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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반장(如反掌)
어떠한 일이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일이 매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如 : 같을 여(女/3)
反 : 돌이킬 반(又/2)
掌 : 손바닥 장(手/8)
출전 :
*한서(漢書) 권51 열전(列傳)제21 매승전(枚乘傳)
*맹자(孟子) 공손추장구(公孫丑章句) 상편(上篇)
아주 쉬운 일을 비유하는 많은 말 중에서 자주 쓰는 말은 ‘땅 짚고 헤엄치기’나 ‘누워서 떡 먹기’일 것이다. 하지만 너무 쉽게 가려다가 코 다치거나 체할 수 있다. ‘떡을 누워서 먹으면 콩가루가 떨어진다’고 한역한 속담 병와끽 두설락(餅臥喫 豆屑落)도 있다.
손쉬운 것을 이를 때의 한자성어는 주머니 속 물건 꺼내는 낭중취물(囊中取物), 손바닥에 침 뱉기처럼 쉽게 얻는다는 타수가득(唾手可得), 태산으로 알 누르기 태산압란(泰山壓卵)처럼 아주 많다.
이 많은 중에 역시 가장 쉬운 일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는 이 말이다. 이것이야말로 힘이 안 들어간다. 쉽다는 말이 붙은 이여반장(易如反掌)의 준말이다.
후한(後漢) 초기 역사가 반고(班固)가 지은 한서(漢書)에서 유래한 이야기를 보자. 유방(劉邦)의 조카인 유비(劉濞)는 6대 경제(景帝)때 오왕(吳王)에 봉해졌으나 세력을 모아 오초(吳楚)칠국의 난을 일으켰다.
이때 저명한 문인 매승(枚乘)이란 사람이 성공하기 어렵다며 건의했다. '하고자 하는 바를 바꾼다면 이는 손바닥을 뒤집는 것보다 쉬운 일이며 태산처럼 안정될 것입니다(變所欲爲 易於反掌 安於泰山).' 유비는 이 말을 듣지 않았다가 진압군에 피살되었다.
같은 의미를 가진 반수(反手)는 이보다 앞서 맹자(孟子)에게서 나왔다. 제자 공손추(公孫丑)가 스승에게 자리가 주어진다면 제(齊)나라의 관중(管仲)이나 안영(晏嬰)과 같은 공을 이룰 수 있겠는지 물었다.
맹자는 질문에 언짢아하면서 답한다. '제나라로서 왕업을 이루는 것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以齊王 猶反手也).' 맹자는 안정된 대국인 제나라에서 인정을 베풀어 통일된 나라를 이끄는 것은 아주 쉽다고 본 것이다.
손바닥을 뒤집는 일이 쉽다고 어느 때나 아무렇게나 뒤집었다가는 손가락질 당할 일이 많다.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란 말대로 불리한 상황에 닥쳤을 때 이전의 소신은 간데없이 손바닥을 뒤집는다면 누가 우러러보겠는가.
易漲易退山溪水(이창이퇴산계수)
易反易覆小人心(이반이복소인심)
쉬 불어나고 빠지는 것은 산 계곡물이요, 쉬 뒤집히고 변하는 것은 소인의 마음이다.
易(이)는 容易(용이)처럼 쉽다는 뜻이다. 交易(교역)처럼 바꾸다의 뜻이면 ‘역’으로 읽는다. 漲(창)은 물이 불어나다 또는 늘어나다의 뜻이다. 漲溢(창일)은 물이 범람하여 넘침, 漲價(창가)는 값이 오름을 뜻한다. 退(퇴)는 물러나다의 뜻으로 여기서는 물이 빠짐을 의미한다. 溪(계)는 골짜기를 흐르는 시내이다. 反(반)은 뒤집다의 뜻이다. 如反掌(여반장)은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다는 말로 매우 쉬움을 비유한다.
覆(복)도 뒤집다의 뜻이다. 反覆(반복)은 자꾸 뒤집혀 일정하지 못하고 변한다는 뜻이다. 같은 일을 되풀이한다는 反復(반복)의 뜻도 있다. 覆(복)의 의미요소인 아(아)는 아래에서 위로 둘러싼 모양의 감(감)과 반대 모양의 것이 상하로 겹치고 맨 위에 가로획으로 덮은 모양으로, 덮는 것을 나타내는 동시에 위와 아래의 모양이 바뀜을 나타낸다.
