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서 아마추어란 보수 없이 단순히 즐기는 마음으로 경기를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
그리고 배우들은 조합 가입 여부에 따라 아마추어 연기자와 프로 연기자로 구분된다.
과학 분야에서 아마추어란 교육 기관 등에서 특정 학문 분야를 전문적으로 공부하지 않은 사람들 말하는데 대게 박사학위가 없으면 아마추어로 취급된다.
또한 박사학위를 가지고 있어도 자신이 전공하지 않았던 다른 과학분야에 대해서는 아마추어로 간주된다.
즉 과학분야에서 아마추어란 그 해당 분야에 관하여
대학(원)에서 전문적으로 공부하여 학위를 취득하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그러나 해당 분야에 관하여 대학(원)에서 학위를 받지 않았어도
프로(박사) 못지 않게 뛰어난 경험과 실력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다.
그러한 사람들을 지칭하여 '아마추어 과학자'라고 한다.
역사적으로 위대한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많이 있었다.
유전학의 아버지 '멘델'
위대한 곤충 학자 '파브르'
레비9 혜성을 발표한 '레비'
세페이드 별을 해독한 '리비트'
산소를 발견한 '프리스틀리'
전자기 법칩을 세운 '패러데이'
전파 천문학의 길을 연 '레버'
통신 위성의 통찰력을 보여준 '클라크'
근대 고고학을 개척한 '제퍼슨'
위대한 공룡 연구가 '헨드릭슨'
박테리오파지를 발견한 '데렐'
더이상 설명이 필요없는 발명가 '에디슨'
식물학에 세계적 전환기를 마련한 '사쿠고로'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 논문을 발표한 '왈라스'
이러한 위대한 아마추어 과학자들은
과학역사에 있어 전기를 마련했다.
그러나 수많은 아마추어 과학자들이
생존 당시에는 프로 과학자에게 비웃음을 샀고
해당 분야에서 정식 교육을 받지 않은 것을 내세워
높은 수위의 비난을 들어야 했다.
아마추어 과학자는 아무리 재능이 뛰어나도
학위나 학문적 지위 없이 기존의 학설과 다른 견해를 제기하면
아무런 보호도 받을 수 없다.
기존 과학자들의 공격에 맞서기는 어려우며
아무리 새로운 개념을 내놓아봐야 무시당할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멜델은 완두콩을 연구하여 그 유명한 유전자 논문을 작성 후
39명의 과학자에게 논문을 보냈지만 아무도 반응하지 않았으며
사실 과학자들은 멘델의 논문을 읽지도 않았다.
결국 논문은 멘델이 죽은 후에야 비로소 가치를 인정 받았다.
왈라스는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 논문을 발표하였다.
또한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열정적인 생물 탐사를 통하여 학자들에게 표본을 제공했다.
그러나 학자들은 왈라스를 연구자가 아닌 단순히 채집자로 생각하였다.
왈라스는 다윈보다 먼저 진화론 논문을 발표함으로서 다윈보다 먼저 진화에 대한 기득권을
주장할 수 있는 입장이 되었다. 그러나 학자들로부터 "그런 가설은 그만 두고
채집이나 열심히 하는 게 좋겠다"는 투덜거림만 받았다고 전해지고 있다.
사쿠고로는 당시 일본의 그 어느 식물 학자보다도 뛰어난
성과를 올렸음에도 불구하고 기존의 일본 과학자들은
학력이 없는 사쿠고로에게 박사학위를 줄 것인가 말 것인가로
대립했으며 결국 사쿠고로는 사퇴해야 했다.
사쿠고로의 연구 성과물은 충분히
일본 학회 최고상인 학사원 은사상을 받을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존의 학자들은 사쿠고로가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수여하지 않으려 하다가 당시 거물이었던 세이치로이 압력 덕분에
겨우 수여받을 수 있었다.
미국 NASA항공우주국 최고의 과학자였던 앨런박사는
청년시절 신문팔이로 간신히 끼니를 때우던 지독한 가난 때문에
대학에 갈 수 없었다.
그러나 학문에 대한 열정을 버리지 못해 매일같이 신문팔이를 마치면
입학하지도 못한 대학에 가서 몰래 수업을 들으며 공부했다.
그러나 실력은 있어도 졸업장이 없었던 앨런은 어느날
NASA의 우주선개발연구원 모집이라는 벽보를 보게 된다.
물론 지원자격은 대학졸업자 이상이었다.
그러나 앨런은 시험에 응시했다. 사람들은 자격도 안 되는 주제에
응시한다고 무시했지만 앨런은 포기하지 않고 입사시험을 치루었다.
