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인 ‘블랑카’,지금은 어떨까[함께 여는 문/정철규]
출처 동아일보 : https://www.donga.com/news/Opinion/article/all/20240319/124054733/1
2년 전 캄보디아에서 온 30세 여성 이주노동자 속행 씨는 영하 18도의 한파가 몰아치던 12월 20일의 새벽, 비닐하우스 숙소에서 잠을 자다 숨졌다. 속행 씨의 안타까운 죽음으로 이주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 환경 문제가 사회적으로 큰 논란이 되었다. 그 후 2년간 이주노동자들의 현실과 그들에 대한 인식은 얼마나 바뀌었을까?
2001년 경남 창원시에 있는 공장에서 군 대체복무로 3년간 일한 적이 있다. 처음 회사에 시험을 보러 갔을 때 면접관이 한 말은 내 가슴을 설레게 했다. “우리 회사에는 외국인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 주부터 출근하게 되면 외국인들과 함께 일하게 될 겁니다.”
당시는 외국인을 지금처럼 쉽게 만날 수 있는 시대가 아니었다. 외국인과 함께 일한다니 내가 무슨 성공한 샐러리맨이 된 것 같은 느낌이었고 출세해서 외국계 회사에 취직한 것 같았다. 외국 사람들의 문화도 배워 보고 같이 퇴근하면서 맛있는 것도 먹으러 다니리라. 그러나 그런 상상은 첫 출근 후 산산이 부서졌다.
처음 본 외국인 근로자들의 근무 환경은 처참했다. 컨테이너에서 지내며 밤낮없이 힘들게 일했다. 한국인 관리자들은 외국인 근로자들에게 나이와 상관없이 반말하고 욕하며 심지어 폭력을 행사했다. 당시 회사 직원 400명 중 제일 어렸던 나는 보다 못해 관리자들에게 건의했다. “욕하지 마세요.” “외국인 근로자들도 이름을 불러주세요.” 돌아오는 답은 “너나 잘해”였다.
제대하면 개그맨 시험에 응시할 생각이었던 나는 그때 다짐했다. ‘개그맨이 되어 내 목소리에 힘이 실리는 때가 오면 꼭 이 회사 안에서의 차별을 소재로 이야기할 테다.’
그리고 2004년 개그맨이 돼서 스리랑카인 외국인 노동자 ‘블랑카’라는 캐릭터를 만들었다. “뭡니까, 이게. 사장님, 나빠요”를 외친 나의 연기는 뉴스에 날 정도로 큰 사회적 반향을 일으켰다. 나는 그해 KBS 신인상을 탔고, 주한 스리랑카대사관으로부터 감사패까지 받았다. 지난달 동아일보의 ‘한국블로그’라는 칼럼에서 ‘블랑카’를 언급하며 이민자들에 대한 인식 전환의 필요성을 이야기한 것을 반갑게 읽었다. 나는 그 블랑카와의 인연으로 다문화 전문강사가 되어 현재 개그맨 겸 강사, 일명 ‘개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내가 시도한 이후로도 한국 코미디에서 많은 외국인 캐릭터가 나왔다. 그러나 다문화 인구가 늘면서 종종 이런 코미디가 ‘비하’ 논란을 부르기도 한다. 최근 부활한 개그콘서트에서도 동남아 결혼이주여성을 모티브로 한 ‘니퉁’이라는 캐릭터가 이주여성을 비하했다며 비판을 받았다. 후배는 절대 비하할 의도가 없었겠지만 작금의 대한민국은 이런 이슈에 대한 민감도가 상당히 높아졌을 정도로 다문화 인구가 크게 늘었다. 다문화 인구는 현재 250만 명에 육박한다.
앞으로 이 인구는 더 늘어날 것이다. 그럴수록 어느 나라 출신이니, 어디 민족이니 하는 구분도 점차 사라질 것이다. 사실 그런 게 다 무슨 의미일까. 흑인 여성 최초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토니 모리슨의 명언이 떠오른다. ‘인종은 없다. 인종주의만 있을 뿐.’
정철규 개그맨(스리랑카인 ‘블랑카’ 연기)·다문화 전문강사
빛명상
하나의 고향
우리는 모두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부모와 자식, 선조들과 우리가
세상 모든 생명들과 자연의 모든 존재가
서로 조금씩 다른 모습일 뿐
본래 하나의 고향으로부터 왔다.
