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유튜버들이 중공의 역사에 대한 무지가 이 정도일줄을 몰랐다.
요즘 내로라하는 유튜버들이 미중무역전쟁을 평론한답시고 가끔씩 중공의 패전을 점치면서 중공의 아홉수를 말하곤하는데 뜻인즉 중공이 *9년이면 반드시 큰 일을 겪는다는 것이다.
그런데 황당하게도 예를 든다는 것이 49년에 건국하고 89년에 천안문사건이 발발했다는 것이다.
겨우 하나를 들면서 그걸로 중공의 몰락을 논증하는 꼬라지를 보다 못해 한마디 하는데
중공에 아홉수가 있기는 하다. 그런데 *9년이면 중공의 몰락을 예시하는 사건이 터진것이 아니라
반대로 *9년이면 정리정돈을 완성하곤 했다는 것이다. 중공을 위협하는 사건은 *6~*7년에 일어나고 중공은 그 년대를 넘지 않고 *9년이면 사태를 진정시켰다.
1921년에 창립된 중공은 국공합작으로 국민당의 둥지에서 잘 커가다가 1927년에 국민당의 대숙청을 당하여 거의 멸망에 다다른다. 1927년 8월에 남창봉기를 시작으로 자기군대를 만들어 1929년에는 정강산일대에 집결하여 근거지를 확보하고 멸망에서 숨을 돌린다.
1936년에 서안사변에서 동북군과, 서북군에 감금된 장개석을 풀어주고 제2차 국공합작을 이끌어내고 국민혁명군 제18집단군이라는 군번을 공식적으로 받고 북방의 항일을 주도하다가 1939년에 일본의 대후방에서 백만대군으로 발전시키고 자신의 입지를 다진다.
1947년부터 정식으로 국민당과 대륙쟁탈전이라고 할 수 있는 국공내전이 터지고 1949년에 장개석을 몰아내고 중국을 아예 손에 넣는다.
1958년에 대약진운동을 하여 1년사이에 폭망하다가 1959년에 모택동이 잠시 뒤로 물러나고 유소기와 등소평이 국정의 앞장에 나서서 [3자1포]라고 하는 정책으로 굶주리는 국민을 잠시 구제한다.
1966년에 발발한 문혁은 2~3년간 인민들사이의 무자비한 투쟁을 일으켜 아들이 아버지를 투쟁하여 죽이는 비극까지 발생한다. 1969년에 림표를 후계자로 지목하고 혼란한 국면을 어느 정도 진정시키는데 문혁초기에 잡혀들어갔던 전문인력이 절반 가량 풀려나 일선에 나선다.
1976년에 모택동이 사망하고 후계자 화국봉과 개혁파간에 몇년간의 힘겨루기가 있다가 11기 3중전회로 개혁파가 득세하고 등소평이 개혁개방을 선포하면서 1979년부터 본격적인 개혁개방이 시작된다.
1986년부터 호요방~조자양으로 이어진 [자유주의사조]가 당내에서 주류를 점하다가 1989년 천안문사태로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의 내전이 종식된다.
1990년대중반에 개혁파와 보수파의 당내투쟁이 치열하다가 1999년에 주룽지가 국유기업고분제개혁을 하면서 개혁파가 완전 득세하여 중공의 개혁개방은 활발히 진행되었다. 주룽지는 주은래보다 권력이 더 컸고 독자적이었다. 총리가 주석을 누르고 자신의 경제정책을 실시한 것은 주룽지뿐이고 주룽지를 중국인민은 진심으로 [인민의 총리]라고 불렀다. 주은래는 모택동시대에 잔뜩 과장한것읻고~ 이때 한국은 아이엠에프로 비틀거렸고
2009년은 더 말해 뭣하랴? 베이징올림픽을 성황리에 끝내고 본격적인 성장궤도에 올라섰고 미국마저 금융위기로 흔들릴때 독야청청 성장을 이어갔다. 한국은 2만불목에서 금융위기를 정면으로 얻어맞고 마이너스 성장을 했지~
2019년은 미중무역마찰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기십년은 항상 그랬다. 총화와 진정~ 무역전쟁에서 더 큰데로 옮겨가든 반드시 중공은 10월 1일에 전국인민을 고양시키는 성과를 포장해서라도 만들어내야 한다.
이것이 중공의 아홉수다. 저네들이 말하는 위기의 아홉수가 아니라
정세를 진정시키고 정리정돈하는 아홉수다.
트럼프가 건국 70년주년 기념행사를 훼방하려고 하면 모르긴 해도 대만을 먹는 전쟁을 하든,
미국의 제재를 무시하고 북한과 공식적으로 경제협력을 진행하여 한반도를 국지전장으로 선택할 가능성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