그중 후자의 뜻을 취한 覆(복)은 顚覆(전복)처럼 아래 위가 바뀌다, 飜覆/翻覆(번복)이나 覆盆子(복분자)처럼 뒤집다의 뜻을 지닌다. 뜻이 다르면 흔히 독음도 달라서, 덮는다는 뜻이면 覆(부)이다. 즉 덮어 가리는 것은 覆蓋(복개)가 아닌 ‘부개’가 표준 독음이다. 다만 한자의 독음도 사람들의 사용에 따라 변할 수밖에 없다. 覆蓋川(복개천)이라고 하고 또 얼굴을 덮어 가리는 것도 覆面(복면)이라고 하니, 원래의 독음만을 고집할 수도 없다.
계곡물은 쉬 불어나고 또 쉬 빠진다. 용량이 작고 경사가 심해서이다. 사람이 이랬다저랬다 쉬 변하는 것도 도량이 작고 균형이 안 맞아 사소한 것에 쉬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지속하며 늘 변함없는 관계 안에선 다행히 소인은 면한다. 그러니 그 관계가 더욱 소중하지 않을 수 없다. ‘增廣賢文(증광현문)’에 보인다.
삶과 죽음이란 여반장(如反掌)이다
죽음에 관한 연구에 권위자인 엘리자베스 쿠브러 로스(Elizabeth Kubler Ross)의 주장에 따르면 죽음을 직접 직면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5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부정(denial), 분노(anger), 타협(bargaining), 우울(depression), 수용(acceptance)의 5단계로 구분하였다. 물론 아무런 징후 없이 급작스러운 사망의 경우에는 해당하지 않는다. 또한 죽음을 인지한 경우일지라도 사람에 따라서는 몇 단계가 생략되기도 한다.
부정단계는 죽음선고를 인식하는 즉시 부정의 반응을 표출한 후 다음 단계인 분노하는 감정을 보이다가 그 분노 게이지가 낮아지게 되면서 타협을 하는 심리 과정에 도달한다. 통상적으로 이 단계에서 종교에 귀의하거나 약물 등의 치료법에 매달리게 된다. 그러나 결국 자신의 신체적 사회적 기능이 떨어지는 현상을 느끼면서 우울 단계로 접어든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삶을 체념하는 수용 단계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참고로 불교의 사생관은 윤회사상으로 대표되고, 기독교의 사생관은 부활과 영생에 있다고 보며, 유교의 사생관은 충실한 현세관에 근거하고 있으며, 도교의 사생관은 생과 사를 동일선상에 두고 있다. 소크라테스의 경우에는 죽음의 과정을 제자들에게 밝히려고 하였다. 하지만 독배를 마신 후 혀가 굳어지면서 소용이 없었다.
소크라테스가 죽은 후 플라톤에 의해 그의 사상이 학문적으로 부활했으며, 예수가 죽은 후 3일 만에 부활 했다지만 제자와 추종자들에 의해 그의 사상은 영원히 부활하였다. 필자의 경우 20대 초반의 나이에 군복무 중 두뇌의 내부회로가 급속히 망가지면서 곧바로 식물인간 상태로 1개월 이상 지내면서 육신(魄)에서 영(靈)과 혼(魂)이 분리되는 과정이 명확하고 상세하게 기억나지는 않지만 지금도 그 기억이 어렴풋이 남아있다.
노자는 삶과 죽음이란 단순히 그 형체의 변화일 뿐이라고 했다. 따라서 인간의 존재는 변화할 뿐 영원히 지속된다는 의미인 것이다. 장자(莊子)의 친구인 혜자(惠子)가 장자 부인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고 조문을 갔는데, 그는 물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이것이 바로 장자의 고분지가(鼓盆而歌)인 것이다.
혜자가 그 연유를 묻자 인간은 본래 없던 기(氣)가 생겨나 유형(有形)의 생명을 갖추었다가 죽음으로 바뀌게 되었으니 이는 마치 계절의 변화와 같은 자연현상이다. 통곡하면 천명에 통하지 못하므로 울음을 그치고 물동이를 두드린다고 하였다.