지구 반대편 가슴 아픈 사람들이
흘리는 눈물에 손 내밀고
내 옆을 스쳐 지나간 이들에게
존중과 겸손의 미소를 보낸다.
우리 모두는 근원의 빛VIIT마음을
나누어 가진 하나의 원이다.
출처 : 빛VIIT향기와 차명상이 있는 그림찻방
2021년 1월 18일 초판 1쇄 P. 212
하나의 고향. 보름 달빛이 가을바람을 부르니 근원의 빛VIIT마음을 나눈다.
세상 모든
물줄기는 바다로
2003년, 팔공산 빛(VIIT)의 터를 가꾸던 중 수도관 공사를 위해 땅을 파다가 큰 돌에 부딪히게 되었다. 처음엔 작은 바위 정도로 생각했던 이 돌이 파 들어갈수록 넓고 깊게 묻혀 있어 젊은 장정 몇 명이 한 동안 씨름하였다. 꺼내어 놓고 보니 반듯하고 아름다운 모양이기에 정원석으로 쓰면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데 문득 어떤 느낌이 들어 고요에 잠겼다. 보통 돌이 아니었다. 고요함 속에서 이 돌에 담긴 보이지 않는 그 무언가가 느껴졌다. 발달한 문명도 글자도 없던 시절, 때 묻지 않은 순수한 마음으로 이 돌을 중심으로 오행 방위를 만들고 하늘을 경배하고 진심의 감사를 올리던 고대인들의 마음이 그 돌에 담겨 있었다. 후에 한 전문가를 통해 이 돌이 고대 부족의 천재단인 고인돌과 오행석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 돌을 보며 생각했다. 글도 발달된 문명도 없던 시절, 옛 사람들은 어떻게 하늘을 경배하고 오행의 이치를 이해하고 있었을까? 누구로부터 배워서일까? 그렇다면 누가 맨 처음 그것을 일러주었을까.
아마도 그것은 누가 이론으로 만들어 가르친 것도 부추긴 것도 아닌, 모두의 마음속에 있는 뿌리와 근원에 대한 본능, 알 수 없는 이끌림이었을 것이다. 내 안의 진정한 나, 빛(VIIT)마음이 존재하기에 옛 어머니들은 누가 가르쳐주지 않아도 맑은 정화수를 장독대 위에 떠놓고 일월성신(日月星辰)을 생각하고, 천지신명(天地神明)을 우러렀다. 이것이 곧 세상의 모든 종교와 학문, 우주의 진리를 향한 모든 여정의 첫 출발이 되었을 것이다.
비록 그 외형이나 표현 방식이 오랜 시간과 다양한 환경을 거치면서 차이를 보이지만 결국 그 뿌리는 하나다. 골짜기 마다 흘러내리는 개천과 저마다 다른 평야를 끼고 도는 강줄기도 결국 맨 마지막에는 원래의 이름을 다 버리고, 네 물 내 물을 가리지 않고 ‘바다’가 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처럼 빛(VIIT)은 종교의 근본 핵심과 가장 깊이 맞닿아 있는 힘이기에 많은 성직자들이 빛(VIIT)을 통해 진리에 더 가까이 다가갈 수 있음에 감사하시는 모습을 보게 된다. 김수환 추기경님, 자월 큰스님, 역시 그러한 분들 중 한 분이었다.
출처 : ‘빛명상’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행복순환의 법칙
초판 1쇄 발행 2009/09/14
2021/06/01 초판 45쇄 P. 266-267 중
귀한 글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하나의 고향ㆍ
너와 나를 나눌 수 없음을 모르고 오직
눈앞에 보이는 자신의 이익 만을 위해 많은 사람들을 죽음으로 몰아가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은 현실이 안타깝습니다ㆍ
귀한 빛말씀 마음에 담습니다ㆍ
우주빛마음님과 현존의 빛이신 학회장님께 감사와 공경을 올립니다 ㆍ
감사합니다
우리는 모두 근원의 빛마음을 나누어 가진 하나의 원이다.
온 세상 모든 이들이 빛안에 하나될 수 있기를 기원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