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인류의 대재난으로 알려진 '코소보 사태'를 알기 위해서는 14세기 말로 거슬러 올라가 역사적인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우선, '코소보 사태'란? 유고슬로비아 연방의 해체 과정에서 세르비아가 1989년 코소보의 자치주 지위를 박탈하고 세르비아 공화국에 편입시키자 코소보의 알바니아계 주민들이 반발, 1992년 이래 자치 획득 및 분리 독립을 위해 무장투쟁을 전개했으며, 1998년 2월 세르비아군과 코소보해방군(KLA)의 유혈충돌로 인해 본격적으로 국제문제화 된 사건이다.
코소보는 세르비아공화국 남부에 위치한 인구 200만명 안팎의 소규모 자치주로 인구의 90%가 알바니아계 주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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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르비아 민족의 영역 (9세기 경)
오른쪽 아래 RASCIA라고 써있는 부근이 오늘날의 코소보이다.
고대가 끝나갈 무렵 코소보는 로마 제국의 일부였으나 제국이 붕괴되면서 북쪽으로부터 슬라브계 세르비아 인들이 대규모로 이주해 왔다. 세르비아 인들은 한동안 로마와 불가리아 제국의 통치를 받았으나 11세기 경부터 독자적인 소왕국들을 일으켰다. 코소보는 세르비아 민족의 관점에서 보자면 민족의 역사가 시작된 고토인 셈이다.
13세기 초반 세르비아 민족의 영웅으로 불리는 스테판 2세가 세르비아계 왕국들을 통일했다. 코소보는 정치, 경제적으로 세르비아 왕국의 중심지였다. 오늘날 코소보의 중심 도시인 프리스티나는 본래 세르비아 왕국의 수도였다. 코소보에는 알바니아인, 터키인, 그리스인 등의 여러 민족이 거주했지만 동시대 외국인의 기록과 지명을 살펴보면 주민의 대다수는 세르비아 계통이었다. 그러다 남쪽에서 오스만 터키 제국이 침략해 오면서 코소보의 아픈 역사도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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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세기 중반 세르비아 왕국(비잔틴 제국 왼쪽 위의 연갈색 영역)
왕국 오른쪽 아래 부분이 코소보
14세기 중반에 이르러 세르비아 통일 왕국은 서서히 와해 되었다. 여러 소왕국들이 난립하자 남쪽의 오스만 터키 제국은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1389년 코소보 평원에서 오스만 터키 제국과 세르비아계 왕국들 간의 전쟁이 벌어졌다. 승리의 여신은 오스만 터키 편이었고 코소보를 포함한 도나우 강 이남 지역은 터키 제국의 지배 아래 놓였다. 이에 위협을 느낀 오스트리아는 1448년 코소보 평원에서 원정 전쟁을 일으켰으나 실패했다.
터키 인의 지배는 500년 간 이어졌다. 새로운 지배자들과 함께 들어온 이슬람교는 대도시를 중심으로 퍼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토착민들은 기독교도로 남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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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의 세르비아와 코소보
알바니아(청록색)와 마케도니아(짙은 노란색) 사이의 세르비아 땅이 코소보이다.
1683년, 세르비아 인들은 오스트리아와 협력해 코소보를 터키 제국으로부터 되찾았다. 그러나 코소보는 곧 오스만 터키에 의해 재정복 당했고 보복을 두려워한 많은 기독교계 세르비아 인들이 코소보를 탈출했다. 이주민의 숫자는 무려 20만에 이른 것으로 파악된다. 세르비아 민족과 오스트리아의 협력을 두려워한 터키 당국은 18세기에도 세르비아 인에 대한 탄압을 멈추지 않았고 이를 피해 많은 세르비아 인들이 코소보를 떠났다.
코소보 지역에서 세르비아 인들은 소수로 전락했고 주도권은 이슬람교를 받아들인 알바니아 인들에게 돌아갔다. 알바니아 인들은 기독교 세력인 오스트리아보다는 같은 이슬람교 세력인 오스만 터키의 지배를 선호했고 마찬가지로 터키 당국도 알바니아 인들의 이주를 반겼다.
그러다 1912년 1차 발칸전쟁이 발발하면서 세르비아 인들이 코소보를 재탈환하게 된다. 곧이어 일어난 1차 세계대전에서 오스만 터키 제국은 패배했고, 그 틈을 타서 코소보의 주도권은 세르비아계 이주민의 손에 돌아갔다. 세르비아 인의 입장에서는 500년 만의 '고토 회복'이었고 알바니아 인의 입장에서는 500년 간 자신들의 고향이었던 땅을 이제는 외세가 되어 버린 세르비아 인에게 고스란히 넘겨 준 셈이었다.
첫댓글 이쪽 역사는 너무 복잡해서 공부하려고 해도 잘 안되더라고요...덕분에 많이 배우게 되었네요!
배우면서 ㄷㄷㄷ
이거 관련된 영화가 피스메이커던가..? 맞죠? 예전에 본기억이 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팔레스타인이랑 비슷하네요. 대신 팔레스타인은 2000년동안 살았지만.
아직도 싸우고 있나요? 휴~ 더이상의 피 튀기는 분쟁은 없게 해결책을 찾아야 하는데 정말 복잡하죠.......
좋은글 고마워요 담아갈게요
외국 정세는 역사랑경제 등등 혼합되어서 너무 어려워요..개인카페로 스크랩해갈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