공자는 죽음에 대해 묻는 자로(子路)에게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겠는가!’라고 일갈하였다. 붓다도 죽음이 아니라 삶에 집중하였다. 인간의 행동에 따라 다음 생에 어떤 형태로 태어날지를 결정한다는 윤회사상이 있지만, 진리에 어긋난 삶으로 고통을 당하는 현실을 바로잡는 팔정도(八正道)를 설파하였다. 8정도를 실천함으로써 깨달음을 얻고 윤회에서도 벗어날 수 있다고 보았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철학적인 신념을 위해 죽음을 선택했다. 그는 독배를 마시는 것이 자신의 철학적인 신념을 지키는 것이며, 이를 통해 더 큰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인간 예수의 경우에도 서사적인 흐름상 소크라테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본다. 즉 그리스 아테네의 영향을 받은 로마가 동일한 맥락에서 예수를 쉽사리 받아들일 수 있었던 것이다.
삶과 죽음이란 별개의 사안으로 동떨어진 개념이 아닌 일종의 여반장(如反掌)에 비유할 수 있다. 즉 서로 다른 것이거나,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손바닥과 손등의 관계인 것이다. 어쩌면 우리 인간은 삶을 통하여 죽음을 체험하는 일상이랄 수 있다. 밤마다 잠자는 과정 역시 죽음의 축소판이자 죽음에 대한 연습이기도 하다.
이러함에도 우리는 죽음을 두려워하고 거부하거나 부정하려고만 한다. 삶과 죽음은 매 순간 혹은 찰라마다 교차하는 동일선상에 존재한다고 본다. 따라서 현재의 삶에 충실하면서 매사에 감사와 존중과 나눔을 실천하며 진솔하게 이웃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하려는 노력을 지속적으로 기울여야 한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이 손바닥 뒤집기(여반장/ 如反掌)
자연과 하나 되고 본성이 원하는 대로 천하와 하나가 된다면···
위아설(爲我設)을 개창한 양주(楊朱= 陽子)에게 금자(禽子)가 물었다. "털 한가닥을 뽑아 세상을 이롭게 할 수 있다면 그리 하시겠습니까?" "세상을 털 한 가닥으로 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만약 구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시겠습니까?"
아무런 대답을 듣지 못하자 그를 따르는 맹손양(孟孫陽) 제자에게 가서 당신은 아직도 양주를 알지 못한다면서 위아설에 대하여 따져물었다. "당신은 피부를 상하게 하여 만금을 얻을 수 있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그렇게 하겠다." "그럼 당신 몸의 한 부분을 끊어서 나라[一國]를 얻는다면 그렇게 하겠는가?" "…" 털 한 가닥은 피부의 상처보다 미미하고 피부의 상처는 몸의 한 부분보다 작다.
향락설(享樂說)과 이기주의(利己主義)를 주장하면서 인간은 하늘이 부여한 자연법칙의 지배를 받는다는 숙명론(宿命論)을 제창한 양주를 따르던 제자는 금자의 물음에 묵묵부답이다.
인간의 내면세계는 무한하다. 마음은 영원보다 빨리 달릴 수도 있고 생각은 멀리 있는 별보다 더 멀리 달릴 수 있다. 무한한 인간의 생각을 함부로 재단 할 수는 없다. 멀리 있는 별보다 더 빨리 달릴 수 있는 생각을 그치게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자유로운 생각을 방임(放任)에 맡길 수는 없다.
일곱 나라가 합종연횡(合從蓮衡)으로 들끓고 있던 전국시대(戰國時代) 때 위(衛)나라 양주가 위(魏)의 양왕(襄王)과 마주 앉았다. 진(秦)나라의 부국강병책을 맞아 어떻게 하면 나라를 지킬 수 있을까 염려되어 양주에게 말을 건네 묘안을 찾으려는 것이 양왕의 의도였다.
양주가 양왕의 의중을 꿰뚫어 본뒤 그의 논변을 펴기 시작했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손바닥 뒤집기(如反掌) 보다 간단한 것입니다." 양왕은 일찍이 양주의 뛰어난 식견을 들어 알고 있는지라 웃으면서 그의 가정사를 들어 은근히 뒷말을 유도했다. "선생은 함께 사는 아내도 잘 다스리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문앞의 전답도 가꾸지 못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런 분이 어찌하여 천하를 다스리기가 손바닥 뒤집기 보다 쉽다(이여반장/易如反党)고 한단 말입니까?"