이변이 일어나 NASA항공우주국은 학력이 없어도 가장 뛰어난 실력을 가진
앨런을 특채하였고
(잠깐: 한국에서의 특채는 대게 실력이 아니라 파벌이나 빽으로 채용되는 수단이다)
훗날 앨런은 NASA에서 최고의 과학자가 되었다.
아마추어가 작성한 논문을 기존의 전문가들은 '공상과학'으로 치부해버리기도 한다.
아마추어 과학자들의 공통점은 호기심이 대단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전문 과학자들 역시 호기심을 가지고 있지만 그들은 호기심을 특정 방식으로 유도하도록 교육받았다.
아마추어 과학자들의 호기심은 산만하게 흩어져버리거나 방향이 제멋대로인 경우가 보통이지만
전혀 새로운 과학분야의 기초를 마련해 주는 경우가 많다.
일부 언론에서 해외 유학파 박사보다 국내 박사들이 더 독창적이라고 평가하는 이유도
국내에서 학위를 취득한 박사들은 창의력을 발휘하지만
외국에서 학위를 취득한 박사들은 선진국의 수입 학문이야 말로 가장 신뢰할 수 있으며
더 이상의 창조는 무의미하다 식의 주장을 하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한편 멘델이 완두콩을 연구하던 시기에도
당시의 전문 과학자들이었다면 완두콩의 정확한 분류 체계에 집착했겠지만
아마추어였던 멘델에게 그런 문제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멘델은 여러 세대에 걸쳐 완두콩이 어떻게 유전하는가만 관심을 가졌을 뿐이다
아마추어들은 자칫 학문적인 세부 사항들을 무시함으로서 일을 그르치기도 하지만
또한 정도를 따르는 것만이 능사가 아니기에 한계를 뛰어넘기도 한다.
멘델은 학력이 낮았기 때문에 창의적 사고로 새로운 방법을 시도해 큰 발견을 이루어낸
것이다.
이러한 일들은 외국에서만 있는 것이 아니다.
석주명은 전세계가 인정한 톱클래스의 나비학자였으며 일제시대 당시 석주명의 일본 방문은
일본신문에서도 '세계적인 곤충학자 일본 방문하다'라는 기사를 낼 정도로 학계에서의
명성은 대단했다. 당시 석주명이 작성한 학술서적은 훗날 많은 곤충학자들의 참고서가 되었고
지금도 영국의 최고 박물관에서 조심스럽게 유리상자에 보관되어 관람객에게 전시되고 있다.
석주명이 일본 유학시절 교수가 석주명에게 나비학자가 되기를 권했을 때 석주명은
"박사도 될 수 없고 조선사람이라 교수도 될 수 없는데 어떻게 학자를 하겠습니까"라고 대답하자
교수는 "학자는 학위나 지위와 상관 없다. 학자는 오직 논문으로 평가되는 것이다"라고
대답했다. 영향을 받은 석주명은 조선으로 돌아간 뒤 정말 나비학자가 되었다.
직장에서의 근무시간에는 연구하기가 힘드므로 매일 퇴근 후와 휴일을 이용하여 연구하고 논문을 작성했다.
일본에서는 훗날 석주명의 업적을 기려 석주명의 이름을 나비의 학명으로 만들었을 정도로 존경했다.
그러나 정작 한국에서는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이것은 석주명의 학위가 낮은 것을 의식한 교수들의
의도적인 무시가 원인중 하나라는 시각도 있다.
현재 '고졸 박사'로 유명한 국립수목원의 원갑재 연구원은
박사들도 박사님이라고 부르는 국내 곤충분류학의 권위자이다.
저명한 거미학자 남궁준은 국내는 물론 해외의 학계에서도 인정받고 있으며
일본에서 개최되는 학회에도 초청되었다.
최근에는 세계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로 많은 거미 정보를 수록한 거미도감을 출판하였다.
왜 박사학위를 안 따느냐는 질문에 "실력만 있으면 되지 그런 거 해서 뭐하겠나"라고
대답한 유명한 일화가 있다.
한국쏘가리김진규연구소의 김진규 소장은
그 누구도 이룩하지 못한 국내 고유어종의 품종개량과 관상어화를 이루었다.
김진규 소장은 '한국토속어보존회'를 창설하였으며
최근 '불법어업 하천생태 감시단'을 발족하여 초대 회장으로서
왕성한 활동을 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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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고문헌
존말론, 홍수연(옮긴이). 2003. 아마추어과학자. 생각의 나무.
