들이 있었다. 나는 그 가운데 한 돼지국밥집을 찾아 요기하고 맑은 술도 들었다.
주중 연사 와실에 머물면서 퇴근 후 산책을 나섰다. 와실 근처만이 아니라 시내버스를 타고 해안으로 나가기도 했다. 장승포에서 이어진 능포로 나가 양지암 등대나 조각공원으로도 갔다. 능포 봉수대로 오르는 옥수동에도 시장이 있었다. 재래시장은 어디나 활기를 잃어 스산했다. 그 골목에 ‘옥수동집밥’이란 식당에 두어 번 들렸다. 중년 부부가 운영하는 식당으로 찬이 깔끔했다.
학교에서 내가 속한 부서가 문화보건부다. 부장과 기획에 이어 보건교사와 함께 지낸다. 정기고사를 치르면 학교 밖으로 나가 회식을 가졌다. 수양마을 황칠오리구이집을 세 차례 찾아갔다. 오후는 자유로운 시간이라 점심 한 끼를 느긋하게 들 수 있었다. 식대는 매번 호봉이 높은 내가 부담해도 젊은이들과 자리를 같이 할 수 있어 마음이 편했다. 식후 찻집에는 동석하지 않았다.
연사마을 들머리에 간이식당이 두 둔데다. 그 가운데 생선구이와 육개장과 설렁탕을 파는 식당이 있다. 남편은 다른 업종에 나가는 듯하고 중년 아주머니가 주인이고 시간급 직원도 두었다. 생선구이를 시켜 저녁을 들면서 반주로 맑은 술잔을 비웠다. 지난 가을 진주에 사는 매제가 거제를 방문했을 때도 생선구이를 앞에 놓고 잔을 같이 든 적 있었다. 모처럼 호적수를 만났더랬다.
주말에 창원으로 건너가지 않은 경우 몇몇 산을 올랐다. 그 가운데 대금산도 몇 차례 다녀왔다. 봄날 진달래꽃이 피면 외지에서 다수 산행객이 들리는 산이다. 대금산 중턱 산간에 명동마을이 있었다. 명동 윗마을은 명상으로 불렀다. 그 마을에 일흔 중반 공 씨 할머니가 막걸리를 손수 빚어 팔아 두어 번 들려 맛을 음미했다. 할머니는 집 앞 묵정밭에 고사리를 키워 팔기도 했다.
연사마을과 가까운 연초삼거리는 면소재지다. 옥포와 하청 장목으로 나뉘는 거제 북동부 교통 요지다. 아파트도 몇 동이고 원룸이 빼곡해 상주인구가 제법 되는 편이다 업종이 다른 여러 가게들이 있다. 돼지국밥을 한 곳 아는데 이웃 학교 지기와 몇 차례 들렸다. 이 친구가 작년 연말부터 술을 끊어 자리를 같이 못한다. 올해 나는 딱 한 차례 혼자 들려 반주로 맑은 술잔을 비웠다.
앞서 언급된 연초삼거리는 면사무소와 우체국과 파출소까지 있다. 초등학교와 중학교도 가까이 있다. 연초삼거리에서 유동 인구가 가장 많은 데가 농협 마트였다. 거기는 시장이 없다보니 마트 대형 매장이 시장을 대신했다. 나도 거기서 생필품과 찌개를 끓일 재료들을 사왔다. 때로는 즐겨 드는 곡차도 여러 병을 사 배낭에 넣어 짊어지고 와실로 와 냉장고에 비축해 두기도 했다.
연초삼거리로 나가면 목욕탕은 없어도 미용실이나 한의원까지 있었다만 내가 들릴 일 없었다. 종일 트레킹이나 산행을 가려니 도시락이 필요해 김밥 가게는 찾은 적 있다. 그 말고 내가 들린 곳이 한 군데 더 있는데 세탁소다. 여름날 장맛비에 젖은 바지를 드라이 했다. 등산용을 겸한 파카 잠바도 세탁했다. 내일이면 방학에 드는데 그간 입었던 겨울양복과 티셔츠를 맡겨 놓아야겠다. 20.12.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