이에 양주가 양왕을 올려다 보며 정중히 말했다. "페하, 페하께서는 양치는 아이를 보신일이 있습니까? 백마리도 넘는 양을 다섯자 키도 안 되는 어린 목동이 회초리 하나로 마음대로 부립니다. 천하를 태평스럽게 다스렸다는 요임금이나 순임금님도 단 한 마리의 양을 부리라고 해도 못 부릴 것입니다."
양주는 왕양의 용안을 살피면서 계속 말을 이렀다. "천하를 다스리는 것은 말을 다루는 것과 같습니다. 말을 다룬다고 하는 것이 자칫 말을 잘못 다루어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백락(伯樂)이 말을 잘 다룬다고 하여 털을 태우고 말굽을 깍고 굴레를 씌우지만 그것이 말의 본성을 따른 것이 아닐 때는 말을 해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도공이 흙을 잘 다룬다 하여 둥굴고 모난 그릇을 만들지만 흙의 본성을 모른다면 소용없는 일이며, 목수가 나무를 잘 다룬다고 하여 자를 대고 먹줄을 퉁기지만 나무의 본성을 모른다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흙의 본성을 모르고 그릇을 만들어 가마에서 구어내 물을 담으면 새고, 나무의 본성을 모르고 기둥을 깍아 세우면 기둥에서 진이 흘러내려 쓸 수 없게 됩니다. 그럼 그간의 수고가 허사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양주는 양왕의 심기를 살피면서 자기의 소신을 기탄없이 말하였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원숭이 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뛰어 종잡을 수 없이 천방지축이므로 성인이나와 인의(仁義)를 행하고 예약을 만들어 천하를 다스려야 한다고 하지만 그것은 인위적인 것이어서 자연스럽지 못합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백락이 말을 잘다룬 다고 자랑한 사람은 진(秦)나라의 손양(孫陽)입니다. 그가 백락이 말 잘다룬다고 칭찬해준 덕분에 명성을 얻게 되었는데 이는 손양의 명성인 셈입니다. 재우쳐 생각해 보면 말을 잘 듣게 만든 것은 말의 본성을 꺾어 재갈을 물리고 영덩이에 채찍을 내리치면서 혹독한 훈련으로 단련시킨 다음 먹을 것을 줍니다. 말은 간신히 목슴을 부지하여 명마라든가 천리마라는 명성을 얻게 되는데 이는 백락이 말꼬삐를 틀어 쥔채 본성을 빼앗고 유린당해 얻은 것이니 이것은 본래의 말이 아닌 것입니다. 대저 말이 들에 있을 때는 풀을 뜯고 물을 마시면서 좋을 땐 목을 맞대고 싫을 땐 등을 돌려 발로 차는 것입니다 말의 지혜는 이정도에 그치는데 사람이 억지로 길들여 수레에 채우고 멍에를 씌워 부립니다. 그러나 말의 본성은 재갈을 씹어 부셔 버리고 멍에를 꺽은 다음 고삐를 물어 끊어 본래의 말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백락이 말의 본성을 꺾어 버렸으니 이는 백락의 죄입니다. 이는 마치 인간세계에 성인(聖人)이 나타나 무리하게 인人을 만들고, 허겁지겁 의(義)를 만들고, 음탕한 생각으로 음악(音樂)을 만들고, 자질구레한 예의(禮儀)를 마들어 천하를 천갈레 만갈레로 갈라 놓은 것과 같습니다. 천하를 다스리는 자가 백성들의 떳떳한 본성을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하늘을 나는 새처럼 자유롭게 살텐데, 공연히 순수한 사람들을 덕치(德治)로 다스려 편안하게 한다고 선전하여 되려 편치 못하게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도덕을 세우고 인의를 세운 성인의 허물입니다. 그러니 본래의 내면세계를 넓혀 자연과 하나가되고 본성이 원하는 대로 천하와 하나가 된다면 세상 다스리기가 손바닥 뒤집기〔여반장如反掌〕나 뭐가 다를바 있겠습니까?"