사마키 다케오외 11명, 윤명현(옮긴이) 원혜진(일러스트). 2004. 선생님도 모르는 과학자 이야기. 글담
첫댓글재미난 글 잘읽었습니다. 아마츄어의 정의 그대로 금전적 이익이나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닌 연구 자체에 몰입한 학자가 바로 아마츄어 학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저나 대부분의 아마츄어 출신으로 학자를 꿈꾸는 사람들(특히 청장년층)에겐 '아마츄어 학자'는 현실성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생계와 관련이 없이 순수 자력으로 연구한다면, 연구에 필수적인 연구비와 생계비를 충당할 곳이 없습니다. 파브르도 아시다시피 교직에 몸담으며 연구를 했었고, 위에 나열된 대부분의 분들은 확실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한 뒤 연구에 몰입하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순수한 아마츄어는 동시에 생계를 책임질
수단을 이미 강구한 사람임을 뜻합니다. 근데 저부터도 생계를 가진 뒤 별도로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에 몰입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생계와 연구를 연관짓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버리면 아마츄어가 될 수 없겠지요. 연구로 생계를 잇게 되면 그 순간부터 '프로'가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도 연구자가 되면서 동시에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길을 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음... 그래서 아마츄어 학자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_-;;;
순수함을 잃지 않는 분도 계십니다. 논문 실적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물고기를 사랑하는 수단입니다. 물고기들의 새로운 미지의 사실을 발견해 내는 것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비록 적은 희생은 있을 지언정 그 연구결과로 인해 더 많은 물고기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구요. 양식업에 종사하는 분들 역시 자연에서 남획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물고기 보호와 사랑에 연결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족관은 개인적으로 물고기의 사랑으로 볼만한 어떠한 것과도 연결이 되지 않아 보이네요.^^;
첫댓글 재미난 글 잘읽었습니다. 아마츄어의 정의 그대로 금전적 이익이나 생계를 위한 수단이 아닌 연구 자체에 몰입한 학자가 바로 아마츄어 학자가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저나 대부분의 아마츄어 출신으로 학자를 꿈꾸는 사람들(특히 청장년층)에겐 '아마츄어 학자'는 현실성이 없는 것이 사실입니다. 우선 생계와 관련이 없이 순수 자력으로 연구한다면, 연구에 필수적인 연구비와 생계비를 충당할 곳이 없습니다. 파브르도 아시다시피 교직에 몸담으며 연구를 했었고, 위에 나열된 대부분의 분들은 확실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는 수단을 마련한 뒤 연구에 몰입하는 것을 보실 수 있을 겁니다. 이처럼 순수한 아마츄어는 동시에 생계를 책임질
수단을 이미 강구한 사람임을 뜻합니다. 근데 저부터도 생계를 가진 뒤 별도로 제가 하고자 하는 연구에 몰입할 수 있을지는 자신이 없습니다. 생계와 연구를 연관짓는 것도 이와 같은 이유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어버리면 아마츄어가 될 수 없겠지요. 연구로 생계를 잇게 되면 그 순간부터 '프로'가 되는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도 연구자가 되면서 동시에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길을 가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음... 그래서 아마츄어 학자가 현실성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_-;;;
돈많은 신부 혹은 신랑을 맞이하면 됩니다 ㅎㅎㅎ
ㅡ_ㅡ;;; 내가 1%만 나르님 닮았어도 그렇게 할텐디 ㅋㅋㅋ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예전에 최기철박사님께서 들려주시던 석주명선생님이야기가 생각나네요^^;
정말 물고기를 좋아한다면 물고기에 관련된 직업을 갖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비롭고 좋기만 했던 물고기가 수족관이나 양식업을 하게 되면 돈으로 보이게 되고, 학자를 하면 논문 실적거리로 전락한다고 합니다. 순수함이 사라진다고요
순수함을 잃지 않는 분도 계십니다. 논문 실적이라는 것도 어떻게 보면 물고기를 사랑하는 수단입니다. 물고기들의 새로운 미지의 사실을 발견해 내는 것도 사랑의 표현입니다. 비록 적은 희생은 있을 지언정 그 연구결과로 인해 더 많은 물고기들을 구할 수 있기 때문이구요. 양식업에 종사하는 분들 역시 자연에서 남획을 막아줄 수 있기 때문에 결국 물고기 보호와 사랑에 연결됩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수족관은 개인적으로 물고기의 사랑으로 볼만한 어떠한 것과도 연결이 되지 않아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