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시한부 인생이다.
시한부란
어떤 일에 일정한 시간의 한계를 둠 쉽게 말해 곧 끝난다는 뜻이다.
파생된 표현으로 곧 사망하며 얼마 안 남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실 일상생활에서 시한부라는 말을 쓰는 경우는
십중팔구 죽음을 암시하는 뜻으로 쓰인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강력한 본능이기 때문에
시한부 판정을 받은 환자들의 심리상태는 말 그대로 처절하며
과정에서도 심한 육체적, 정신적 고통을 받아야 할 처지에 놓인다.
보호자 또한 괴로운 이유도 바로 환자의 고통스러운 시간을
함께 보내야 하기 때문에 괴로운 것이다.
시한부 환자 절대다수는 극도의 공포와
절망감 때문에 일상생활조차도 전혀 하지 못한다.
한용운의 시 님의 침묵에서 님은 갔습니다.
아아 사랑하는 나의 님은 갔습니다라는 구절이 가슴에 고동친다.
물론 여기의 님은 조국으로 차원은 다르지만 슬픔의 강도는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알 수 없어요에서도 그칠 줄 모르고 타는 나의 가슴은
누구의 밤을 지키는 약한 등불입니까?”라고 말했듯
알 수 없는 것이 우리네의 운명인가 보다.
우리는 이 땅에 남녀로 태어나서 성장해 가정을 이루고 살다가
누군가는 먼저 이 세상을 떠나게 되는데
언제인지 모르고 살아가고 있는 것도 알 수 없다.
또한 우리의 삶을 기차 여행에 비유하며 여기는 왕복표가 없고
종착역이 어디인지 모르고 하루하루 달려가고 있다.
어린 시절에 부모님이 기차표를 전해주고
그분들은 어디선가 먼저 내리시고 함께 가는 승객들도
어디서 내리는지 모르게 하나씩 하차를 한다.
유한한 모든 인간은 영원히 살 수 없는 시한부 인생이다.
다만 내일 죽을지라도 오늘은 죽음을 잊고
오래오래 살 것처럼 착각하며 산다.
한편 인생을 망망대해에 비유하기도 하고
황금 보석을 주고도 살 수 없는 고귀한 생명이지만
우리는 어찌할 수 없이 주어진 상황에 순응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인생을 어떻게 살았는지 보다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는 말이 있다.
여기까지 살아온 인생을 긍정과 감사로 해석하는가
아니면 부정과 후회로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한다.
주어진 여건에서 범사에 감사하며
항상 기뻐하는 자세로 살려고 노력해 왔다.
또한 우리의 삶은 하나의 연극에 비유해서
이 세상이라는 무대에 총감독자이신 조물주의 지시에 따라
각자 맡은 배역을 하는 배우와도 같다.
결국 죽음이란 맡은 배역과 대사가 끝나면 무대에서 내려오는 것이 아닐까?
시한부 인간은 각자에게 맡겨진 배역을 열심히 하다가
퇴장하는 인생 단막극의 한 장면이기도 하다.
누구도 대신할 수 없는 각자의 고유한 배역은
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특권이다.
예술은 길고 인생은 짧다.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시한부 인생이다.
어느 사람은 황혼이 지는 오후 6시에 살면서도 날 저무는 줄도 모른다.
오늘 내가 만난 사람들을 내일 또다시 만난다는 보장이 없다.
어떤 이는 대 낮인데도 인생의 열차에서 내리는 사람이 있다.
장례식장에 가보니 오늘도 세상을 떠나가는 행렬로 가득하다.
나도 잠시 후에 그들이 간 곳을 향하여 줄을 서야 한다.
인생 마라톤 경기처럼 무리하지 말고
100세 시대에 적당히 자기의 체력의 한계를
유지하며 여유롭게 살아가길 소원한다.
젊은이는 달려갈 길이 달려온 거리보다 많이 남았지만
어르신들에게는 달려갈 거리가 달려온 거리보다
짧음을 인식하며 신중하게 달려가는 것도 도움이 되겠다.
스피노자가 말한 대로
내일 이 세계에 종말이 온다 해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심정으로
비록 시한부 인생이지만 하루하루를 성실히 살아야겠다.
세상을 아옹다옹하며 살 필요가 없다.
인생은 자신의 태도에 달려있다.
살면서 후회하는 일이 없을 수는 없겠으나
후회할 일을 하지 말고 살아야 한다.
내 인생을 잘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
인간은 부와 명예 그리고 권력을 좇아서 발버둥 치고
살아가면서 작은 것에도 소중하고 감사한 것을 느끼며
과분하게 많이 가지고 있음에도 불평불만을 느끼는 것이다.
인간은 결국 누구나 시한부 인생을 살아가는 것일 뿐인데
왜 이렇게 한순간 한순간에 집착하면서 살아가고 있는지
타인의 시선, 타인과 비교하는 것을
그만두는 것부터 시작하면 삶의 난이도가 달라진다.
인생은 거대한 무대 위의 길이다.
길은 애초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걷다 보면 생긴다.
삶은 자신이 어떤 길을 선택하느냐에 따라 결정된다.
삶이란 길 찾아가는 숙명이자 진리를 향한 수행이다
인생은 시한부이면서 홀로 살 수밖에 없는 태생적 한계이지만
태어날 때 혼자 울지만 주변 사람들은 기뻐한다.
죽을 때에는 이와 반대로 망자는 웃고 주변 사람은 운다.
따라서 성공해야 행복한 것이 아니라 행복하게 사는 것이 성공이다.
버클리 대학교 라벤나 헬슨 교수는
대학교를 졸업한 여성을 대상으로 이들의 삶을 50년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한다.
졸업사진에서 더 따뜻하고 또렷한 미소를 보인 사람이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30년 동안 더 행복하고 안정적인 심리상태를 유지했다.
미소는 집중력과 목표지향적인 삶으로 이끌고
스트레스를 줄여서 건강에 효과가 있다는 것을 입증했다.
행복은 누가 가져다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찾고 만족하는 과정이다.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면 어떻게 살 것인가?
하루를 살아도 마지막 날처럼 살자.
첫댓글 잘읽고 갑니다.
하루하루 소중하게 생각하면서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양보와 배려로 성실하게
멋진인생 살아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삶의 대한 의미와 소중함을 느끼면서 살아야 하거늘
피치 못하게 그렇지 못한 사람들도 꽤나 많을 껍니다
의식이 있는 사람들이야 당연 그런것을 깨닫고 살겠지만
내일을 고단하게 삶을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은 미쳐 삶의
대한 의미를 깨닫을 시간 조차도 없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들은 거의 인생 종반의 나날을 보내고 있어요
이제는 정말 님의 글 처럼 매일 소중하게 삶의 의미를 되뇌
이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엔 정말 삶에 대한 소중함이 하루 하루 더 느껴지는 것
같아요
하루하루 보람있게 살아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