양주의 말을 듣던 양왕은 고개를 숙인채 말없이 앉아 허공을 응시하고 있었다. 중국 역사에서 양주와 양왕이 마주한 시기는 전국시대(戰國時代)로 진(쯥)나라가 한(韓)나라와 조(趙)나라와 위(魏)나라로 쪼개져 삼분되고 거기에 초(楚), 연(燕), 제(齊), 진(秦)이 각축전을 벌이다 진(秦)나라에 통일된 혼란기를 전국시대라 하였다.
위 양왕이 긴박한 정치적 상황을 어떻게 해야 돌파할 수 있을까 하여 속타는 마음으로 양주와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눈 내용이다. 그러니까 2400년 전 이야기를 정보기술(IT)의 초고속시대를 맞아 되뇌어 보게 되니 어째 맛이 싱거운듯 하나 그러나 위 내용을 읽으면서 정신적인 즐거움과 흡족함도 느낄 수 있었다.
▶️ 如(같을 여, 말 이을 이)는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동시에 음(音)을 나타내는 계집녀(女; 여자)部와 말을 뜻하는 口(구)로 이루어졌다. 여자가 남의 말에 잘 따르다의 뜻이 전(轉)하여, 같다의 뜻과 또 음(音) 빌어 若(약)과 같이 어조사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如자는 '같게 하다'나 '따르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如자는 女(여자 여)자와 口(입 구)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여기서 口자는 사람의 입을 그린 것으로 '말'을 뜻하고 있다. 如자는 여자가 남자의 말에 순종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부권 중심의 전통사회에서 여성의 순종을 미덕으로 삼았던 가치관이 낳은 글자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본래의 의미는 '순종하다'였다. 하지만 지금은 주로 '~와 같다'라는 뜻으로 가차(假借)되어 쓰이고 있다. 그래서 如(여, 이)는 법의 실상(實相)이란 뜻으로 ①같다, 같게 하다 ②어떠하다 ③미치다(영향이나 작용 따위가 대상에 가하여지다), 닿다 ④좇다, 따르다 ⑤가다, 이르다(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⑥당연히 ~하여야 한다 ⑦맞서다, 대항하다 ⑧비슷하다 ⑨어찌 ⑩가령(假令), 만일(萬一) ⑪마땅히 ⑫곧, 이것이 ⑬~과, ~와 함께 ⑭보다, ~보다 더 ⑮이에, 그래서 그리고 ⓐ말을 잇다(=而)(이)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어떤 대상이 변함이 없이 전과 같음을 여전(如前), 이와 같음을 여차(如此), 얼마 되지 아니함을 여간(如干), 사실과 꼭 같음을 여실(如實), 어떻게 하는가 하는 것을 여하(如何), 왼쪽에 적힌 내용과 같음을 여좌(如左), 이러함을 여사(如斯), 일이 뜻대로 됨을 여의(如意), 있어야 할 것이 없거나 모자람을 결여(缺如), ~만 같은 것이 없음을 막여(莫如), ~만 못함을 불여(不如), 혹시나 설혹을 혹여(或如), 어떠함을 하여(何如), 뒤섞여서 어지러움을 분여(紛如), 뜻하지 않은 사이에 갑자기를 홀여(忽如), 3년과 같이 길게 느껴진다는 뜻으로 무엇을 매우 애타게 기다리는 것을 이르는 말을 여삼추(如三秋), 얇은 얼음을 밟는다는 뜻으로 몹시 위험함을 가리키는 말을 여리박빙(如履薄氷), 거문고와 비파를 타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부부 간에 화락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고금슬(如鼓琴瑟),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일컫는 말을 여반장(如反掌), 바람이 귀를 통과하는 듯 여긴다는 뜻으로 남의 말을 귀담아 듣지 않는 태도를 일컫는 말을 여풍과이(如風過耳), 새가 하늘을 날기 위해 자주 날갯짓하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배우기를 쉬지 않고 끊임없이 연습하고 익힘을 이르는 말을 여조삭비(如鳥數飛), 여러 사람의 말이 