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적지종류 : 사찰
관련사찰: 갑사(甲寺)
설화종류 : 사찰전설
시대 : 삼국
연도 : 550
<요약>계룡산 갑사의 유래
<내용>523호 7면 기사
설화와 전설
계룡산 갑사
"아니 이 아침에 웬 소가 왔을까."
갑자기 사람들이 떠들기 시작했다.
"소라니 누가 절에 소를 다 몰고 온단 말이야."
"아니 누가 몰고 온 것이 아니라 제 발로 걸어 온 것 같은걸."
아침 고양도 하기 전의 이른 절 마당에 스님들이 모여들었다. 우람한 소 한 마리가 성큼성큼 절 마당에 들어와 그 큰 눈을 꿈적이며 좀체 나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소를 기를 리 만무한 절 마당에 덩치 큰 소가 나타난 것은 누가 봐도 놀랄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스님들은 제 발로 걸어 들어 온 소를 어쩔까 고민을 했다. 누군가 마을 사람 중에 소를 잃어버린 사람이 있어 이 절까지 찾아 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었다. 소를 절 일주문 근처에 매어 두고 마을로 볼일이 있어 나가는 사람은 소 잃은 집을 수소문하기로 했던 것이다. 스님들의 생각은 곧 결과를 불러 왔다. 가까운 곳은 아니지만 공주 가는 길 어름의 한 농부가 머리를 긁적이며 찾아 와 소를 찾아갔던 것이다. 그런데 그 소는 다음날 새벽에도 찾아왔다. 다시 주인이 찾아와 데려 갔으나 사흘째 되는 날에도 소는 어김없이 찾아 와 절의 아침을 떠들썩하게 했다.
계룡산 갑사(甲寺). 저 신라의 아도가 창건했다고도 하고 그보다 100여 년 뒤의 혜명이 창건했다고도 하는 고찰의 이름에 걸맞게 의상조사가 화엄의 높은 교학을 폈던 절. 그러나 한때 70여 승도가 모여 청정수행의 당간대를 자랑하던 찬란한 터였건만 세월의 풍상에 휩쓸리고 임란과 정유재란의 난을 겪으며 당우 하나 남기지 않는 화마는 피할 길이 없었다. 그 앙상한 터만 남겨야 했던 비운의 불당이 갑사의 지난 역사다. 그러나 불심이 모이는 곳은 어떻게 해서든 불법을 현창할 인연이 따르는 법. 큰 불당은 아직 못 지었지만 임시로 거처할 자리를 만들고 전대로부터 전해오는 철당간을 의지해 법을 일으키려는 승려들의 지극한 노력이 갑사를 다시 옛 도량으로 일으키고 있는 참이었다.
그래서 인호 스님을 위시한 20여명의 스님들이 갑사를 중창할 원력을 세우고 화주도 다니고 기도와 염불, 강학과 정진의 수행을 게을리 하지 않고 있었다. 몇 스님들은 멀고 가까움을 가리지 않고 중창불사 화주를 나가고 없는 그런 상황에서 한 마리 우람한 소가 절을 사흘이나 찾아드는 기이한 일이 일어났던 것이다. 농군에게 있어 소라는 짐승은 사람이나 다름없는 가족이었다. 논밭 일에 소가 없이는 사람 열 서너 명의 힘을 보태도 감당이 안되기 때문이다. 그러한 소가 집으로 데려다 고삐를 튼튼히 묶어 두어도 새벽이면 어김없이 고삐를 헤치고 절까지 걸어올라 왔던 것이니 그 연유를 알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나흘째 되는 날 아침에도 소는 갑사 마당에 나타났다. 그런데 이 날은 그 소를 알아보는 스님이 있었다. 지난 밤 늦게 화주 길에서 돌아 온 인호 스님이었다. 나흘쯤 되니 그다지 놀랍지도 않다는 듯 대중스님들이 "또 왔군." "이상한 일도 다 있지." 라며 다시 갑사 마당에 나타난 소를 보며 한마디씩 할 때 인호 스님이 그 광경을 보고 "아니 이 소는...."이라며 소의 등을 쓸었다. 소도 인호 스님을 보더니 반갑다는 듯 "음메"하며 화답했다.
