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무는 한 해
경자년이 가는 마지막 날은 근무지에선 방학에 드는 날이기도 했다. 수능 이후 고3은 원격수업으로 전환되어 줌에서 화상으로 만났다. 50분 시량을 다 채우지 않고 시간 앞부분 출석 점호와 함께 몇 가지 당부를 하고 끝내는 식이었다. 내가 맡은 논술과 고전읽기 교과에서 더 전할 내용이 없었다. 앞으로 진학하게 될 대학에 대한 정보 수집과 학업 계획을 세워 잘 실천하자고 했다.
방학에 들면 일월 말 개학해 이월 초 며칠 등교해 나도 출근해야 한다. 졸업과 종업식을 마치면 봄방학이다. 어제는 행정실장이 정년을 맞아 공직을 마무리 지었다. 새로운 실장이 어디선가 부임해 오지 싶다. 내 나이와 같은 교장은 이번 이월 말로 정년을 맞아 교직 생활을 접을 예정이다. 관례상 친목회에서 송별 회식을 갖기도 한다만 코로나로 자리를 못하고 그냥 넘어가지 싶다.
십이월에 들어 거제는 코로나가 급속히 번져 사회적 거리두기가 2.5단계로 올라갔다. 학생들은 1/3만 등교하게 되어 1.2학년이 격주로 등교했다. 교직원들도 출근 인원을 제한 받아 일부 동료는 재택근무를 했다. 나도 지난 주 재택근무를 사흘 신청해 이틀만 하고 하루는 학교로 출근했다. 코로나로 각자 일상에 많은 변화가 왔다. 나는 교직 말년 원격수업과 재택근무까지 해 봤다.
어제부터 기온이 급강하해 중부 내륙엔 한파경보가 내려졌다. 남녘에도 영하권으로 내려가고 바람까지 불어 체감 온도는 더 떨어졌다. 어제 퇴근 후 연초삼거리 세탁소에 몇 가지 옷을 맡겼다. 방학에 들면 한동안 입지 않아도 될 양복과 티셔츠였다. 멀지 않은 거리를 걸어서 오갔는데 해질녘 기온이 내려가 추위를 많이 느꼈다. 바람마저 세차 목도리를 들러도 귓등이 아리듯 시렸다.
한 해가 가는 마지막 날이다. 새벽녘 잠을 깨어 손흥민이 뛰는 프리미어리그 축구 시합을 보려니 중계를 하지 않았다. 상대 팀 선수가 코로나에 감염되어 경기 기작 3시간 전 시합이 연기되어서였다. 재방송 되는 ‘나는 자연인이다’를 보다가 아침밥을 일찍 지어 먹고 설거지를 마쳤다. 퇴근하면 챙겨갈 침구를 싸두었다. 인터넷으로 뉴스를 몇 줄 검색하면서 날이 밝아오길 기다렸다.
일곱 시가 되어 와실을 나섰다. 어둠이 가고 날이 밝아오고 있었다. 날씨가 추워 들녘을 두르는 산책은 하지 않고 곧장 학교로 향했다. 이른 시각인데 도서관 천정에는 실내등이 훤히 켜져 있었다. 리 모델링 공사 공기를 맞추느라 인부들이 새벽부터 일을 하는 듯했다. 배움터 지킴이는 가스난로를 켜 놓고 잠시 자리를 비워 보이질 않았다. 너른 교정은 절간처럼 고즈넉하기만 했다.
현관으로 바로 들지 않고 교정 앞뜰 연못으로 가봤다. 근무 중 틈이 나면 내려와 거니는 뜰이었다. 24시간 가동되는 분수는 물이 솟구치지 않았다. 밤새 기온이 내려가 분수가 얼어 그런 모양이었다. 물뿌리개 모형에는 물줄기가 가늘게 쏟아졌다. 연못가는 밤새 분출된 분수의 물이 튀어 얼음이 얼어 있었다. 고드름 같기도 하고, 상고대 같기도 했다. 강추위가 빚어낸 설치미술이었다.
연못의 분수가 만든 결빙 장면을 폰 카메라에 담았다. 앞뜰에서 뒤뜰로 돌아가 내가 지도하는 쓰레기 분리 배출 장소를 점검했다. 간밤 바람이 많이 불었는데 헝클어지지 않고 가지런했다. 나중 일과 중 교실에서 내려올 쓰레기를 살펴주면 되지 싶었다. 한 해 동안 출근해 수업 말고는 내가 맡은 일었다. 컴퓨터와 나이스로 진행되는 공문서 처리를 하지 않음만도 고맙게 받아들였다.
문화부건부실로 들어 아까 찍어둔 얼음 풍경 사진을 몇 지기에게 보냈더니 곧바로 회신이 돌아온 친구도 있었다. 노트북을 열고 하루가 시작했다. 방학식 날이기에 오전 일과로 끝나게 되었다. 1교시 수업이 든 한 반에서 학생들을 줌 채팅방에서 만나 몇 자 전했다. 이제 예비대학생이고 준 사회인이니 자율에 따른 책임감을 느끼자고 했다. 반듯한 품격을 갖춘 멋진 청년이 되자고 했다. 20.12.31