한 입에서 나오는 것처럼 한결같음을 이르는 말을 여출일구(如出一口), 시키는 대로 실행되지 못할까 하여 마음을 죄며 두려워함을 이르는 말을 여공불급(如恐不及), 물고기가 물을 얻음과 같다는 뜻으로 빈궁한 사람이 활로를 찾게 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득수(如魚得水),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사모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모(如怨如慕), 개미가 금탑을 모으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근검하여 재산을 축적함을 이르는 말을 여의투질(如蟻偸垤), 천금을 얻은 것 같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이루어 마음이 흡족함을 이르는 말을 여득천금(如得千金), 강을 건너려 하는 데 마침 나루터에서 배를 얻었다는 뜻으로 필요한 것이나 상황이 바라는 대로 됨을 이르는 말을 여도득선(如渡得船), 남의 마음을 꿰뚫어 보듯이 환히 앎을 일컫는 말을 여견폐간(如見肺肝), 아주 작은 고을을 콩 만 하다고 비유하는 말을 여두소읍(如斗小邑), 물에 물 탄 듯 술에 술 탄 듯과 같은 뜻으로 무슨 일을 하는 데 철저하지 못하여 흐리멍덩함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수투수(如水投水), 물고기가 물을 잃음과 같다는 뜻으로 곤궁한 사람이 의탁할 곳이 없어 난감해 함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어실수(如魚失水), 얼굴의 생김생김이나 성품 따위가 옥과 같이 티가 없이 맑고 얌전한 사람을 일컫는 말을 여옥기인(如玉其人), 나는 새가 눈앞을 스쳐간다는 뜻으로 빨리 지나가 버리는 세월의 비유를 일컫는 말을 여조과목(如鳥過目), 발과 같고 손과 같다는 뜻으로 형제는 서로 떨어질 수 없는 깊은 사이임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족여수(如足如手), 원망하는 것 같기도 하고 호소하는 것 같기도 함을 이르는 말을 여원여소(如怨如訴), 한 판에 찍어 낸 듯이 조금도 서로 다름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여인일판(如印一板), 앓던 이가 빠진 것 같다는 뜻으로 괴로운 일을 벗어나서 시원하다는 말을 여발통치(如拔痛齒), 한쪽 팔을 잃은 것과 같다는 뜻으로 가장 믿고 힘이 되는 사람을 잃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여실일비(如失一臂), 호랑이에게 날개를 달아준다는 뜻으로 호랑이가 날개를 단 것과 같이 하늘로 비상하여 더 큰 일을 이룬다는 의미를 일컫는 말을 여호첨익(如虎添翼) 등에 쓰인다.
▶️ 反(돌이킬 반/돌아올 반, 어려울 번, 삼갈 판)은 ❶회의문자로 仮(반)과 동자(同字)이다. 又(우)는 손을, 厂(엄)은 언덕의 뜻으로 뒤엎는다 또는 반대(反對)를 뜻한다. 비탈진 지형은 정상이 아니므로 반대를 의미한다. 反(반)은 위에서 덮는데 대하여 밑으로부터도 뒤덮는 일, 그 양쪽을 합하면 반복이란 말이 된다. 또 손바닥을 뒤집다, 배반하다, 돌아오다, 돌아보다 따위의 뜻으로 쓴다. ❷회의문자로 反자는 '되돌아 오다'나 '뒤집다'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反자는 厂(기슭 엄)자와 又(또 우)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厂자는 산기슭을 그린 것이지만 여기에서는 추상적인 물건으로 응용되었다. 갑골문에 나온 反자를 보면 손으로 무언가를 잡으려는 듯한 모습이 그려져 있었다. 