"스님. 이 소를 아십니까."
"네. 제가 며칠 전 화주를 나가다가 고삐에 목이 감겨 몹시 고통 당하고 있는 소를 발견하고 그 고삐를 풀어 준 적이 있는데 이 소가 그때 그 소인 듯 합니다."
아침 일찍 찾아 온 농부는 인호 스님의 말을 듣고 깊은 생각에 잠기더니 한참 후에 입을 열었다.
"스님 이 소가 스님에게 목숨을 살려 준 은혜를 갚으려고 이렇게 아침마다 절을 찾아오는 것 같습니다. 제가 비록 가진 것 없는 농부이지만 소의 마음을 모를 리 없습니다. 혹시 절에서 이 소를 시주해도 된다면 저는 아침마다 소를 찾아 절에 올라오는 일을 하지 않으렵니다."
농부는 꾸벅 인사를 남기고 도망치 듯 절을 떠나버렸다.
"자, 여러 스님들은 들으세요. 은혜를 갚으려고 새벽마다 고삐를 풀고 절을 찾아 온 이 소는 웬만한 사람보다 그 성정이 훌륭합니다. 소의 마음을 알게 된 주인 농부도 귀중한 재산인 소를 아무 미련 없이 절에 시주했으니 그의 마음 역시 우리가 배우고 칭찬해야 할 것입니다. 이제 이 소는 우리 절의 식구입니다. 외양간을 마련하고 법당 신축불사에 소의 힘을 빌리도록 합시다."
인호 스님으로부터 자초지종을 들은 절의 스님들은 소를 무척이나 기특하게 여겼다. 그리고 마침 시작된 불사에 소의 힘을 요긴하게 쓰게 됐다. 진흙을 퍼 나르는데도 소는 그 우직한 힘을 보탰고 돌을 구해 올 때도 소의 등에 실었다. 또 한나절 이상을 걸어가야 하는 곰나루에서 그 무거운 목재들을 실어 오기도 했다. 커다란 두 눈을 꿈뻑이며 종일 일을 하면서도 힘든 내색을 하지 않는 소는 날이 갈수록 스님들의 사랑을 받았다.
"참으로 가상한 축생이야. 아마 법당 짓는 일에 힘을 보태는 저 소는 다음 생에 반드시 훌륭한 사람으로 태어날 거야."
"그렇고 말고. 장정 수십 명이 할 일을 저 소가 혼자 감당하고 있으니 얼마나 고마운 일인가."
스님들은 여물을 쑬 때도 정성을 다했고 아침마다 빗자루로 등을 정성스레 쓸어주기도 했다. 소가 들어 온 날부터 불사는 매우 순조롭게 진행됐다. 소의 얘기가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면서 어떤 신도는 일부러 소를 보러 절을 찾기도 했다. 말하자면 소는 그 노동력을 절에 시주한 축생이기도 하지만 그 가상한 마음씀이 사람들에게 보은의 도리를 가르치는 한 자락의 법문이기도 했던 것이다.
드디어 법당이 완공됐다. 목수들은 소가 있어 일이 빨리 진행되었다고 저마다 한마디씩 했다. 스님들은 소를 다시 주인에게 돌려주기로 했다. 그러나 스님들의 뜻은 이뤄지지 못했다. 아침 일찍 소를 데리러 온 농부가 "스님. 소가 죽었습니다"라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며 눈물을 흘렸던 것이다. 절의 스님들과 목수 신도들 모두 소의 죽음에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소의 죽음은 안타까운 일이지만 어쩌면 이 소는 법당을 짓는데 사력을 다하고 이제 몸을 바꾸려고 현생의 인연을 마친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 소의 극락왕생을 빌고 소가 보여준 보은의 공덕을 기리기 위해 탑을 하나 세우는 것이 좋겠습니다."
인호 스님의 제안에 모든 대중들이 뜻을 함께 했고 외양간이 있던 자리에는 아담한 탑 하나가 쌓아졌다. 사람들은 그 탑을 ''공우탑''이라 부르며 소가 전하는 말없는 교훈을 되새겼다.
첫댓글 그림이 좋은데여^^~ 감솨~~
참여 하신부분에 대하여 감사드립니다 ^^*
태사공님! 멋져부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