이것은 어떠한 물건을 손으로 뒤집는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反자는 '뒤집다'라는 뜻을 갖게 되었지만, 후에 뜻이 확대되면서 '배반하다'나 '반역하다'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그래서 反(반)은 변증법(辨證法)의 정(正), 반(反), 합(合)의 세 가지 계기 가운데에서 부정(否定)을 뜻하는 계기나 반립(反立)의 뜻으로 ①돌이키다 ②돌아오다, 되돌아가다 ③되풀이하다, 반복하다 ④뒤집다, 뒤엎다 ⑤배반하다 ⑥어기다(지키지 아니하고 거스르다), 어긋나다 ⑦반대하다 ⑧물러나다, 후퇴하다 ⑨보복하다, 앙갚음하다 ⑩되돌아보다, 반성하다 ⑪꾸짖다, 나무라다 ⑫보답하다, 되갚음하다 ⑬바꾸다, 고치다 ⑭죄를 가벼이 하다 ⑮휘다 ⑯구르다, 뒤척이다 ⑰기울다 ⑱튀기다 ⑲생각하다, 유추(類推)하다 ⑳대답하다 ㉑기인(起因)하다 ㉒모반(謀叛), 반역(反逆) ㉓번(횟수를 세는 단위) ㉔반대로, 도리어 ㉕더한층, 더욱더 그리고 ⓐ어렵다, 곤란하다(번) 그리고 ㉠삼가다(몸가짐이나 언행을 조심하다), 조심하다(판) ㉡팔다(판) 따위의 뜻이 있다. 반대 뜻을 가진 한자는 바를 정(正), 도울 찬(贊)이다. 용례로는 공산주의를 반대함을 반공(反共), 반대로 움직임을 반동(反動), 법칙이나 규칙 따위를 어김을 반칙(反則), 상대방의 말을 되받아 묻는 것을 반문(反問), 두 사물이 맞서 있는 상태 또는 어떤 의견이나 제안 등에 찬성하지 않음을 반대(反對), 반사로 비친 그림자를 반영(反影), 반사하여 비침을 반영(反映), 반대하거나 반항하여 품는 나쁜 감정을 반감(反感), 한 가지 일을 되풀이 함을 반복(反復), 자극이나 작용에 대응하여 일어남을 반응(反應), 전쟁을 반대함을 반전(反戰), 쳐들어 오는 적을 되받아 공격함을 반격(反擊), 상대방에 반대하여 대들음을 반항(反抗), 반대의 뜻을 나타내는 행동이나 표시를 반기(反旗), 서로 미워함을 반목(反目), 잘못이나 허물이 없었는지 돌이켜 생각하는 것을 반성(反省), 반대되는 뜻을 반의(反意), 까마귀 새끼가 자란 뒤에 늙은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자라서 부모를 봉양함을 이르는 말을 반포지효(反哺之孝), 자식이 부모가 길러준 은혜에 보답하는 것을 이르는 말을 반포보은(反哺報恩), 손님이 도리어 주인 노릇을 한다는 뜻으로 이른바 주객이 뒤바뀌는 것이니 자신의 수동적인 상황을 능동적으로 바꾸어서 주도권을 장악하는 전략을 이르는 말을 반객위주(反客爲主), 서로 미워하고 질투하는 눈으로 봄을 이르는 말을 반목질시(反目嫉視), 잘못을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뜻으로 어떤 일이 잘못 되었을 때 남의 탓을 하지 않고 그 일이 잘못된 원인을 자기 자신에게서 찾아 고쳐 나간다는 의미의 말을 반구제기(反求諸己), 언행이 이랬다 저랬다 하며 일정하지 않거나 일정한 주장이 없음을 이르는 말을 반복무상(反覆無常), 엎질러진 물은 다시 주워 담을 수 없다는 뜻으로 이미 지난 일을 후회해도 아무 소용이 없음을 비유해 이르는 말을 반수불수(反水不收), 도리어 처음 만 같지 못함이라는 뜻으로 그대로 두는 것이 오히려 낫다는 말을 반불여초(反不如初), 갖옷의 털이 상할까하여 뒤집어 입고 나무를 등에 졌더니 도리어 갖옷이 못쓰게 되었다는 뜻으로 하나만 알고 둘은 모르는 사람이나 생각이 좁은 사람을 두고 이르는 말을 반구이부신(反裘而負薪), 겨드랑이 밑에서 모반하는 적이라는 뜻으로 내란을 이르는 말을 반액지구(反掖之寇), 남에게 재앙이 가게 하려다가 도리어 재앙을 받음을 일컫는 말을 반수기앙(反受其殃), 머리는 헝클어지고 옷은 해어진 초라한 모습으로 한데서 잠을 일컫는 말을 반수발사(反首拔舍), 도둑이 도리어 몽둥이를 든다는 뜻으로 잘못한 사람이 도리어 잘 한 사람을 나무라는 경우를 이르는 말을 적반하장(賊反荷杖), 이리 뒤척 저리 뒤척 한다는 뜻으로 걱정거리로 마음이 괴로워 잠을 이루지 못함을 이르는 말을 전전반측(輾轉反側), 손이 도리어 주인 행세를 한다는 뜻으로 주객이 전도됨을 이르는 말을 객반위주(客反爲主), 자신에게서 나온 것은 자신에게로 돌아감을 일컫는 말을 출이반이(出爾反爾), 한 가지를 들어서 세 가지를 돌이켜 안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미루어 모든 일을 헤아림이나 매우 영리함을 이르는 말을 거일반삼(擧一反三), 잘 만들려고 너무 기교를 부리다가 도리어 졸렬하게 만든다는 뜻으로 너무 잘 하려 하면 도리어 안 됨을 이르는 말을 욕교반졸(欲巧反拙) 등에 쓰인다.
▶️ 掌(손바닥 장)은 ❶형성문자로 뜻을 나타내는 손 수(手=扌; 손)部와 음(音)을 나타내며 동시에 위의 뜻을 가진 尙(상, 장)으로 이루어졌다. 손을 위로 향하게 한 윗부분 곧 손바닥의 뜻으로 쓰인다. ❷회의문자로 掌자는 '손바닥'이라는 뜻을 가진 글자이다. 掌자는 尙(오히려 상)자와 手(손 수)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尙자는 집 위로 무언가가 뻗어 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이다. 掌자는 이렇게 위로 무언가가 뻗어 나가는 모습을 그린 尙자를 응용한 글자로 여기에 手자를 결합해 손의 위쪽인 '손바닥'을 뜻하고 있다. 掌자는 단순히 '손바닥' 만을 뜻하지 않고 '맡다'나 '장악하다'와 같이 손바닥을 폈다가 쥐는 것과 같은 행위를 뜻하기도 한다. 그래서 掌(장)은 ①손바닥 ②동물의 발바닥 ③솜씨, 수완(手腕) ④늪, 못, 웅덩이 ⑤손바닥으로 치다 ⑥맡다, 주관하다 ⑦주장하다 ⑧바로잡다, 고치다 ⑨받들다, 헌신하다 따위의 뜻이 있다. 용례로는 손에 쥠이나 손에 넣음으로 세력 등을 온통 잡음을 장악(掌握), 손바닥 안을 장리(掌裏), 맡아서 주관함을 장관(掌管), 손바닥을 이루는 다섯 개의 뼈를 장골(掌骨), 자기가 맡아보는 일의 범위 안을 장내(掌內), 일을 맡아서 처리함을 장리(掌理), 시험을 관장함을 장시(掌試), 손바닥이나 발바닥의 한가운데를 장심(掌心), 도장 대신 찍는 손바닥 무늬를 장인(掌印), 금전의 출납을 맡아보는 사람을 장재(掌財), 극히 짧은 작품을 장편(掌篇), 손바닥을 편 모양을 장상(掌狀), 손바닥 자국을 장적(掌跡), 한쪽 손바닥을 고장(孤掌), 손바닥으로 손의 안쪽을 수장(手掌), 차지하여 맡아봄을 관장(管掌), 책임지고 맡아서 함을 주장(主掌), 두 손바닥을 마주침을 박장(拍掌), 사무를 한 부분씩 나누어 맡아서 처리함을 분장(分掌), 손바닥을 뒤집는 것과 같이 일이 썩 쉬움을 반장(反掌), 여러 가지 일을 다 겸하여 맡아 봄을 겸장(兼掌), 그 직무를 맡은 사람을 해장(該掌), 손바닥을 손가락으로 가리킨다는 뜻으로 매우 용이함이나 아주 명백함을 지장(指掌), 손안에 있는 보옥으로 보배처럼 여기는 사랑하는 자식이나 매우 귀중한 물건을 일컫는 말을 장중보옥(掌中寶玉), 손뼉을 치면서 크게 웃음을 일컫는 말을 박장대소(拍掌大笑), 외손뼉은 울릴 수 없다는 뜻으로 혼자서는 어떤 일을 이룰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을 고장난명(孤掌難鳴), 다리와 손에 비길 만한 신하라는 뜻으로 임금이 가장 신임하는 중신을 이르는 말을 고장지신(股掌之臣), 쉽기가 손바닥 뒤집는 것과 같음을 일컫는 말을 이여반장(易如反掌), 손바닥 위에서 움직인다는 뜻으로 아주 쉬움을 이르는 말을 운지장상(運之掌上) 등에 쓰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